8주년 노벨상 8주년 기념 - 강연문 - 돈 오버도퍼 |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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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김대중 선생은 조국에서 자행되는 독재와 부당한 탄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다가 거짓에 속아 1973년 8월 한국인들과의 오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맞고 마취되어 대기 중이던 차로 실렸고 동해, 또는 일본해상의 배로 재갈이 물린 채 끌려갔습니다. 당시 주한미국 대사였던 필립 하비브와 CIA 국장인 도날드 그레그는 그가 사망했을 때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납치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하며 김대중 선생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 그는 폭행을 당하고, 눈 가리개를 막 푼 상태에서, 그의 서울 자택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풀려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선생이 겪은 여러 고난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생에 따르면 5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또 6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10년을 연금 또는 타의에 의한 망명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선생의 투쟁은 한번도 꺾인 적이 없습니다.
이 모든 고난을 겪어내고 선생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0년 북한과의 화해를 가져온 노력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는 여기 계시는 용기 있는 의지를 가지신 분에 대한 경의의 찬사입니다.
정치적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정신과 그 실천은 지속되어 왔고 꽃을 피웠습니다. 지금은 청와대에는 보수주의자, 특히 실용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공정한 투표를 거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북한과의 갈등보다는 포용을 지지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및 여러분들의 노고 덕택에 포용 정책은 한국 국민과 정치계의 유일한 대안은 아닐지 몰라도 선호하는 정책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해, 전임자들처럼 군부 출신도 아니고 정치계 인물도 아닌 CEO 출신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을 두 차례 만났습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관계에서 진전되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더 크게 일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비난도 있고 여러 측, 특히 북한에서 이런 저런 추측이 난무합니다. 지금 같은 핵무기 시대에 그 위험성은 지금도 크지만 더욱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한국은 새로운 국면, 새로운 시대에 이미 들어섰고 1970년대 초와는 아주 다릅니다. 이제는 신중한 리더십과 멀리 보는 상황 관리가 필요할 것이고, 한국, 미국 및 기타 동맹국들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김대중 전대통령 및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바라던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Two Koreas”를 탈고하면서 썼듯이, 미래는 극적이고, 강력한 감정 및 엄청난 결과와 같이 전개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놀라움의 땅입니다.
In Japan, Kim was vocal in his opposition to the dictatorial and unjustified crackdown in his own country-until he was lured to a luncheon meeting in August 1973 with visiting Koreans, kicked, punched and chloroformed, shoved into a waiting car and taken
Tbound and gagged to a boat in the Sea of Japan, known by Koreans as the East Sea. Quick action by the US ambassador in Korea, Philip Habib, and his CIA chief, Donald Gregg, probably saved Kim’s life by warning his captors of grave consequences if Kim were killed. A few hours later, he was released, battered and dazed, a few blocks from his home in Seoul.
his was far from his only travail. According to Kim, he faced death five times. In addition, he was imprisoned for six years and spent 10 years under house arrest or in forced exile. Yet he never swerved from his fight for democracy.
It is a tribute to this determined and courageous man and to his country that after all his travails he was elected president in 1997 and won the Nobel Peace Prize in 2000 for his efforts to bring a rapprochement with North Korea.
Political alignments have changed but the spirit and practice of democracy has persisted and flowered in Korea in the past decade. Today a conservative is in the Blue House, but a pragmatic conservative elected in a fair balloting who espouses engagement rather than conflict with North Korea. Due to the work of Kim Dae Jung, Roh Moo Hyun and others, engagement is the preferred option, if not the only option for the South Korean public and body politic.
I met Lee Myong Bak twice last year, a CEO president rather than a military or political figure like those who came before him. Lee told me he wants to build on the progress that has been made in inter-Korean relations. This is not an easy job. There is plenty of criticism and second-guessing from all sides, not least from North Korea. The dangers - still great - may even be compounded in this nuclear age.
It seems to me, however, that the Republic of Korea has entered a new phase and a new era, very different from the one that existed in the early 1970s. It will take careful leadership and far-sighted management, and the continued backing of the Korean public and of the United States and other allies to accomplish the goals of peace and prosperity that Kim Dae Jung and many other Koreans have long been seeking.
As I wrote at the end of The Two Koreas, the future will likely develop with high drama, intense emotion and powerful consequences. Above all, Korea is a land of surpri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