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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주년 노벨상 6주년 기념 -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 소사이어티회장 연설

    본문

    도널드 그레그 미국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특별강연문 (2006년 12월 7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영속적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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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늘 한반도에서의 민주주의와 경제, 정치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특별한 기여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1989년에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서독 수상이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로서, 저는 빌리 브란트 전수상과 만찬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날 그는 DMZ를 다녀온 길이었습니다. 판문점에서 본 광경에 충격을 받은 브란트 수상은 DMZ를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곳”이라고 표현했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려 독일을 통일시키는 것보다 한바도에서의 남북 통일이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브란트 수상은 베를린장벽이 언제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가하는 질문을 그 즉시 받았습니다. 그는 전혀 머뭇거림 없이 “내 생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베를린 장벽은 그로부터 60일도 안되어 무너졌고 독일 국민들은 그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과정을 밟아야 했습니다. 환율정책, 임금수준 등에 대한 잘못된 결정들로 통일과정은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수년 동안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고, 혹자는 계획되지 않고 예측하지 못했던 이런 독일 통일의 부작용들을 해소하려면 최소한 한 세대는 더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분단됐던 한 국가를 다시 통일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기 마련입니다. 사이공이 무너진 이후 수년동안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던 ‘보트피플(boat people)’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미국조차도 남북전쟁 이후 인종간 분열 문제로 인한 부작용들을 오늘날까지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은 146년 전인 1865년에 종식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반도에서 남북화해가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한반도 통일의 과정은 무거운 짐을 높은 산위로 끌어올리는 것같이 몹시 힘든 과정(heavy lifting)이 될 것입니다.


    6년 전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한과 북한 모든 한민족에게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미래 관계의 창문이 잠시나마 열렸고, 열린 창문을 통해 한국 국민들은 북한을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까지 얼굴도 없고 대적 불가능해보이던 적이 이제는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고, 한국 국민들은 모든 분야에 있어 인간의 능력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성립시키는 큰 성공을 거두는 등 한국이 얼마나 북한에 앞서 있는지를 정상회담 이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남한과 북한 간의 상이한 사회, 정치적 구조를 볼 때 통일과정은 점진적이고 조심스럽게 진행돼야 한다는 현명한 주장을 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늘어난 남북간 교류에 있어, 특히 개성공단을 고려했을 때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덕택으로 서서히 통일을 위한 기본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 내에서 남북정상회담과, 회담을 가져온 햇볕정책에 대해 회의, 심지어 비난도 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수개월동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지난 7월의 미사일 실험 그리고 최근 평양이 주장한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더 두드러졌습니다.


    오래 지속되는 위기상황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오는 주요 사건들을 단기간에 판단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1954년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전투에서 프랑스의 패배는 미국에 의해 완전히 잘못 해석됐던 경우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식민시대의 종식이라는 원래의 의미로 보기보다는, 미 행정부는 이를 냉전의 한 단면으로 보고, 그런 판단 하에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베트남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가 사이공 근처 전쟁터에서 있었던 1972년, 저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그랬듯, 베트남전에서도 중국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닉슨 대통령의 전략적 행동은 오늘날 그의 재임 중 최고의 외교적 성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당시 그의 행동은 타이완의 영향력 있는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고, 대부분의 신보수주의 논쟁가들을 경악시키는 등 한동안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 혹자는, 재정적 부담이 너무 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한국은 너무 많은 것을 준 반면 되돌려 받은 것은 없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이들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고, 심지어 핵개발이 지속된 것은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책임이라며, 이로 인해 10월 9일 북한이 결국 핵실험을 했다고 비난합니다.


    저는 이런 주장은 잘못되고 정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전대통령은 평양의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기는커녕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핵보유국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평양 내부정책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심과 두려움입니다.


    2000년 미국 대선 이후 워싱턴과 평양이 화해 움직임을 계속할 것이라는 김 전대통령의 희망은 2001년 부시 대통령과의 첫만남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전망은 완전히 바뀌게 됐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햇볕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며,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김 전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까?


    저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의 햇볕정책, 그리고 조지 캐넌 (George F. Kennan)과 그의 봉쇄정책 간에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미 국무성 정책기획 최고담당자로 있을 때 조지 캐넌은, 미국이 소련에 대해 봉쇄정책을 가하는 것만으로 소련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발표해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에 따르면, 소련은 내부에서의 모순들로 인해 결국 붕괴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논리의 타당성을 주장했습니다. 1989년에 소련이 붕괴를 했고, 실제로 총 한방 쏘지 않고 냉전이 종식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조지 캐넌과 그의 정책은, 봉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더 강한 강압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은 미국과 소련 조종사들이 공중전을 벌였던 한국전쟁, 케네디 대통령이 핵위기를 가속화시킨 것이라는 군사자문단의 충고를 거부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78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등, 미국과 소련 간의 위기상황 동안 특히 팽배했습니다. 위기 동안에도 “봉쇄”는 최소한 미국의 더 통찰력있는 전략가들에 의해 그 유효성이 유지됐고, 다른 정책들이 이행될 수 있는 우산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냉전 종식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핵협상의 장기화 등의 정책들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결국, 조지 캐넌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의 중요한 전략가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올해 초 101세에 사망했습니다.


    햇볕정책 또한, 남북화해라는 장기목표가 다방면으로 이행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등이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지금까지 남북 화해 노력에 있어 정점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의 장기적 중요성은 높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콜롬비아대학의 찰스 암스트롱 (Charles K. Armstrong) 교수는 최근 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 . . 북한이 국제사회로 진출한 신호탄이었다는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의 상징적 가치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관계정상화를 시작으로, 북한은 서방국가들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전례없는 노력을 시작했다. 2년 내에 평양은 2개국을 제외하고 EU 모든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0년동안 위기관리와 혼란을 겪은 뒤 북한은, 한국의 도움과 격려로, 외부로 더욱 나오게 되었다.”

    ( , Routledge, p. 85)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 김대중 전대통령은,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깃발이 북한에서 휘날리도록 하라”고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뉴욕주의 시라큐스대학과 평양의 김책대학 간의 정보기술 교환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이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북한을 고립에서 이끌어내 이웃국가들과 관계 정상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기회에 연설을 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조지 캐넌은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비전을 가진 지도자로서 “개념”의 중요성을 믿는 분들입니다. 캐넌의 '봉쇄‘의 개념은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저는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개념이 결과적으로 한민족 모두에게 화해를 가져오는 데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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