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년 노벨평화상 12주년 기념 - 특별강연 - 존 스웨슨 라이트 |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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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한반도의 전환기적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동북아 국가, 미국, 북한의 지도부가 선출되었고, 정치적 상황은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지도 하락, 경기 침체라는 국내적 상황뿐만 아니라 수주 안에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고, 평소 공격적인 언사를 일삼으며 비상 상황을 언제든 일으킬 수 있는 북한 정권과의 새로운 갈등 위험까지 안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난관에 봉착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은 2008년 대통령 취임 당시 야심 차게 발표했던 ‘글로벌 한국 전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당시는 한국 경제 활성화, 지역 및 국제 환경에서 다이내믹한 한국의 역할, 대북관계 개선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특히 대북관계 개선은 보다 강경한 자세로 북한을 설득하여 핵을 포기시키고 그 대가로 원조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통해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대와 대미관계에서 확고한 “중간국”의 입지를 보여주었으나 대북관계 개선에서는 여지없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지난 5년의 실책을 이해하고, 청와대의 새 주인이 정해질 이 시점에 향후 미래를 결정지을 선택을 판단할 수 있도록 김대중 정부와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의 세계적 위상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은 우리모두 잘 알고 잇습니다. 이곳 서울에서는 오히려 그가 남긴 유산이 더 많은 논란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로써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인물의 역할을 평가할 때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합니다. 기록물의 접근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또한 외국인으로써 이 독특하고도 중요한 인물에 대해 저 스스로 더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에 신념을 가지고 반대했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단호한 노력을 경주한 이 분의 개인적 역사는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먼저 오늘과 같이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와 그의 유산과 동아시아 안보의 미래에 대한 소견을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문정인 교수님과 이 행사를 준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원칙의 기본 전제는 정치와 경제적 사안, 원조는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원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북측이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남측의 움직임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반응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유연한 상호주의”라는 말은 인도적 원조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양측 정상간의 회담 가능성 타진, 또는 갈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신뢰구축조치 실행 등에 다가갈 문을 열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연히 또는 계획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판단해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지도부의 생각은 생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김대중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서방의 보수파들이 주장하는 북한 붕괴 임박설을 믿지 않았습니다. 김대중의 생각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김대통령의 통찰력이 특히나 놀랍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이 있는 데 이렇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포용이야 말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지도부를 좀 더 개방적이고 관대하게 만들 수 있으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방식을 멋모르는 진보주의적 발상으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진보주의 정치 유형이고, 장미빛 렌즈로 북한을 본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은 북한을 옹호하는 사람도 아니고 순진한 낙관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미 있고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 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방식이 미래에 진전을 이뤄낼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을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현재의 이명박 정부 정책은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보수 정권이라고들 말하는 이명박 정부는 진보진영 보다는 완고하고 더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현정부가 강조하는 엄격한 상호주의는 실제로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북한의 핵무기 포기 대가로 경제원조를 약속하는 일괄타결(Grand bargaining)을 제안하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북측이 남측을 향해 쏟아내는 강경하고도 모욕적인 언어를 보면 북한의 핵무장 의지는 여전히 확고한 상태이며, 남북관계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저조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을 통해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실질적이고 현존하는” 위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측의 “적극적 방위(proactive defence)” 전략이 실제로 한국을 안전하게 지켰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해 봐야 할 것 입니다. 실상은 양측의 군대가 서로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되어 오해 또는 우발적인 긴장 고조로 인한 전쟁의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 혼자서 이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니까요. 지난 해 지도부가 바뀌고 나서, 김정은이 스스로 통치할 능력을 갖추기까지, 그리고 북한 내에서 주민들의 눈에, 특히 군부 지도자들에게 보여줄 정통성을 확보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젊고 경험이 일천한 새 지도자 김정은은 남측을 의도적으로 자극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29살의 젊은 지도자가 2010년 2번의 대남공격을 개인적으로 지원했다고도 합니다. 김정은이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더욱 완고한 동료들에게 증명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시각이 현상을 맞게 보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제가 몇 주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확인했던 사실입니다. 바로 새로운 지도체제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고 무엇이든 서둘러서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북한은 곧 붕괴되지 않을 것이며 남한과의 통합 전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추진했던 통일기금은 현실과 유리된 매우 요원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그 지도부를 어떻게 잘 포용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매우 놀랍고,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희한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 남한의 정치적 상황을 보는 데는 오히려 덜 성공적이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남북관계 개선의 문을 처음 연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은 모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대통령으로써 전임 대통령들에게 진 빚을 마지못해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에서는 북한 포용에 대한 지속적인 동의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국회에서 여소야대인 상황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일부 비판자들이 꼬집었던 청와대 “벙커심리”는 대통령이 진정 바랬던 포용력이 큰 “국민의 정부”의 실현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현대 한국사, 특히 전(戰)후 정치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 즉, 한국의 양대 진영의 고집과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한쪽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발전, 한강의 기적을 내세우는 진영이고, 다른 한 쪽은 1980년대 민주화와 시위 정치로 점철된 투쟁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라에 대한 야망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정치인입니다.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1998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민주화, 경제적 평등, 대북 화해 같은 과감한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하나만 잘했어도 김대중의 사라지지 않는 유산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세 가지 주제를 5년 단임제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직면한 제도적 제약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대중의 성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원조는 기근과 경제정책 실패의 여파로 고통 받는 2천2백만 북한 주민에게 필요했던 인도적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더욱이 김대중은 남한을 안전하게 수호했습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 그는 한국의 경제적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여, 민주적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특히 한국인들의 대북 인내심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그의 후임인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현재의 국내외 상황을 보고 계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추측해 보면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두 명의 대선 후보가 북한과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은 데 매우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해 온 대북 포용이 정치의 주요 논제가 되었다는 암묵적인 신호이며, 그의 유산이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한 강력한 한미 동맹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한일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언 하자면 일본과 새로운 긴장관계를 무릅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매우 잘못 판단한 것이며 유감스럽습니다.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좌우 진영이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주장하실 것 같습니다. 고인의 지인과 가진 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으로써, 서거 전 고인이 크게 걱정했던 문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선거운동에서 보았다시피 그의 바램이 이루어져 가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좌우 양 진영이 중간으로 접근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데올로기적 차이이기도 하지만 지역적 차이이기도 하지요. 영호남의 대립을 끝내야 한다는 사회, 경제, 정치적 이유들도 있습니다.
저는 영국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당이나 보수당이나 “한 나라” 정치 개념의 수용이 점점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진정성 있고 견고함이 보장된 지속적인 내부결속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 김대중 대통령께 드릴 수 있는 적절하고 지속적인 헌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지속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발판이 마련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