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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 (Session 1) 백학순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본문

    백학순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ession 1


    한반도 평화체제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1.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무엇이 문제인가?

         1) “한반도 문제”의 성격

         2) 평화체제 수립: 비전, 국제환경, 선택

    2.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노력의 역사

        1)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

     2) 미국의 한반도정책/북한정책/평화체제정책: 충돌하는 요소들의 혼재

        3) 현재의 상황

    3.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

     1) 북핵 해결/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방법론: 대화/협상 vs. 압력/제재

          2) 평화체제와 북핵문제의 관계

         3) 평화체제와 한미동맹: 유엔사/주한미군의 위상/기능 변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문제

     4) 평화협정 체결당사자 문제와 국제적 보장

     5)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통제 

     6) 평화체제와 통일: 분단고착적 vs. 통일지향적 평화체제 

    4.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제와 전망   

     1)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리더십 확립 문제 

      2)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북한 협력 문제

      3) 평화체제 수립의 새로운 접근법

      4) ‘평화체제 수립’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5) 한반도 평화체제, 이제는 “담대하게” 이뤄나가야

     6) 박근혜정부에 대한 정책제언



    본 글은 ‘한반도 평화체제 만들기’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무엇이 문제인가?, 둘째,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노력의 역사,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 넷째,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한반도 문제”의 성격, 평화체제 수립의 비전과 국제환경을 살펴보고,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노력의 역사’에서는 여태까지의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를 살펴보고, 미국의 한반도정책/북한정책에서 충돌하는 요소들의 혼재 상황을 분석한 후 마지막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에서는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대화/협상 vs. 압력/제재의 유용성과 효과성을 비교하고, 평화체제와 북핵문제의 관계, 유엔사/주한미군의 위상/기능 변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문제 둥 평화체제와 한미동맹의 관계, 평화협정 체결당사자와 국제적 보장,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와 통일과의 관계를 ‘분단고착적 vs. 통일지향적’의 관점에서 비교분석하고, 어떤 성격의 평화체제가 더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해 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는 우리의 ‘과제와 전망’으로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리더십 확립,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북한 협력, 평화체제 수립의 새로운 접근법, ‘평화체제 수립’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합의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본 후,  한반도평화체제를 이제는 “담대하게” 이뤄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하여 박근혜정부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1.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에서는 우리민족이 분단되어 앓고 있는 “한반도 문제”라는 병의 성격과 치료방법을 원칙적으로 살펴보고,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의 비전과 국제환경을 검토해 보자.


    1) “한반도 문제”의 성격


      우리민족은 1945년 분단 이래 ‘한반도 문제’라는 ‘병’을 앓고 있다. ‘병의 근원’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고 관련국들이 ‘정전체제’ 하에 놓여있다는 데 있으며,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남북한 대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따라서 남북한 군대의 대치, NLL과 이를 중심으로 한 군사적 충돌, 한미합동군사훈련, 북미대결 등은 그러한 병의 근원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표면으로 드러난 ‘병의 증후’라고 할 수 있다.

    정전체제를 그대로 존속시켜 놓고서 어떤 평화의 노력을 한다 해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술적, 임시변통적 차원에서의 노력이지 근본적인 차원에서 병의 근원을 치유하는 식의 노력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정전체제라는 적대구조 자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병의 증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병의 증후인 북 핵·미사일문제, 서해 NLL에서의 군사충돌 등을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불가피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전체제 및 평화체제와 관련된 국가들, 즉 남북한, 미국, 중국이 60년 세월 동안 악화된 ‘병의 근원’의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점에서 한반도 국가인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상호 협력하여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고 미국과 중국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세계에서 정치와 외교는 병의 증후를 놔두고 병의 근원만을 먼저 치료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병의 증후만을 대증요법으로 다뤄서는 병이 근치되지 않고 재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병의 근원과 병의 증후를 함께 치료해야 하고, 치료가 단계적,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양자가 모두 치료되는 효과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 2005년 9.19공동성명은 바로 병의 근원과 병의 증후를 함께 치료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양자를 병행적으로 치료해 나가되, 그 동안 존재해온 상호불신을 고려하여 ‘동시행동적 원칙’에 의거하여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던 합의였던 것이다.


    2)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비전, 국제환경, 선택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비전은 “정전협정 및 군사적 대결구조를 통하여 유지되고 있는 남북한 및 관련국 간의 관계를 새로운 조약 및 관련국 간의 관계의 개선으로 평화상태가 공고하게 된 한반도 주변의 국제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비전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불가침을 보장하고, 군비경쟁을 방지하며, 대결에서 협력을 지향하는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인 평화유지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여건을 창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한반도에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비전속에는 평화 유지(peace keeping)는 물론, 더 나아가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와 평화 공고화(peace consolidation)의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최근세사는 외세의 침략과 민족 분단의 역사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강대국 질서의 희생양이 됐다. ‘자주/주체성의 확보’ vs. ‘강대국 질서의 추종’, ‘민족의 통일과 평화’ vs. ‘민족의 분단과 전쟁’이라는 엄중한 선택을 앞에 놓고서, 지금처럼 남북 간에 상호대결을 지속하고 무력충돌까지 불사하겠다는 남북한 집권자들의 정책은 민족의 희망에 대한 배신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자주/주체성’은 ‘닫힌 자주/주체성’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주장처럼 ‘열린 자주/주체성’일 수밖에 없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처럼 강대국들과 국제사회에 대한 ‘균형외교를 통해 성취하는 자주/주체성’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열린 자주/주체성’ 위에서 남북한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공간을 확립하고, 6.25전쟁을 끝내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함으로써 평화정착을 실현하며, 통일의 전망을 확보함으로써 ‘하나 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기약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그러한 선택을 한 지도자였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을 꿈꾼 김대중 대통령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면서 현상유지적 외교를 한 지도자가 아니라, ‘탈냉전 시기’라고 불린 기간에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주인으로서 주도권을 확립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동아시아질서 속에서 ‘우리 민족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확보하려는 비전을 가진 ‘능동적’인 전략가요, 한반도에 관한 한 강력한 ‘국제질서형성자’였다.

    6.15공동선언은 주변 4강과 전 세계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에서의 국제질서형성자로서의 주도적인 역할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 냈다.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남한과 북한의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남한의 대북정책을 지지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 만큼 우리민족의 주도권과 위상이 국제사회에 높아졌던 것이다. BBC와 닛케이신문은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에 비유하였고, 르 피가로는 이를 1970년 동서독 총리와의 첫 만남을 연상시킨다면서 그로부터 19년 후 독일이 통일되었음을 상기시켰다. 쥐트도이체차이퉁도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훗날 한반도 통일의 출발점으로 간주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국제환경은 어떠한가? 그 동안 미국과 중국은 소련 붕괴 이후 상호 경쟁하고 대결하는 구조로 동아시아질서를 짜 왔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한반도에서 과도기를 조속히 마감하고 미중대결의 새로운 동아시아질서 형성을 재촉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약 20년에 걸친 과도기도 끝이 났다.

    지금 우리 민족이 처해있는 한반도 국제환경은 미중 양국이 자웅을 겨루면서 대결적 구도로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는 21세기 동아시아질서이다. 중국몽(中國夢)을 바탕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아시아에로의 회귀’(아시아 재균형)정책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국vs. 중국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일본, 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호주로 이어지는 동맹/우방 관계의 증진 vs. 러시아 등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정상회의’(CICA),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vs.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경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불리하게도 미중 양국 간의 대결적 구도는 동아시아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남북한을 분리시켜 각각의 세력권에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엄중하다. 남북한이 상호 협력하여 그러한 흡인력에 저항하고 이를 이겨냄으로써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의 공동이익과 통일을 함께 추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2.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노력의 역사


    여기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를 간단히 일별하고, 미국의 한반도정책/북한정책/평화체제정책에서 충돌하는 요소들의 혼재 상황을 검토함으로써 미국의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의 부재 현상을 설명하고, 지금 현재 평화체제 수립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한다.


    1)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국제협상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반도 정전협정이 규정한 바에 의해 1954년 4~7월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인도차이나의 평화에 관한 제네바회의(제네바 극동평화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제네바회의에서 6.25전쟁은 평화협정을 통한 평화정착이 아닌 정전상태로 마무리됐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부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했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회담과 관련하여 자신이 처해있는 여건과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남북 양자회담, 북미 양자회담, 남․북․미 3자회담,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제안하거나 받아들였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1962~74년에는 남북한 간의 평화체제 협상과 평화협정 체결을, 1974~84년에는 북미 양자 간의 협상과 체결을, 1984~91년에는 남․북․미 3자회담을 통한 북미 양자 간의 체결을, 1991~96년에는 남북관계를 분리해 내어 남북 상호간에 불가침을 약속하고 북미 양자 간에 평화협정의 협상과 체결을, 1996~99년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통한 북미 양자 간 체결을, 그리고 1999~2005년에도 남북관계를 분리해 내어 남북 상호 간에 불가침을 약속하고 북미 양자 간에 평화협정의 협상과 체결을 주장했고, 2005년 6자회담에서의 9․19 공동성명부터 현재까지는 6.25전쟁의 직접당사국들인 남북․미․중 4자포럼에서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 내용을 마련한 후 그것을 북미 양자 간에 체결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4자포럼에서 평화협정안이 마련되면 북한은 4자가 서명하고 체결하는 방안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붕괴 후 탈냉전 시기에 평화체제 수립 노력과 관련하여 북한이 노력한 것으로서 북한 자신이 대표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1994년 4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의 제안, 북미 양국 간 ‘정전협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잠정협정의 체결’의 제안, 1990년대 후반의 ‘4자회담’,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정전협정의 평화보장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6.25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는 데 합의한 것, 2007년 10.4정상선언에서의 ‘정전협정 유관국들 간의 전쟁종결 선언 추진’ 제안 등이다.

    한편, 남한은 원래 남북 양자회담을 통한 평화체제 협상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북한이 주장한 북미 양자회담이나 남․북․미 3자회담을 통한 협상과 체결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미․중 4자회담을 통한 협상과 체결에 합의하고 있다.

    여기서 최근 탈냉전 시대에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좀 더 들여다보자. 1990년대 초에 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붕괴하자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유산인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본격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네 번의 협상이 있었다. 클린턴-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1994~1999), 2005년 6자회담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일괄타결 노력과 그 결과로 나온 9.19공동성명, 그리고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2007년의 2.13합의와 10.3합의를 이뤄내기 위한 협상, 10.4남북정상선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탈냉전 시기에 이뤄진 이 모든 협상에서 ‘평화체제 수립’ vs. ‘북핵문제 해결’의 선후관계는, 여러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양자를 ‘병행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이해를 함께 했다는 점이다. 결국 2005년 9.19공동성명을 계기로 ‘동시행동적 원칙’ 하에서 단계별로 주요 현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일괄타결을 하는 데 합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4자회담, 9.19공동성명, 2.13합의와 10.3합의, 10.4정상선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1996년 4월 제주도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양국이 공동으로 제안하고 북한과 중국이 수용한 ‘4자회담’이 1997~1999년에 진행되었다.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문제’(establishment of a peace regime on the Korea Peninsula, and issues concerning tension reduction there)였다. 4자회담은 ‘평화체제분과위원회’와 ‘긴장완화분과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1954년 제네바회의 이후 43년 만에 본격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다루었다. 4자회담은 여러 가지 심각한 쟁점들이 있었고, 그 쟁점들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실패하고 말았으나, 쟁점 해소를 위한 갖가지 논의들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경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6자회담 참여국들은 9.19공동성명을 통해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고 그 공동성명의 4항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에 합의했다. 9.19공동성명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별개의 회담에서 논의되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양자가 병행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한편, 북한에 대해 대화와 협상을 하지 않고 압력과 제재를 가하면서 ‘악의 축’ 중의 하나인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했던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을 초래함으로써 자신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더구나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함으로써 부시 정부는 대화와 협상의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북정책 선회의 배경에는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자문역인 필립 젤리코의 유명한 2개의 정책페이퍼가 있었다. 그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제안했고, 라이스 국무장관과 부시 대통령이 그에 동의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미 양국은 직접대화를 시작하여 2007년에는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 조치들에 대한 합의(2.13합의)와 제2단계 조치에 대한 합의(10.3합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2.13합의와 10.3합의는 평화체제 수립 그 자체에 대한 합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젤리코의 정책제언에 바탕을 둔 정부차원의 결정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7년 10.4정상선언에서 ‘정전협정 유관국들 간의 6.25전쟁의 종결 선언 추진’에 관한 합의이다. 종전선언이 이뤄짐으로써 평화체제 수립 과정이 적극적으로 진전될 수 있을 터였다. 10.4정상선언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하는 데서 ‘남북한, 미국, 중국’의 4자의 참여를 제안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현재는 중국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지 않는 등 중국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중국의 제외’를 제의했으나, 결국 양측은 모양새를 갖춰 ‘3자 혹은 4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합의했던 것이다.


    2) 미국의 한반도정책/북한정책/평화체제정책: 충돌하는 요소들의 혼재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노력하는 데는 북한과 미국 양국의 상대방에 대한 정책,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정책이 중요하다. 그런데 북한은 일관되게 6.25전쟁의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요구했던 데 비해, 미국은 그 동안 뚜렷한 목표와 일관성을 갖춘 한반도정책/북한정책/평화체제정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평화체제의 수립 문제는 실질적으로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된 다음에야 다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북핵문제 해결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체제 수립에 대해서는 클린턴 정부 시기의 ‘4자회담’을 제외하고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책이 그렇게 된 데는 꽤 많은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 여덟 가지의 서로 상이하고 때로는 충돌되는 요소들을 살펴볼 것인데, 이것들이 결합하여 미국의 한반도정책/북한정책/평화체제정책을 더욱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첫째, 미국이 북한에 대해 추구하는 정책목표의 모호성, 정책목표와 해결방법 및 정책수단 사이의 부정합성이 심각한 문제이다. 오바마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달성, 장거리탄도미사일문제 해결 등이 궁극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미국이 택한 해결방법과 정책수단을 보면, 공식적으로 내어 놓고 있는 목표들이 과연 궁극적인 정책목표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궁극적인 대북 정책목표가 북핵문제 해결이라면 그것을 달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미국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화와 협상’ vs. ‘압력과 제재’라는 방법 중에서 어느 것이 북한을 비핵화 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는지는 ‘클린턴 정부의 대화와 협상’ vs. ‘부시정부의 압력과 제재’의 경험을 비교해 보면, ‘대화와 협상’이 최소한 북핵문제에 대한 ‘통제 기제’로서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의 한반도와 북한, 북핵문제 분야에서의 리더십 확립의 실패이다. 지금 현재 미국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테크노크라트인 비확산 레짐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제2기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제1기와 마찬가지로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의 연장선에서 이뤄져 북한에 대해 미국이 아무런 새로운 협력 이니시어티브도 취하지 않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굳어지게 됐던 것이다.

    셋째, 미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북핵문제 해결과 동아시아 핵무기 경쟁의 방지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만일 북핵을 막지 못하면 일본과 남한이 핵보유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중국이 적극적인 핵무력 강화에 나서는 상황도 예측 가능하다. (중국의 핵무력 강화는 인도의 핵무력 강화로, 인도의 핵무력 강화는 파키스탄의 핵무력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중동, 유럽, 러시아, 미국으로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일종의 연쇄반응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그러한 핵무기 경쟁이 발생한다면, 이 지역에서 미국의 기존 리더십이 유지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특히 중국과 본격적으로 자웅을 겨루는 21세기에 들어 그러한 상황 전개는 미국의 국익, 특히 안보이익에 역행하는 것이다.

    넷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핵문제 해결과 동아시아 핵무기 경쟁의 방지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매우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본격적으로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나아가지 못하고, 많은 경우 북한의 비핵화 달성과는 정반대 효과가 나는 정책수단을 사용하면서 문제해결을 복잡하게 만든 데는 또 다른 차원의 미국의 이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소위 ‘음모론’이라고 불리는 범주의 이익들인데, 예컨대, 미중 양국이 21세기 동아시아 질서를 짜는 과정에서 상호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한반도에서 정전상태의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국의 협력적 미사일방어체계(MD) 실현, 주한미군 주둔 및 한미연합방위능력 향상의 필요성 유지, 북한 핵무장에 대한 대응으로서 재래식 무력의 증강을 강조하면서 남한으로부터 미국 군사장비와 무기의 판매이익금(예컨대, 대형 공격헬기 아파치 가디언 사업, 차세대전투기 사업, 글로벌 호크 사업 등) 획득, 남한이 부담하게 될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분담금 증액에 따른 미국의 비용 절감 등의 이익,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익 확보 등은 객관적으로 매우 매력적이고 부인하기 어려운 이익들이다.

    특히, 2014년 3월 발표된 ‘4년 주기의 국방정책 검토서’(QDR)가 잘 말해주고 있듯이,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와 연방재정자동삭감장치(시퀘스터)의 발동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지난한 가운데, 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항하고 포위하는 군사안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데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군사안보 부문에서 ‘더 많이’ 의존하고, 또 그들의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MD인데, 미국은 한국, 일본의 자원을 이용하여 미국의 이익을 위한 MD를 완성하고 또 그 과정에서 한일 양국에게 MD 관련 장비와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는 일거양득의 이익을 보고 있다.

    다섯째, 민주정치 체제의 특성으로부터 생겨나는 문제로서 정책일관성 부재의 문제이다. 이는 민주정치 체제의 핵심제도는 선거제도인데, 선거를 통해 지도자와 정부가 교체가 되면서 국가의 정책도 180도로 변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써 전임정부가 ‘국가’의 권위로써 약속한 ‘합의’를 차기정부가 지켜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선거제도가 있는 미국, 한국, 일본에서 동시에 발생했다(클린턴정부 → 부시정부, 김대중·노무현정부 → 이명박정부, 고이즈미정부 → 1기 아베정부).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여섯째,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현실, 어찌 보면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포기한 현실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미국정부의 외교안보 순위에서 북한과 북핵문제의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북한의 핵 관련 정책과 활동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인 9.19공동성명이 유명무실화되고, 6자회담이 실종된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제3차 핵실험까지 했다. 그리고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열면서 공식적인 전략노선으로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정책’을 채택하고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이미 채택한 상황에 있다.

    작년 9월 23일 백악관 NSC 부보좌관 벤 로즈(Ben Rhodes)는 뉴욕 유엔총회에 가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정책이 다르다.”고 발언했다. 즉 이란핵의 경우, 북한처럼 아직 핵보유의 문턱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되지만, 북한의 경우는 이미 핵보유를 했고 북한이 핵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강화해오고 있으니 대화와 협상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는 미국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또 올 해 4월 25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인 해결과제로 선택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입장에서, ‘미 대통령의 자리가 북핵문제와 같은 어떤 특정 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치(luxury)를 누리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북핵문제 등 한반도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의지와 리더십의 부재, 낮은 우선순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일곱째,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화를 막기 위한 ‘핵우산 제공’ 약속과 그 약속을 실제 증명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2013년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키 리졸브-독수리훈련’)에 미국이 북한의 극도의 반발(정전협정 무효화, 남북불가침 관련 합의의 백지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폐기, 북미간의 군사 핫라인과 남북한간의 군용·민용 핫라인 모두 단절 등)에도 불구하고, 2013년 봄 한미합동군사훈련에서 북한에게 의도적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playbook’(암호명) 작전계획에 따라, 핵능력을 가진 B-52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 공격형 핵잠수함 샤이엔호, 최신예 F-22 랩터 전투기 등을 투입했고, B-52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가 직도 훈련장에서 북한을 겨냥한 모의핵폭탄 투하 연습을 했다. 작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군사훈련시에도 B-52를 출격시켰다.

    그런데 B-52 전략폭격기를 계속 출격시키고, B-2 스텔스 폭격기를 미국본토에서부터 6,500마일(1만여km)을 비행케 하여 북한을 겨냥하여 모의핵폭탄 투하 훈련을 하고 돌아가게 한 미국의 행위는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또 북한으로 하여금 더욱 더 핵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으로 하여금 ‘우리가 이처럼 핵우산 제공을 확약하니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차선책으로서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을 막고자 한 것이다.

      

    3) 현재의 상황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개국이 한반도에서 6.25전쟁을 종전하고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해야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인데, 현재 이들 모두 평화체제 수립에 의미있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참고로,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야당 후보가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으로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인 남북한, 미국, 중국의 4개국이 6자회담과는 별도로 평화체제를 논의/협상할 ‘4자회담’을 개최해야 하는데, 현재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 현실적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어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이뤄져야 4자회담 개최도 논의할 수 있을 터인데,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수석대표 회의를 마지막으로 지난 5년 반 동안 재개되지 못하고 있고, 그 사이 북한은 제2, 3차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을 강화했다. 더구나 북한은 비핵화의 교환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시정책 폐기,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요구하여 왔으나, 미국과 한국이 이러한 교환에 대해 긍정적으로 나서지 않고 ‘북한의 선 핵포기’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양측 간에 접점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미국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확신을 갖지 못함으로써 당장 북핵문제 해결의 우선순위가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오바마 미대통령이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4개국 순방 중 일본을 거쳐 지난 4월 25~26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오바마 미대통령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였다. 그것은 ‘군사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아시아를 중시하는 재균형(rebalancing)정책을 통해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대항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미국은 자신의 동맹국들 및 우방국들과의 공동 협력을 통해 미국의 국가이익에 위협을 주는 주요 현안에 공동 대처코자 한 것이다.

    예컨대, 한미연합방위능력의 강화, 북핵문제에 대한 ‘정보공유’(GSOMNIA) 등 한·미·일 3국의 군사적 협력 강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 중일 간의 영토분쟁에서 일본을 지지, 한국의 실질적인 미사일방어(MD)체계 참여, 미군의 실질적인 필리핀 재주둔을 허용한 미-필리핀 방위협력확대조약의 체결, 미-말레이시아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성과의 강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체제의 구축,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대미투자 확대 등이 강조됐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4개국 순방은 중국에 대한 견제․대항체제를 구축하고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우방들의 자원에 더욱 많이 의존하고 또 이들에게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하면서 이들의 특정 이익들에 대해서는 협조하는 방식으로 협력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지난달 3월에 발표된 미 국방부의 QDR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한미정사회담은 어떠한 합의를 했는가?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분노와 좌절, 애도 속에 처해 있어서 물리적으로 보면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정상회담이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합의한 내용은 대단히 엄중한 것이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대여섯 가지 중요 합의는 한미연합방위력 강화를 통한 동맹능력 강화, 2015년 예정된 한국군 전시작전권 전환의 재연기, 상호운용성 증대를 통한 한국의 미 주도 미사일방어(MD)체계에의 실질적 참여, 기존의 대북정책 지속,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성과 강화와 이를 통한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논의, 한국의 한반도 통일비전에 대한 미국의 지지, 북한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 등이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의 합의에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관련 부분은 없다. 단지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관련 부분만 있을 뿐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가운데 개최되었기 때문에 한미정상이 대북정책, 대북핵정책에서의 변화를 추구하고 합의할 것인지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한미 정상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데 우려를 함께 하고,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켜 나가기로 했”으며, 북핵 절대 불인정을 바탕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CVID)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데서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먼저 비핵화 방향으로 나아가는 행동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소위 ‘북한의 선 핵포기 요구’라는 기존의 전제조건을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한미양국은 제4차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해 더 이상 ‘북한의 선 핵포기 요구’라는 전제조건을 내걸지 않고 조속히 대화와 협상에 들어가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사후적인 대북제재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인 해결과제로 선택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입장에서,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미대통령의 자리가 북핵문제와 같은 어떤 특정 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치(luxury)를 누리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고 바꾸게 되는 것”이며 “중국을 비롯해서 6자회담을 통해서 뭘 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고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 중국의 강한 조치, 중국의 리더십 발휘를 강조했다. 미국도 이에 동의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주도적인 노력이 한미 양국으로부터 나올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한미 정상이 합의한 대북정책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됐고, 북핵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어떤 실효성 있는 문제해결책 없이 또 다시 ‘방치’됨으로써 현재로서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방지는 난망한 상황이 됐다.

    양국 정상은 문제해결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안보환경을 고려해”,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구실로, 현재 2015년으로 예정돼 있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 시기와 조건을 재검토(reconsider)해 나가기로 했고, 공고한 동맹능력의 강화의 일환으로서 북한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제(KAMD)를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가되, 한미 간 상호운용성을 증대시켜 효율적 운용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는 데 합의함으로써, 한국의 미 주도 ‘MD에의 합류’를 결정한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이 실제 중국을 목표로 하는 MD를 추진하고 완성시키는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좋은 구실을 제공하였고 또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막는 어떤 실효성 있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한국이 미국이 원하는 MD에 공식 참여하여 대중국 MD가 완성되면, 미국은 그때 가서야 북핵문제 해결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그 때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고 바꾸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을 비롯해서 6자회담을 통해서 뭘 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고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하면 한국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포기하고 ‘6자회담의 유용성’을 부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또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조 노력에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6자회담 무용론’은 북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여태껏 ‘압력과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미 양국 정부의 ‘정책 담론’마저 효력을 상실케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압력과 제재’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북핵문제 해결’(‘한반도 비핵화’ 성취)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효용을 주장하기는 어렵고 북한을 압박하고 대결하는 수단으로 그 성격이 고착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또 다시 북한이 “또 다른 핵실험을 하게 되면 6자회담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서, “핵실험을 또 한다면 북한이 정말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북한이 “핵실험을 또 하게 되면 동북아에 안보지형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모든 나라들이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나’하는 명분을 주게 될 것이고, 핵 도미노 현상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핵 도미노’ 언급은 비록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막지 못하더라도, 이를 구실로 한일 양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우산 제공’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한국도 상황에 따라서는 핵무기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정책적 함의를 담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결국, 위에서 설명한 여러 요인들과 상황전개를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4자회담이 가까운 시일 내에 개최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3.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

     

    여기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으로서, 여섯 가지를 다루고 있다. 첫째, 북핵 해결/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대화/협상 vs. 압력/제재의 대조적인 장단점, 평화체제와 북핵문제의 관계, 유엔사/주한미군의 위상/기능 변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문제 둥 평화체제와 한미동맹의 관계, 평화협정 체결당사자와 국제적 보장,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통제의 쟁점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평화체제와 통일을 이뤄나가는 데서 ‘분단고착적’이 아닌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참고로, 평화협정 추진의 틀과 이행기구, 평화협정 체결 시 여러 쟁점(예컨대, 정전협정과의 관련성 명시 여부, 전쟁종료 선언 명시 여부, 한반도 평화관리기구 구성과 운영 주체, 국제적 평화보장체제의 주체, 군사경계선 유지 문제, 외국군 철수 및 쌍무동맹 유지 문제, 남북한 군비통제 문제, 전후 청산의 문제 등),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관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문제 등도 평화체제 수립의 쟁점에 넣어서 다룰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1) 북핵 해결/평화체제 수립의 방법론: 대화/협상 vs. 압력/제재


    다음은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수립 등 북한과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동안 사용해 온 방법들에 대해 검토한 후 그 장단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표적으로 ‘압력과 제재’ vs. ‘대화와 협상’ 두 가지의 방법인데, 흔히 양자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상대방인 북한이 ‘제재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오고 있기 때문에 양자를 결합하여 사용하면 ‘대화와 협상’의 효과가 오히려 반감된 것이 여태까지의 경험이다.

    우선, ‘압력과 제재’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 로켓, 미사일을 포기하게끔 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그것들의 능력을 강화하도록 도와주었다. 실제 ‘압력과 제재’는 북한의 핵, 로켓, 미사일 분야에서 ‘직접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이 분야들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든 개별국가 제재든 모든 제재는 수출입을 통제하는 것으로서 ‘간접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것이고, 간접적인 효과는 성격상 직접적인 효과와 달리 한계가 뚜렷했다. 따라서 북한과의 현안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지도부를 ‘압력과 제재’가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설득하는 것이었다.

    ‘압력과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좀 더 강력했더라면 북한이 굴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객관적으로 증명해 낼 수 없는 주장이다. ‘압력과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  ‘중국이 좀 더 협력했더라면 북한이 굴복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하는 경우, 중국이 미국을 도와 자신의 동맹국인 북한을 붕괴시키는 데 협력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 ‘대화와 협상’은, ‘압력과 제재’와는 달리, ‘합의’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합의’는 북한의 핵 관련 정책과 행위에 대한 ‘통제메커니즘’을 의미한다. 그런데 ‘압력과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화와 협상’이 북핵을 막지 못했으며, ‘대화와 협상’은 북한과의 현안 해결에 아무런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틀린 방법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이 주장에 적실성이 있는가?

    여기서 지적할 것은 ‘합의’가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효과를 내지 못한 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예컨대, 반세기 이상 된 오래된 양측 간의 관성적인 상호불신, 북한의 ‘피포위(被包圍) 의식’과 그로 인한 방어적이고 비융통적인 태도, 국제사회와 ‘합의’를 이루고 지키는 데서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가진 수령제, 그리고 미국, 한국, 일본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와 180도 달라지는 대북정책으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한 것 등 여러 변수가 ‘합의’ 이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그런데 ‘압력과 제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합의’의 이행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제3의 변수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합의’를 만들어낸 데 성공한 ‘대화와 협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사실과 다르게 비판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민주정치체제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증진하는 데는 최선의 체제일 수 있지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체제라는 것을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압력과 제재’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애써 회피하면서, 새로운 선정적인 주장과 담론을 제기하여 사람들의 관심의 축을 ‘압력과 제재’의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문제제기로 바꿔버리는 수법을 사용해 왔다.

    예컨대, 그들은 ‘북한은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북한의 최고위층이 고백을 하기 전에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또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든지 1990년대에 한반도에서 철수된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한반도에 들여와 재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소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고조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들은 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는 것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영변 핵시설을 외과적 수술 방법(surgical strike)으로 폭격하여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런데 영변 공격은 전면전을 의미하며, 이러한 주장은 영변 공격과 그로 인한 방사능 유출, 북한의 남한 원전들에 대한 미사일 공격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방사능 유출로 인해 ‘한반도 자체가 향후 반세기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되어도 좋다’는 식의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대화와 협상’이 만들어냈던 북핵 관련 ‘합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관련 정책과 행위의 통제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핵을 보유하면 좋겠지만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기로 하고, 핵을 포기하더라도 생존과 발전을 가능케 해줄 다른 조건들을 받아냄으로써 ‘21세기 생존과 발전’을 기약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반영되어 있는 약속인 것이다. 결국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나 9.19공동성명과 같은 북핵 관련 합의들은 양측이 각기 중시하는 것을 상호 교환함으로써 윈-윈 하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지금은 북한이 3차 핵실험까지 하고, 핵무력 건설을 전략적 노선으로 또 그것을 법제화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해진 상황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마지막 한 번’의 협상 기회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과 제대로 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좋은 합의’를 만들어 내고, 이에 더해 설령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차기 정부가 전임 정부의 ‘국가’의 권위로써 약속한 합의를 존중함으로써, 우리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에서 민족화해와 평화정착, 그리고 평화통일의 방향으로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한다는 컨센서스를 이룩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대선에서 모든 정당의 후보들이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케 하는 것이다.


    2) 평화체제와 북핵문제의 관계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수 있을까? 그리고 평화체제 수립에서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평화체제 수립 문제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 문제들을 어떤 식의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한반도문제’를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우리민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강대국들의 ‘힘의 정치’의 희생물로서 분단되었고,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서 6.25전쟁을 치렀으며, 그 전쟁이 평화조약이 아닌 정전조약으로 마무리되면서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가능한 불안한 물적, 심리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민족으로 보일 것이다. 결국 제3자가 볼 때는 우리민족은 끊임없는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한반도문제’라는 ‘병’에 걸려 하루하루 신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문제’라는 ‘병의 근원’과 ‘병의 증후’, 그리고 병의 치료법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지만, 현재, 국제사회의 힘의 요소를 고려할 때, 한반도문제라는 병의 근원을 치유하는 데 있서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북핵문제이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매개되어 있는 문제이나, 현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양자의 이행순서가 문제이다. 한반도문제의 근원적인 치료를 위한 접근법보다는 북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지도자나 협상가는 ‘북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평화체제 수립은 불가하다’는 주장을 해 왔다.

    지난 20여 년 동안 복잡하게 계속된 북핵문제 해결 협상과 또 합의에 대한 반복적인 불이행 때문에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불신이 팽배하고 그에 따른 방어적 심리가 매우 강해서 ‘선 북핵문제 해결 후 평화체제 수립’ 방안이 미국과 한국, 일본에서 힘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렇게 해서는 한반도문제라는 병의 증후인 북핵문제의 해결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지난 20여 년 간의 북핵 협상의 역사가 경험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한은 북핵문제 해결(한반도 비핵화)을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도)을 폐기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줄 것을 일관되게 요구하여 왔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술수에 말려들어 북한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북핵문제는 북한 스스로 자신이 가진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결정을 해야 비로소 해결되는 성격의 문제이다. 이는 좋든 싫든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무턱대고 북한에게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수립’을 강요한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문제이다.

    2005년 9월 베이징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고 성명 4항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고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며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별개의 회담에서 논의되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양자가 어떤 단계부터는 병행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정한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양자의 이행 순서이다.

    북한은 ‘선 평화체제 전환 후 비핵화’, 미국은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전환’, 그리고 한국은 기본적으로는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전환’을 선호하지만,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상호 연계 및 병렬적 이행’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먼저 평화체제를 구축한 후에 핵무기와 다른 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과 미국이 상호간에 아직도 정전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를 없애고 적대적인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서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먼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에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상호 연계 및 병렬적 이행’의 입장에 동의하였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전환’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북핵문제 해결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전략적 결정을 증명만 해주면,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상호 연계 및 병렬적 이행’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평화체제 전환보다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모니터링과 검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당사국들이 협의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에 따른 한미동맹의 변화와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위상과 기능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희망하고 있다.

    그 동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 남한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상호 연계 및 병렬적 이행’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보다는 평화체제 구축의 유용성을 더 많이 강조하면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별도의 포럼을 개최하는데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전환’이라는 미국의 기본입장에 동의해 왔다.

    결론적으로, 북한, 미국,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이행순서에 대해 자신이 보다 선호하는 입장이 각기 다르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의 상호 연계 및 병렬적 이행’에 합의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며, 앞으로 이 합의에 근거하여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협상되고 이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3) 평화체제와 한미동맹: 유엔사/주한미군의 위상과 기능 변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


    한미동맹과 유엔군사령부의 존재는 정전체제 유지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한미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의 위상과 기능은 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올 4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재차 연기하기로 한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평화 제 구축과 양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미 간에 조정되고 운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유엔사 및 한미연합사의 성격, 위상 및 기능 변경에 대해 살펴보자.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의 성격, 위상과 기능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것은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합의와 동맹의 새로운 비전 창출을 요구할 것이며, 이는 결국 한국의 자주국방 강화와 더불어 ‘새로운’ 한미연합방위체제의 구축 요구, 전작권 환수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다.

    참고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주둔 미군에 대해서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한민족은 러시아, 일본, 중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미국이 있어야 균형과 안정 축의 역할을 하고 다른 나라들이 엉뚱한 야심을 갖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군대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며 동북아의 세력균형의 유지에 기여한다면’ 미군은 ‘한반도에 계속적으로 주둔해야 하고 통일 이후까지도 주둔해야 한다’는 입장을 직접 듣고 확인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정부와의 사이에서 2012년 4월까지 이행하도록 합의한 한국군 전작권의 환수, 그리고 ‘새로운’ 한미연합방위체제의 구축의 기본적인 틀이 변하여, 다시 기존의 ‘한미연합사’ 모델을 대폭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정상은 공고한 동맹능력의 강화의 일환으로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하며, 이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서 양 정상은 정상회담 다음 날인 4월 26일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로”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를 함께 방문했다.

    한편, 전시작통권 환수는 한미양국이 독자적으로 자국군을 작전통제하면서도 유사시에 연합작전을 위해 연합사를 대체할 작전협조기구의 창설을 의미한다. 실제 그러한 작업이 진행돼 왔다. 다시 말해,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게 되면, 한미 양국의 연합지위체계는 직렬형 군사동맹체제에서 협의체 위주의 개별적 독자 지휘체제를 유지하는 병립형 작전협력체제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에 한 번 연기하여 2015년 12월에 환수하기로 한 것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다시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안보환경을 고려해’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 시기와 조건을 재검토(reconsider)해 나가기로 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전작권 환수와 관련하여 한미 양국은 그것이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행돼야 하고 또 한반도 안보에 어떤 부정적 영향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전작권 환수의 시점을 결정하는 데서 동맹능력의 강화와 동맹의 정보·감시·정찰(ISR), 무기체계 및 지휘·통제·통신·컴퓨터 및 정보체계(C4I)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향상을 중요한 요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미양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및 키리졸브/독수리 훈련(KR/FE)과 같은 연례 합동·연합훈련을 통해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및 준비태세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고, 상호운용성을 향상시키는 맥락에서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 체계 및 F-35기 확보 의사를 발표했고, 나아가, 양국은 향후 추진 예정인 미 공군 고등훈련기 대체사업(T-X)과 관련하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4)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 문제’와 국제적 보장 방안


    평화협정의 당사자문제는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정전협정의 서명자와 관리책임자는 유엔군(미국, 남한), 북한, 중국으로 되어 있다.

    평화협정을 맺는데 있어서 남북한 당사자 원칙과 국제주의(주변국의 역할)를 결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휴전협정 당사자가 반드시 평화조약 당사자와 일치할 필요는 없다. 평화조약은 단순히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 가능한 군사적 충돌, 적대상태를 방지하는 것, 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평화가 파괴될 경우 개입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 미래의 잠재적 교전국가가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면 될 것인 바, 한반도에서 평화가 깨어지는 경우 직접 교전 당사자는 남한과 북한이고, 개입 가능성이 높은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당사자 원칙에 따라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 남북 간에 서명된 평화협정의 국제적 보장자로서 함께 서명하면 될 것이다. 남북한 당사자 원칙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한 민족자결권의 천명은 평화협정 체결뿐만 아니라 향후 통일과정과 통일 후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현재 우리 사회에는 남한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어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주장과 우려가 있다. 또 북한이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북한도 남한처럼 6.15전쟁 중에 중국에 북한군의 작전통제권을 넘겨주었지만 정접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에 넘겨줌으로써 독립적인 자격을 상실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이승만이 ‘중공군의 한반도 주둔을 허용하는 정전협정’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1953년 7월 10일 정전회담 본회담을 시작하면서 북한군과 중국군을 대표하여 정전회담에 나온 남일이 유엔군 측 대표인 해리슨에게 ‘정전에 한국군도 참여하는 지, 그럴 경우 유엔군사령부가 남한이 정전협정을 잘 준수할 것이라는 어떤 확실한 보증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을 보면 당시 북한도 한국이 정전협정의 서명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에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지금 한반도에는 중국은 군대를 주둔하고 있지 않으니 중국을 제외하고 남북한과 미국의 3자 정상회담을 하자.”고 했고, 이에 남한 측에서 중국을 포함한 4자 정상회담을 주장함에 따라 양측의 의견을 모두 병기하는 의미에서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나왔던 것이다. 이는 김정일이 “현재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가 앞으로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의 폐기뿐만 아니라 평화의 관리, 군사경계선 유지, 남북한 군비통제 등 남북한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포함되어야 하므로 한반도 국가인 남한은 당연히 평화협정 체결에서 당사자적 지위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에서도 ‘직접 관련 당사국간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해 협상’하기로 했는바, 한국은 당연히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에 해당하는 것이다.

    5)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통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군비통제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남북한과 주변국들이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력 경쟁을 중단하고 비대칭적 무기 증강 경쟁을 포기하는 ‘적극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상호 ‘합의에 의한’ 군비통제가 중요하다. 합의에 의한 군비통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호위협’ 요소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의 조치에 합의해야 한다.

    남북한 간에 구체적인 군비통제 방법과 기구로서는 남북 간에 남북기본합의서 중 ‘불가침’ 에 관한 부분과 관련 부속합의서를 되살려 그곳에 이미 합의되어 있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불가침’ 이행과 보장을 위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 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 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위한 문제를 협의, 추진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남북한이 이 위원회를 가동하여 군비통제 합의서를 만들고 실제적 효과가 큰 조치부터 이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또한 군비통제 협상채널을 상설화하는 것과 군비통제를 국가안보전략 차원으로 격상시켜 지속적으로 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범정부 차원에서 군비통제 담당기구를 설치하고 관련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조지 W. 부시정부 하에서 해외주둔미군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의 축소와 재배치를 하면서도 이를 한반도의 긴장완화나 군비통제와 연계시키지 않았으며, 남한정부도 미국의 GPR에 따른 주한미군의 변화를 북한의 장사정포나 공격적 군사력을 후방으로 배치하도록 연계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한반도 군비통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2004년 5~6월, 미국의 전격적인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결정을 했는데도, 또 2005년에 남한 정부는 2020년까지 병력규모를 18만 명 축소시키는 국방개혁방안을 내놓았는데도, 여기에서도 우리의 병력감축을 북한의 병력감축 및 전진배치군의 후방배치와 연계하지 않았다. 앞으로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주한미군의 축소와 재배치 그리고 한국군의 병력감축을 북한군의 후방배치를 통한 한반도 군비통제와 연계하는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6) 평화체제와 통일: 분단 고착적 vs. 통일 지향적 평화체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서 또 다른 중요문제는 평화정착을 하되, ‘분단 고착적’이 아닌 ‘통일 지향적’인 평화정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은 ‘한반도문제’라는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고 또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비전과 과제가 되고 있다. 결국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통일’과 ‘평화’는 불가피하게 연계되어 있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평화와 통일의 동시 달성이 21세기 우리민족의 운명을 가름하는 핵심적인 전략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와 통일은 어떤 방향으로 ‘연계’되어 동시에 양자가 이뤄져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우리는 국제사회의 현상 유지적 영향력을 극복하고 한반도평화의 정착이 ‘분단 고착적’ 평화가 아닌 ‘통일 지향적’ 평화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 문제는 민족적인 면과 국제적인 면이 모두 관계되는 문제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반도평화 수립 문제는 위의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국제사회가 북한과 함께 직접적인 주요 당사자로서 개입하고 관계해 온 문제이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체제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불가침을 보장하고, 군비경쟁을 방지하는 체제로만 머문다면, 그 분단 고착적인 성격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통일은 어려운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특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경우처럼, 남한 정부가 한반도문제 해결에서 적극적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할 때는 국제사회의 현상 유지적 입김은 그대로 한반도에 미쳤고, 남북한은 주인의 위치를 잃고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제사회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한반도통일 문제는,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주인으로서 적극적인 주도권을 발휘하고 통일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의 협력을 확보함으로써 우리가 주체적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문제이다.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담론과 정책에서 한반도의 통일에 어떤 의미있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기본적으로 현상유지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주변국들은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남북한이 주체적으로 통일을 추구할 때 명분상 한반도 통일을 반대할 수 없으며, 단지 통일된 한반도국가가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대외정책을 추구하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한반도통일은 현실적으로 오직 우리민족이 주인의식을 갖고 남북협력을 통해 주체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주변국들의 현상유지적 정책을 극복하고 통일한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향으로 통일외교를 잘해 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통일과 평화 양자를 ‘통일지향적 평화’로 연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통일을 ‘과정’으로서 추구해가면서 이와 ‘병행’하여 평화체제 수립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통일을 과정으로 추구하지 않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흡수통합 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남북한은 그러한 시점이 올 때까지 상대방을 흡수통일하거나 혹은 흡수통일 당하지 않으려는 노력 위주로 상대방에 대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불신과 대결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고, 설령 남북 간에 어떤 협력을 한다하더라도 그 폭과 깊이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가장 큰 우려는 남북한이 불신하고 대결하느라고 통일문제에서 아무런 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이에 만일 국제사회가 한반도 전쟁과 평화 문제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리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한반도에서 평화가 온다고 해도 그것은 십중팔구 ‘분단 고착적 평화’일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 문제는 강대국들의 주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을 ‘과정’ 인식하고 또 남북한 간에 그렇게 합의하고 노력한다면, 우리민족의 협력은 국제사회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협력과 결합하여 한반도에서 ‘통일 지향적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4. 평화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제와 전망


    여기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를 다룰 것이다. 첫째,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리더십 확립 문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북한 협력 문제, 평화체제 수립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결합하는 평화체제 수립의 새로운 접근법, ‘평화체제 수립’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만드는 문제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평화체제, 이제는 ‘담대하게’ 이뤄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 점과 관련하여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책제언을 할 것이다.


    1)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리더십 확립 문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서 가장 직접적인 과제는 주요 관련국들의 지도자들이 이들 문제에 대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는 문제이다. ‘한반도 문제’는 군사안보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압도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테크노크라트’들에게 맡겨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까지의 모습은 관련국들의 지도자들이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여 해결하려는 자세와 능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외교안보적으로 우크라이나 문제, 이란핵 문제, 중동문제, 중국과의 문제 등의 해결에 집중하면서 ‘한반도 문제’에는 제대로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으며, 제2기에서도 제1기의 ‘전략적 인내’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위에서도 이미 지적했지만, 올 4월 25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 대통령의 자리가 북핵문제와 같은 어떤 특정 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치(luxury)를 누리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함으로써, 북핵문제나 평화체제 수립 문제와 같은 ‘한반도 문제’를 우선적인 해결과제로 선택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반도문제 해결에서의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의 부재를 전세계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편,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2013년 5월말부터 9월까지 ‘대화와 평화’의 공세를 취하기도 하고,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오바마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떠한가?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가 다시 불신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한미공조를 최우선시 하고 있다. 최근 지난 달 5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할 경우, 6자회담의 무용론, 핵 도미노론을 언급한 것은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수립의 문제에서 그래도 국제적 협상과 합의의 유일한 틀인 6자회담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정책적 함의를 담고 있어서, 자칫 북핵문제 해결을 포기하면서, 우리도 핵무장으로 가겠다는 것인지,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경쟁에 나설 경우, 결국 우리로서는 중국과 일본의 핵능력과 경제적 자원 능력을 따라가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안보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한반도 통일과 평화정착은 잘못하면 물 건너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발언은 크게 우려를 자아낸다.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민족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우리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확보하려는 비전을 갖고서, 햇볕정책과 6.15공동선언을 통해 보여준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리더십’과 우리 한반도에 대한 강력한 ‘국제질서형성자’로서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획득한 것과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도 결국은 지도자의 생각과 결단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한반도 문제’ 해결과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관련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리더십’ 확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오히려 부족하지 않다 할 것이다.




    2)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북한 협력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미중 간의 대결로 아시아·태평양 국제질서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강대국 중심의 세계에서 ‘남북한 협력’은 우리민족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통일의 길이다.

    해방 후 귀국한 서재필은 1947년 11월 5일 조선산업재건협회서 한 연설에서 “조선은 인구로 보아 세계 67개국 중 13위이나 부력(富力)으로는 끝에서 첫째 아니면 둘째로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래서야 인민이 잘사는 정치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서재필은 또한 방송연설을 통해 “조선사람들은 자신의 국토와 인구의 크기에 걸맞은 위치를 확보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확신한다면서, 세계 13위만 도달하면 다른 문명화된 국민들처럼 풍족하게 살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데 지금 남한만도 이미 세계 13위의 부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위상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중에 미국과 소련 등 열강들의 ‘힘의 외교’의 희생양이 되어 나라와 민족이 두 동강이 나고 또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냉전의 올가미에 걸려 지금까지 신음소리를 뱉어온 지가 벌써 60여 년이 넘었다. 거의 70년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민족이 분단되었는데도 지금까지 그것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민족은 전 세계에 우리민족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민족의 운명과 관련하여 남북한이 협력하지 않고서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 분단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민족의 통일과 자율성(독립성)을 성취해 내는 것도, 우리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미래를 이룩해내는 것은 남북한이 함께 협력하여 노력할 때에만 진정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남북한에 무력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우리가 이뤄놓은 경제·정치적 위상은 그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선, 남한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의 민족화해와 교류를 통한 평화번영의 정책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무너뜨렸고,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북한과의 ‘상생과 공영’을 이야기했으나, 실제로는 북한붕괴론에 빠짐으로써 남북은 본격적인 대결에 빠지고 임기 5년 동안 장관급회담 한 번 하지 못하고 극도로 불신이 깊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들고 나왔으나 상대방이 먼저 신뢰 쌓기를 요구하였고, 결국 최근에는 ‘통일대박론’과 독일통일모델을 한반도 통일모델로 공언하고, 올 4월 서울에서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실질적으로 없애다시피 했다. 북한이 이에 반발하여 박대통령 개인에게 실명 비난을 넘어 금도를 넘는 인신모독성 공격을 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한편, 북한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후 생겨난 여러 난관으로부터 탈출하고 자신의 생존을 기약하기 위해 ‘21세기 생존과 발전의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략을 지난 20여 년간 일관성 있게 추구해왔다. 구체적으로, 정권안보․국가안보․체제안보의 확보와 경제의 발전과 번영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것을 위해 남한과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을 통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고자 했다.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에 합의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맞아, 대내적으로 당과 국가기구를 정비하고, 장성택의 처형에서 보듯이 잠재적인 도전자를 제거하여 권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최우선적인 국가목표로 세우고, 이를 위해 대내적으로 경제개혁, 대외적으로 경제개방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미국 등 외부세계와 대화하고 협상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함과 동시에 6.25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미국과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시킴으로써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능력의 확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핵실험을 하고 인공위성 로켓 발사와 탄도미사일 실험발사를 지속하여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등에 맞섬으로써 국제사회에 대결에 빠짐으로써 ‘평화적 환경’ 조성의 노력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할 것인가? 우선 남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정착을 바란다면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심지어 군사독재자들도 ‘평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했고 또 가장 강경한 대북정책을 썼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 즉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바로 남북관계사에서 전쟁위기의 감소와 평화증진을 위한 목적에서 남북관계사에서 각각 '제1의 대화시대'와 '제2의 대화시대'를 열었던 주인공들이었다.

    필자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것은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고 지난해 전반기에는 최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쟁위기가 실질적으로 고조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북 강경책만을 고집하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군사적 긴장이 왔을 때는 전쟁위협의 감소와 평화증진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간단히 살펴보자. 1968~1969년 김신조 등 북한특공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원산 근해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던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울진ㆍ삼척 북한 무장특공대 침투사건, 미 EC-121기 격추사건 등 북한의 대형 도발 사건이 터진 이후, 미·중 관계의 해빙 등 국제사회의 데탕트의 진행과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과 남북대화 요구가 물론 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전쟁방지와 평화증진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고, 7.4남북공동성명이 나왔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7.4공동성명 직후 미국 고위관료에게 자신이 남북대화를 시작한 것은 ‘김일성의 무모한 행동을 미리 제지하기 위해서’였고, “김일성이 성심으로 그렇게 했다거나 좋은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보고 있지는 않으나”, 북한의 의도를 “진심으로 시험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적으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하고 또 전쟁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화가 지속되고 있는 한 김일성이 무력을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973년 8월에 남북대화가 중단되자, 남북관계가 또 다시 악화되면서 문세광의 박 대통령 사살 시도, 휴전선 남침 땅굴 발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이 터졌고, 이에 박대통령은 어떻게 북한의 도발을 막고 전쟁위협의 고조를 막느냐를 놓고 고심했다. 그 결과 1979년에는 ‘평화증진’과 ‘평화정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남북한이 제시해 온 모든 분야의 문제들’을 의제에 포함시키고 ‘대화 당사자의 수준’을 제한하지 않겠다면서 ‘당국 간 무조건 대화’를 제의했던 것이다.

    이 제의가 주목할 만한 것은 이것이 남북대화 ‘의제’에서 북측이 요구해온 연방제 통일방안, 남북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 대민족회의 혹은 남북정치협상회의, 평화협정 체결이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도 논의할 수 있으며, 대화 수준에서 ‘남북정상회담’도 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남북대화의 추진과 진전으로 1972년에는 수년래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보고가 한 건도 없었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는 박 대통령보다 한 발 더 나아갔을 뿐 아니라 훨씬 더 대담하고 전향적이었다.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의 강성 고정 이미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북한과의 ‘화해·공존’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은 군사쿠데타와 광주 민중학살을 통해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부의 정통성 결핍 문제를 극복시켜줄 좋은 호재였고, 또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올림픽을 방해하는 도발을 막아야 했으며, 또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참가해주어야 서울올림픽이 바로 직전 1984년 LA 올림픽처럼 소련의 불참으로 인한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대통령은 1981년 취임하자마자 바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고 자신이 평양을 먼저 방문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 만일 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그동안 남북한 당국이 제의했던 통일방안을 포함하여 쌍방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정상회담 의제의 범위를 단순히 ‘개방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 그전 해인 1980년 북한이 발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도 ‘의제’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1985년 장세동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에게 건넨 친서에서도 전 대통령은 “북한이 제안한 고려연방제를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1987년에는 북한이 주장해온 ‘남북정치·군사회담’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전 대통령이 연방제 통일방안, 정치·군사회담 등 북한이 ‘통일전선 전략’에 기반을 두고 추구해온 대남 요구에 대해서까지도 과감히 대응했음을 보여준다. 이에는 물론 전두환 정부가 그동안 크게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중요한 배경이 됐다.

    특히 전 대통령은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을 당했을 때, “국가원수의 위해기도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으며, “버마사건은 우리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명백한 파괴전쟁의 선언”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버마참사를 겪고 급거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막아야겠다.”고 “생사를 넘은 강렬”한 심정으로 “새로이 굳게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아웅산 테러를 당하고서도 ‘북한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군부를 설득하여 포기시키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통한 ‘전쟁방지’를 선택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나 전 대통령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이나 남북정치협상, 민족대회의, 남북정치·군사회담과 같은 북한의 통일전선적 제안들을 북한과의 대화의제에 수용하겠다고 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군사독재 지도자들도 전쟁위기와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선택했고 그것을 통해 전쟁방지와 평화증진을 꾀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남북대화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까이 두고 써야 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그 동안 어느 나라보다도 평화체제 수립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새로운 ‘자신의 시대’를 개막하려는 김정은은 외부위협에 대한 ‘핵 억지력’ 확보만으로는 북한의 ‘21세기 생존과 발전’을 이룩할 수가 없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으로는 ‘21세기 생존과 발전’을 위한 ‘평화적 대외환경’을 성취해 낼 수가 없다. 북한은 다음 몇 가지 지적을 수용하여 정책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첫째, 어느 나라도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의 안보 억지력 확보만으로는 생존과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 북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보다 근본적 힘의 원천이 되는 경제발전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해서 보다 더 나은 안보상황을 기대할 수 없다. 북한도 남한처럼 주변 강대국들과의 핵무기 경쟁에서 기술과 자원의 한계를 느낄 것이며, 핵경쟁으로 초래된 주변국들과의 적대와 긴장의 관계는 북한의 무역, 경제발전 등 비군사 부문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셋째,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생활의 향상’은 사실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핵심적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인민의 복지향상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이 되어야 가능하며, 현 상황에서는 개혁·개방의 성패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 로켓, 장거리미사일 문제의 해결에 달려있다.

    넷째, 최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북한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과 소련 등 강대국에 대한 균형적인 접근을 통해 추구해온 가치와 목표, 즉 ‘외교에서의 독립성 확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과 더욱 관계개선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처럼 ‘민족’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수천 년 동안 단일민족의 경험을 가진 민족이다. 남북한의 지도자들에게 민족화해와 분단극복은 정치명분 중의 명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은 남한과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미국과 협상을 통해 6.25전쟁을 종식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며, 관계정상화를 이룩하려면 미국의 동맹국인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남북한 간에 신뢰를 쌓고 협력하여 나아가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상호적이다. 남북한 지도자들이 함께 손을 잡고 현 상황을 결정적인 역사전환의 기회로 만든다면, 이는 우리 모두가 ‘분열’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온전한 ‘하나’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본격적인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업적이 될 것이다.


    3) 평화체제 수립의 새로운 접근법: ‘비핵화와 하나로 결합’된 새로운 합의 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어떻게 6.25전쟁을 종료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며 북한 핵, 로켓, 장거리미사일 문제를 모두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포괄적인 문제 해결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고받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주고받기가 성공하여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문제, 북핵문제 등이 영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합의와 이행 로드맵이 갖춰야할 주요 요소는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북핵문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미 위에서 지적하였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핵, 로켓, 장거리미사일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압력과 제재’, ‘대화와 협상’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적용해 보았으나, 이 중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낸 것은 ‘대화와 협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북한과 국제사회 간에 이뤄진 ‘대화와 협상’에서 관련 당사국들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주고받기를 요구하고 또 약속하였는가? 그동안 북한은 자신의 비핵화에 대한 주고받기 요구로서 세 가지를 내세웠다. 그것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의 비핵화’였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소련 붕괴 후 지난 20여 년간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우선, 북한이 미국에게 대북 적대시정책을 폐기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주권국이라는 것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북한과 평화 공존하는 정책을 추구해 달라는 요구였고, 그리고 평화체제 수립 요구는 관련 당사국들이 6.25전쟁을 종료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함으로서 한반도에서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정착과 관계정상화를 이룩하자는 요구였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의 비핵화 요구는 한반도 비핵무기화지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미 과거에 미국정부도 상호 핵심 요구사항에 대한 주고받기식 타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실제 그러한 주고받기 타결(포괄적 일괄타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1994년 북미기본합의정신도 그것이었고, 특히 1996~1999년의 4자회담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여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목적으로 개최된 회담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 2005년 9.19공동성명도 그러한 주고받기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한편, 조지 W. 부시정부 들어, 2006년 10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자, 부시정부는 결국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기존의 ‘악의 축’ 정책을 중단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당시 미 국무부 자문관 필립 젤리코의 정책 건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즉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과감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국무장관과 대통령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는 바로 그러한 주고받기 정신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은 여태까지 여러 차례 포괄적 일괄타결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합의하였지만, 그 합의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큰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또 한 번의 ‘대화와 협상’의 기회를 모색하여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낼 때, 이번에는 그 합의가 보다 완전한 합의가 되고 또 그것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는 이행 로드맵을 만드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상호간에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양자를 ‘하나의 문제’로 결합하여 ‘하나의 과정’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합의와 로드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전문가 수준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폐기 대상, 방법, 시한을 명시하자는 것이다.

    참고로, 6자회담 참여국들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직접 관련국들은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제체에 대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데 합의했지만, ‘적절한 별도의 포럼’이라는 규정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하나의 문제’로 결합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았던 경험이 있다. 결국 미국은 9.19공동성명의 이행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만 신경을 썼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직접 관련 당사국들(남북, 미국, 중국)의 별도의 포럼은 아예 한 번도 열리지 못했던 것이고, 이러한 양자의 엇박자와 불균형이 9.19공동성명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4) ‘평화체제 수립’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관심이 부재했던 후보와 세력이 당선되어 대통령과 정부를 구성하고서 지금까지 행한 대북정책을 보면, 앞으로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가 ‘평화체제 수립’에 관심이나 힘을 쓸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4년 반 후에 있을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모든 후보들이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앞으로 정치권, 시민사회, 여성계 모두가 힘을 모아 그러한 목표가 이뤄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2012년 대선에서의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한 공약과 관련하여 잠시 되돌아보기로 하자. 당시 문재인 후보와 중도에 후보직을 양보하여 사퇴한 안철수 후보가 대북정책 공약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우선적이고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데 비해, 박근혜 후보는 ‘평화체제 수립’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면서 선거공약을 발표하기 1년여 전인 2011년 10월에, 당시 약 2개월 여 전에 당시 박근혜 의원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Foreign Affairs)의 9/10월호에 발표한 “새로운 종류의 한반도: 서울과 평양 간의 신뢰 구축”이라는 대북정책 구상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문제,’ 즉  ‘평화체제 수립’ 문제가 빠져있었다.

    그 동안 우리가 온몸으로 겪고 있는 ‘한반도 문제’라는 병의 근원은 아직도 6·25전쟁이 끝나지 않고 관련국들이 적대적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고, 북핵문제나 미사일문제는 표면에 나타난 그 병의 증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 박근혜 의원은 당시 불신의 틀인 정전체제의 틀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신뢰정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명확한 성찰과 인식이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한반도에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비전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정치인, 특히 대선후보는 그 동안 한반도 분단 이래 우리를 줄곧 괴롭혀온 전쟁과 평화의 문제 해결에 대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난 다음이었다. 박근혜 후보 측은 대선 기간 중에 ‘평화체제 수립의 공약 부재’라는 비판에 대해 “평화체제 수립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차기정부 임기 5년 동안에 평화체제 수립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공약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대답을 했었다. 박근혜 후보가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지 않은 것은 결국 정전체제 하의 질서와 이익을 큰 문제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득권’ 세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정치인들에게 평화 정착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구나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민주정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에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일종의 사회협약을 맺어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평화체제, 이제는 ‘담대하게’ 이뤄나가야


    우리민족은 미소 양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희생물이 되어 분할점령을 당했고 이내 동족상잔의 내전이면서 동시에 미국 vs. 소련·중국 간의 대리전의 성격을 띤 6.25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6.25전쟁이 평화조약 체결이 아닌 정전조약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한반도에는 평화가 사라지고 우리민족은 ‘생의 한 바퀴 주기’인 60년이 넘도록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1990년 초에 냉전질서의 한 축인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냉전시대가 끝나자 우리민족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강대국질서인 냉전체제가 무너졌으니 언젠가는 또 다시 새로운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형성되겠지만, 우리민족에게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될 때까지 과도기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이 과도기를 잘 이용하여 한반도에서 통일과 평화의 기운이 뻗쳐오르도록 해야 했다. 역사의 안목에서 볼 때, 이 외의 다른 어떤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과도기와 우리민족이 만들어내야 할 민족에 장래에 대한 비전을 세워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그 성과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나타났다. 실로 ‘민족의 희망’을 세운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을 이어나갔고 그 성과는 10.4남북정상선언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왔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한반도에는 평화가 사라지고 통일의 희망이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내세웠지만, 속내로는 북한급변사태론, 북한위기론, 통일준비론으로 이어지는 ‘북한붕괴론’을 바탕에 깔고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결국 남북한 간에는 극도의 불신이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으로 우리 앞에서 서성이는 전쟁의 유령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북한붕괴론’의 또 다른 이름의 모자인 ‘통일대박론’을 강조하고 있다.

    분단의 유지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세력이야 없겠지만, 분단을 방치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바꾸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평화체제 수립과 통일의 과제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서 6.25전쟁을 공식 종료하고 적대구조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여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이제는 ‘담대하게’ 이뤄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제안했듯이, 2017년에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도록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언론, 학자, 전문가 등 정책커뮤니티가 정치사회로 하여금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평화체제 수립’의 담론과 정책을 붙잡고 하나의 ‘담대한 운동’으로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6)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책 제언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에게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된 어떤 정책 제언을 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언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남북관계를 ‘상대방이 있는 관계’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관계’라는 것은 ‘함께 관계할 일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함께 관계하지 않으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관계한다’는 것은 ‘그 일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그 일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상대방이 우리와 함께 윈-윈하는 방향으로 협력하고 나오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있는 관계’인데, 마치 ‘상대방이 없는 관계’인 것처럼 역지사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요구하고 비판하고 공격한다면, 우리가 설정한 목표에 대해 상대방의 협력을 얻을 수 없어 우리의 정책 자체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에서 절절히 경험했던 문제이다. 특히, 이점과 관련하여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흡수통일 모델인 독일통일 모델을 한반도통일 모델로 공개적으로 차용하면서 통일대박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태두인 한스 모겐소가 ‘외교의 성공’을 위한 ‘근본원칙’에서 지적한 것처럼, 외교는 십자군전쟁 정신, 즉 선악 개념과 이념을 중심으로 하지 말아야 하며, 외교는 또 상대방국가들의 관점에서 정치적 상황을 바라보면서, 즉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일반 사람들이 아닌 정치지도자이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 금강산관광 문제, 개성공단 문제와 같은 직접적인 문제들 외에도 국민들이 6.25전쟁 정전 후 60여년을 민족 간에 분열과 대결을 지속함으로써 ‘평화의 정체성’이 아닌 ‘전쟁의 정체성’,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분단/분열의 정체성’을 키워온 불행한 문제들을 이제는 해결해야 하며,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정부의 제안과 요구에 협력하여 나오도록 만들어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데서 ‘이념과잉’을 벗어나 북한의 입장과 처지를 ‘역지사지’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상대방이 있는 관계’로 명확히 인식, 규정하고 대북정책을 펴나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현안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전승전패를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전쟁에서도 전승전패가 불가능 한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이뤄나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로서는 남북관계에서 전승전패를 맘먹거나 기대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단기간에 우리가 원하는 ‘완승’을 이뤄내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장기간에 걸쳐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해 내는 것이 바로 ‘완승’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동시에 민족화해, 인도주의적 협력, 교류협력, 경협 등 남북관계 고유분야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에서의 독립적 공간을 확보하는 ‘투 트랙’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남북 간에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에로의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제와 대북 처벌정책에 연계되고 종속되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처럼 장관급회담 한 번 하지 못하고 앞으로 남은 임기기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동안 오랫동안 공개․비공개적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추진해오던 북일 정부 간 대화가 5월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정부 간 합의’를 만들어냈다. 이제 북일정상회담의 개최를 바라보게 됐다. 양국은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과거청산과 현안해결, 국교정상화의 실현을 위해 협의를 진행해 왔는데, 일본은 북한에게 ‘1945년을 전후하여 북한 영내에서 사망한 일본인의 유골 및 묘지, 잔류일본인, 일본인배우자, 납치피해자 및 행불자를 포함한 모든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고, 북한은 일본에게 ‘모든 납치의혹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포괄적이며 전면적으로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에 일본이 ‘최종적으로 현재 일본이 독자적으로 취하고 있는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할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이 해제하는 대북 제재조치는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에 따른 조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일본과 북한은 각각 ‘일곱 가지’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번 북일 간 합의는 일본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에 대해 유엔안보리가 취한 대북 제재 결의들은 계속 지켜나가되, 북한에 대한 일본의 ‘개별국가 제재’의 중요부분을 해제하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들이 ‘개별국가 제재’도 요청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충격적인 조치라고 하겠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대북제재 공조전선이 이상이 생긴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독립국’으로서의 일본이 WMD 위협과 관련하여 유엔안보리,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하면서도, 특수한 역사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북일관계의 고유성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독자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이번 북일합의와 이미 계획되어 있는 아베 총리의 평양방북과 북일정상회담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 WMD 관련 문제에서 유엔안보리 제제 결의, 미국의 충실한 동맹공조의 요구 등을 수용하느라고 동족간의 민족화해, 인도주의적 협력 문제까지 희생시키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큰 경종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남북관계 상황과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를 고려할 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이미 힘을 잃었고, ‘통일대박론’ 카드 사용도 북한의 반발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또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권위가 추락함으로써 그 국내정치적 효용성이 대폭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구체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계에서의 실패를 검토하고, 지난 1년 4개월 동안 자신의 정부 하에서 남북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면밀히 복기하여 ‘담대하게’ 바로 잡지 못하면,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핵문제 해결, 평화체제 수립에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상대적으로 ‘민족’ 개념이 희박하고 국제관계에 대한 중시, 특히 ‘친미’ 일변도의 인식과 정책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동맹공조만을 금과옥조로 삼아, 민족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군사안보 이익을 위해 한일양국 등 자신의 동맹국들이 갖고 있는 군사적, 물질적 자원을 이용하면서 북한과 중국과 대결하고 있는 틀과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미국의 이익에 과도하게 협력하는 모습에 빠진다면, 궁극적으로 이미 허약해진 국내정치적 기반도 크게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은 박대통령의 인식과 가치의 세계, 그리고 정치리더십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역사의 지혜’를 배우고, 현재의 문제점을 엄중하게 파악한 바탕 위에서 문제 해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인 사고와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추락함으로써 근본적인 의미에서 ‘레임덕’에 빠진 박대통령이 가능하다면 통일과 평화정착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전, 흔들리지 않은 문제해결 의지, 뛰어난 국내정치 및 외교안보 전략을 겸비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60여 년 동안이나 우리민족을 괴롭혀온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또 그것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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