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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년도별 기념식 자료

    13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 - (Session 1) 라온시걸 | 미국 사회과학연구소 동북아협력안보프로젝트 팀장

    본문

    라온시걸 | 미국 사회과학연구소 동북아협력안보프로젝트 팀장 


    Session 1


    지금부터 협상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지난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은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무기 개발이 완성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데 협력함으로써 핵실험에 대응했습니다. UN이 제재를 결의하자 북한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호전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중미 간 불협화음은 본질적으로 존재합니다. 중국이 긴장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중국에 대북 압력을 가중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미국 고위 관료는 3월 15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계획하는 것은 중국 정부에 “우리는 북한이 지금처럼 핵실험을 지속한다면 분명히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싸움을 걸면 동북아시아 지역에 불안감만 심화시키고 대북 압력을 가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현실적인 위협, 비현실적인 위협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다시 언급하면서 위기는 심화되었고, 미국 정부는 당연하게도 B-52 폭격기와 B-2 폭격기로 폭격 훈련을 실시하고 F-22 스텔스 전투기와 공격용 잠수함 1척을 한국으로 파견했습니다. 미사일 방어선을 확장하고 한국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원하여 미국이 최근에 배치한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보완하는 등 미군의 억지력을 과시하여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무력을 과시하자 북한은 구두로 협박을 쏟아냈습니다. 북한의 협박은 자국의 억지력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였고, 미국이나 한국의 행동에 단서를 달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수사적 억지력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주재 미군 고위 관료가 “북한의 협박은 ‘언제나 조건부’로 나온다. (중략) 미국이 이렇게 하면 북한은 저렇게 할 것이다라는 식이다.”라고 지난 4월 16일에 말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미 연합 훈련이 시작되자 북한은 전투기 출격 주기를 줄이고 대규모 군중 시위를 개최했으며, 북한군은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적군이조금이라도움직인다면적군의 기지에 신속하고 치명적으로 보복할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한국 국방부도 동일하게 대응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며 대한민국과 인류의 의지에 따라 김정은 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여느 해와 다르게 올해 연례 합동훈련에 B-52 폭격기를 파견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강력하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발표했습니다. 과거와 같이 휴전 협정이 ‘무효’라고 선언하며, 판문점 대화를 중단하며, 미군 사령관과의 직통 전화를 단절하며, 아직 보유하지 않았지만 자국의 ‘정밀 핵타격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해안방어선을 순시하는 과정에서 “적군의 영해와 영토에서 단 한 발의 폭탄이라도 발사되면 적에 즉각 치명적인 반격”을 할 것을 명령했다고 전해집니다.

    3월 19일 미국 정부는 폭격 훈련차 B-52를 한국으로 파견했습니다. 이틀 후 북한 정부는 일본과 괌의 미군 기지가 “북한의 정밀 공격 수단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다음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B-52 폭격기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B-52 전략 폭격기가 다시 한반도로 출격한다면 인민군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 조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구체적으로 경고 내용을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위협이 사실적으로 보여 일본은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강화했고 한국 영해에는 이지스함이 출동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유사한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B-2 스텔스 폭격기 2대를 파견했을 때 북한 정부는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쟁 상태는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첫 번째, “남북한 간 모든 문제는 전시 규정에 따라 처리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개성공단 출입을 금지할 것이라는 신호를 최초로 보냈습니다. 두 번째, “미국과 남한 꼭두각시 정부가 서해 5도 또는 휴전선 지역에서 조선인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한 전쟁을 유발하려는 군사적 도발 행위를 벌인다면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전면전, 핵전쟁으로 발전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전략로켓군 운영에 관한 회의에서 ‘화력으로 타격’에 필요한 계획을 검토하여 승인했다.’라고 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입씨름을 벌이는 와중에 지난 3월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이 오랫동안 견지한 협상에 관한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첫째, “북한은 미래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식되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이 핵무기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서 경제적 보상을 받으려고 미국이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무기는 “조국의 주권과 안보를 보호하는 강력한 보도”의 역할을 하며, “적어도 미국이 핵 위협과 적대적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 협상 대상이 아니다. 북한 정부가 생각하는 ‘핵 위협’은 ‘적대적 정책’이 종결되면 함께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개성공단을 일시적으로 폐쇄한 것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의 핵 외교는 돈이 아니라 화해가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3월 31일 북한 정부는 ‘우세한 상황에서 경제와 핵무기군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마련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발표했고 영변의 폐쇄된 원자로를 재가동해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인근의 핵시설에서는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전 세계가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핵무기군을 양적, 질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협상적 한계가 종결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과거 미국의 아이젠아워 정부가 군사 자원 일부를 민간 목적으로 전용하는 결정을 정당화하면서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동일한 목적일까요?

    4월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아님을 암시했습니다. “조선인민주주의공화국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부터 보이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노동당의 노선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법을 무시하는 무례하고 적대적인 행동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핵무기 제거는 거절하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할 가능성은 열어 두었습니다. “조선인민주주의공화국은 대화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핵 곤봉을 휘두르는 굴욕적인 협상 테이블에는 앉을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한미 연합훈련을 지칭한 것입니다. 외무성 대변인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조선인민주주의공화국이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어서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과 핵 위협, 협박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4월 2일 백악관은 미국 정부가 억지 차원에서 취한 정책으로도 북한 정부가 잘못을 깨닫지 않았다는 뒤늦은 인식 속에서 긴장을 조금씩 낮추겠다는 결정을 공개했습니다. 한 고위 행정부 관료가 말했듯이 “북한을 오해했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고 그 결과 잘못 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양측이 군대에 대기를 명령함에 따라 호전적인 표현 때문에 한반도에서 의도하지 않은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는 위험할 수 있다

    상기 내용은 2009~2010년 기간 동안 벌어진 상황입니다. 2010년 8월 10일 서해에서 남북한 간 짧은 시간 동안 총격적이 있었습니다. 사건 후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단서들로 가득했습니다.

    군에 따르면 북한의 포탄 1발이 서해 북방 한계선 인근에 떨어진 것으로 관찰된 후 한국이 3발을 응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후 1시경 북방한계선(NLL) 방향으로 야포 3발을 발사하는 것을 한국 해군이 들었고 오후 2시경 경고 차원에서 야포 3발을 응사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북한의 대포 1발이 NLL 근처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군이 별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짜 포탄이 NLL 남쪽으로 떨어졌는지, 한국의 포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날 오후 남북한은 추가로 포탄을 주고 받았습니다. 한미 양국 정부는 바로 북한의 도발을 비난했습니다. 이번 주에 시작되는 연례 한미 합동훈련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도발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한반도의 불안정한 군사적 균형과 위태한 정치적 상황을 무시한 것입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육해공군 모두 한국에 열세입니다. 기습 공격을 배제할 수 없지만 한미 연합군은 기습 공격을 단호하게 퇴치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자살과 다름없습니다.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군의 포대와 단거리 미사일 사정거리 내에 있는 서울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으며 한국의 공격을 억제하기에 충분합니다. 다시 말해 상호억제로 인해 남북한이 의도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남북한이 미리 준비한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 취한 바로 그런 조치 때문에 우연히 일어나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충돌의 위협은 증가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현재의 위기는 2008년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해에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서 우연히 발생하는 충돌을 피하고 서해를 평화지역으로 전환할 방법을 논의하고 군사적 신뢰감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 논의’ 등 잠재적으로 적용 범위가 넓은 정상회담 합의를 체결했지만 이 합의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강경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의지 표명으로 합의를 파기하고 미국 정부도 동참할 것을 설득했습니다. 한미 양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 정부에 절대 좋게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북미 간 대화를 봉쇄했을 때 가장 위험한 위기가 닥쳤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 내에서 새로운 지도자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점에서 한국 정부에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만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합의를 파기하자 북한 정부는 고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2008년 3월 말, 서해 부근 연안에 포대를 구축한 후 북한은 남한의 함선들이 ‘북한의’ 영토를 침범했다고 비난한 후 분쟁 지역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위험을 부각시켰습니다. 또한 북한은 현 정전 협정을 영구적인 평화조약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혐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009년에는 설전이 격화되었습니다. 1월 17일 한국 국방부장관이 ‘3번째 서해 충돌을 완벽히 대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북한 인민군 대변인은 “조선서해 우리 측 영해에 대한 침범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이미 세상에 선포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장관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1달 후 국회에서 “한국군은 북한이 영해상에서 포탄 또는 미사일로 선제공격할 경우 이에 분명히 대응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남북한 양국 해군에 전달된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 선조치, 후보고였습니다.

    2009년 8월 북한은 한국과 다시 교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남 관계를 담당하는 최고위 보좌관 2명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단으로 파견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3차 남북정상회담에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초청을 수락하면 심약하게 비칠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방문 초청을 일축했습니다.

     

    한국이 교류를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기감을 증폭시켰습니다. 10월 15일 북한 해군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국이 전함 16척을 분쟁 지역으로 파견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해군 소속 전함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어 서해상에서 남북 간 해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2009년 9월 9일 바로 그러한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2007년 정상회담에서 방지하고자 했던 충돌이었습니다. 북한의 경비정이 NLL을 넘자 한국 해군 함정이 경고사격을 가했습니다. 북한도 이에 응사했고 한국 해군도 다시 사격해서 북한 선박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최소 1명 사망 등 미확인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경고사격에 응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공격을 받았다고 믿었을까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11월 9일 총격전에 대한 보복으로 보였습니다. 11월 12일 사과 요구에 대해 반응이 없자 북한 노동당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남조선 군대는 서해 북쪽 해상에서 자행한 무력 도발에 대해서 큰 보복을 당할 것이다.”라고 보복을 다짐하는 경고성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로부터 5일 후 북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해군 기지를 방문해서 ‘죽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부대’ 훈련을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는 다음 해 3월 16일 천안함 공격으로 한국 해군 46명이 사망하면서 이행되었지만 아직 북한은 책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가 보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유리하지만 불확실한 군사적 균형 상태에서 북한은 억지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가 목전에 닥쳤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련의 군사 훈련을 실시하면서 한국 스스로의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택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제한하기 위해서 일부 훈련에 참가했지만 서해의 분쟁 지역에서 실시된 훈련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8월 9일 북한은 한국이 서해에서 5일간 훈련을 끝마친 후 110발의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10월 29일에는 DMZ의 한 초소에서 근무하는 북한군이 기관총을 떨어트려서 오발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한국군이 응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가을 한국이 서해에서 일련의 실전 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북한 정부는 남북간 직통전화를 통해 훈련 시행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11월 23일 사정거리가 북한 해안을 포함하는 해안포를 이용한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훈련에 한창일 때에 공격하지 않고 1시간 동안 기다린 후 연평도에 포격했습니다. 이런 시차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공격했음을 의미하며 한국이 과시하는 무력보다 더 큰 억지력을 보여주며 반격한 것입니다. 당시 포격으로 민간인 2명을 포함 4명이 사망했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북한 주민 1명이 사망했습니다.

    2011년 6월 17일에 발생한 사고는 한반도의 위태로운 군사적 상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해병대는 승객 119명과 승무원이 탑승한 중국발 아시아나 항공기가 정상 경로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운항하던 중 북한의 전투기로 오인하고 발포했습니다. 다행히 해당 항공기는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한미 양국 정부는 천안함 사태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실행 방법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이 취하는 조치는 충돌을 야기할 수 있으며 실제 야기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억지력만으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태 해결을 위한 출구

    유일한 해결책은 협상 재개입니다. 지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 정부는 6.25 전쟁 후 체결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북한이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북한이 주장한 대로 의도를 갖고 있는지 협상을 통해 증명하는 일이 한미 양국의 보안상 관심사항입니다.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북한이 지난 3월 31일 발표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협상 한계를 배제했는지 협상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 구축 과정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북한이 한미 양국 정부에 오랫동안 표명했던 화해를 재개하고 적대감은 종결 지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북한 정부가 핵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적으로 남아 있는 한 북한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그러한 위협에 역습할 수 있는 억지력을 갖추고 싶어할 것입니다.

    2005년 9월 19일 채택된 6자회담 공동성명에는 “6개국은 동북아 지역에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 직접 관련된 당사국들은 별도로 적절한 포럼을 통해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협상할 것이다.”라고 비핵화 목표와 병행해서 취할 평화 과정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무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할 것을 주장합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먼저 조치를 취할 것으로 주장합니다. 2012년 8월 31일자 외교부 각서를 보면, “북미 간 대화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었지만 동시 행동이라는 원칙조차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적대적인 인식이 제거되지 않는 한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비핵화에 앞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010년 1월 1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말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변인은 “혼란과 실패를 반복하는 6자회담은 당사국 간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려면 우선 적대적 관계의 근원인 전시 상태를 종결하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필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정부의 해결책도 실행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관한 협상이 진전을 보려면 평화 구축 과정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합니다.

    핵 협상과 평화 구축 과정 병행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은 매우 험난한 과정입니다.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육지 및 해상 국경을 조정하고 외교, 사회, 경제적으로 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군사적으로 유의미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DMZ에서 의도하지 않은 전쟁의 위협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군 배치와 전쟁 계획을 변경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전진 배치한 포대와 단거리 미사일을 후방 배치하여 서울을 사정거리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배치를 외부의 공격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보는 만큼 북한은 핵무기 유지에 더욱 결연한 의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 회담에는 누가 참가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3국에 중국을 추가하면 됩니다. 이렇게 4개국이 평화 협정 협상을 진행하면 일본과 러시아에 더해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들이 평화 협정을 지지하면 유용할 것입니다. 비록 중국이 6·25 전쟁에 개입했고 UN 총회 결의 498호에서 중국을 ‘침략국’으로 명시했고, 펑덕하이 장군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사령관 자격으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지만 중국은 그동안 6·25 전쟁의 교전국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종종 북한은 미국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중국을 초청국 명단에서 누락시켰습니다. 북한은 또한 한국과 관계가 악화될 때에는 미국이 한국에 ‘괴뢰’ 정권을 세우려고 한국의 내전에 참전했다는 오래된 주장과 함께 한국은 휴전 협정에 서명한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평화 회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1997년 4자 평화 회담에 한국의 참여를 수용했습니다. 미군 사령관이 UN군 사령관 자격으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고 주한미군이 한국과 일본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UN군을 사용했지만 UN은 6·25전쟁의 당사자도, 휴전 협정의 당사국도 아닙니다. 하지만 1994년 부르토스 갈리 당시 UN 사무총장이 7월 24일 북한 외무성에 전달한 편지에서 지적했듯이 UN 안전보장이사회가 1950년 7월 7일 채택한 결의안 84호는 “UN이 통제하는 하부 조직으로 통합군 사령부를 두지 않지만 사령부 창설을 권고하며, 미국의 통제하에 둘 것”을 명시했습니다.

    평화 협정은 협정 체결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체결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과도기적인 평화 협약들을 여러 개 사용하여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이러한 협약의 조인국으로 서명하여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는 증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보유한 핵 및 미사일 생산시설을 단계별로 점차적으로 해제하여 화답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한국 정부가 한때 ‘평화 선언’으로 불렀던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남북한이 서명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도 서명할 수 있는 이 선언은 2000년 10월 12일 북미 공동선언문의 내용을 재강조하여 적대감에 종결을 선언할 것입니다. 2000년 당시 선언문에서 북미 양국은 “어떠한 정부도 다른 정부에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명시하며 “과거의 적대감이 모두 해소된 새로운 관계를 미래에 구축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평화 선언은 3국이 평화 구축을 위한 과정을 시작하고 평화 협정을 서약하면서 절정에 도달하도록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해당 선언문은 6자 외교장관 회의에서 발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언문과 동시에 북한은 이른바 ‘윤일의 대우’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즉 핵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감시하에 영변의 우라늄 처리 시설 가동을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플라토늄 생산도 중단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북한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평화 메커니즘’을 구축해서 6·25전쟁 말기에 정전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 설립한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 메커니즘은 1994년 북한이 미국의 정찰 헬리콥터를 DMZ 인근에서 추락시켰던 사건이나 1996년 북한 잠수함이 공작원을 침투시킨 사건 같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평화 메커니즘에는 미국과 남북한 등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3개국이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평화 메커니즘은 남북한 간, 북미 간, 또는 3개국 간 구체적인 신뢰회복 절차에 관한 일련의 협약에 필요한 협상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원칙적으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구역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해로 규칙’이나 해군 간 직통전화 등 해군 간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도 마련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위성 감시 능력이 부족한 북한은 간첩을 남파하여 감시 활동을 벌여 왔습니다. ‘영공 개방’ 협약을 체결하여 DMZ를 통과하는 정찰 비행을 허용한다면 간첩 남파의 위험성이 감소할 것입니다. 2000년 10월 김정일은 중장거리 미사일의 수출, 생산 및 배치를 중단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김정일은 미국이 북한을 위해 인공위성 발사 및 기타 보상을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더욱 진일보한 조치는 남북 공동 감시 관찰소를 설치해서 미국이나 일본 정찰위성으로부터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것입니다. 신뢰구축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원하지 않는 전쟁의 위험성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며 적대감을 종결 짓겠다는 의지를 정치적으로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구축조치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의 항구적인 해제와 병행하여 취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오랫동안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북한은 남북 관계가 악화될 때에는 미국이 실제 적군으로 남아 있는 한 주한미군은 위협이 되며 철군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적대감이 없다면 주한미군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으며 주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중국과 외교적 균형 회복

    마지막으로 한미 양국은 중국 정부가 대북 교류와 투자를 중단하여 북한을 고립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오랫동안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대북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은 중국 민간 기업들이 중국과 접경 지역에 집중해서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중국 내 다른 지역보다 덜 부유한 곳으로 중국이 대북 교류를 중단하면 경기가 침체될 수 있습니다. 실제 중국이 무역을 중단했을 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지 아무도 알지 못하며 불안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B-52 및 B-2 폭격기의 폭격 훈련, F-22 스텔스 전투기 및 공격용 잠수함 파견, 미사일 방어 체계 확대, 한국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원하여 미국이 최근 배치한 장거리 크루즈미사일에 포함시킨 조치 등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것 같은 조치들은 중국의 반감을 샀습니다. 미국이 동맹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미국이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미군의 아시아 내 재균형 조치가 중국의 힘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중국 정부를 설득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정치적, 외교적으로 재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며 동맹국들도 동일한 조치를 취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력은 양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결론

    북한 정부는 영변의 원자로를 재가동하여 플루토늄을 추가로 생산하고, 우라늄을 충분히 농축하여 10여 기의 무기를 생산할 계획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새로 건설한 경수로는 거의 완공 단계에 있습니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무기로 완벽하게 만들려면 핵 및 미사일 실험이 추가로 필요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북한의 지속적인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협상이 시급하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협상의 대안은 경솔하거나 실행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무기 저장소의 위치를 모두 알지 못한 채 공격을 감행하면 재앙과 같은 보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핵 무장한 국가 내부의 정권 교체는 위험이 가득하며 중국이 북한과 관계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고려할 방법이 아닙니다. 제재 조치도 북한의 핵 무장을 제어하지 못했고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미국 정부는 북한이 국제 금융기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취한 조치가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무역은 그 이후로 큰 폭으로 증가해서 비단 중국과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지역으로 교역국 수가 증가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어렴풋하게 커가는 불안정한 싹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외교 관계를 지속하고 정치적으로 균형을 다시 맞추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더욱 가혹한 제재 조치, 더욱 무력을 과시하는 억지력, 외교적 이탈, 및 군사적 재균형 같은 조치와는 달리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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