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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식 - 특별강연 ( 임동원 前통일부장관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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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는 IMF 금융위기와 냉각된 남북관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이에 더하여 안보위기까지 겹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금창리 지하핵시설의혹(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짐)이 불거지고, 대포동1호 위성로켓발사로 미국 강경파들이 정밀공중공격을 주장하는 등 한반도에는 긴장이 고조되어 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햇볕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정부는 정경분리원칙을 채택하여 경제적 접근을 시도했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긴장을 완화하고 국가신인도를 높여 금융위기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편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는데도 기여했습니다.


     한편 국민의 정부는 미국에 대해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상호위협감소를 통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보환경을 조성하고 상호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숲을 보고 나무를 논해야 하며,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한반도냉전을 종식시키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으로 대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우리의 제의를 받아드려 한미공조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환기적 사건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나가는데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


    위험을 무릅쓰고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심장부에 찾아가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박3일간 솔직한 의견 교환과 협의를 통해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남북의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부터 논의했습니다.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상호 불가침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 해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후 미-북 미사일협상이 진척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한 것을 기억합니다.


    통일문제는 남북관계 개선 발전의 대전제가 됩니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을 고집하는 한 남북관계개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정상은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따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데 합의했습니다. 완전통일에 앞서 남과 북이 다방면으로 서로 교류 협력하며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상태’부터 실현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긴 과정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촉진시키기 위한 협력기구로서 ‘남북연합’(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 호칭) 형성이 필요하다는데도 합의했습니다.


    두 지도자는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실천하면서 상호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평양방문 전에는 "남북정상회담은 만났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올리자 우리 국민은 95%내외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미국,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입을 모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고, 유엔총회는 만장일치로 6.15남북공동선언을 환영, 지지하는 총회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 6.15 공동선언의 의의와 교훈 ]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6.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평화통일은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이지만 남이 가져다주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힘을 합쳐 화해 협력을 통해 꾸준히 만들어 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합의는 ‘평화적 통일’을 명시한 우리 헌법과, 온 국민의 뜻을 모아 마련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과 합치되는 것입니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아닌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올바른 통일철학 없이 '승패의 게임'을 추구한다면 평화와 통일은 멀어지고, 긴장은 고조되고 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6.15공동선언은 실천선언입니다. 우선 다섯가지 중점사업에 합의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평화회랑을 만들어 민족의 대동맥인 철도와 도로가 연결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성공단이 건설되면서 1백여개 기업에서 4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193만명이 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4천 가족 2만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위해 55만명이 남북을 왕래했습니다. 남북 당국간 회담도 240여회 개최되는 등 시작으로서는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현 정부가 집권한 후 개성공단사업 하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다른 모든 협력사업들이 중단되고, 상호신뢰가 파탄된 것은 대단히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속히 원상회복하고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6.15공동선언은 지난 반세기의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6.15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이 실천에 옮겨지면서 남북 간에는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긴장이 완화되었습니다. 민족공동체의식이 함양되면서 상호신뢰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남북이 화해협력하기로 한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밝히라"는 북측의 요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긍정적인 호응을 얻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다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6.15공동선언은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던 우리가, 우리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고, 민족자존을 드높였습니다. 한미동맹만 잘되면 남북관계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외세의존적 자세가 아니라, 민족문제를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합의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입니다.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입니다.  비핵화는 국제공조로, 남북관계 개선 발전은 민족공조로 양자를 병행 추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받들어 분단을 고착시키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군비통제를 실현하는 한편 ‘남북연합’을 구성하여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구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 준수를 다짐하고, 우리가 중단시킨 금강산관광사업의 즉각 재개, 인도적 지원 제공, 개성공단사업 활성화조치 등,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대화를 유도하여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도 대남비방과 군사적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와 공존공영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져야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역효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처럼,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설득하여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6.15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명년에는 남북이 공동주최하는 성대한 기념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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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im Dae-jung government (hereinafter "People's government") inherited the financial crisis and the frozen South-North relationship. The situation got worse as security crisis was added. There was an ill-grounded suspicion that North Korea had underground nuclear facilities in Keunchang-ri. The tension was heightened in the Korean peninsula as American hardliners argued for surgical strikes on North Korea after Pyongyang's launch of Daepodong1 missile.       


    In his inaugural address, President Kim Dae-jung offered a proposal to have the inter-Korean summit, and put the Sunshine Policy in action with patience and consistency. Adopting the principle of segregating politics and economy, the government approached North Korea with economic agenda, while Hyundai founder Jung Joo-young pushed forward with the Mt. Geungang tourism project. The project helped relieve tensions between two Koreas and find way out of the economic difficulties of South Korea by improving Korea's national credibility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lso the project was effective in thawing the frozen inter-Korean relationship.    


    In the mean time, the People's government communicated the following messages to the US administration. "North's nuclear and missile issue is the byproduct of the hostility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Pressure and containment can't effectively stop North Korea. We have to create a safe security environment that does not required nuclear arms and establish mutual trust. With an attitude of seeing the wood for the trees, we have to take the give and take approach to matters concerning North Korea. With the fundamental and comprehensive approach aiming at ending the Cold War on the Korean peninsula once and for all, the US should improve the bilateral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and settle peace on the peninsula." The Clinton administration accepted our proposal and embarked on "Peace process on the Korean peninsula" jointly with Seoul. Along with the efforts for improvement of inter-Korean relationship, America and Japan began the endeavor to improve their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Against this back, the historic inter-Korean summit became a reality. President Kim Dae-jung succeeded in turning a new chapter in the Korean history through the epoch-making event.



    [ Result of the summit ]


    Running the risks of visiting the literally uncharted territory, President Kim reached the very heart of North Korea and had meetings with Chairman Kim Jong-il during his Pyongyang stay for two nights and three days. In those meetings, President Kim exchanged candid opinions and went through consultations with Chairman Kim Jong-il. His prudent and bold endeavor finally bore fruit in the form of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The first agenda on the table for the two leaders was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unification. Agreeing that war would be self-destructive for the whole nation, they pledged non-aggression for each other. In recognition of the understanding that the whole Korea could be better off when Pyongyang and Washington end enmity, both agreed to make consorted efforts toward that direction. Since then, the missile negotiations had taken place between America and North Korea. What happened next were State Secretary Albright's visit to Pyongyang and initiation of the preparation process for the US-North Korea summit. These are still fresh in our memory.           The matter of unification has always been intertwined with improvement and development of the inter-Korean relationship. If one insists on unification by force or absorption, improvement in South-North relationship can not be expected. The two top leaders shared an understanding that unification is a process as well as an objective, and agreed that unification should be achieved in a gradual and phased manner based on the principles of self-reliance and peace. That is, the South and North, before achieving de jure unification, decided to move towards the state of "de facto unification", where two sides exchanges and cooperates in various fronts. In order to jointly manage and facilitate the long process leading to peace and unification, the two leaders also agreed that "South-North Confederation" was needed as a cooperation and facilitation body.


    Based on the understanding that confidence building was the most urgent task and would be achieved only through actions, not words, the two leaders decided to promote multi-dimensional exchanges and cooperation to build mutual trust.   


    Before the presidential visit to Pyongyang, the majority of Koreans in the South held rather a pessimistic view that the inter-Korean summit would carry its intrinsic value for itself, but be hardly meaningful to a degree, where it could result in any significant outcome. However, with great results coming out of the summit, Koreans turned in favor of the government's endeavor with the absolute support rate of 95%. Many countries including America and China highly recognized the outcomes of the South-North summit. The UN General Assembly unanimously adopted a resolution in welcoming and supporting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 Implications and lessons of the Joint Declaration ]


    Largely there are four points. First, June 15 Joint Declaration lit up the road to peace and unification for Korean people. Peaceful unification is a goal that we have to achieve. It will not come from the outside or with our hands down. It is in effect a "process," by which the South and the North should work together and take all the necessary steps through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This agreement is in compliance with the Constitution of Republic of Korea that stipulates a "peaceful unification", and the "Unification through  National Community" formula that is crafted in 1989 reflecting collective wishes of all Koreans. We have to guard against the argument that South Korea should come up with a new unification formula, which overthrow the idea of "unification as a process." If zero-sum game is pursued without well-defined unification philosophy, peace and unification will walk away and tension will rise, leaving the region at the risk of conflict.


    Secondly,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is action-oriented. The major driving force for improvement of the inter-Korea relationship was from implementation of the five agreed focus projects. The Peace Corridor was established, linking the main artery of the Korean peninsular of railroads and inland roads. The Gaesung Industrial Complex was constructed to pursue common interest essentially with combination of capital and technology from the South and labor forces and lands from the North. Over 100 companies in the Complex hired 40,000 North Korean workers. 1.93 million people travelled Mt. Geumgang. 20,000 people of 4,000 families found their separated family members. 550,000 people cross-visited the South and the North for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exchanges. More than 240 talks between South and North authorities were held. These were a significant beginning by any measure.   


    On the contrary, since the incumbent government took office, all cooperative projects have come to a halt but the Gaesung Industrial Complex, which barely maintains its slander existence. It is truly worrisome and troubling to see the hard-earned mutual trust break down. Things should be back on track as soon as possible. Thirdly, the Joint Declaration opened a new era of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marking the end of a half-century old distrust and confrontation. As the agreed terms of the declaration were put into action, animosity between two Koreas began fading away with eased tension. With growing Korean people's communality, mutual trust began to bud.


    But the current government has been failing to take a trustworthy attitude to the Northern request to "acknowledge and implement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which Seoul and Pyongyang signed for cooperation," and win favorable support from Pyongyang as a result. It is deeply regretable. Rather than regressing to the era of distrust and confrontation, the Seoul government should respect and succeed the sprit of the Joint Declaration, and steer the policy direction back to the road of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Fourthly,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enhanced our self-confidence that we can address National issues on our own, no longer being left at the mercy of outside forces, and also elevated the Korean people's esteem.  


    As opposed to the belief that an amicable US-Korea alliance would ensure resolution of the inter-Korean issues without much efforts from our side, we proved that when the direct stakeholders of the South and the North in the inter-Korean matters reached an agreement, we could earn international support and cooperation including that of the US, and show that we could shape our own destiny. Intra-Korean cooperation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are not contradictory, but complementary. It is time for us to gather wisdom to address the denuclearization issue with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the national peninsula issue with inter-Korean cooperation in parallel.


    It is time for us to build a proactive peace directed towards unification by guarding the spirit of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staying away from a passive peace that fixates the state of division. It is time for us to activate economic cooperation to form an economic community, while controlling and reducing arms, whereby establishing the South-North Confederation to realize the de-facto unification.  


    To this end, Seoul will have to officially announce its compliance with the Joint Declaration, immediately resume the Geumgangsan tourism business that Seoul put on hold, provide humanitarian aids, and take measures to boost the Gaesung Industrial Complex. The government should find ways to ease tensions and improve the inter-Korean relations not by lip service but by sincere dialogue and deeds. For its part, North Korea should stop speaking ill of South Korea and military threats, and come out for dialogue and negotiations in search for co-existence and co-prosperity.


    Only when animosity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dies down so that their relationship is normalized, 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issues will be solved, and the peace regime will be settled on the Korean peninsula. The last two decades proved that pressure and containments were not effective, but just backfired. The Korean government should be able to stand at the forefront of ending the Cold War and settling down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by convincing the Obama administration that it has to come out for fundamental and comprehensive resolutions to Korean issues just like the past Korean government did for the Clinton administration.


    Last but not least, let me wish that the 10th anniversary of the June 15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can be hosted by both South and North Koreas with much celebration. In order to make that wish come true, we must not spare any efforts for betterment of the inter-Korean relationship.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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