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 2부 개회사 - 박원순 |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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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희호 여사님,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오늘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역사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그날을 떠올릴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역사적인 선언을 꼽는다면, 17년 전 바로 오늘 남북정상이 직접 서명하고 발표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길을 여시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길을 다지고 확장하며 서로 왕래하던 길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인적이 사라진 길에는 잡초만 무성해졌습니다. 남과 북이 연결되어 유리사아 대륙으로 달리고 싶은 철마는 이미 녹슨 지 오래고, 개성공단은 거대한 고철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화는 단절되었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 촛불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촛불의 힘은 민주정부를 탄생시켰고, 촛불은 정권교체 그 너머까지 비추고 있습니다.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다는 것,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민간 차원에서 남북교류협력이 기지개를 켜고 있고, 앞으로 커다란 변화의 물꼬가 터질 것을 우리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뼈아픈 사실입니다. 한번 무너진 평화는 하루아침에 복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대국민 합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남북관계 주권의 회복, 즉 당사자 해결원칙을 복원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한반도 문제의 ‘책임공동체’입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주체는 바로 남한과 북한입니다. 남과 북이 갈등과 증오가 아닌 신뢰와 미래를 선택할 때 국제사회의 협력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하는데 평화를 위해서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대화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필요조건입니다.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증오와 두려움을 부추겨서 후퇴할 것이 아니라 이성과 대화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굳게 닫힌 북한의 남쪽 정문이 열리지 않으면, 뒷문이라도 두드려야 합니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동북아라는 더 넓은 경제공간을 활용할 때가 되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참여하는 북방경제의 기회를 찾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한반도 P턴 플랜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분단의 슬픈 역사를 국내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잘못된 이념적 잣대, 거짓 안보는 우리 정치에서 영원히 퇴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정치를 얼마나 퇴행시키는지, 우리 민주주의를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이번 대선을 통해서 우리는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큰 위협이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 정치에서부터 외교에 이르기까지 작은 디딤돌을 하나하나 놓으면서 신뢰를 쌓다보면 마침내 평화와 통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남한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평양에서 북한 학생들을 태워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파리로 여행하는 그날을 상상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새로운 정부는 가슴 뛰는 상상력, 그리고 담대한 용기와 비전으로 적극적 평화 만들기(peace maker)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께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대전환의 물길을 열어주실 걸로 믿습니다. 그 도전과 성취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수 한 번 쳐드릴까요? 우리 서울시도 적극 협력할 것입니다. 서울시는 ‘서울평양 도시협력 방안’을 오랫동안 준비하여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맨 윗 서랍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정부와 발을 맞추어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꿈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이희호 여사님, 이제 좋은 날 오니까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