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저는 분단 55년 만에 양측의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방문했던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만이라도 제대로 합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 벌어진 상황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까지 출영해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우리와 적대하고 있던 북 인민군의 의장대 사열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연도에 50만이 넘는 대군중이 나와서 열렬히 환영해주었습니다. 참으로 꿈같은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과 대화는 보좌역 한사람씩 배석한 가운데 무려 10시간 가까이 이루어졌습니다.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진행됐고, 이러다가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절박한 심정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해냈습니다.
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우리는 남북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7천만 민족이 공멸한다. 그러나 우리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올바르게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우리 국민과 후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누구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도 없고,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다. 우리 민족을 위해서나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나 오늘의 이 자리는 하늘과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기회다. 반드시 성공적으로 문제를 풀자.” 이러한 다짐들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구체적인 통일 방안에도 의견의 접근을 보았습니다. 모든 의견 대립과 분쟁 문제들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하고 협력해나가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도 합의됐습니다. 가장 격이 높은 공동선언을 두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한다는 데도 합의했습니다. 참으로 역사적인 성과였습니다. 2박 3일 동안 내가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남쪽과 세계의 정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우 총명했으며 결단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을 해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그를 만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나 페르손 스웨덴 수상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최근 방북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같은 인물평을 말한 것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나는 더불어 민족의 장래를 열어나가야 할 상대가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에도 7.4 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의 두 합의는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숭고한 다짐이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는 했지만, 그 후로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얼마가지 않고 다시 옛날의 차가운 대결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6.15 합의의 경우는 다릅니다.
첫째, 남북의 정상이 직접 만났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인 것입니다. 7천만 민족을 대표하고 각기 국정을 총괄하며 군을 통수하는 사람들이 공식으로 민족의 평화와 협력과 통일을 위해서 논의하고 합의한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양쪽에는 긴장이 급속히 완화되었습니다. 이제는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 일들을 실현시킬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남북 두 정상도 민족과 역사 앞에 자기책임을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남쪽에서는 대통령의 교체가 있었지만, 여기와 계신 노무현 대통령도 남북공동선언 지지를 선언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평화와 화해와 공동번영의 길을 나가고 있습니다.
둘째, 지난 4년 구체적인 실천들이 뒤따랐습니다.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철도와 육로의 개통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의 건설에 매진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참가의 열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북 군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에서의 군사적 충돌방지, 휴전선에서의 비방선전 종식 등이 구체적으로 합의되고 실천되고 있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이에 사람이 서로 왕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 1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의 상봉, 6만명이 넘는 민간인 교류, 65만명의 금강산 관광 등 인적교류가 빈번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과거에 가지고 있던 불신이나 적대감은 크게 사라지고 이제 이웃사촌 같은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쪽에서 개최된 아세안 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찾아온 북쪽의 선수와 응원단들을 맞이하는 남쪽 국민들의 따뜻한 환영의 태도를 보았습니다. 북에서도 체육, 음악행사 등에서 마찬가지의 감격의 장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자각과 우리는 다시 통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북을 합친 이 땅이 동북아의 물류의 중심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협력하는 가운데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우리는 중국대륙 혹은 시베리아를 거쳐서 중앙아시아, 유럽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물류비용도 크게 감소됩니다. 이렇게 될 때, 남북 양쪽에는 많은 산업시설과 금융기관, 보험기관, 관광사업 등이 크게 발전돼 나갈 것입니다. 7천만 민족이 모두 경제적 번영과 국민생활의 풍요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실현될 통일의 꿈을 일구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를 위해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일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과 지적수준이 높은 민족으로서 내일의 도약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야말로 21세기 우리 민족의 꿈과 성취에의 청사진을 엮어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지금, 북 핵문제를 놓고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6자회담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핵심은 북쪽과 미국이 두 당사자로서 합의를 이뤄내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북은 핵 문제와 관련하여 세계가 납득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미국은 북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할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불신이 큰 만큼 실천은 동시 또는 병행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이 모임에서도 북미 양쪽이 다같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러한 방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화와 토론이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조할 것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그 해결책이 찾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주한미군 감축계획도 남과 북이 긴장완화와 군비태세의 조절에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있고 그 준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남북공동선언에는 김 위원장의 답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쪽 국민과 세계가 그 실현을 바라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쪽 방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답방이 이루어져야 남북간의 신뢰는 확고해지고 평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진전이 크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전쟁의 그림자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남쪽의 국민들은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따뜻이 환영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남북의 정상이 다시 한자리에 앉아서 민족의 협력과 번영과 통일을 논의하는 모습을 바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오늘의 국제토론회가 여러분의 참여와 협력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년 5주년에는 더욱 성대한 모임이 이루어지도록 다짐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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