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 (Session 2 / 발표 ) 이정철 | 숭실대학교 교수
본문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와 신자유주의의 해체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붕괴라는 글로벌 현실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닥치고 있다. 이같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치모델은 표류하고 있고 한국 정치는 광장 정치의 제도화라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탄핵과정에서 사라진 다양한 권력 메커니즘은 향후 닥쳐올 위기를 대비할 거버넌스의 부재를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권력은 조정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로 나서기 쉽지 않고, 다양한 정치 경제 주체들은 누적된 적폐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런 펀드멘탈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듯 외교 역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왔고, 비대칭 전력 분야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남북 간 비대칭전력에서의 열패 구도는 분명해지고 있다. 한미동맹이 ‘핵심동맹’이 아니라 ‘파트너십’수준으로 전락되었고, 신흥 대국으로 자처하는 이웃 나라가 공식 비공식 제재를 가해와도 꿀먹은 벙어리로 전락해 있는 우리 외교 안보의 현실을 목도하며 “미-중 모두에게 동시 구애받고 있다”는 전직 외교부 장관의 어록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탄식이 아닐 듯하다. 나아가 연일 새 형의 ‘다종화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을 보며 실패한 실험이라는 입에 발린 평가 외에는 제대로 된 분석도 내 놓지 못했던 전 정권의 안보 인식에 대한 실망은 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위 과정 없이 바로 직을 맡은 새 대통령은 위기에 빠진 한국호를 끌고 가는 국난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새 정부의 통일 및 대북 정책의 방향을 논하기 위해 필자는 먼저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들을 역사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대북 정책의 전제가 되는 대북 ‘인식’에 대한 대안을 검토하고자 한다. 왜 지난 10년 보수 정권과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조합인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는지 그 전제가 되는 인식론적 편향을 검토한 후에, 대북 및 통일 정책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는 대북 정책의 핵심이 되는 북핵 문제에 대한 제언을 담을 것이다
1. 정권별 대북 정책의 특성
한 때 남북 관계와 통일 외교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진전시킨 보수정부의 모델케이스로서 노태우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방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한국의 외교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중, 대소 수교를 통해 대북 우위를 확립하고 동시에 비약적 경제 도약과 민주화를 이룩한 시기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는 각각 ‘성공한’ 대북 정책과 ‘성공한’ 북방 정책이 상호 교차점을 찾지 못하여 분단체제의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를 계기로 북방정책이 돌연 대북 승리테제로 전환되더니, 남북 (총리)고위급회담 결렬, 이선실 간첩 사건 발발 그리고 92년에 일시적으로 중단했던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일련의 정책 파열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통일 기반 강화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보수 3당 합당 체제는 대통령 선거라는 계기를 맞아 남북관계의 진전보다는 보수의 확장적 재생산을 선택하였다. 국내정치과정의 정당화가 남북관계보다 중요했고 결국 국제관계는 이에 조응하여 북한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당시 북한 당국의 고립감(siege mentality)은 곧 체제 생존을 위한 핵 게임으로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김영삼 정부의 대북 정책은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한다는 북한의 소위 ‘통미봉남’ 정책과 상호 대립하며 ‘적대적 상호의존’이라는 독특한 남북관계 현상을 낳았다. 임기 초부터 ‘세계화’ 구호를 내건 김영삼 정부의 외교 정책은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가장 저위에 둠으로써 임기 내내 긴장된 남북관계와 씨름하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오랜 동면기를 끝내고, 김대중 정부는 국내정치와 남북관계 그리고 국제관계를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고자 하였다. 소위 햇볕론에 기반을 둔 대북 정책과 외교를 진행 해 6.15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국내정치 지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퍼주기’ 논란에 시달렸지만 김대중 정부의 햇볕론은 대북 관여 정책을 중심으로 국내, 국제, 남북관계라는 3가지 수준을 일관성 있게 배열하고자 한 점은 분명했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 통일 철학은 (신)기능주의적 통합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국제관계와 국내정치를 이에 동원하고자 한 데 특징이 있었다.
평화와 지역, 세계로 그리고 다시 통일로
그러나 9.11 이후 변화된 세계정세에 대응하는 과정에 노무현 정부는 햇볕론적 관여 정책을 지양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 참여정부는 두가지 차원에서 햇볕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먼저 참여정부는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종착점(end-state)을 통합이나 통일보다는 평화 공존에 두고자 한 점에서 경제평화론적 발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동시에 ‘동북아 중심’ 등 지역주의 전략과의 결합을 통해 민족 및 통일 논의의 과잉을 경계하고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의 중간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 정책과 동북아 중심론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을 남북관계의 지향점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경제협력의 무게 중심을 통일이나 민족공동체의 통합보다는 평화 공존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공동 번영을 강조한 것은 남북 협력이 분명한 공동이익(common interest)을 창출할 때에만 유의미하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는 결국 절대수익(absolute gain)보다는 상대수익(relative gain)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어서 햇볕정책에 비해 보다 현실주의적인, 따라서 상호주의 교리를 강조하는 데로 기울었다.
한편 노무현 행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론, 동북아 중심론에 이어 동북아 균형자론에 이르기까지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동북아 지역성(regionness)’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론은 글로벌주의로부터의 퇴행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민족주의나 통일-통합정책을 벗어나, 지역주의와 평화론을 결합시킨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데 의의가 있었다. 당시에 시작된 6자회담 체제와 결합되면서 나름대로 지역주의 패러다임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하였지만, 6자회담이라는 비핵화 안보 레짐과 동북아 지역화 간의 정체성 차이는 심각했고 특히 이같은 비전통적 접근법에 대한 북한의 몰이해는 종종 남북관계에 파열음을 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심지어 지역으로서의 동북아 개념은 동북 3성의 분리를 경계하는 중국이나 동아시아 개념을 강조하는 일본 모두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였다. 특히 미-중간 균형 외교를 위해 한미동맹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동북아 균형자론(balancer)에 대한 미국의 비판은 노무현 정부를 매우 당황스럽게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뒤늦게 자신이 의미한 균형자 역할은 동북아의 양강 즉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해명했지만, 미국 측의 태도는 매우 완강했다. 이후 균형자(balancer)라는 표현은 한미관계에서는 금기어같이 취급당했고, 결국에는 균형자론과 함께 동북아라는 지역개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글로벌주의와 통일 대박의 공통분모: 흡수통일론
이명박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테러 드라이브에 편승하여, 세계로 가자(going global)라는 모토를 외교 노선으로 들고 나왔다. 인수위 시절부터 오렌지네 어륀지네 논란을 일으키는 등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 일변도의 대외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는 전두환 정권 이래 슬로건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론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에 대한 미국의 속도조절론, 김영삼 정부 시절 통미봉남 여부에 따른 미국과의 신경전,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와 부시 행정부와의 대북정책 논란 등에 비하면 한미관계는 탈냉전 이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듯했다. 이에 반해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안을 들고 나왔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남북관계의 전제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고, 이를 수용한 북한이 경제 개방을 추진한다면 한국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불로 만들어 주겠다는 안이었다. 이미 2006년에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전례가 있는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고 개방 정책을 실행하더라도 국민소득을 3배 증대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점에서 그 진정성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세계로 가는 정책인 글로벌주의는 동북아라는 말썽 많은 지역 범주를 단번에 뛰어넘어 소위 중견국가(middle power)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외교 정책이었다. 자원외교, 녹색성장 등으로 무장한 이명박 정부의 대외 정책은 G20 의장국,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 등 세계로 나가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실속은 없었다. 특히 지역주의 없는 세계화 전략은, 한국보다 더 빨리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정책 대안을 담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성공 여부에 대해 물음표가 따라 다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 처리 과정 내내 이명박 정부는 대북 정책의 집행을 위해 중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 정책은 남북관계와 무관한 외교적 레토릭으로만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대북 강경론의 명분으로 해석되었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관광 중단, 5.25 대북 제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북 제재를 추진했지만, 중국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중견국가 한국의 대북 압박은 한계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미동맹 일변도의 외교 통일 정책으로 역내 지정학을 돌파하려고 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 통일론은 결과적으로 다시 지역 문제이자 중국 변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중 협력외교를 들고 나오고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반성에서 나온 것임에 분명했다. 한국의 보수 정부가 자주 외교나 균형자 외교를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몰입외교에 대해서 경로 수정을 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여 정부기 균형자(balancer)론의 비극을 염두에 두고 이와의 차별화를 위해 외연이 다른 균형(alignment)을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포지셔닝을 점검한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행보와 방미 행보 그리고 AIIB 가입 문제와 싸드 배치 문제 등에 대한 널뛰기 외교는 외교 철학의 한계는 제외하더라도 역내 균형화 전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기하고 있는 또 다른 제안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동평구) 역시 동북아라는 지역 범주를 재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가 방기한 지역 개념인 동북아를 재차 들고 나온 것은 결국 세계로의 길은 역내 문제를 다지는 과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정부의 지역주의 문제의식을 부분 회생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 마약, 원자력, 에너지 등 연성 안보 분야에서 시작하여 북한과 몽골까지 참여하는 다층적이고 다변적인 대화협력체를 구성하자며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 제안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이 ‘동북아’라는 지역성을 통해 한국 역할론과 주도성을 획득하겠다는 그 근본적 발상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 점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대표되는 동평구 안은 이 정부에서도 되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인 신뢰 프로세스는 그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기 어려운 매우 주관적인 정책이었다. 신뢰의 형성 주체가 당국 간인지, 비핵화 문제는 여기에 어떻게 매개되는지 나아가 신뢰의 목표지(end-state)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의문들이 끊이질 않았었다. 이에 더한 박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그 통속적 표현이 갖는 다의적 함의 때문에 더욱 정책적 투명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부에서는 통일대박론은 체제흡수라는 방법과 북한체제의 조기붕괴라는 시점을 내포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청년 세대의 통일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 슬로건 정도라는 소극적 해석도 병존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를 기점으로 박 전 정부의 통일대박이 흡수통일 정책이었음을 부인하는 견해는 찾기 어렵다.
2. ‘전략적 인내’ 시대의 마감
필자는 새 정부의 과제가 한국 보수 정부의 흡소통일 전략과 오바마 행정부의 동맹 우선 전략의 묘한 조합이 만들어낸 ‘전략적 인내’ 정책이 갖고 있는 인식적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 문제를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략적 인내는 클린턴, 부시 행정부 6년간의 북미 대립의 결과를 결산하고 이로부터 북한 문제에 대한 교훈을 도출, 마련한 대북 정책이었다. 전략적 인내 정책의 한 축은 레드 라인(Red Line) 설정 여부였다. 북한의 특정 행동을 레드 라인으로 설정해 놓고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것은 북한이 이를 위반할 협상(양보)이냐 전쟁이냐의 극단적 선택에 몰리는 단점 때문에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이어서 무의미하며, 오히려 강압 이론에 입각한 외교적 해결에 상당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부상하였다. 클린턴 정부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부시 정부 때 조차도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 직후 오히려 협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대한 미국의 학습효과는 ‘노 레드라인’ 정책 즉 무시정책(neglect policy)으로 입안되었고 2008년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한 기대가 부상되면서 다자적 장기 경제 봉쇄라는 장기 강압카드를 무시 전략과 결합시키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장기 강압 카드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을 다자적 제재라는 방법과 결합시킨 것으로서 다자적 제재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한 대외 정책의 한 방법론을 부시 행정부의 무시 전략과 결합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 전략적 인내는 단순한 대북 ‘정책’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철학과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평가와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을 결합시켜 만든 총체적 대북 독트린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실패한 규정한 것은 이 점에서 미국의 대북 인식, 방법 모든 것에서 변화를 동반할 수 없을 것이고 동시에 한미 동맹의 대북 인식 역시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에 필자는 북한을 제대로 평가하고 대북 및 통일 정책을 바로 세우는데 필요한 인식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해왔고 이에 다음의 세가지 개념을 강조해오고 있다.
대북 ‘인식’의 대안적 전제
첫째, 『뉴욕타임즈』가 북한 정권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합리적 광기’(Rational Irrationality)라는 개념이다. 김정은을 폭정군주로 다루는 광인(mad man)이론보다는, 북한 정권이 자기 이익을 정확하게 이해할 능력이 있고 심지어 무모해 보이는 도발마저도 상대방과의 협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기화하고 있을 만큼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은 합리적이라고 보는 이 개념을 대북 인식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음은 ‘예측 가능한 예측 불가능성’(Predictable Unpredictability)이다. 주류 언론들이 북한의 도발을 예측 불가능한 김정은의 괴벽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 북한의 도발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은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북한은 쟁점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에 대한 반응으로 도발이라는 옵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 북한의 도발은 군사 기술적 요구에 따른 주기성을 띤 실험인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도발이 사실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띠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물밑협상 담당자들은 이를 예측하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사실 전략적 인내 노선은 그것의 성립을 위해서 북한 정권의 비합리성과 이로부터 연원하는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행태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 싸움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한다는 그 전제가 지난 8년 경험으로 실패한 마당에 더 이상 이런 류의 인식론적 전제를 대북 정책의 잣대로 유지하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이 점에서 이젠 북한 행태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얻는 이익보다는 우리의 예측 능력을 강화하고 그 예측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되는 시대가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독재국가의 ‘레질리언스’(resilience)―회복력, 탄력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이다. 살아남은 권위주의·독재국가들이 생각보다 레질리언트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 정치학자들은 최근 이들 국가에 대한 제재가 곧 레짐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북한 역시 오랜 제재를 견뎌낸 노하우가 있고 잔인한 권력정치의 결과도 예상과는 달리 권력 안정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제정치와 권력정치가 꼭 도덕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가 대북 인식에서도 일관되게 작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바다.
결국 이 세가지 키워드는 지난 10년간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한국 보수정부의 궁합이 만들어낸 대북정책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인식적 전제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합리성과 정치잔혹극을 핵심으로 하는 북한 예외주의에 대한 대안적 개념들인 것이다.
대북 ‘정책’과 숙적관계의 탈피
한편 대북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적관계(rivalry)에서의 탈피이다. 사실상 국내정치화된 주류 담론인 종북론마저 대북 숙적관계의 대내적 안전장치일 따름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남북관계를 숙적관계 측면에서 보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달리고 있다. 이 시간대의 차이를 일치시키는 방법은 북한 즉 일방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달리고 있는 양자를 인정하고 그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어차피 남북은 비대칭적이다. 안보전략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경제 수준에서도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수단에 의한 미래를 그리는 비대칭전략을 수용하고 있다. 이를 억지로 동일 시간대로 끌어들여 이기고 지고의 제로섬 패러다임으로 전락시킬 이유가 없다. 숙적관계의 탈피는 곧 상호성의 승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은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의 문제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류 언론의 사실 선택 방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된 개념이다. 실상 정책의 실패는 사실검증(fact checking)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된 대안적 진실이라는 용어를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의 실패가 반복된 과정을 지배해온 주류적 사실검증 절차를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사실검증에 따른 대안적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안적 진실에 주목할 때 대안적 정책이 제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정보는 중요하다. 특히 대북 정책에 관한한 그러한 인식과 정보 판단의 중요성은 비할 바 없다. 지난 10년간 소위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조응한다고 제대로 된 정보 판단을 공론화화한 적이 없다. 전략적 인내란 주지하다시피 대중의 공포를 방지해 대적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협상의 전술적 전제로 무시를 정책 옵션으로 선택하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전문가나 정책 결정자 스스로 무시 전략의 환원론에 빠져 현실 직시 능력을 방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위기 경보는 많이 있으나 인지 능력이 패턴화되어 있고 이데올로기적 접근에 사로잡혀 있어 사실 분석에 근거한 경고 신호를 수신하지 못하고 ‘축소와 무시’라는 관성적 대응으로 일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략적 무시가 아니라 경멸과 무지만 남게 되었다.
북한이 공개한 북극성 2호 발사 동영상이 킬 체인과 같은 한국형 MD 체제의 효과성에 던진 의문부호와 충격은 작지 않다. 수차례의 핵실험에 더해 북한이 공개하고 있는 ICBM, SLBM 능력의 진전은 분초를 더해갈수록 위협적으로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확보한 비대칭 전력의 수준을 이제는 제대로 평가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정보를 공론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가 굳이 ‘대안적 진실’이라는 빛바랜 용어를 사용해가며 대북 정책에 대한 정보 판단의 변환을 요구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북한문제의 과잉 국제화
한편 대북 정책의 또 다른 편향은 북한 문제의 과잉 국제화이다.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의 국제화 옵션은 우리가 국제적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 효과적인 옵션이다. 그러나 한국의 글로벌 지위가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남북 관계 간 비대칭 전력의 열세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국제화니 북한 문제의 국제화니 하는 논리는 우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 뿐이다. 이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서 사실은 과잉 국제화의 한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제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의 국제화 옵션을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일부 이슈에서 그것은 여전히 국제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 차원의 갈등 관리 옵션에서 다뤄질 영역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거나 북한의 재래식 도발이 일어나면 유엔이나 미국에 가서 문제를 제기해 온 한국 외교의 패턴을 고집할 때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반도 차원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나 갈등관리 노하우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이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지구촌 최고의 갈등 지대로 전변할 수 있는 한반도에 살면서 그 평화적 관리를 스스로 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위임이나 수탁에 의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3. 북핵문제의 뉴프레임
북핵문제의 현실적인 해법은 비핵화의 입구와 출구의 시간차를 인정하고 그 기간 동안 과도적 공존을 대비하고 한반도에서 갈등 방지 거버너스를 수립하는 데 있다. 즉 비핵화의 입구에서는 한미군사연습의 축소와 핵/미사일 실험의 동결론에 동의함으로써 협상을 시작하고, 출구 즉 비핵화의 최종 국면까지의 과도적 공존을 선택함으로써 출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옵션은 최근 중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중재안으로 던진 쌍중단과 쌍궤병행론(군사연습과 핵실험의 상호 중단/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추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입출구론과 상호동결전략
일단 입출구론은 북핵 협상의 입구와 출구 간에 비핵화의 목표치를 달리하는 잠정 평화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입출구 사이의 이 과도적 기간 동안 북한이 핵 국가라면 한국은 비핵국가라는 비대칭 상황이다. 이같은 과도적 공존을 우려하는 일부 우파 논자들이 한국 스스로 핵무장국이 되거나 최소한 미국의 전술 핵을 재배치하자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미 확장 억지력을 갖추고 있는 한미 동맹이 굳이 그런 옵션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동시에 지구촌 핵 밀집도가 가장 높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사는 우리가 새삼 핵 ‘존재’의 공포에 빠질 필요는 없다. 다만 핵을 가진 정권의 비합리성에 대한 공포만 존재할 따름이다. 따라서 공포의 균형이라는 대안보다는 한국이 평화국가의 기치와 갈등관리 거버넌스를 통해 북한과의 평화적 협력의 길을 모색해 비대칭 상황을 관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옵션을 마련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상에서 북한 정권의 합리성 여부에 대한 답은 피하기 어렵고 이에 대한 답은 필자가 앞서 제기한 바 있다.
대북 무시전략의 병리학 재론
위 협상안은 과연 현실적(feasible)인가?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전략적 인내와 무시 전략에 익숙해 온 우리로서는 북한이나 중국이 제안해 온 핵실험 동결안이라는 것이 일고의 협상 가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성역에 속하는 ‘한미군사연습’의 중단을 조건으로 걸고 나온 한 잘해야 통미봉남(通美封南)이고 아니면 또 다른 도발의 명분을 쌓기 위한 속셈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핵무기의 실전배치와 이에 따른 군사 교리의 변화를 완성시키고 있다는 북한의 선전을 다 믿지는 않더라도, 2015년 1월 북한의 핵동결 제안은 핵무기의 실전 배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기술적 의사 결정을 둘러싼 군축 안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의 행동을 항상 병리학적 프레임의 틀에서 바라보고 전략적 인내에 입각한 대북 정책을 수립해 온 입장에서 이런 수용적 해석은 군사능력을 과잉 선전하고자 하는 북한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스크 회피를 행위의 제1목적으로 해야 오는 안보 인식의 기본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북한에 대한 과잉 무시는 앞서 여러 번 지적하였지만 또 다른 집단 병리의 결과였던 것이다.
사실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조항 12항에서 이미 합의하였듯이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 문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 등은 평화협정과 불가침 논의의 출발점이다. 모든 전쟁연습, 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군사연습을 서로 배제하는 원칙은 상호주의의 기본의 기본이다. 북한의 2015년 1월 9일 상호 동결 제안은 이 점에서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상호 제거라는 거래적 접근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 전략이나 외교 수사가 아니라 군축론의 기본 프로세스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뜻이고 우리가 북한 정권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순간 동 제안은 사실은 안보 협상의 기본적 수순이자 근본 요인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위기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은 북핵 문제와 미사일 대치 국면을 진정시키는 길은 한미군사연습에 손을 대는 것이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의 고리는 한미군사연습의 중단 혹은 축소를 한 축으로 하고 북한의 핵과 로켓을 동결하는 것을 다른 축으로 하는 쌍중단안을 입구에서 수용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쌍중단/쌍궤병행론의 두가지 쟁점
물론 이같은 원칙에 동의해서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여전히 쟁점은 있다.
관련 쟁점은 첫째, 비핵화 수준을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실행할 것인가 즉 미국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 핵심 쟁점은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이다.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가능한 해체라는 수준의 비핵화 요구가 2015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됨으로써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미 10 여년전 ‘CVID는 패전국에게나 강요할 수준의 요구’라고 강력히 반발해 온 북한에게 2015년 이를 재요구한 것은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함을 선언한 것에 다름없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지금처럼 핵-경제 병진 노선의 고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우리로서는 난감하다. 출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한 핵 비확산 체제에 근본 도전하는 안을 우리가 수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안은 북한이 레토릭 차원의 비핵화 팻말이라도 들고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과 CVID 간의 헛된 대립을 끝내는 대신에, 과거 그래왔듯이 ‘비핵화는 수령님의 유훈’(2006)이라던가 ‘비핵화를 위한 핵실험론’(2009)과 같은 기상천외한 글귀라도 들고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입출구론의 특징은 출구에 대한 비전이 입구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으므로 출구에서의 과잉 대치가 입구 자체를 봉쇄해버리지 않는 묘안을 만드는 것이 협상 담당자의 능력이다.
둘째는 평화협정의 시점과 수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우선 종전선언을 하고 협상 말기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평화프로세스가 준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협상의 초기에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상이다. 2007년 당시와는 달리 자신들의 핵 능력이 더욱 강화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위협이 더욱 증폭된 현 상황은 단순히 종전 선언 정도로 핵 협상의 입구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협상 시작을 위해서는 형식적 평화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 수준이 아니라 실체적 내용을 담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북한이 고수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실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협상안인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같은 높은 수준의 협상안을 빌미로 제기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의 확인이 필요한 난제이다.
이 두가지 쟁점은 사실 근본적인 문제이고 이를 입구에서 해결하고 넘어가기에 넘어야할 산은 너무나 많고 또한 높다. 결국 이같은 쟁점의 조정은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외교라는 것은 실패를 성공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 많은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은 미사일 불꽃놀이를 해대고 동해안에서는 항공모함이 올림픽을 지켜야 하는 불상사는 없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4. 국가 조정 메커니즘의 회복과 협약적 대북 정책의 두 차원
필자는 새로운 국가 조정 메커니즘의 핵심이 될 협약적 대안을 외교안보 및 대북 정책에 가져오기 위한 두가지 방안을 제시해왔다. 하나는 대중보다 갈등의 진폭이 더 큰 한국 사회 엘리트 간 인식의 합의를 위한 조정 기구의 마련이다. 통준위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기 위해 금통위에 버금하는 외교안보위를 만들어 좌우 이념을 넘는 적절한 정책 마련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호의 미래를 위해 좌우 엘리트간 공론의 장을 마련하여 국가가 처한 외교안보환경에 대한 분석과 남북관계 및 외교적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사회 간의 협약적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좌우 대립 해소보다는 국가의 과잉 권력을 사회에 이양하고 사회 내에 파편화된 이익 대표체를 집약 집적시키는 채널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도 각 영역별(인도적 지원, 경협, 관광, 학술 교류 등) 이익 대표체를 구축하고 이들과 국가가 협력의 기준을 마련해가는 것이다. 앞의 제안과 달리 사회협약론은 사회 세력간 이념 타협이나 ‘정세 인식’의 합의를 의도하기보다는 70년 동안 국가가 독점해 온 대북 행동의 주요 내용을 사회 및 이익 대표체와 공유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국가 조정 메커니즘의 회복과 재구성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특히 이를 비밀주의가 중심이 되어 온 외교안보 및 대북 정책 영역에 적용하자는 것은 철없는 주장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될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외교안보통일 정책이 더 이상 광장정치의 제도화를 외면하는 것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합의적 협약적 국가 조정 메커니즘을 통한 한국 모델의 재구성 과정에 외교안보 및 대북 정책 영역이라고 성역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광장 정치의 폭주보다는 그것의 제도화에 기여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는 대안 구성에 기여하는 과정으로 평가될 것이다.
대북정책의 원칙
□ 대북 정책은 아래의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병행 추진’해야 하나, 각 목표(pole)의 내포가 구조적 변화기에 돌입하여 혼선을 초래 중
대북 정책 3대 지향과 교류협력
Interest
->상대 vs 절대 수익
Domestic Value
->민주화 vs 시장화
Global Norm
->비핵화 vs 평화
교류 협력
- 국제 규범(Global Norm): 확고한 글로범 규범이었던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규범과 교차 중
- 북한 정권 변환의 수준(Domestic Value):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했던 북한의 국내 정권의 변환의 목표에 대한 가치 논의가 가시화
- 이익(Interest): ‘(국가)이익’이라는 고유한 영역의 이슈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으로 항존
□ 대북 정책은 위 3가지 pole을‘병행 추진’하는 과정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국면에 돌입하였음
- <비핵화/민주화/상대수익> 패키지가 <평화/시장화/절대수익> 패키지와 구분되는 경향이 있으나 다른 조합도 현실적으로 가능함
- 물론 3대 pole 사이에서 속도 조절론적 접근은 가능하지만, 어떤 개별 pole 이슈에서도 역진론은 배제해야 함
합의조정형 통일 정책을 위한 제언 1: 사회협약식 대북 정책
□ 앞서 지적하였듯이 지구적 차원에서 대의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이상의 중요한 행위자가 없음
- 그러나 국가를 통제하면서 관리할 주체가 관료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 파퓰리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
- 특히 통일과 같은 대규모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 질 경우 이를 주동적으로 이끌어 나갈 능력 있는 집단이나 사회적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위기 상황임
□ 국민대통합위원회의 2014년 정치사회엘리트 이념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정치·사회 갈등의 진원지가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아니라 여론 주도 및 형성층임을 시사
- 언론은 일반 국민들과 비슷한 이념지형을 갖고 있으나, 학계와 국회의원실의 경우 일반 국민의 이념 분포와 달리 중도보다 진보 혹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집단이 더 많은, 양봉형 이념 지형을 갖고 있음
- 일반 국민은 대체로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지 않으나 여론 주도층은 상대적으로 이념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 한국사회 갈등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국민들은 갈등 완화의 주요 행위자로 중립적 갈등조정기구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보다는 여전히 중앙정부와 국회 및 지방의회를 꼽고 있으나 보완적인 대안을 찾아볼 때가 되었음
- 이익집단의 투입방식을 바탕으로 한 기능대표체계(corporatism 또는 pluralism)와 비제도적 정치참여는 정치대표체계(majoritarian 또는 consensus)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제로 중요
- 대의제의 한계가 명백하고 대의제를 담당하는 정당이 국민보다 이념적으로 더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남북관계에서 사회적 협약 기구를 주목하게 됨
◆ 일반적으로 사회협약기구가 민주적 대표성, 책임성 문제가 있지만 남북관계에서는 실험의 가치가 있음
◆ 탈정치화된 중립적인 제도를 만드는 방법으로 현 대의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음
□ 1998년 노사정 사회협약의 체결은 전형적으로 3자 협의형태를 보여주었지만, 이후 노사정 사회협약 기구는 경제계와 노조의 대표성 문제로 정책협의의 효과성에 한계를 노출하며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사회협약의 의미는 퇴색되었음
- 노사정 사회협약
- 투명사회협약 (현 투명사회실천네트워크)
- 저출산고령화대책 사회협약
□ 일반적으로 사회협약은 경제적 압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나 남북 협력에서 사회협약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적 전제, 프로세스, 아젠다 그리고 협력 주체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
➀ 가능성과 현실성 프레임 탈피
➁ 갑을 관계론의 폐기
➂ 프로세스적 사고와 구성적 관점
➃ 국가의 변환
□ 남북 관계에서 사회 협약 프로세스는 국가-사회 관계 재정립 차원에 주목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세가지 차원에서 바라 보아야 함
- 그 하나는 시민 사회 스스로가 자기 역할을 정립하고 자체의 능력과 비젼을 가지고 대북 협력에서 나아가 다자간 협력에서 주도성을 확보하는 것임
◆ 외교안보 영역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의 확보와도 관련됨
- 다른 하나는 국가가 스스로 자기를 제약하는 주권 제약의 경로를 따르는 것으로서 특히 인도주의 분야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고 대북 NGO 들에게 역할을 주는 합의를 체결하는 것임
- 또한 대북 정책이 abc(anything but clinton)와 같은 정파적 원칙 하에서 사유화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사회 주도성이 확보되어야 함
□ 한국 사회는 국가 우위의 레짐으로서 정당이 사회보다 더 양극화되어 있으므로 이 점에서 사회 협약 체제는 사회우위 체제로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의 하나인 것임.
- 국가 주권성 약화와 시민적 안보 통제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 사회의 역할을 높이는 대안을 제기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임
- 물론 시민사회라는 것은 이중적인 것이 특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할고 그것이 사회 주도적 남북협력을 반대할 이유가 되지는 못함.
◆ 국가보다는 훨씬 균열도가 낮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임
□ 남남갈등을 이유로 사회협약의 난점을 제기하도 하지만 남남갈등이라는 것은 사회의 균열이 아니고 정당에 의해 증폭된 그래서 정당 스스로가 발목 잡힌 균열이라고 할 수 있음.
- 결국 그것은 사회가 나서지 않고는 치유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고 사회균열이 정당균열을 치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임.
- 한국사회에서 지역균열이 고착되고 우선적인 것이지만 남북문제에서 남남갈등은 정당에 의해 증폭되어 온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한 것이고 사실은 파퓰리즘적 선동에 의해 고착되어 온 균열인 것임
◆ 남남갈등 때문에라도 사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인 것임
- 국가는 사회의 미성숙에 대해서 역할하는 것이지 국가가 사회의 역할을 전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함.
◆ 이 점에서 국가와 사회 간 대결과 긴장은 피할 수 없기도 함
-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관료적 이해를 간파해야 한다는 점임
□ 협약형 통일전략은 사회 주도형 협약에 기반해, 1단계 남남합의안을 도출하여 교류협력을 진행하고 2단계는 남북 합의안을 도출해 교류협력을 진행하는 전략임
□ 합의형 방안은 2017년 간에 남-남 간 1차 사회협약안을 작성하는 것이고 그 성과가 일정정도 축적되고 평화정착 과정의 성과가 이룩된 후, 남-북 간 2차 협약안을 작성하는 기본 프레임을 상정함
- 2017년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후보들이 합의하고 사회 세력들이 동의하는 대북 교류 안을 작성하는 것이 1차적 목표임
- 동 교류 안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이 안정화될 경우, 남-북 간 2차 협약을 시도하는 방식임
바스켓 1
□ 긴급 구호 등 인도적 지원, 생필품 등 민생 지원 그리고 에너지 지원 등의 대북 지원 내용과 사회문화교류, 역사 등 학술 교류를 진행
바스켓 2
□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5.24 해제를 통한 일반 위탁가공 재개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권고
□ 북한 당국에 대해서는 핵 및 로켓 동결 및 폐기 그리고 인권 수준 개선을 권고
바스켓 3
□ 5.24 제재 해제와 상호비방중지. 개성 공단 재개와 3통 협상, 금강산 재개와 이산가족협상 정례화 등 상호주의 협상안에 우선 합의
□ 나선 인프라 투자와 다국 간 협력, 지하자원 개발, 경협제도 정비,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등 개발협력 등의 문제를 본격 합의
□ 1차 협약안은 두 개의 바스켓으로 구성하는 것을 추진
- 바스켓 1은 남북 교류 협력의 컨텐츠와 방식을 다루는 영역임
◆ 여기에서는 긴급 구호 등 인도적 지원, 생필품 등 민생 지원 그리고 에너지 지원 등의 대북 지원 내용과 사회문화교류, 역사 등 학술 교류의 기본 안을 담는 내용으로 합의안 작성
- 바스켓 2는 남북 당국에 대한 권고안에 합의하는 형태로 작성
◆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5.24 해제를 통한 일반 위탁가공 재개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권고안을 담음
◆ 북한 당국에 대해서는 핵 및 로켓 동결 및 폐기 그리고 인권 수준 개선을 권고하는 안을 담음
□ 이후 남북간 평화 정착 과정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북한의 테러-군사도발이 중단될 경우 2차 사회협약안(바스켓 3)을 추진
- 2차 사회협약안은 5.24 제재 해제와 상호비방중지. 개성 공단 재개와 3통 협상, 금강산 재개와 이산가족협상 정례화 등 상호주의 협상안에 우선 합의
- 동시에 나선 인프라 투자와 다국 간 협력, 지하자원 개발, 경협제도 정비,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등의 문제를 합의안에 반영
□ 2차 사회협약안은 ‘제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구성 합의하는 형태롤 띠지만, 사실상 남북 당국 간 우선 협상안의 합의 내용을 연석회의가 추인, 지지하는 형식으로 진행
- 3차 바스켓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진행을 위한 다양한 논의틀을 활용
- 공개 및 비공개 특사, 공식 장관급회담, 총리회담, 정상회담 등 기존에 있어왔던 여러 형태의 회담 틀을 활용
□ 합의형 모델은 바스켓 1, 2 작성 이후 일방주의적 대북교류의 진행을 통해 신뢰가 spill over 됨으로써 정치, 핵 협상을 견인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
- 일방주의적 대북 교류 안을 담은 사회협약안을 진행함으로써 북한의 테러와 도발을 중단시키고 한반도 평화 위기를 안정화시키는 것을 프로세스를 전제
- 동 과정에서 북한 경제가 시장화, 국제화됨으로 해서 다자체제에 편입되는 정도가 증대
◆ 위탁가공교역의 우선적 재활성화와 민간 남북경협의 본격화 과정에서 남북경제가 모두 활성화됨으로써 남북 공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
- 바스켓 3의 작성 과정에서 상황 전개에 따라 남남 갈등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바스켓 1,2를 철저히 집행하고 이를 확산 추가하는 방식으로 바스켓 3의 합의를 작성하여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
□ 동 과정에서 한국은 북방경제론이라는 거시적 목적을 통일 과정과 결합하여 명실공이 지역협력과 통일문제를 결합시키는 평화적 합의형 통일 방식을 정착시켜 나가게 됨
합의조정형 통일 정책을 위한 제언 2: 외교안보위원제의 신설
□ 금통위원에 버금가는 석학으로 구성된 외보안보위원제를 법적 조직으로 신설
- 월 2회 정기 회의를 진행하되 분기별 보고서를 제출
□ 동 기구에 대한 국내외 국가 기구들의 지원 수준을 최대치로 조율하는 것이 필요
- 이는 사실상 외교부가 갖고 있는 대외 정책 결정 과정의 상당 부분을 동 조직으로 이관시킨다는 뜻임
◆ 외교부와 국정원 해외 파트의 지원을 최고 수준으로 의무화할 필요가 있음
-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공론화를 통해 민주적 시민적 통제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정권 담당자의 의지로 해석됨
◆ 단순히 노무현 정부 시기 NSC와 같은 실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외교 안보 통일 정책의 전문화, 공론화, 시민적 통제라는 3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시도임
➀ 조직 및 위원장
□ 동 조직은 9명의 위원으로 구성
- 외교안보수석 외에 대통령이 지명하는 3인, 국회에서 추천하는 5인(여야 2:3 배분 원칙)으로 구성
◆ 국회 추천 5인의 경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 만장일치 합의에 따름
◆ 그러나 의회 산하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함
- 위원장은 위원 중 호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호선에 실패할 경우 외교안보수석이 당연직 위원장이 됨
□ 사무처를 설치하고 산하 조직으로 국책 연구 기관을 배치
- 통일연구원, 국립외교원, 국방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산하 조직으로 둠
◆ 총리실 경제인문사회이사회 산하에서 이관
- 사무처의 경우 기존 통일준비위원회 조직을 흡수하여 운영함
➁ 역할
□ 동 조직은 독립된 조직으로 1년에 4회 의사록 작성을 업무로 함
- 동 의사록은 공개를 원칙으로 함
◆ 특정 사항의 경우 의회 정보위의 결의를 거쳐 비공개로 전환
- 동 위원들의 경우 해외 출입국, 회의 및 세미나 개최, 국내외 인터부 등에서 국내 기관이나 해외 대사관 등 다양한 국가 기관으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도록 함
◆ 동 비용은 전적으로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므로 기준 통준위 예산과 국회 정보위 예산 등을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