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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 (Session 1 / 발표 ) 최종건 | 연세대학교 교수

    본문

     


    1. 서론: 지금도 어렵지만 그 때도 어려운 대북정책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를 자임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기,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시기, 참여정부의 정치적 연속성을 계승하고자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공통적으로 실행한 남북화해와 협력을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민주진영의 중요한 관심 사항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지난 10년간 저지되지 못 했다. 보수정부 기간,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압박하고 제재하기 위한 관계망등(예: “국제공조”, “한미동맹차원”, “한미일 군사협력”)을 구축하였다. 협상과 대화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 했다. 반면에 대화와 협상을 위한 포용과 관여를 위한 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두 보수정부기간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는 고착화되었다. 군사적 긴장과 위기는 남북한 적대적 관계를 규정한다. 적대적 관계는 국민의 대외 위협인식을 강화시켰고, 남북한 양측의 위협인식은 오로지 양측에 대한 강경정책을 정당화하는 국내정치 구조를 양산했다. 정권은 관계의 적대성과 강화된 위협인식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제재와 압박 정책을 강화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국가의 존재 목적이 되었다. 제재와 압박, 그리고 방어와 억제는 군사적 긴장을 일상의 형태로 지속시킨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자신의 생존과 등치시켰다. 남한은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였다. 남북한 정권에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정책은 제재와 압박 그리고 군사적 긴장 조성이었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대화는 나약한 비굴함과 불순한 종북론으로 제한되었다. 북한 역시 오로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화하였다. 이것이 바로 남북한이 지난 10년 남짓 연출한 모습이며 문재인 정부는 매우 어려운 대북정책 환경에 놓여 있다.



    오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고 상대방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관계를 적대관계라고 한다. 이 적대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은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이 내려야할 매우 어려운 정치적 결단이다. 오랜 기간 형성된 적대 관계는 압박과 제재가 매우 익숙한 정책으로 국민과 정책전문가와 정책관료들의 인식에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에 정책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어렵다. 제재와 압박에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책 선회는 정치 공학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일상화된 적대적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책적 선회는 국내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화해 개념은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오래 유지된 봉쇄 정책의 개념이 관습적으로 견고한 지지를 받는데 비해, 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책적 결단은 그 개념과 정책적 수단에서 매우 낯설게 느껴지며, 낯선 정책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싶기 때문이다. 타성은 변화보다 강력하다. 오랜 갈등 관계에서 적국과의 화해 개념은 정치적 불모지에 뿌리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 민주정부의 중요한 정체성인 화해와 협력 그리고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자임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북포용적책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종북론과 동맹강화론의 상호연관성은 높아졌다.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반드시 사전 협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또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단절된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로 인해 북한의 의도와 비핵화 비전에 대한 실질적 정보 또한 사실상 부재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으로 돌아가 보면, 그때는 지금 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환경 속에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였다는 점이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도 어렵지만 그 때는 더 어려웠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일명 햇볕정책)은 우리 사회의 보수 진영으로부터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한국의 대북정책에는 화해와 협력이라는 개념이 부재했다. 제재와 압박 이외에 또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인식 자체가 매우 낯설었다. 이는 국내정체 뿐만 아니라, 한미간에도 매우 새로운 정책 개념이었고, 한미간의 대북정책 조율차원에서 많은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다. 국내 보수세력은 이를 한미공조의 약화와 함께 동맹체제 균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북한 또한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낯설어 하였고, 남북간의 깊은 불신의 골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없었다. 따라서 대북 포용정책 환경은 남한사회의 인지적 부조화와 정치적 공감 부재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매우 척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는 “대북 퍼주기”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남북분단사에 한 획을 기록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6.15 공동선언을 이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대화와 협력이라는 민주정부의 정체성을 얼마나 대북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가이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2017년의 정책 환경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 때는 더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의 혜안과 철학이 다시금 조명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전개와 전파 : 핵심가치와 정책수행체계


    대북포용정책의 가장 큰 공헌은 화해와 협력이 가능한 대북 정책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제재와 압박 이외에 다른 정책 선택을 통해 남북한의 관계개선 및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정책수단의 폭을 확대 시킨 것이 바로 대북포용정책이다. 이는 곳, 제재와 압박 정책에 익숙했던 국민과 전문가들을 설득해야 하는 국내정치적 과제를 스스로 발굴한 것과 같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려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즉,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이 평화촉진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 부과한 것이다. 타성적으로 지속된 적대적 관계를 전환시키고자 했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한 것이 김대중 정부였다.

    김대중 정부가 지향했던 대북포용정책의 목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었다면 이를 위한 수단은 대화와 협상이었다. 이러한 혁신적인 정책 선회는 국내정치적 환경에서 많은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최고책임자의 확고한 신념과 함께 이를 논리화하고 정책화하는 최측근 그룹이 필요하다. 이를 혁신적 정책그룹이라고 한다. 이 혁신그룹은 대북정책에 화해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과하고 국민과 기존의 정치권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에 대해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는 정책은 기존의 사고체계와 보수세력과의 정치적 경쟁을 통해 정책적 지지기반을 조성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내야 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핵심가치는 화해였다. 화해란 현재는 물론 과거의 앙금을 양측이 해소하고 미래에 보다 협력적인 관계를 도출하기 위한 인식적, 정치적 합의이다. 화해정책은 이를 유도하기 위한 국가의 안보정책이기도 하다. 대북포용정책은 화해정책이기도 하다. 평화공존이라는 새롭지만 매우 낯설은 국가안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여러 관여 (Engagement)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따라서 안보정책으로 화해는 매우 어려운 정책이다. 국가의 안보정책을 억지를 바탕으로 한 강성정책에서 평화적 공족을 위한 포용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정책적 과제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정책적 과제로서 화해를 안보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정부는 국가 이익, 위협 인식 및 북한을 다루는 정책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영역을 재구성해야 한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한반도에서 불필요한 전쟁을 용납하기 않겠다는 평화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과 협력을 진행할 수있다는 정책적 당위성을 도출한다. 정부와 관료 그리고 지식인 집단에서 화해가 제재와 압박 보다 더욱 안정적인 국가 이익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개발한다. 이는 곧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과 같이 전통적인 대북전략이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국내용 설득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와 같이 대북정책을 억제에서 화해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남북화해를 국가의 핵심 안보이익으로 설정한다. 이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협력과 협의가 가능한 상대로 인식하고자 했던 통찰의 산물이기도 하다. 즉, 북한을 위협에서 기회로 인식하려 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자연스레 북한에대한 위협 인식을 재설정한다. 강력한 동맹과 국방정책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적극적 관여 정책을 실행 하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 대북정책의 핵심가치인 화해와 협력을 정책적 규범으로 구축하기 위해서 대북 포용정책의 설계자 및 기획자, 수행자들은 총력을 기울였다. 제도적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 (NSC)를 구축하였다. NSC를 통해 정부의 대북 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율하였으며, 국가정보원을 활용하여 평양과의 물밑대화와 협상을 시도하고 통일부로 하여금 대북사업을 주도하게 하였다. 외교부는 대북 포용과 화해의 당위성을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또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통하여 국내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총력적으로 대북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최측즉 임동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권기간 동안 임동원은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으로서 효율적으로 대북정책을 통합 운영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안보정책이 남북한의 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학자그룹의 역할 또한 두드러졌다. 특히 문정인과 이종석은 햇볕정책 전도사로서 국내와 국제적 여론을 햇볕정책에 우호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했따. 이후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포괄적 포용정책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세현은 14개월 동안 역임하였다. 그의 역할은 정부 이양 과정에서 햇볕정책의 제도적 지속성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역임하였던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2000년 북한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의 졸업생들은 남북 교류 전문가들로 훈련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포용정책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이종석은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의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사무차장을 역임하면서 그는 남북 간 협력 과정에서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역할을 강화하였고, 후에 그는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열린우리당의 대권 후보였던 정동영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 문정인은 동북아 시대 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며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과 외교 정책의 논리적 기반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연합 단체를 형성하여 함께 힘을 모아 일하는 것 뿐 아니라 정부 내 중간 기술 관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나갔다. 이러한 연합 체제가 대북 포용정책의 가치를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캠페인을 확산시키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즉, 대북포용정책의 연합체계는 북한 정권을 비인도적이고, 무책임하며, 불량적이고, 공격적이라고 이미지에서 북한이 협력 가능한 한반도의 실체적 동반자로 인식 할 수 있는 지평을 열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3. 햇볕 정책의 기억


    지난 9년간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만을 고수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북한의 불량 행동이 거듭될수록 구체성이 결여된 원칙은 교조적으로 변이되었다. 교조적인 북핵 불용은 설득과 예방이라는 외교의 기본 원칙을 불용하였다. 더욱이 북한 급변 사태와 붕괴론에 근거한 한반도 통일 대박론은 북핵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보다는 통일이라는 초현실적 환상을 우리에게 덧씌웠다. 우리는 북한의 핵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였다. 북한의 신념 체계는 핵무기 소형화와 경량화 추구이다. 지난 5차례의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의 핵무장 안보 신념이 핵능력으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만큼 핵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대북 핵 대응은 퇴행적이었다. 우리는 미·일과 한편에 서고, 중국에 “북한을 좀 혼내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 높은 대외 의존을 우리는 국제 공조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수많은 방송채널에서 온종일 빈약한 대북정보를 가공한 해설과 소설이 난무하여 극도의 안보 불안감을 부추겼다. 북한의 현실화되는 핵능력과 상대적으로 커져만 가는 우리의 대북 무력감은 ‘북한아 망해라’라는 주술만 외우게 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해법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속에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 국가이다. 북한 체제는 존속될 것이다. 북한은 새로운 전략과 행동을 끊임없이 보여줄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직후 미국에 위협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핵무장은 포기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당장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북한의 핵무장 신념 체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미·일 협력체계가 강화될수록 중국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진다. 중국은 북한을 함부로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는 오랜 시간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북핵을 관리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대북 포용과 교류, 6자회담 재개, 그리고 강압과 억제라는 모든 정책 스펙트럼이 동등히 평가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외교적으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즉, 우리가 한반도 환경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하는 한반도 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향후 동북아 정치가 다시 강대국 정치로 치닫게 될 경우,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강대국 국제정치가 던져주는 운명을 일방적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해 나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김대중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게 던지는 엄중한 질문이다.

    대한민국 국익의 중요한 축이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있다고 동의한다면,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의 자생적 평화 노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지난 9년 남북관계의 파국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빚어낸 강대국 국제정치가 얼마나 대한민국의 국익 실현에 공헌했는지 냉철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9년간 우리는 햇볕의 추억을 더욱 소중하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4. 지속가능한 대북포용정책을 위한 제언


    북한은 무력을 가진 군사적 실체이자 대화의 대상이기도 한 정치적 실체이다. 지난 9년동안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내용면에서 풍부해졌다. 반면, 대북포용정책의 내용은 선언적인 수준에서 대화와 협력이라는 필요성만 강조하게 되었다. 권력을 잡지 못한 지난 9년간의 세월동안 대북포용은 종북론으로 매도 당한면도 있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 그룹이 갖고 있는 내성적 문제 또한 직면해야 할 것이다. 먼저, 대북 포용의 기억은 선명하나, 이를 2017년이라는 정책적 환경에 맞추어 변화시켜야 한다. 즉, 과거의 대북 대화 경험과 이 경험으로 비롯된 추상적 관념을 한층 현실적정책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지난 9년간 신념체계로서 대북포용정책을 확장 시키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학계는 대북 포용정책을 심화 발전시키지 못했다. 포용과 협상의 당위성을 강조했을 뿐, 이를 악화된 환경속에 혁신하고자 하는 세력과 논리는 부족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기의 활동가와 정책결정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할 새로운 인물들을 양성하지 못했다. 이들 역시 종북론의 덫에 같혀 새로운 구상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에 보수정부 기간 보수정책을 연구 심화하는 많은 정책 연구소가 등장한 반면 북포용정책을 계승하고 연구하는 정책 연구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곧 대북 포용정책이 소수의 신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북정책에 포용적 요소를 구축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겠는가이다. 김대중 정부가 과감하게 발굴했던 인물들, 과감하게 추진했던 정책들, 그리고 진중히 유지했던 대북 정책 기조는 여당과 시민사회단체, 청와대, 그리고 학계와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직, 한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이지만, 대북포용정책의 정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감하고 진중한 통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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