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 (Session 3)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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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통일 대박론'에 대한 비판 :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시각에서
1. 통일은 대박일까?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비용보다 통일편익이 훨씬 커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은 유한하나, 편익은 무한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통일이 우리의 미래라는 점에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비용과 편익의 관계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또한 통일은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과정을 관리하지 못하면, 예멘처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수단처럼 분리 독립할 수도 있다. 비용과 편익의 관계만 하더라도, 편익이 비용을 앞지르는 전환의 순간을 슬기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통일의 시기와 형식, 그리고 조건과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일 대박론을 경제적으로 제시한 신창민 교수는 통일 후 10년 동안 통일비용은 GDP의 7% 내외가 들어가지만, 남측만 매년 11%의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추정한다. 통일 후 10년 동안 남측 국민의 소득 수준은 7만 7천 달러, 그리고 북측은 3만 8천만 달러로 추정한다. 편익이 비용을 압도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통일비용 논의는 연구자들마다 편차가 크다. 작게는 500억 달러에서 5조 달러까지 10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남북한의 소득격차를 계산하는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또는 소득 격차의 해소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통일에 대해 그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통일비용과 관련, 과장된 주장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비용은 반드시 재정으로 충당할 필요는 없다. 국내 민간기업과 외국 투자 유치로 정부의 재정지출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비용을 재정지출로 하고, 그것을 국민 1인당 부담액으로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비용 중에는 반드시 소비성 지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성 지출은 단기적으로 비용으로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편익이 될 수 있다.
통일편익을 계량화하는 것은 더 어렵다. 통일편익에는 경제적으로 계량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적 편익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편익은 결코 적지 않다. 다만 계량화하기 어려울 뿐이다. 물론 경제적인 편익과 관련해서, 검토해야 할 쟁점들이 적지 않다. 성장 잠재력의 확충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성장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의 경제적 편익에 대한 논의 중에는 과장된 주장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북한 지하자원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광물자원에서 얻는 수익으로 통일비용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북한의 광물자원이 풍부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매장량과 경제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무연탄이나 철광석의 경우 품위(총중량 대비 유효 금속 중량의 비율)가 낮아서 경제성이 떨어지고, 구리, 마그네사이트, 아연 등에 대해서도 채취비용 대비 경제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통일이 우리의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통일비용을 줄이고, 통일편익을 극대화 해야 한다. 그래서 통일과정이 중요하다. 통일 편익이 비용을 역전하는 지점, 즉 전환의 계곡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존과 공영의 과정을 통해 상호 호혜적인 구조를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것이다. 통일 이전에 남북한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이 통일 이후의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일 이전에 제도적 이질성을 완화시키는 것이 통일 이후의 갈등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최근의 ‘통일 대박론’의 가장 중요한 약점은 통일과정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통일’을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주장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일부에서 주장해 왔던 흡수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글에서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시각에서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하는 논의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주로 지적하고자 한다.
2. 현재의 남북관계와 미래 통일론의 부정적 상관관계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래가 낙관적일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있는데, 현안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통일 담론을 강조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현재의 남북관계와 미래의 통일론은 부정적 상관관계다. 통일을 강조할수록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이유가 있다. 왜 그럴까?
대북정책이 실패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정부가 통일론을 제기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김영삼 정부다. 1995년 8.15 경축사에서 김영삼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남과 북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흡수하는 통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규정함으로써 흡수통일을 배제했지만, 내용적으로 이 방안은 ”사실상 북한의 항복 내지는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통일철학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했고, 통일국가의 미래상도 ”민족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복지와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선진민주국가“라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이와 같은 통일방안을 발표한 시점은 바로 대북정책의 실패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이다. ‘북한 붕괴론’과 그 결과로서의 ‘흡수통일론’은 ‘김일성 사망’이라는 계기에서 비롯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조문파동’ 이후의 악화된 남북관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대북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불안에서 찾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했다.
흡수통일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악화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서로 협상을 해야 할 현안이 있다면, ’일방적인 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을까?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흡수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협상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 악화로 현안에 대한 해결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결국 통일담론만 남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강조되었던 남북관계 관련 담론들의 공통점이 있다. 남북관계 현실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대북정책은 강경정책을 답습하면서, 담론만 미래지향적이다. 통일 대박론을 포함해서 DMZ에 세계 평화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 혹은 대륙철도 연결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구상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의 목표까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책은 반드시 이행지도(Roadmap)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정책이 구체적이기 되기 위해서는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초기 이행조치를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쟁점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이나 정책 방향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것이 ‘5.24 조치’다. 이 조치는 2010년 천안함 사건이후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든 남북경제협력을 중단한 조치다. 이 조치는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 담론과 충돌한다. 예를 들어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나진 선봉 지역의 물류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문제를 검토해 보자. 5.24 조치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진항을 비롯한 모든 남북한의 항구와 항구 사이의 해운 물류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 특히 POSCO가 이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나진항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의 광물자원을 국내 항구로 수입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과 5.24 조치는 충돌한다.
통일 대박론의 현실화도 마찬가지다. 통일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 경제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DMZ에 평화공원을 만드는 과정도 많은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 DMZ는 역설적으로 가장 군사화된 지역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 양측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각각 2km씩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했다. 그러나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초소가 전진하고 무기가 반입되어 무장지역으로 변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름뿐인 DMZ를 사실상의 DMZ로 전환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신뢰구축 조치로 여긴다. DMZ에 평화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담론만 제시되고 후속조치는 실종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담론과 정책이 불일치하고, 어떤 경우는 충돌한다면, 그것은 국내외적인 신뢰를 얻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있는데, 미래의 통일담론이 어떻게 낙관적일 수 있는가?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대박론은 실제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현실과 미래가 모순이고, 충돌하며, 지속적인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3.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의 부정적 영향
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정책 없이 ‘결과로서의 통일’ 만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북한 붕괴론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대화나 협상은 불필요하다. 붕괴를 촉진시키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붕괴이후의 상황, 흡수통일을 대비하는 것이 대북 정책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북한 붕괴론은 김영삼 정부부터 제기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전환, 김일성 사망, 독일 통일 직후라는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북한 붕괴론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협상을 하고 있을 때, 김영삼 정부는 ‘희망적 사고’에 빠져있었다. 현안을 부정한 후유증은 컸다. 제네바 협상에는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돈만 냈고, 남북관계는 공백의 5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바로 한국 전쟁 이후 세 번째 전쟁위기, 즉 1994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붕괴론에서 출발한 통일론이 다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한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북중경제관계가 남북경제협력을 대체하면서, 북한경제의 총량적 지표는 악화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붕괴론에 대한 대비는 ‘통일항아리’ 논의로 나타났다. 정부는 남북협력 기금법을 개정하여, 협력기금 불용액을 이른바 '통일 항아리'라고 하는 특별 계정에 적립하고, 여기에 민간·정부의 출연금, 기타 전입금 등을 끌어 모아 향후 20년 동안 55조 원 가량의 통일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대북강경정책으로 남북협력기금을 집행하지 못하면서, 통일 이전에 사용할 수 없는 기금을 쌓아두자는 발상은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붕괴론에 입각한 통일대비론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김정은 정권의 등장과 장성택 처형을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 근거로 강조한다. 급변사태 대비라는 용어들이 공개적으로 사용되고, 남북한이 비방중상 금지를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전을 지속했다.
‘북한 붕괴론’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현안에 대한 능동적 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대화, 혹은 남북경제협력의 현안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대신,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리는 ‘소극적 방관정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과정으로서의 통일’정책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정치적 대화의 실종, 군사적 긴장의 격화, 경제협력에 대한 제재, 민간교류의 금지로 나타났다.
나아가 ‘북한붕괴론’은 대북정책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북한의 도발로 돌리고, 도발의 원인을 ‘남북관계의 성격변화’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 체제의 혼란이나 체제 불안에서 찾는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 개념이 결여된 ‘결과로서의 통일’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첫째는 통일비용의 증가를 가져와서 통일편익을 감소시킨다. 2010년 8월 발표된 대통령 직속의 미래기획위원회의 통일비용 추산에 따르면, “북한의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거쳐 통일에 이르는 경우가 급격히 붕괴할 때 보다, 남한 정부가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 7배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통일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급진적 흡수통일을 추진하면서, 통일대박을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둘째, 공존을 부정하는 통일담론의 공격적 효과는 오히려 통일을 멀어지게 한다. 북한체제의 대외적 위협인식을 강화시킴으로써 북한 기득권층의 체제유지에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며, 남북관계의 대립을 격화시켜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통일은 멀어진다.
셋째, 잘못된 가정으로 협상의 기회를 놓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북핵문제 해결의 적정시점을 놓쳤고, 고령 이산가족의 존재를 고려할 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시기도 놓쳤다. 나아가 남북경제협력의 부재 상황에서 북중 경제협력의 강화는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결과로서의 통일’ 모두를 통일정책으로 추진했다. 대체로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는 ‘결과로서의 통일’ 개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이명박 정부,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공통점은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남북 관계 악화 시기의 정책 담론’이라는 것이다.
독일 통일을 얘기할 때, “통일을 말하지 않아서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표현을 쓴다. 서독의 대동독 정책을 작은 발걸음 정책(Der Kleine Schritt)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현재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천해 간다는 원칙” 이다. 신동방정책에서 ‘재통일’은 공식적인 독일정책에서 더 이상 당면 목표가 아니라, 부차적인 장기과제로 설정되었다. 사민-자민당 연립정부는 경제적 요소를 신동방정책의 중요 요소로 설정했으며, 유럽의 평화체제 구축을 추구하면서 통일이라는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보다 긴장완화 및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당면 과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분단의 인정을 통한 공존의 출발은 1972년 11월 8일 동서독 기본조약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동서독 기본조약은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유엔 동시 가입과 상주대표부 설치, 동서독 간 교류 확대를 핵심 내용으로 했다.
4.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사실상의 통일’개념과 6.15 공동선언 2항
통일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가 제시했던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동원은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유도하고 평화공존을 통해 ‘법적 통일’에 앞서 남과 북이 서로 오가고 돕고 나누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과정으로서의 통일’개념은 공존을 인정하고, 공존의 변화효과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북관계에서 공존이 제도적 형태로 현실화된 것은 1991년 9월 남북한 UN 동시가입이었다. 1991년에 체결되고 1992년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공존과 통일의 관계를 개념화했다.
‘사실상의 통일’개념이 남북관계에서 합의의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6.15 공동선언의 2항을 통해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공동선언 2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북한의 대남 전략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합의가 남북한 통일논의의 새로운 계기적 성격이라는 점이 주목되었다.
이 합의는 남북한이 단계적으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쌍방의 통일방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러한 방향에서 당국 간 협의를 통해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과거 냉전 시기의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자기 지배에서 벗어나 ‘협상을 통한 협력’을 통해 공존을 추구한 것이다. 남북한 간 체제의 역량 격차를 북한이 인정한 것이며, 남북한이 통일 지향적 특수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듯 남북한의 통일방안은 6.15 공동선언 2항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공존 선언은 제도화로 이어졌다. 정상회담 이후 장관급 회담, 군사 회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각급 대화가 정례화 되었다. 경제협력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공존에 대한 남북한의 상호합의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통일’은 통일과정의 제도적 형식을 강조하지만, ‘사실상의 통일’은 통일과정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그동안 ‘사실상의 통일’은 ‘자연스러운 확산 효과’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공존정책의 변화 효과라는 역동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의 내용에는 경제협력이 평화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경제평화론’의 ‘기능주의적 맥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협력과 평화정착은 보완적 관계에 있다. 공존이 가져올 ‘관계의 성격변화’는 당연히 정치적 신뢰수준과 평화정착의 제도적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사실상의 통일’이 ‘법적․제도적 통일’의 최종 형태를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통일과정의 잠정적 중간과정을 모색할 필요는 있다. 그것이 바로 ‘남북연합’이다. 이미 남북한은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것은 통일과정의 점진적 단계적 접근을 의미한다. 동시에 ‘과도적 과정’ 혹은 ‘중간단계’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높은 단계의)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제도적 수준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연합과 연방은 다른 개념이다. 남측의 연합제는 ‘2국가 2체제 2정부’를 의미하지만, 북측의 낮은 단계라고 하더라도 연방제는 ‘1국가 2제도 2정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연합은 주권이 구성국 각자에 있지만, 연방은 연방국가가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합(Confederation)과 연방(Federation)에 대한 개념은 각자 다양한 수준으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연합제와 연방제의 관계를 ‘통일방안으로 하나의 연속적 통합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경험속에서도 확인된다. 국가연합제는 연방제를 채택하기 이전의 제도로 미국의 경우 1776년부터 새로운 연방정부가 수립된 1989년까지 13개주가 연합규약(The Article of Confederation)에 의해 국가연합 형태를 유지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을 완성하기 직전 국가조약으로 성사시킨 ‘통화․경제․사회연합’(Währungs- Witschfts- und Sozialunions)과 EU (구 EC)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잠정적 중간단계라고 하더라도 “통일모델에 집착하면 할수록 통합의 전 단계인 교류와 협력, 평화공존이 어렵다”는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남북한이 6.15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방안을 계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합의했으나, 가능하면 제도적 논의 때문에 실질적인 공존공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남북연합을 ‘제도적 구속력’이 있는 개념으로 상정하는 대신, ‘통일과정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는 1992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남북연합’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도체제로서 국제법적으로 부분적으로 국가연합의 성격’이며 그러나 ‘주권국가 간의 관계를 상정하는 국가연합과는 다른 특수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남북연합’을 ‘공존공영의 통일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정치적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5. 결론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통일 대박론’은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적지 않은 문제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통일 대박론은 크게 세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남북관계 현안을 방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북한 붕괴론에 입각해서 남북관계 현안을 무시하는 것은 통일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불투명한 시점의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을 계산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소모하는 것은 매우 비생산적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남북관계 현안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장 통일편익을 강조하면서, 5.24 조치를 지속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개념을 결여한 ‘결과로서의 통일’정책은 교류협력을 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통일을 멀어지게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통일논의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통일론의 전개과정이 매우 이념적으로 그리고 정파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보듯이 사민당과 기민당의 대동독 정책에서의 초당적 협력은 정책의 지속성과 국민적 합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하물며, 대만에서 대중국 정책을 변경할 때도 국민적 합의를 중시했다. 통일문제와 같은 장기적인 국가전략 형성에서 합의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국내정치적 목적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셋째, 통일논의에서 왜 평화라는 개념은 부재한가?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이며,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통일의 기본 철학이다. 평화를 말하지 않고,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만이 지속가능하다는 점을 다른 분단국의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예멘처럼, 통일은 되었으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지 않으면,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사례도 있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서 추진해야 할 우리 시대의 과제다. 매우 어렵고 복잡하며, 시간이 걸린다. 실체도 없는 통일론에 사로잡혀,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당면과제를 방기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