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 - 기조발제 - 도널드 존스톤 | 전 OECD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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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존경하는 한국 친구 여러분,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기회를 갖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올해로 6·25전쟁 휴전 협정이 맺어진 지 60년이 되었지만 항상 상기하듯 평화 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등 6자회담 참가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권력을 계승한 이래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 내부 사정 때문에 냉정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보이고 싶어하고 강력한 군부를 만족시키고 싶어한다는 등 김정은의 호전적인 행동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외국인의 관점에서 김정은이 종이 호랑이로 보이겠지만 그의 기이한 행동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핵 폭탄이 처음 사용되는국제 분쟁이 발발할 우려도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행동을 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젊은 김정은은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역사에서 이름을 남길 기회가 있습니다. 사망한 김정일 전 북한국방위원장과 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여 기반을 마련해 주기도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 국민들을 통합할 기회가 있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김정은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이자 김대중평화센터의 이사장이신 이희호 여사께서 제게 오늘 말씀을 드릴 기회를 주신 듯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17년간 한국을 정말 많이 방문했습니다. 사실 OECD에서 은퇴한 후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4년간 초빙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한국은 여러 면에서 특별합니다. 물론 자연경관은 아름답습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아름다운 산, 평야도 많고 경이로운 제주도에는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만으로 한국이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한국 국민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민은 자연적 이점을 훌륭하게 활용할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보기 드문 진전을 이루었고 전 세계가 부러워합니다.
저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기 바로 직전까지 OECD의 사무총장직을 수행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말 IMF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위기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과 메시지는 한국 국민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한국 경제성장률은 -6%에서 18개월 만에 +10% 이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저를 정기적으로 한국으로 초청했고 기자들을 만나서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달하라는 메시지는 절망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번창한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였습니다. IMF 위기가 끝난 후 한국의 GDP는 3배 이상 증가하여 1조5천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제 조국 캐나다와 달리 한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에 의존해서 비교우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저는 한강의 기적이 한국 국민들의 높은 교육 수준 덕택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IMF 위기 당시에도 한국 국민들은 높은 교육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해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메시지를 실천했습니다.
교육열은 한국 문화에 깊이 뿌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17세기 한반도에서 여러 해 동안 체류했던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도 표류기에서 한국 국민들의 교육열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인용해 보겠습니다.
“양반들과 재력가 집안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킨다. 개인교사를 고용하여 자식들에게 읽기, 쓰기 등 나라 전체가 원하는 기술을 가르친다.”
훌륭한 교육은 한국이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제가 알기로는 북한 주민들의 교육열도 높아서 15세 이상 주민 중 식자율이 99%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한반도가 발전하는 과정, 특히 통일을 향해 발전하는 과정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1999년 IMF 위기를 극복한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꿈꿔 왔던 남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조치를 즉각 취했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노벨상 상패에는 다음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은 남한과 동북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고 북한과 평화 및 화해를 진전시킨 김대중에게 수여한다.”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금강산 관광, DMZ 지역의 지뢰 제거, 개성공단, 육로 개방등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화해와 협력 정책을 꾸준히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강경노선을 택한 부시 행정부 때문에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도 자신의 저서 ‘피스메이커’에 이러한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기술했습니다. 임동원 장관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첫 국무부장관인 콜린 파월은 햇볕정책의 핵심인 화해와 협력을 수용했고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재난과 같았던 이라크 파병을 설계한 딕 체이니, 도널드 럼스펠드, 신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장관 등 네오콘 세력이 콜린 파월을 밀어내면서 대북 정책은 매우 강성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했습니다.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불렀습니다. 이에 따라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미국의 두 번째 목표는 테러 활동을 지원하는 정권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대량살상무기로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일부 국가는 9·11사태 이후 활동이 매우 줄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실상을 알고 있다. 북한은 주민들이 굶어 죽는데도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는 국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시 정권이 공격적, 적대적인 대북 정책을 취하고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면서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에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 같았습니다. 이후 6년간 긴장과 불신을 겪으면서 북미 관계는 아주 크게 악화된 듯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미국 국내 정치에 대해 알지 못하며 민감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따라서 북한 언론 때문에 확대되고 과장되었을 미국 대통령의 공격적인 선언들이 미국 일반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느끼는 태도로 인지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1) 부시 정권이 적대적인 대북 태도를 취하고 이라크에서는 적극적으로 ‘정권교체’를 추구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불신과 편집증이 증가해서 호전적인 선언과 핵 보복으로 위협해야 안보가 보장된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질문 2) 북한은 한국 지역에서 한미 양국이 참가하는 합동군사훈련과 박근혜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북한에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곡이라고 믿을까요?
당시 언론은 “핵 추진 항공모함의 한국 방문에 앞서 북한은 한미 양국 정상회담을 대북 전쟁의 서곡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저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경험 많고 헌신적인 한국 외교관들이 이 주제에 대해 훨씬 아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경험에 기초해서 말씀 드리는 것이고, ‘가정에 기초해서 행동하기 전에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을 따르지 않았을 때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오는지 목격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베트남전쟁을 이끌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미국 국방부장관은 1995년 비망록에서 베트남전쟁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했던 실수였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책에서 미군이 1963년 말에 철수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미국 사망자는 78명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사망자는 약 5만8천명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교훈을 얻지 못했고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전제로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아는 것의 중요성은 공공정책을 결정할 때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대공황 이후 경제가 최악이었을 때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제안한 정책보다 나은 예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유능한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 알랜 그린스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의회 청문회에서 파생상품 규제 조치에 반대한 이유에 대한 질문 받자 그린스펀 위원장은 “나는 민간 기업, 특히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주주와 주식을 보호하는데 최선이라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악화된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에도 이러한 교훈은 중요합니다. 북한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진할 당시, 북한 지도부의 동기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조성되어 있는 불신은 어떠한 충돌 없이 중단되어야 하고 협력과 화해로 빠르게 복귀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리셋 버튼(Reset Button)을 눌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분명 핵 문제는 해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임동원 전 장관의 견해를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핵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누구도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는 상호신뢰가 구축된 환경이다. 기본적으로 북한 핵 문제는 적대적인 북미 관계의 산물이다.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 위협을 제거하고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체제를 수립하며 북미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모든 관측은 논리적이고 화해 및 협력을 통한 접근방식과 일관되어 보입니다.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꿈꿨던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많습니다. OECD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저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OECD라는 뛰어난 조직의 경험, 지식, 기술을 이용해서 북한 경제 개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믿음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며 앞서 말씀 드린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제안에 대한 일부 배경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햇볕정책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많았지만 2003년 퇴임 후에 기회가 더 많았습니다. 제가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많았는데 대부분 김대중 대통령이 동교동 사저로 초대해서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하면서 북한 문제를 다양하게 접근하여 논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OECD의 북한 경제 조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경제 조사는 경제개발의 관점에서 북한 뿐 아니라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원하는 국가들, 투자자 모두에게 유용하고 햇볕정책의 목표에도 어느 정도 부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라고동의했습니다. 중국처럼 북한도 실시하도록 설득시켜야 한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생각했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북한 지도부의 편집증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고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저는 그 후에도 당시 외교부장관이었던 반기문 UN사무총장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반기문 전 장관도 제 제안을 반겼지만 다른 국가들, 특히 6자회담 당사국들이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리의 OECD 본부로 돌아와서 저는 6자회담 당사국과 OECD 회원국의 대사들을 소집했고 그 중 미국 대사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카니 모렐라 OECD 미국 대사는 국무부와 제 제안을 추진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한동안 워싱턴은 침묵하면서 반대했지만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서 저는 조셋 시런 미 국무부 차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6자회담 미국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이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경제 개발을 위한 지원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원을 어떻게 실시해야 할까요? 무엇을 개발해야 할까요? 저는 제 제안이 이렇게 급진전되어서 기뻤지만 북한의 핵 개발 야심으로 계속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발사 능력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통해 전 세계를 볼모로 삼아 협박하면서 6자회담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습니다. 경제 파탄과 함께 지도부의 편집증 때문에 북한은 코너에 몰려 있고 이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지난 60년간 재앙 같았던 경제 침체를 구제할 수 있는 천연자원과 인적자원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은 경제 침체를 계속하기를 원할까요? 아니면 중국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처럼 OECD의 경제 조사가 포함된 리셋 버튼을 함께 누르자는 제안을 수용할까요? 의심할 여지 없이 북한은 외국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북한 경제가 지속 가능성의 조짐이 보이고 OECD의 투자촉진정책체계(PFI)를 수용해서 실행하지 않는다면의미 있는 방식으로 실현되기는 힘듭니다. 이렇기 때문에 북한과 외부 세계의 입장에서 공정한 경제 조사가 절실합니다.
북한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제를 수립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고 미래에도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며, 6·15남북공동선언의 내용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OECD의 조사에 저항할 것이며, OECD의 일부 회원국도 실시에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재단 등에서 경제 조사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받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경제 조사에경험이 있는 전문가로 팀을 구성해서 실시할 수 있으며, OECD, 세계은행, IMF에서 은퇴한 전문가들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의를 갖고 프로젝트에 임할 것입니다.
경제 조사는 북한에 많은 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 조사 부문에서 북한출신이 아닌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 조사는 핵 문제 해결과 6자회담 재개와 별도로 고려해야 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원칙을 다시 정상 궤도로 되돌려서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제안한 경제 조사는 다음 6·15남북공동선언의 4조 내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
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6·15남북공동선언 중)
이런 경제 조사는 북한 경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최초이자 중요한 조치가 될 것입니다.
임동원 전 장관은 ‘피스메이커’의 영어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지난 20년간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북한을 봉쇄, 협박 또는 제재한다고 해서 북한이 변하거나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압력을 가하면 역효과만 발생했다. 이제 북한이 핵무기가 없어도 안전하게 살면서 번영할 수 있다고 확신시켜야 한다. 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되고 바깥 세상의 정보와 문화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변할 것이고, 북한 사회도 변할 것이다.”
반복해서 실패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며 6·15남북공동선언과도 완전히 부합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경제 조사를 핵 문제와 연동시키지 않는다면 (미국과 양자간 조약이 아닌) 다자간 안보 조약과 동일한 효과를 만들어서 외부에서 군사적 개입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도 미국,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 조약을 제안했습니다. 임동원 전 장관은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이런 제안을 전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조약이 체결된다면 북한은 즉시 방대한 국방비 지출을 줄이고 경제 개발과 사회 정책에 예산을 집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미국 역사가이자 사회학자, 비평가인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는 어떤상황에 처했을 때 다음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개연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한반도의 미래, 통일, 북한 주민들의 번영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가능성과 개연성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