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2주년 - 2부 특별강연 -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한반도 평화포럼 공동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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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한반도 평화포럼 공동이사장
오늘 우리는 6·15공동선언 1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의 기념식이지만 많은 분들의 심경이 착잡할 것입니다. 6·15선언의 서명자이자 김대중평화센터의 창립자이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안 계신 상태로 치르는 세 번째 기념행사인데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함께하신 9주년 행사도 축제 분위기의 기념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행하게 작고한 직후였고 김 전 대통령으로서도 결국 그것이 마지막 공개연설이 되었습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6·15로 돌아가자’는 제목의 그날 기념식에서 마치 정치적인 유언을 남기듯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호소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과 같은 길로 계속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이런 충언과 경고를 줄곧 무시해왔습니다. 6·15로 돌아가기는커녕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을 빌미로 이른바 5·24조치를 발표하여 6·15 이래, 아니 노태우 정부 이래로 꾸준히 진행되어온 민족화해의 흐름을 뒤집고 남북교류를 완전히 차단하고자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북의 핵능력만 엄청 강화했고 중국의존도를 높여놓았으며, 도리어 한국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국제무대에서도 한국의 역할은 초라해졌습니다. 민족이 불행하고 국민도 불행해졌음은 물론, 요즘 정황을 보건대 김 대통령 말씀대로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 국민들은 김 대통령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6·2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의 ‘북풍’ 공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겨주었고, 남북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반성을 모르는 이명박 정부를 다시 응징했습니다. 심지어 지난 4·11총선의 결과도 김 대통령의 유지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작은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야당에 대한 신임거부였지, 18대 국회의 여당 독주를 더는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야권이 제대로 혁신하고 단합하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요는 이제부터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와서 바뀔 리도 없고 바뀐다 한들 별 힘이 없습니다. 더 이상 큰 사고를 안 치고 근래에 찔끔찔끔 허용해온 민간 접촉이나마 조금 확대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른 한편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고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원칙적 승인을 말하기는 합니다만 과연 얼마만큼의 진정성과 내실이 담겼는지 미심쩍습니다.
그를 둘러싼 인사들의 면면도 그렇거니와,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벌이곤 하는 색깔공세나 독재시대에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국가관’ 타령도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정치권과 사회 전체의 쇄신을 이끌어내고,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 확신과 경륜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최근 논란이 된 ‘종북주의’ 문제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시대 4년 남짓을 거치면서 진행된 한국 주류언론의 저질화는 6·15공동선언에 대한 지지 자체를 ‘종북’ 내지 ‘친북좌파’로 몰아치는 언설을 일상화해놓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종북’ 문제에 대한 공개적 논의와 비판을 도리어 힘들게 만들었고 소수의 종북세력에 안전한 은신처를 제공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전체 한반도 주민의 안전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북측과도 소통하고 접촉하며 필요한 대로 협력하자는 ‘통북(通北)’과 남북대결의 상황에서 북측 당국의 노선을 추종하는 ‘종북(從北)’의 차이를 흐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를 놓고 대통령으로부터 여당과 보수언론까지 입을 모아 종북주의 문제를 들고 나와 대선에서의 손쉬운 승리를 꿈꾸고 있는데, 우리는 이 토론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종북’과 ‘통북’은 마땅히 구별해야 하고 우리의 분명한 선택은 종북이 아닌 통북입니다.
다만 종북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해묵은 반공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며, 6·15공동선언의 합의 그대로 한반도의 평화적일뿐더러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을 위해 최소한 우리 남쪽 국민만이라도 ‘제3의 당사자’로, 다시 말해 북측 정권은 물론이고 우리 정부에도 굴종을 거부하는 주권시민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자세라야 합니다.
그러한 원칙과 자세에 따른 야권의 정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대선 승리가 가능해지고 승리 이후의 새 시대 건설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가 열고자 하는 새 시대를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2013년체제’라 부릅니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출범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시기를 흔히 ‘87년체제’라고 하듯이, 이에 맞먹을 수준의 새 출발을 이룩해보자는 취지입니다. 87년체제는 군사독재의 종식과 경제분야에서의 자유화,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선언 같은 남북관계의 발전 등 수많은 성과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여러 사정으로 제때에 다음 단계로 도약하지 못함으로써 초기의 건설적 동력이 점차 소진되고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그 통에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내세우며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도약은커녕 퇴행과 폭주를 거듭함으로써 오늘날 민주, 민생, 정의, 평화 모든 면에서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참다운 도약을 이번에야말로 성취할 2013년체제에서 6·15공동선언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단순히 6·15와 10·4 선언이 열어준 남북화해와 평화, 협력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2013년체제의 남북관계는 그동안 6·15와 10·4를 부정했던 세력에 대한 국민적 응징을 토대로 진행될 것이며 그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 과정에서 ‘제3 당사자’의 역할이 커짐을 의미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발전 그리고 민중생활의 개선에 전에 없던 선순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사실 87년체제가 지닌 본질적 한계는, 6월항쟁이 1961년 이래의 군사독재체제를 끝장냈지만 군사독재의 기반을 이룬 1953년 이래의 정전협정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분단체제를 흔들기는 했을지언정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범한반도적 질서 건설의 길을 연 것이 6·15남북공동선언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따라 2013년체제의 성패가 갈릴 것입니다.
물론 6·15선언 자체에 평화협정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당시에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주변 관련국들의 합의가 아직 없었기 때문입니다.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에야 북·미 공동코뮤니케가 그해 10월에 나올 수 있었고, 2005년 9월의 제4차 베이징 6자 회담에서 처음으로 9·19공동성명이라는 중요 당사국들의 포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래 여러 장애가 속출했고, 무엇보다 ‘제3 당사자’ 한국 시민의 준비가 부족하고 ‘행동하는 양심’이 미흡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도 민족도 대통령 자신도 불행해진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 힘으로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데 성공한다면 2013년체제의 도래를 막을 외부의 힘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 12주년이 6·15공동선언 발표를 착잡한 심정으로 기념하는 마지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6·15 Joint Declaration and the 2013 regime
Professor Emeritus, SNU; Co-Chair, Korea Peace Forum
Paik Nak-chung
Today we are gathered to commemorate the 12th anniversary of the June 15 North-South Joint Declaration. Although we are celebrating a historic event, I would think many of you have mixed feelings. It is our third such ceremony without President Kim Dae-jung, the co-signer to the Joint Declaration and founder of Kim Dae-jung Peace Center. And I recall that the atmosphere of the 9th anniversary, when President Kim joined us for the last time, was not all that bright and cheerful, either.
Back then, we had just suffered the tragic loss of President Rho Moo-hyun, and in the case of President Kim, too, it turned out to be his last public address. At the event held under the title, ‘Let's return to 6/15’, President Kim "earnestly and with desperate urgency" appealed to the nation for each citizen to become a ‘conscience in action’, as if he was announcing his political testament. He even said, "Those who do not act are on the side of evil." And to President Lee Myung-bak he offered the message, "If President Lee and his government do not change their course, I can say confidently that not only the nation but also the Lee administration will face an unfortunate future."
President Lee, however, has taken no heed of President Kim's warning. Far from returning to 6/15, the Lee government issued the so-called ‘5/24 measure’ in 2010 in response to the sinking of the naval ship Cheonan, thus reversing the inter-Korean reconciliation process since the 6/15 Joint Declaration, or indeed ever since the Rho Tae-woo administration, and tried to cut off completely inter-Korean exchange. The result has been only to increase North Korea’s nuclear capability and its reliance on China, while causing enormous damage to the South Korean economy and a sharp diminishing of our role in the international arena. Not only have the entire Korean nation and the South Korean people become unfortunate, the Lee administration doesn't seem to find itself in a happy situation, either-exactly as the late President Kim predicted.
Many South Korean citizens, on the other hand, did heed the former President’s desperate appeal. Despite the all too familiar red-baiting by the government and the ruling party, the voters in the June 2 local elections of 2010 inflicted defeat on the Grand National Party, and in the by-election for the Mayor of Seoul in 2011, they again punished the unrepentant Lee administration, although this election was not directly related to inter-Korean relations. Even the results of the April 11 general elections this year represented a denial of confidence to the opposition party with its petty bickering over short-term advantages rather than respecting the late President’s political testament. Voters did make it clear that they would not tolerate the ruling party's reckless unilateralism any longer as in the 18th National Assembly. At the same time, they have left open the possibility that the opposition circles, if truly united and innovated, can win the Presidential race slated for December this year.
So everything is up to us. We can hardly expect Mr Lee Myung-bak to change after all these years, and even if he did, he could not do much in the remaining months. All we can hope is that he does not make things nuch worse and that he
may open a bit wider the door for civilian inter-Korean exchanges that he has been allowing by fits and starts. Meanwhile, the ruling party's leading presidential hopeful Park Keun-hye has been trying to differentiate herself from President Lee and talks about acknowledging in principle the June 15 and October 4 Declarations. But it is doubtful how much sincerity and real content we may find in her words, given the kind of people that surround her, the hackneyed red-baiting she doesn’t hesitate to indulge in, and her harping on ‘loyalty to the state’ of which we had had more than enough during the years of dictatorship. In the end there is no alternative than for each of us to become a ‘conscience in action’ to reform politics and society as a whole, and pick a leader with conviction in and a strong vision for democracy.
In the process we need also to clearly settle the controversy over ‘following North Korea’ that has recently spread. The deterioration of mainstream journalism in South Korea over the years of the Lee government has propagated a discourse that condemns even the support for the 6/15 Joint Declaration as a sign of ‘following North Korea’ or of belonging to ‘pro-North Korean leftist forces’. It is precisely such discourse that has made it difficult to openly discuss and criticize the problem of allegiance to North Korea, and helped shelter from public eyes minority groups actually following the North Korean line. It has thus blurred the distinction between the approach of ‘engaging North Korea’ (t’ongbuk), which favors dialogue, contact and, where necessary, cooperation with the Pyongyang regime for the sake of South Korea’s national interest and the safety and well-being of the popul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following North Korea’ (chongbuk), which, in the context of North-South confrontation, chooses to consistently follow the official North Korean line. Recently, in connection with the disastrous developments in the United Progressive Party, President Lee, the ruling party and conservative media have raised with one voice the issue of ‘following North Korea’, dreaming of an easy victory in the upcoming Presidential election. But we have no reason to fear a debate on this issue.
‘Engaging North Korea’ and ‘following North Korea’ should by all means be differentiated. Is Our clear choice is the former. In criticizing the latter, however, the important thing is to decide from what vantage point the criticism is made. The
criterion should be the principle of democracy, not an anachronistic anti-communism or authoritarian statism; and it must reflect the principle that in order to achieve a peaceful, gradual, and phased reunification as agreed upon in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we South Korean citizens should assume the role of ‘the third party’, that is, we should stand tall as sovereign citizens refusing blind submission either to the North Korean regime or even to our own government.
Only when the opposition circles manage to get their act together in line with this principle and conviction will they be able to win in the coming Presidential election and go on to build a new era successfully.
Many people including myself who aspire to open a new era with the launching of the new administration in 2013 have adopted the notion, ‘the regime of 2013’. The idea is to make the year 2013 as great a turning point as the one marked by the June Uprising of 1987, which is often said to have initiated a new stage of contemporary South Korean history known as ‘the regime of 1987’. This regime has indeed accomplished much, including the end of military dictatorship, economic
liberalization, and positive developments in inter-Korean relations marked by the Basic Agreement of 1991,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2000) and the October 4 Declaration (2007). Despite such achievements, however, various factors both at home and abroad militated against its advancing to a new stage in time. As a result the constructive driving force of its early years has been spent, and social disruption gradually became aggravated. Amidst such confusion the Lee government came to power with the slogan of ‘a leap into an advanced society’, but it not only failed to make that ‘leap’, but indulged in misrule and backtracking, so that the country has come to face a wholesale crisis, including crisis in democracy, ordinary people's livelihood, justice,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The 6/15 Joint Declaration occupies a crucial place in ‘the 2013 regime’, which should overcome the current crisis and carry out a genuine ‘leap’. It signifies more than a simple restoration of the process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peace and cooperation opened up by the 6/15 and 10/4 Declarations. The inter-Korean relation under the 2013 regime will be played out on the basis of popular judgment on the forces that have been negating those Declarations. Consequently the role of ‘the third party’ will have vastly increased in the process of building a peace regime on the peninsula and in the move towards a gradual integration of the two Koreas. Thus, an unprecedented virtuous cycle will be created for democratic progress, improvement of inter-Korean relation, and betterment of people's life.
As a matter of fact, the ‘87 regime had the intrinsic limitation that, while the June Movement terminated the military dictatorship that had been in place since 1961, it failed to bring about a fundamental change to the Armistice regime of 1953, which served as the basis of the subsequent military dictatorships. True, the ‘division system’ was shaken by the arrival of the 1987 regime, but never really overcome by it. It was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that opened up the possibility of a new peninsular order beyond the current division system. The fate of the 2013 regime will depend on whether we can replace the Armistice with a peace agreement in the spirit of the Joint Declaration.
Of course, the 6/15 Joint Declaration does not contain any reference to a peace regime. That is because at the time the concerned powers had not reached any agreement abou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n Northeast Asia. Only after the 6/15 Joint Declaration came the US-DPRK Joint Communiqué of October 2000, and the September 19 Joint Statement in the 4th Six-Party Talks held in Beijing in 2005 produced for the first time a comprehensive agreement among major stakeholders. But obstacles kept presenting themselves since the inauguration of the Bush administration in the U.S., and above all, there was insufficient preparation on the part of ‘the third
party’ (South Korean citizens), and insufficiency in their ‘conscience in action’ as well.
The painful consequence is now plaguing the country, the nation, and the incumbent president himself. In this circumstance, if we South Korean citizens can change politics and society through our own efforts, nothing will stop the coming of the 2013 regime. I hope this 12th anniversary will be the last to commemorate the June 15 Joint Declaration with so much mixture of somber feelings.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