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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2주년 - 개회사 (Session 1 / 토론) 이옥희 |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본문

    이옥희 |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Session 1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논평



    개요 


    6.15 남북정상회담 12년을 맞아 오늘의 남북관계를 조망하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특히 미중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한반도 문제의 중심성(centrality)이 크게 후퇴하고 있으며, 6.15 선언의 역사적, 실천적 의미가 반감되면서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백학순 박사의 글은 한반도와 동어시아 평화를 위해 6.15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논평자는 백학순 박사의 총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특히 중국의 부상이후 나타난 동북아와 한반도질서의 성격과 향후 한국외교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논평에 가름하고자 한다. 



    새로운 국제질서 패러다임의 전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한계를 다하고 자본주의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정부 일각에서 나타날 정도로 미국과 유럽발 위기는 간단하지 않다. 사실 2008년과 2010년의 미국의 위기도 돌이켜보면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종합국면(socialconjuncture)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패권이 더 이상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단일패권체제가 점차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의 부상의 속도와 폭이 예상외로 빨라지고 있다. 이른바 ‘국제관계의 민주화(다극질서)’의 징후도 보이고 일부에서는 이를 무극(non-polarity)체제가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지구적·지역적 차원의 비국가 행위자가 다층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부와 권력의 분산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글로벌 수준에서는 중국부상의 이미지와 실체를 구분하지 않는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 적어도 미중간 생활권(Labensraum)으로 간주하는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힘의 분포가 빠르게 변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중동 전선을 닫고 동아시아로 복귀한 것도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 여파로 동아시아에서 각국의 핵심이익(core interest)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안보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정치의 힘의 분산으로 인해 지역적 국제질서의 독자성이 증가하고 있다. 구조가 행위자를 규율하는 국제질서가 약화되고 주요한 행위자들의 안보자율성이 높아지면서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MB정부의 대외정책(Global Korea)의 한계도 바로 이러한 변화된 질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실상‘한미관계’를 독립변수로 두는 단선적 편향이 가져온 결과였다. 즉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발전시키고 한중간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에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중국이 한국을 주목할 것이라는 예단이 갈려있었다. 여기에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부재와 비현실적 ‘소명의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것은 통중봉북(通中封北)과 같은 몰역사적 인식이 여전히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평화와 중국변수 21세기 국제관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중관계의 변화이다. 더구나 미중관계는 향후 현상유지, 협력, 대립국면이 무정형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동아시아 일체화전략 속에서 한반도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 지역에서 거친 외교(flown diplomacy)와 매력외교를 동시에 전개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를 동아시아 전략의 관건적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중국전략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즉 미중관계의 틀 속에서 한중관계를 종속변수로 간주하고 접근하는 전략,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전략적 차등화를 시도했던 전략이 유효한지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인식의 영역에서 ‘의존의 위험’을 강조하고 역사적 기억을 불러오면서 공고화되었던 ‘중국위협론’의 프레임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기존의 양자외교, 편승외교, 진영외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중간 ‘전략관계’를 강화하여 수평적 한미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한미관계를 강화하여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중관계에서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공진(共進: co-evolution)의 논리이다. 또 하나는 양자간 이익을 넘어 지역에 공헌하는 트리플 윈(Triple Win)의 사고이다. 마지막으로 다소 나이브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인 간(人際)관계의 연장이 국제(國際)관계라는 점이다. 이를 위한 신뢰구축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구체적으로는 ① 대중국정책의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② 다양한 소통구조를 내실화하는 것이다. ③ 한국정부가 중국국민을 상대로 하는 대중국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확대하는 일이다. ④ 한중 FTA가 지역통합형 네트워크를 촉진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⑤ 역사와 영토 해결방식의 합의이다. ⑥ 자라나는 차세대 청소년과의 교류와 언론과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는 등 신뢰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의 문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한중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구축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용은 기존의 외교당국간 회의체를 차관급 전략대화 체제로 바꾸고,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을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한편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요인’을 고려하여 한국의 대북정책의 핵심인 ‘비핵ㆍ개방ㆍ3000’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어 8월에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은 ‘비핵ㆍ개방ㆍ3000’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생과 공영’을 통해 대북관계를 개선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중국은 기존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였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양국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을 지지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목표가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다(1998년 한중공동성명)”아나 노무현 정부 시기 채택한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당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 이후, MB정부는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가 남북관계를 방치하고 모든 양자관계를 선순환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구두선에 불과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미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유연화를 시도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지역안정자(stabilizer),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역할과 공약(commitment), 전쟁억지의 효율을 이유로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격상시킴으로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에는 ‘전략적 차등화’가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이처럼 남북문제가 경색되고 대화단절의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었고 이것이 중국의 안보우려를 불러 일으키면서 동맹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조정하게 되었다. 점차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정책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한국도 여기에 점차 연루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한미동맹은 지역이익(regional interest)보다는 양국의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동북아 다자협력에도 기여하지 못할것으로 우려한다. 장기적으로 현재의 동맹체제를 다자안보체제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 중국정부의 우려는 지속될 것이고 한미동맹이 견고한 상태에서는 통일한국에 대한 중국의 협력도 제한적일 것이다. 그 동안 중국은 한미동맹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과거 중국이 한미동맹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국력의 차이가 현저한 상태에서 미중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한미관계를 강화하면서도 남북화해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관리에 주력했기 때문에 중국외교정책에서 한미동맹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달리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동맹에 다시 ‘가치’를 부여하고 대북정책에서 북한문제의 특수성 보다는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접근했다. 그 결과 중국의 중재자적 역할은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은 한미동맹의 부정적 효과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기간에 ‘한미군사동맹은 냉전이 남긴 역사적 유산’이라고 밝혔고, 중국 군부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이 미군을 한반도 해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비판하거나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한국의 국방장관에게 ‘미국이 하는 행동은 패권주의의 상징이다’는 언급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외교의 방향 한국외교의 방향은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립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국제사회로부터 매력을 끄는 국가(state rests on pulling)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충실하게 지키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론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와도 같은 것이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좋은 민주주의 (good democracy)'를 발전시키는 것과도 같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프레임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규범 속에서 이를 접근하는 것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군부가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터키민간 구호선을 폭격한 후 우리 정부는 대다수의 유럽국가의 규탄결의안에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반대하자 기권해버리는 태도는 이를 반영한다) 말하자면 보편적 가치와 우리가 지켜야할 국익을 둘러싸고 미국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중국에도 ’아니오‘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미국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적을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를 역진불가능한 체제로 구축하는 일이다. 이것은 6.15정신의 핵심이기도 하고 새로운 지정학(Geopolitics is what a country makes of its geography)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를 방치하고 ’통중봉북(通中封北)‘이나 ‘통미봉북(通美封北)’과 같은 사고는 주변국가들로부터 존중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하나의 지렛대 로 삼아 통일환경을 조성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중간 협력과 갈등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고 그 여파로 양국간 중첩(intersection)도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외교의 유연성이나 민첩성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는 다시 지역을 적극적으로 주목하는 일이다. 국가이익과 지역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국가간 관계에서 오는 위험을 헤징(hedging)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동남아에서 나타나는 아세안의 활동원칙과 실험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열린 자주이기도 하나 그 연장선에 펼친 열린 지역주의외교의 요체이기도 하다.



    북미관계, 북중관계 그리고 북한의 변화


    김정은 체제는 앞서의 동아시아 구조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조기에 안정화될 수 있었다. 북한은 부상한 중국이라는 후원(後苑)을 가지게 되었고 중국도 새로운 미중관계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주목했다. 후진타오 체제가 김정은 체제를 기다렸다는 듯이 지원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중간에는 체제의 존재방식과 방향을 둘러싸고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정책 속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졌고, 사실상의 동맹인 북한에 대한 포기의 딜레마가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중국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거친 학습의 결과였다. 당시 중국은 북한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동참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압박했다. 그러나 중국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북미접촉을 통해 활로를 찾고자 했으며 그 결과 중국배제론(China passing)이 현실화되었다. 중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인 대북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간 영향력이 약화될 뿐 아니라, 북중관계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북한도 자주와 의존의 딜레마, 동맹의 포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따라서 중국을 결박한 상태에서 활로를 타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4월, 북미간 ‘2.29합의’에도 불구하고 로켓을 쏘아올린 것도 일시적으로는 국제적 고립이 강화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군사능력을 과시하면서 북미간 관계정상화 내지 평화체제라는 협상의 판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트랩에 갇힌 중국은 대북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2009년 4월의 로켓발사와 비교해 볼 때, 유엔의장 성명에 ‘강력하게 규탄한다(strongly condemn)’는 내용을 신속하게 추인한 것 이외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실제적인 내용도 이미 1874 결의안이 발효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구속력이 없었다. 오히려 중국은 ‘냉정과 절제’를 강조하는 한편 제3차 북핵실험을 막는 데 주력했고, 북한체제가 안정화되는 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남긴 ‘선군정치’의 유훈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북한판 개혁개방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황금평과 나선지역의 개발과 중국의 대북투자의 확대는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2년 10월에는 시진핑 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5세대가 등장한다. 시진핑은 전임 국가주석이나 총서기와는 달리 최고권력을 가진 지도자는 아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집단 지도체제의 성격이 강하거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이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진핑의 대북정책은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현 후진타오 2기체제의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은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보시라이 실각과 같은 국내정치의 변수 때문에 대외정책의 폭도 제약당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대체로 북한체제 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는 기본방침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도 분리하여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고려한 새로운 동아시아평화와 남북관계의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리더쉽


    중국외교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중받는 지도자로 평가한다. 이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전략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체제가 다르지만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헌신을 존중했던 한 정치인의 삶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열린 민족주의와 열린 지역주의라는 인식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고 지역공동체를 항한 진의를 읽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민족사적 접근이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새로운 리더쉽은 한국의 대전략 속에서 대담한 상상력으로 민족사적 과제에 접근하는 정치인을 대망하고 있는 지 모른다. 철지난 색깔논쟁이나 작은 정책에 대한 포장술로는 이 거대한 파고를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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