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년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김대중 전 대통령 기조연설 ( 2005년 6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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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2005년 6월 13일, 서울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 홀에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진전을 위하여" (From Stalemate to New Progress for Peace in Korea)라는 주제로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학술회의에는 사나나 구스마오(Xanana Gusmao) 동티모르 대통령, 첸지천 전 중국 부총리 등을 비롯하여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러시아, 노르웨이에서 20여명의 국제적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하였고, 국내에서도 약 200 ~ 300여명의 학계, 관계, 경제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개회식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했고,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 첸지천 전 중국 부총리,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 the Korea Society 회장, 이름가르드 쉬바쳐(Irmgard Schwaetzer) 전 서독 외무차관(독일통일당시) 등은 특별연설을 했다.
그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전 구소련 대통령은 영상메세지를 보내왔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전진을 위하여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 각하 내외분!
국사 다망하신 가운데 참석해 주신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해 마지않습니다.
존경하는 구스마오 대통령 각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신 고르바초프 대통령, 첸지첸 부총리, 도널드 그렉 대사, 와다 하루끼 교수, 쉬베쳐 장관,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각 정당 대표, 각국의 외교 사절과 내외귀빈 여러분!
여러 가지 바쁘신 가운데 이와 같이 참석해 주신데 대해서 역시 진심으로 감사하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6.15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만 5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남북의 모든 한민족과 세계의 많은 분들은 지금도 그때의 벅찬 감격과 여러 모습들의 기억을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은 타의에 의해서 분단된 지 반세기를 거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재결합에의 의지를 과시한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19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와 열망을 새삼 강조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통일을 3원칙 3단계로 정리해서 이를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주장해 왔습니다. 3원칙은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통일원칙을 말합니다. 3단계는 남북연합, 남북연방 그리고 완전통일을 말합니다. 따뜻한 햇볕으로 냉전의 빙벽을 녹이고 서로 화해 협력하는 가운데 남북이 다같이 공생하고 발전하면서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수립된 후 2년여의 노력 끝에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데 성공했습니다.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흉금을 털어놓은 대화를 했습니다. 모처럼 갖게 된 이 기회가 우리 민족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 진실을 주고받는 대화를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대화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 문제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데 합의했습니다. 또한 통일의 방법에 있어서 제1단계로서 남측의 ‘남북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화와 협의를 진전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주변 환경만 좋아지면 1단계의 통일방법은 언제든지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남북연합은 남북 양 정부가 현재와 같은 독립국가로서의 모든 권한을 간직한 채 정상회담, 각료회담, 국회회담을 수시로 열 수 있으며, 만장일치 합의제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남한에 대한 공산화 야망이나, 남한의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의 기도를 단연코 배제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윈-윈의 공동승리의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 임기 중에는 상당한 진전을 보았습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의 미군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확실하다면 현재는 물론 통일 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외에도 남북간의 경제, 문화, 사회, 환경 등 전면적인 교류 협력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그럴 듯한 미사여구의 합의서를 발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철도 도로의 연결, 개성공단의 건설 등 구체적인 실천을 이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와 같은 합의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큰 희망이 우리 민족에게 퍼져갔습니다. 그러나 곧 다가온 북미관계 경색으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성과도 차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1만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100만명 이상의 사람이 남북을 오고가고 있습니다. 북쪽에 공장을 세우고,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진전은 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6.15 정상회담 이후 보도매체를 통해서 남북교류 장면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지원해준 비료와 식량이 북한 전역에 배포됨으로써 북한 주민들은 이제 남한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과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려 한다는 진심을 알고 과거의 부정 일변도의 생각을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남쪽 국민들도 과거 북쪽이라면 모든 것을 반대하던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같은 동족을 아끼고 지원하는 것은 별개라는 성숙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남북관계가 신뢰와 협력 속에 획기적으로 발전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사항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6월 11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그 동안 일부에서 제기된 우려도 불식한 성과 있는 회담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와 노고에 대해 국민과 더불어 감사드립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북한 핵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한반도 남북 비핵화 선언에도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동북아시아 나라들이 줄지어 핵을 갖는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지금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6자회담이 구성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하루속히 4차 6자회담에 출석해서 북측의 요구를 당당하게 개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에 앞서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겠다는 것을 거듭 천명해야 합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해 주는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나는 이러한 조치들을 취하게 되면 북한 핵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북한을 불신하고 징계를 서두르는 주장이 많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주고받는 협상을 확실하게 약속하지 않은 채 징계만을 앞세운다면 중국, 러시아 등 대부분의 6자회담 당사국들이 이에 동의할지 의문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주고받는 협상을 하고 난 후에도 만일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그때는 북한 이외의 6자회담 참여국들이 엄격한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평화적 수단이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공산국가에 대해서 냉전이나 봉쇄를 통해서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러나 개혁, 개방으로 유도했을 때 공산국가에서는 민주화가 실현되거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소련과 동구라파에서 민주화가 일어났고 중국, 베트남은 과거에 비해서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한편, 쿠바에 대해서는 50년을 봉쇄했지만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개혁 개방을 유도하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강압정책을 택한다면 그 반동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반대합니다. 핵도 반대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공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금년 12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립니다. 나는 1998년 베트남에서 있었던 ASEAN+3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연구에 착수하도록 제안한바 있습니다. 그 후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을 거쳐서 동아시아포럼(EAF)이 열렸고, 마침내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개최되게 되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EU블록, 북미블록, 동아시아블록 등 경제적 블록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정치 체제나 종교적,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 각국은 매우 성공적으로 안보와 경제, 문화협력 등을 이룩해 오고 있습니다. 교역도 활발합니다.
동아시아 블록 중에는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 3국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구면에서 보면 3대 1, GDP면에서는 10대 1의 우위를 동북아시아 3국이 보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노력에 있어서 동북아시아 3국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일간, 중일간은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 차이를 두고 큰 대립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아시아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 매우 심각한 장애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 전문가들은 21세기가 동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가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굳건히 실현했을 때의 일인 것입니다. 한중일 3국은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는 가운데 공통의 역사인식과 협력의 길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역사와 정면으로 대면하고 책임을 지는 결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가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강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