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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 - (Session 2)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본문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Session 2


    한반도 평화체제 : 포괄적, 단계적 접근


    1.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흐름


    2013년은 정전협정을 맺은 지 6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정치적 신뢰는 부재하고,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모든 경제 협력은 중단되었다. 특히 개성공단이 중단되면서, 남북관계에서 모든 교류와 경제협력이 중단된 ‘남북관계 제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정전체제가 작동을 멈춘 지는 오래되었다. 1991년 유엔군 군정위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이 임명되자 북한은 이후 군정위 본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이후 1994년 들어 군정위 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이 철수하고, 중국측 대표단 철수, 그리고 중립국 감독위로부터 체코 대표단(1993.4), 폴란드 대표단(1995.2) 철수하면서 중립국 감독위도 무력화되었다.

    정전협정 체결이후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논의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은 성과가 없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1970년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1975년 키신저 국무장관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휴전 협정의 유지와 긴장완화를 위해 4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남북 불가침 협정을 공개적으로 제안했고,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이미 한반도에서 데탕트의 효과가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군사적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 만들기를 위한 노력은 1990년대 들어와서야 결실을 본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부속합의서의 채택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평화체제의 전망과 더불어 군사적 신뢰구축의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 전반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은 물론이고, 평화체제 논의의 국면을 이전과 구분하는 중요한 전환기회였다.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논의기회를 제공했고, 국방장관 회담을 비롯한 실질적인 협의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포럼’의 개최와 동북아 다자간 평화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만든 것 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과정에서의 남북 당사자 관계의 구축과 잠정적인 조치로서 종전선언을 합의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중단되었고, 한국 정부의 평화체제 전략과 의지도 약화되었다. 5년 동안 평화체제 담론이 실종되면서, 많은 변화들이 뒤따랐다. 달라진 현실은 무엇인가?


    첫째, 동북아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과 중국의 부상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의 냉전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협력이 아니라 대결과 충돌로 다가오고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악화되고, 영토분쟁도 격화되고 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갈등하고, 조어도(중국에서는 다오위다오, 일본에서는 센까쿠)를 둘러싸고 중일 양국이 무력 충돌 일보직전까지 가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미일 삼각체제를 통해 질서를 관리했던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지 않은 채, 과거의 관성들이 대결을 증폭시키고 있다.


    둘째, 한반도의 냉전적 대결이 심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후퇴했다. 서해는 다시 냉전의 바다가 되고, 남북한의 신뢰 관계는 붕괴했다. 개성공단을 포함한 모든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평화체제 전략은 부재하고, 그 자리를 억지의 강화가 차지하고 있다.


    셋째, 북핵문제도 악화되었다. 6자회담은 2008년 수석대표회담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북핵 협상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고 있다. 북핵문제가 한반도 냉전구조의 산물이고, 북핵 폐기의 가장 중요한 상응조치의 하나가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다. 그런 상황에서 북핵문제의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기구로 만들어 보자는 구상 역시 어렵게 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 악화의 핵심 구조가 바로 불안정한 정전체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과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과 해법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포괄적․복합적 접근의 필요성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왜 필요한가? 첫째는 2007년 10.4 합의 이행의 문제다. 10.4 합의에서는 남북한이 평화체제 논의의 필요성을 합의하고, 종전선언을 위한 3자 혹은 4자회담의 개최를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10.4 합의를 파기하고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남북관계 악화와 군사적 긴장 고조로 논의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지 않았다.

    둘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평화체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핵심 합의 사항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참여국들은 외교 관계 정상화(북미, 북일), 에너지 경제지원, 그리고 평화체제 논의를 진전시킬 것을 합의했다. 북한의 핵 포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평화체제 논의는 불가피하다. 북한 역시 핵능력을 강화하면서, 평화체제 논의가 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고, 핵심은 재래식 군비경쟁 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냉전체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시와 더불어 평화체제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미룰 이유가 없다.

    셋째, 한반도 평화정착은 시대의 과제다. 평화는 땅이고 경제는 꽃이라는 말이 있다. 평화가 확고하게 정착해야 경제성장도 복지도 민주주의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평화체제라는 비전과 전략은 이미 노태우 정부 때부터 강조해 오던 과제다. 김영삼 정부 때는 실제로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개최하기도 했다.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6차례의 본회담을 열었다. 김대중 정부때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초보적이지만 실질적인 남북한 군사신뢰 구축방안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평화체제에 관한 구상을 교환했고, 2007년 10.4 선언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전략과 비전을 결여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군사적 억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북방경제론의 필요성이나 동북아 안보협력에서의 한국의 적극적 역할 등의 긍정적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전략적 요소들이 충돌하고 상호 모순적이다. 특정한 요소의 편향이나 일방성이 강화되면, 전략은 복합적이 아니라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처럼, 남북관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한미 합동군사 전력이 강화되면, 그것이 북한에 대한 억지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왜 한중관계가 악화되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에서의 군사적 충돌이 결국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관계 악화로 이어졌고, 한미군사동맹의 강화가 한중관계 악화의 계기로 작용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억지력의 적정 수준을 생각해야 한다. 대립구조를 장기화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핵문제의 해법은 북한의 강화된 핵 능력만큼이나 복잡해졌고 어려워졌다. 해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핵 폐기론에 입각한다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제재와 더불어, 포괄적인 남북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6자회담의 장기교착,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하고, 북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이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에게 안보‧군사적인 위협을 야기하고 한반도 및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 군사적 긴장고조의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관계 개선의 포괄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반도 냉전체제 극복에 관한 확고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많은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 체제의 기본 구조는 여전히 중요하다.

    물론 달라진 환경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체제에서 언급하지 않은 운반수단(즉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2000년 북미 미사일 협상이 근거를 제공할 수 있으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숫자와 성능이 향상되었다는 측면에서, 협상의 내용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인공위성의 대리발사 등을 통한 비군사적 용도를 충족시켜 주면서, 군사용 목적의 운반수단 기술 진전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핵 폐기와 상응조치의 수준이 달라졌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달라진 핵능력을 고려할 때, 과거의 단계적 접근은 한계가 있을 것이며, 초기 협상에서 이른바 초기이행조치를 상호 진전된 수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와 달리 이른바 포괄적 관계 진전의 수준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비롯한 평화정착의 구체적인 진전 여부가 핵 폐기 로드맵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3. 과정으로서의 평화체제와 군사적 신뢰구축의 중요성


    ‘평화체제’는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평화협정을 통한 법적・제도적 평화보장과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한 실질적 평화정착이 달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 동안의 평화체제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할 평화체제의 과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평화체제는 과정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고도, 평화를 이루지 못한 국제적 사례들이 적지 않다. 평화협정이라는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긴장이 생길 수 있는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절차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의 초기 이행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구체적인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1) 서해 평화정착과 평화경제지대의 필요성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서해 평화정착이다. 서해를 긴장의 바다로 남겨 놓고, 어떻게 평화를 말하겠는가? 2007년 10.4 정상회담의 서해평화협력 지대 구상은 기존의 해상경계선, 즉 북방한계선을 유지하면서 평화경제의 방법으로 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한 접근이다. 우발적 충돌방지를 제도화하고, 경제협력을 활성화해서 평화의 바다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보수적 시각은 북방한계선을 양보했다고 주장하나, 그렇지 않다. 소모적인 정쟁이고, 구체적 내용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쟁점이 되었던 공동어로도 마찬가지다. 공동어로 구역 설정과정에서 기준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2007년 당시 공동어로 방안에 대해서는 국방부, 해양수산부, 통일부 사이에 입장차이가 있었다. 국방부는 북방한계선을 기준선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다른 부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핵심이 북방한계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충돌방지에 관한 확고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공동어로 방안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당시 충돌방지를 위해 남북한은 국제상선망을 통해 통신을 유지했다.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를 비롯한 확고한 신뢰구축이 이루어지면, 현재 북방한계선 아래에 설정해 놓은 어로한계선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다. 나아가 해주 앞바다에 우리 어선들이 진출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중국 어선들은 이미 서해와 동해에서 어장 접근권을 경제적인 방식으로 확보한 사례도 있다.

    공동어로 방안에 대해서도 NLL 문제를 개입시키지 않고, 일부 시범어로지역을 설정하는 방안도 고려되었다. 당시 정상회담이후 추진된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공동어로 방안은 핵심이슈도 아니었다. 김장수 장관은 개인의 소신을 강조하면서, 북방한계선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추후 실무 협의와 경제회담을 통해 현실 가능한 방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 것도 사실이다.

    해양평화공원의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해양평화공원은 물범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수역을 공동 조사하고, 공동 보존해 나가자는 구상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추진했던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신뢰가 부족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해상경계선 문제를 입구에서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선의 개념이 아니라, 면의 개념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바로 2007년 10.4 정상회담의 합의인 ‘서해평화협력지대’다. 해양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하며,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광역 평화경제지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이행하면, 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도 필요하다. 휴전협정에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를 비무장지대, 즉 DMZ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남북 양측은 조금씩 전진해서, 막사를 짓고, 초소를 만들고, 중화기를 배치했다. 비무장지대의 무장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가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육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다.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를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1단계에서는 정전협정 명시한 규모를 초과하는 DMZ내 남북한 쌍방간의 인원, 장비를 DMZ 외곽으로 철수하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DMZ내 인원 및 장비, 군사시설물을 정전협정 규정보다 1/2 수준으로 감소하고, 3단계에서 완전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DMZ를 공단지대, 농업협력지대, 생태지대, 역사유적지대로 구분하여, 새롭게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동쪽으로는 또 하나의 ‘동해 평화경제지대’가 필요하다. 금강산-설악산을 잇는 광역 평화 관광 지대를 만든다면, 군사적 긴장완화와 호혜적 경제협력을 결합할 수 있다. 특히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한다. 금강산은 그동안 접촉의 공간이며, 통일의 현장이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금강산은 이산가족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점이다. 그곳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있다. 완공은 되었지만, 남북관계 중단으로 잡초만 무성한 폐가가 되었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서 금강산을 종합적인 이산가족 센터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동해와 서해, 그리고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접경지역의 평화 경제지대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대를 개발하면서, 실질적으로 북한군의 후방배치가 이루어졌다. 서해 평화협력지대의 핵심 공간인 해주역시 북한의 중요한 해군기지다.


    2) 남북기본합의서와 군사적 신뢰구축


    실현가능한 평화정착을 우선으로, 탈냉전 과정과 연계하여, 단계적으로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협정의 체결을 목표로 지향하되, 실현 가능한 ‘평화상태’의 정착을 위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남북한의 합의인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하여 남북기본합의서는 전문, 제1장 남북화해의 제5조를 비롯하여 제2장 남북불가침의 제9조-14조에서 치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에 관해서는 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 5조는 평화체제의 당사자 문제를 남북이 처음 합의한 조항으로 의미가 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남한이 서명 당사자에서 빠진 것은 오랜 기간 동안 평화체제 구성에 논란거리이자 걸림돌이었다. 1970년대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후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남북 당사자 구조가 정착되었다. 1996년 4자회담, 2005년 9.19 공동성명, 그리고 2007년 10.4 합의에서 재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은 교전당사자이고, 한반도의 군사질서도 많이 변화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DMZ의 관리 권한이 유엔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많이 이전되었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합의와 기지이전을 통해 과거의 대북억지 기능에서 벗어났다.


    남북기본합의서 제9조는 쌍방이 무력사용을 하지 않고 침략하지 않기로 약속함으로써 상호 불가침을 약속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0조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합의했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해상 경계선문제를 아주 현명하게 합의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 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또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 군축 등 그리고 군사정전위를 대신할 평화관리기구인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처음 약속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기본합의서 제12조 는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적고 있다. 대체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현 정전협정의 관리기구인 남북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 할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3조는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직통전화설치를 합의했다.

    그런 점에서 육상과 해상에서의 핫라인을 가동해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국방장관 회담을 정례화해서 단계적인 군사적 신뢰구축의 수준을 높여 가야 할 것이다. 군 인사들의 상호교류, 그리고 군사훈련의 공개와 참관등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뢰가 쌓이고, 평화의 구조가 만들어지면, 병력감축과 무기감축을 포함하는 군축 논의로 본격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4.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단계적 접근


    평화체제의 제도적인 완성은 평화협정이다. 불안정한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군사적 신뢰구축의 당사자이며, 동시에 평화협정의 핵심 주체다.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중 양국이 보장하는 2+2 방식이 바람직하다. 평화협정의 근간이 되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정착 과정을 결국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1)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가? 우선적으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포럼’즉 4자회담 구성을 합의한 바 있다. 6자회담 재개와 동시에 4자회담을 개시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는 바로 한반도의 냉전종식이 이루어질 때 해결할 수 있다. 재래식 군비경쟁이 지속되면,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9.19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은 핵을 폐기하는 대신, 상응조치로 외교관계 개선과 경제협력,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잠정적 조치로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2007년 10.4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정전과 종전은 다르다. 선언에 들어갈 내용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종전, 즉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면 된다. 그러나 선언이 미칠 효과는 적지 않다. 우선적으로 정전관리체제에서 종전관리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형식적으로 정전관리의 주체는 유엔사령부이다. 그래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관리 업무도 유엔사령부가 맡고 있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엔사령부의 지위와 역할이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 유엔사령관을 겸직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지위도 달라질 것이다. 종전관리체제는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야 하며,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항구적인 평화관리체제가 시작될 때까지 과도기적 국면을 관리해야 한다.

    잠정적 평화관리기구 이행당사자는 종전선언(3자혹은 4자) 서명 당사자와 분리하여, 한반도에 ‘실질적으로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남북미 3자구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화 관리 기구는 정전협정상 군사정전위와 남북기본합의서상 군사공동위 기능을 통합, DMZ관리(남북)와 상호위협감소 조치 등(남북미)을 협의 이행할 필요가 있다. 평화 관리기구내에서 DMZ 관리를 비롯한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는 ‘남북군사공동위’에서 논의하고, 미국이 이를 보장하는 형식이다.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즉 첫째로 남북간 군사문제 논의 및 신뢰구축조치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이고, 둘째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의 이행 여부를 감독하고, 관련 기구 지침의 제공 및 조정하는 것이다.

    기능은 우선적으로 쌍방 군사 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대규모 부대이동 및 군사연습의 사전 통보, 연례적인 군사력 현황 교환 및 상호 제공된 군사력 현황에 대한 평가, 재난시 공동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대부분,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에 포함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2)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전략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 북·미 관계 정상화, 동북아 평화협력체제 구축 상황 등을 반영하여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의 지속성은 실질적 평화정착의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북한의 핵 폐기가 상당 부분 진행 한 이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핵 폐기의 가시화 단계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 해체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관리기구는 잠정적 조치였던 남북미간 평화관리기구가 남북 평화관리기구로 전환하고, 미국과 중국은 보증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에 유엔사는 정전관리 및 전시 병력증파, 후방지원 임무를 종결하고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의 중요 내용으로는 첫째, 경계선 확정이 필요하다. 상호 불가침 경계선으로서 지상, 해상, 및 공중 경계선을 확정하고 준수해야 한다. 해상경계선은 서해평화경제지대(면)의 발전에 따라, 선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군사적 신뢰조치를 토대로 구체적인 무기와 병력의 제한 및 감축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무기와 병력의 제한과 감축을 협의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무기와 병력의 제한 및 감축에 관한 합의사항을 적극 이행하기 위해서는 현장 사찰과 검증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검증단은 남과 북 및 유엔 군축 관련 기구의 전문가들로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외국과의 체결 군사조약 등에 관해서는 평화협정의 취지와 목적에 위배되는 어떠한 외국과의 조약, 군사동맹, 또는 국제기구에도 참여하지 않지만, 한반도 내 외국군의 주둔은 본 협정의 취지와 목적을 구현하고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허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평화체제 관리감독은 남북평화관리 공동위원회를 남과 북의 대표로 구성하며, 본 위원회는 한반도 분쟁해결 및 평화관리에 관한 일차적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 하다. 평화협정의 이행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미국과 중국은 별도로 본 협정의 부속의정서를 체결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5.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과의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동북아 냉전 질서의 핵심에 바로 한반도가 있다. ‘북한 문제’는 일본의 재무장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미사일 방어망을 비롯한 군비경쟁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다시 말해 동북아 안보협력의 질적 발전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유리한 환경이 되며,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평화정착의 동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국 외교의 시대적 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으면, 그 과정에서 동북아 협력안보를 주도하는 근거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동북아 평화에서 한반도 문제가 갖는 중요성이 있기에, 지역 평화질서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유럽의 다자간 안보협력의 출발이었던 ‘헬싱키 프로세스’의 추진과정에서 핀란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 체제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동북아 협력안보는 북핵문제의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진전, 역내 국가들 간의 협력 의지 등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쉬운 협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실무회의에서 논의한 바 있지만, 황사 문제와 같은 환경협력, 조류독감 예방 등의 보건협력, 해상 사고 공동대처 등 재난방지를 비롯한 비전통적 안보협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쉬운 협력을 통한 역내 국가들간의 협력경험을 쌓고, 점차적으로 협력의 수준과 범위를 높여가야 한다. 역내 국가들간의 분쟁에 대한 인식과 접근법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분쟁예방에 대한 논의도 점차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6자 외무장관 회담과 같은 상층 논의와 실무그룹 회의라는 실무대화를 병행적으로 진행 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의 안보협력은 정치적 의지가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고위급 대화의 필요성이 있다. 동시에 협력안보 대화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실무차원의 지속적인 대화노력도 상호 이해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유럽의 경험처럼,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정치군사 문제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유럽은 석탄철강 공동체 논의가 경제통합의 출발이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정치통합의 기원이 된 바 있다. 동북아에서도 교통망 연결과 에너지 분야의 협력은 상호 호혜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의 협력부터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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