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 성과 대국민 보고 연설 ( 2000년 6월 15일)
본문
새로운 희망과 확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적인 방북 임무를 대과 없이 마치고 지금 귀국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밤잠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환호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려 마지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제 새날이 밝아 온 것 같습니다. 55년 분단과 적대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사에 새 전기를 열 수 있는 그런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번 저의 방북이 한반도에서의 평화, 남북간의 교류·협력,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을 닦는 데 첫걸음이 됐으면 더 이상 다행이 없겠습니다.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은 제가 기대했던 이상의 환대를 저에게 베풀었습니다. 공항에 직접 출영하고, 오늘 돌아올 때도 공항까지 환송을 나와 주었습니다. 회담과정에서는 때로는 절망적인 생각을 가진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평양시에 들어갈 때 60만, 나올 때 30∼40만 등 모두 약 100만명의 평양 시민이 열광적으로 저를 환영하고 환송해 주었습니다. 평양 역사상 가장 많은 군중의 환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평양 시민이 같은 혈육의 정으로서 환영해 준 데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감사의 박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세계 여론의 한결같은, 거의 한 나라도 예외 없이 적극적으로 성원해 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세계 언론들의 보도에 대해서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평양에 있으면서 국내의 TV도 보고 신문도 보았습니다. 아마 우리 역사에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대적인 보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제가 그렇게 보도되는 것이 참으로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언론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열망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습니다. 나는 우리 언론에 대해서도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양 정상은 민족과 세계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성공을 못했을 때 그 엄청난 파장, 우리가 성공했을 때 가져 올 세계사적 큰 발전과 전환,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데 온갖 성의와 지혜를 다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저를 수행한 우리 보좌진이나 특별수행한 분들도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북측 사람들과 만나서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고, 저의 일을 지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 줬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만난 것이 중요합니다. 평양도 가 보니까 우리 땅이었습니다. 평양에 사는 사람도 우리하고 같은 핏줄,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뭐라고 말하고 살아 왔건간에 마음속으로는 남쪽 동포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정이 깊이 배어 있다는 것을 조금 이야기해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단일민족으로서 살아 왔습니다. 통일을 이룩한 지도 1,30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 민족이 타의에 의한 불과 55년의 분단 때문에 영원히 서로 외면하거나 정신적으로 남남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번에 가서 현지에서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화해도 할 수 있고, 협력도 할 수 있고, 통일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조선왕조 말엽에 국민이 단합하고 근대화를 서둘러야 할 때 내부가 산산이 분열되고 근대화를 외면하다가 결국 망국의 설움을 얻고 일제 35년과 분단, 6·25전쟁, 그리고 또 대립, 100년의 앙화(殃禍)를 우리 후손들에게 주지 않았느냐. 지금 세계는 지식정보화 시대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혁명시대에 들어가고 있고 경제적 국경이 없는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때에 같은 민족끼리 내부에서 힘을 탕진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 통일은 안 되더라도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해서 하늘도 트고, 길도 트고, 항구도 트고서 서로 왕래하고 협력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교류를 해 나간다면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높은 교육적 전통, 문화 창조력 등을 바탕으로 21세기의 지식기반 시대에 우리가 큰 힘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이제 4대국이 우리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4대국을 우리 시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이때 우리가 정신차리지 못하고 남북이 협력하지 않고 우리끼리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적화통일도 안 되고 흡수통일도 안 되고 남북이 서로 공존공영하면서 차츰 통일의 길로 나가자. 민족을 21세기에는 세계 일류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역설하니까 김 위원장도 동감을 표시했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이 다 잘 됐고 아무 걱정이 없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가능성을 보고 왔다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또 성의가 필요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안보, 대한민국의 주체성, 여기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되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 가면서 협력해서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풀어 나간다면 종국에는 통일의 길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북측에 대해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자고 했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문서로 만들어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핵 이야기도 했고 미사일 이야기도 했습니다.
주한미군 문제도 나왔고 국가보안법 문제도 나왔습니다. 그 대화는 매우 유익했으며 그 중에는 아주 좋은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남북공동선언서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민족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7·4공동성명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북한 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7·4공동성명 발표한 것이 28년 전인데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 않느냐.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이야기했는데 아무것도 안 되지 않았느냐. 또 1992년 2월에 남북이 합의서를 발표해서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비핵화 선언 등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주 구체적으로 손에 쥔 것부터 실천에 옮기자. 이 정상회담은 바로 실천을 보여 주는 회담이다. 옛날하고 똑같이 자주·통일·평화 등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이제 세계도 우리 민족도 그것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2항 이하에는 좀 구체적인 것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합의했습니다. 그 제2항은 우리가 주장해 온 남북연합입니다. 즉, 2체제 2정부를 현재대로 놓아 두고 남북 양쪽에서 각료급 회의를 구성하고 국회 회의를 구성해 서로 합의기관을 만들어서 차츰차츰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자 하는 것이 우리의 연합제입니다.
그에 비해 북한은 1980년 연방제를 주장했습니다. “처음부터 바로 중앙정부가 외교권과 군대통솔권을 다 가져야 한다. 남북 양쪽의 지방정부는 내 정권만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이행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근자에 북한은 이 점을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중앙연방이 갖겠다는 외교와 군사권을 지방정부가 그대로 가져도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가 주장한 대로입니다. 이것은 상통한 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양쪽 대표가 같이 문제를 토론해 보자,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여서 토론해 보자”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북 관계사에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셋째는 남과 북은 오는 8·15에 즈음하여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릴 것은, 이 문장 해석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실향민, 흩어진 이산가족들의 문제가 초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공항에 나오면서 김정일 위원장하고 다시 이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이번 8·15까지 북에서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통크게’ 한 번 하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말한 장기수 문제라든가 그런 것도 내가 국민하고 상의해서 처리하겠소. 먼저 잘 하시오”라고 했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달부터 적십자사가 곧 가동됩니다. 이것도 오늘 합의했습니다. 내가 서울 돌아가는 즉시로 적십자사에 북하고 접촉하라고 요청하겠다고 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좋다고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앞으로 그 범위가 얼마만큼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이렇게 북한하고 합의했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고드립니다.
그리고 넷째로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도 교류·협력을 증대시키기로 했습니다.
경제협력 문제를 말씀드리면, 북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협력이 도움이 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으로 들어가서 철도를 건설하고, 전력문제를 해결하고, 도로·항만·통신 등을 해결해 북한에 공단을 조성해서 진출한다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남한 내부 경제에서 한반도 전체의 경제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고, 그런 가운데 북도 남도 다같이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기차가 왜 런던이나 파리를 못 갑니까? 경의선·경원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못 갑니다. 만주의 기차들은 자유롭게 가지 않습니까? 경의선은 불과 25㎞ 정도밖에 끊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만 이으면 곧 갈 수 있습니다. 운송비가 30% 절감되고, 수송 날짜가 훨씬 줄어듭니다. 북한하고만 해결되면 우리는 유럽까지 뻗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새로운 철(鐵)의 실크로드가 생겨나서 남북 양측이 경제의 번영을 크게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또 북한의 노동력이 대단히 우수하다는 것은 신문에 여러번 났습니다. 노임도 훨씬 저렴합니다. 남한에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들도 북한에 가면 충분히 경쟁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측이 다 도움이 됩니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우리가 철칙으로 해야 할 것은 남쪽만 좋아도 안 되고 북쪽만 좋아도 안 됩니다. 양쪽 다 좋아야 오래 가고 그래야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윈-윈정책으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교류·협력을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체육 등 모든 분야에서 해 나가기로 김정일 위원장과 확실히 합의했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모두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들은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남북에서 임명한 당국자들이 곧 접촉해서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한 합의에는 힘이 좀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하고 합의된 시일 중에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것을 결심했습니다.
나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와야 우리 민족이나 세계인들이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나만 왔다 가고 김 위원장은 안 오면 일회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잘 아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김 위원장보다도 10여세 위인데 당신보다 더 나이 먹은 노인이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이 안 온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입니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북한은 다같은 우리 강산이고, 다같은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고, 다같은 한국 사람의 생각과 인정과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또 우리하고 아주 상이한 사상적 토양에서, 그런 정치체제 아래서, 그런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 살아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것은 한국 사람 특유의 급한 성격을 가지고 빨리 풀려고 하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합의만 해놓고 7·4 공동선언이 28년간 안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도 우리 동포다, 그들도 우리하고 같은 상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이익이 되고 우리도 이익이 되는 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능한 것부터, 쉬운 것부터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믿음이 생기고 이해가 일치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적화통일도 용납하지 않지만 우리도 북한을 해치지 않겠다. 반드시 같이 공존공영해서 우리 민족이 새로운 21세기에 같이 손잡아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해 보자. 주변 4대국이 이제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모두 우리의 시장이다.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지적 기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정보화 시대에, 지식기반 시대에 이 거대한 시장을 개척해 나가자” 하는 각오를 가지고 북한을 대해야 합니다.
안보는 철통 같이 하되, 그러나 전쟁을 막기 위한 안보, 그리고 결국은 남북이 화해·협력하기 위한 안보, 이런 방향으로 나갈 때 조상들은 물론 하늘도 도와서 민족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한반도 전체의 조국을, 번영된 조국을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국민 여러분께 봉사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 외에 여러가지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건승을 빌면서 저의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