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이사, 아시아 문화 기고문 "김대중의 햇볓정책은 평화번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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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이사님이 ' 아시아 문화' 3월호에 게재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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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민족이 평화번영 하는 최선의 길은 햇볕정책이다.
김성재(김대중아카데미 원장)
현재 한반도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그리고 이에 강경 대응한 남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과 미국의 사드 배치 문제로 남북 간 초긴장의 위기 상태에 있다. 또한 중국은 사드 배치가 대 북한용이 아니라 자기들 압박용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어 그동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있던 한중 관계가 정치, 경제적으로 새로운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민들은 북한 핵과 미사일은 용납할 수 없지만 물리적 강제보다 평화적인해결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북한 핵과 미사일은 북한에 대한 보다 강경한 제재와 압박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고, 더욱이 현재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서 북한 경제제재는 우리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드 배치문제로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가 가중되면 우리 경제기반이 흔들리고 민생 고통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동시에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로 인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 냉전 대결이 한반도에 무력충돌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란 우발적 충돌이 도화선이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는 세계에서 최첨단 살상무기가 가장 밀집된 화약고이기에 전쟁이 나면 남북 어느 한편의 승리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폐허가 될 수 있다. 결코 이런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만약 이렇게 되면 어느 한편의 승리가 아니라 남북 모두 패자가 되고, 결과적으로 또 다시 우리민족은 미·일·중·러의 희생제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과 북이 한민족으로서 같이 살아갈 필연의 관계가 아니라면 모를까, 현재 위기상황을 해결할 길은 군사·경제적 대결과 압박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 곧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햇볕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정부여당과 보수우익만이 아니라 야당인사들도 햇볕정책은 실패라고 주장하고 강경대결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햇볕정책의 철학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햇볕정책은 단순한 정경분리 기능주의 정책이 아니다.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용서와 화해협력의 평화철학과 신념에서 북한과 평화공존 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용서와 화해협력의 평화철학과 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햇볕정책은 분단현실을 성찰해보아도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었을 것이다. 햇볕정책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결코 김대중대통령의 정책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본질을 밝혀 참으로 남과 북이 그리고 우리민족이 적대적 갈등과 전쟁이 아니라 화해협력, 평화공존, 평화번영하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1.햇볕정책은 실패할 수 없는 평화 정책이다.
우리민족은 일제식민지 강점으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미·소 냉전 대결 구도에 의해 분할 점령당했다. 동시에 민족 내적으로도 이념 갈등에 의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6.25전쟁은 단순한 동족전쟁이 아니라 20 여 개국이 참가한 국제전으로 확산되어 350만 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전국토가 파괴되고 민족경제가 파탄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남과 북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긴 63년의 휴전 상태에서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을 반복해서 겪고 있고, 국민들은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우수한 민족임에도 분단으로 인한 남북 간 적대적 대결과 최우선적 군비경쟁 때문에 경제·사회·문화가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70년 동안 남북 간에 적대감과 갈등이 반복되어 오면서 이제 휴전선은 단순한 휴전선이 아니라 세계에서 대량살상무기가 가장 밀집된 지역이 되었다. 국제전문가들은 최근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첨예한 대결 환경은 한반도가 언제든지 다시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남북 간 적대적 대결 강화는 분단을 강제한 외세에 서로 상대방을 의존시키는 결과를 심화시켜 왔다. 남북은 민족의 자주성을 상실하고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남은 미국과 일본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남북의 외세의존 심화는 동족 간 적대화와 대결을 더욱 고조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또한 동족 대신 이들 외세 지배 국가들이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우방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군사, 경제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 전범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후안무치하게도 위안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민족은 흰 옷을 즐겨 입는 평화민족이고, 분단의 아픔에서 이산가족 만남을 눈물로 그리워하고, 평화통일을 민족의 소원으로 말하면서도 왜 이런 비참한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형제자매 혈연간에 원수가 되고 외세에 의존해서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못난 민족이 되었나하는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남한은 분단으로 인한 휴전선 때문에 인공섬 같은 처지 안에 갇혀 대륙으로 뻗어나갈 비전도, 길도 가질 수도 없었다. 항상 안보 불안을 안고 생활을 해야 했고, 경제발전도 분단 리스크 및 분단 디스카운트 한계에 부딪쳐 왔다. 그리고 남북 적대화는 세계의 변화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했고 지속적으로 이념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세대들은 분단 이데올로기 의식에 갇혀 사상의 자유를 갖지 못하고, 국경 없는 세계화시대에 세계와 미래를 향해 자신들의 꿈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단현실에서 햇볕정책에 의한 6.15남북공동선언으로 그동안 막혀있던 땅길, 바닷길, 하늘길이 처음 열리고 부산과 목포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대륙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트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이 비전은 한반도가 중국대륙 끝에 혹 같이 붙어 있는 반도가 아니라 대양과 대륙을 잇는 새로운 관문이 되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웅대한 꿈을 키우게 했다. 이산가족 만남이 정례화되고, 경제협력과 다양한 사회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결과 남북 주민 간에 적대감이 해소되고 신뢰와 동포애가 싹텄다. 반세기 동안 적이 되었던 민족이 다시 동족이 되었다.
또한 남북 간 화해협력은 무엇보다 세계에 한민족의 자주적 통일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증진시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했던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는 국제적 신뢰 환경이 되었다. 국제 신인도 제고는 남한이 분단리스크와 분단디스카운트를 넘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했다.
특히 휴전선 동서접경지역 북한군의 최전방군사기지가 금강산관광지역으로, 개성공단으로 전환 되었다. 이것은 남북 간 경제적 상호이익만이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환경이 되었다.
햇볕정책은 안보를 뒷전으로 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대중대통령은 햇볕정책은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와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다른 한편 북한은 공산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이 1978년 30년 만에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했고, 구소련이 1985년 68년 만에 공산사회주의체제 막을 내렸기 때문에 이들 국가로부터 받아 온 사회주의 동맹과 형제국의 특혜가 없어져서 1980년대부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공산사회주의체제의 대표적 국가였던 이들 두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세계자본주의 시장체제에로 편입, 전환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서는 더 이상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곧 생존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경제가 국가단위 경제에서 세계시장체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국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세계시장체제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이런 세계사적인 변화를 외면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다가 1990년대 초부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식 사회주의경제의 한계 때문에 2000년부터 ‘배급체제’까지 중단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배급체제‘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회주의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결국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통해 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한 방안으로 ‘장마당’ 시장 활동을 허용하게 되었고, 이후 시장은 더욱 확대되어 현재는 북한 전 지역에 약 400개가 된다고 한다. 이제는 북한주민의 80% 정도가 시장을 통해 장사를 하거나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대외 무역의존도가 50% 가 넘어 이제는 고립경제가 아니라 대외개방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구조가 되고 있다.
북한은 이런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중국의 초기 개혁개방 때와 같이 2013년 자율경영체제를 도입해서 소득의 60%를 개인에게 주는 조치를 취했다. 가족단위로 땅 1000평을 주고 생산물의 40%를 국가에 내고 가족이 60%를 가지게 했다. 협동농장만이 아니라 기업소, 상점 등에도 같은 방침을 실시했다. 이런 방침들에 의해 북한경제는 과거보다 상당히 발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북한의 변화는 중국의 초기 개혁개방 단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이런 변화과정을 볼 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햇볕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면 북한은 보다 더 진전된 개혁개방 체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한층 안정되게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고, 남북관계는 더욱 신뢰와 평화적 관계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왜곡, 단절되고 남북 간 적대적 대결과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북 간에는 군비경쟁이 강화되었다. 남한은 지난 한해에 9조원이 넘는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등 수백 조원을 군비경쟁 강화에 사용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경제적,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비대칭전략 정책으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햇볕정책에 의한 퍼주기가 없었다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정치적 억지에 불과하다. 북한은 체제 안정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과 미사일 개발은 최우선적으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김대중정부 훨씬 이전부터 추진되었다.
북한은 그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 때문에 UN 제재까지 포함한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받았지만 이 제재는 별효과가 없었고 핵과 미사일 개발은 더 진전되었다. UN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북한제재는 실패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4차 핵실험 하고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에 정부는 과거와 다른 초강력 제재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에서 개성공단까지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개성공단 임금의 70% 정도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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