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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주년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식 - 토론회 ( 김동현 교수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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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당시의 회고와 잃어버린 기회


    오늘 6.15 남북정상회담 공동성명발표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통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시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미동맹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며, 나아가 다른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주도하면서,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합리적 소신으로 국민에게 큰 희망을 심어주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반세기동안 한미 두 나라 사이에서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김대중 정부와 빌 클린튼 정부의 임기가 겹치는 기간이 한미관계가 가장 좋았던 때였다. 6.15가 없었더라면, 2000 년 10월 얼브라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있을 수 없었다. 북한이 햇볕정책을 처음부터 환영한 것은 아니지만, 남북관계도 6.15 이후 김대중 정부 때가 가장 좋았다.


    2000년 6월 8일 김 대통령은 방북직전에 도쿄에서 클린턴과 만났었다. 그 때 클린턴은 이렇게 말 했다. "지금까지 대통령님이 살아오신 생애를 볼 때, 이 세상 모든 이 들 중에서 김정일을 설득하는데 가장 적합한 분은 바로 대통령님일 것,"라고. 클린턴은 이어서 "동북아지역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될 역사적 방문"이라고 평가하고, "대통령께서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들은 모두 잘 다뤄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지원과 신뢰를 아끼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방문을 닉슨의 방국방문에 비교하고,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북한에게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겠다고 했다. "평화를 위한 남북간의 협력이 성공하려면, 남북관계개선과 동시에 북미관계와 북일관계가 맞물려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이나 미국은 북에 대해서 절대로 무력을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 그러니 북한은 핵개발야심을 버리고 협상을 통해서 핵 문제를 해결하라. 만약 북한이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 때는 협력을 할 수 없게 된다" (회담이 끝날 무렵, 클린턴이 다음 APEC 정상회담 때, 김정일이 참석한다면, 큰 뉴스가 될 것이란 말도 했다)


    김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온 후 즉시,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방북성과를 직접 설명했고, 정상회담이후의 새로운 정세에 대한 동맹간의 협의를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황영탁 안보수석으로 하여금 미국에 가서 직접 클린턴 대통령에게 방북결과에 대한 Debriefing을 하도록 했다. 그 때 미국측의 Note-taker 였던 James Steinberg 가 지금 국무부 부장관이다.

    이제는 그동안 언론이나 저서들을 통해서 6.15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 그리고 막후에 얽혀진 얘기들이 모두 알려져 있다. 역사의 정리 차원에서 2000년 10월 얼브라트 국무와 김정일위원장이 만났을 때의 얘기를 잠깐하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께 한 핵심 내용을 확인했다. 김정일은 김대통령에게 말한대로 동아시아에서의 미군주둔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또 "남조선은 미국의 오랜 친구란 것을 잘 안다. 미국이 우리와도 친구가 되면, 미국에 입장에서는 옛 친구도 좋고, 새 친구도 좋은 것 아니냐?"

    심지어는 "우리가 아이들에 "미국 놈" 이라고 가르치는 데 이것도 잘 못된 것이다. 또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만날 하던 소리이기 때문에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일 없다. 우리는 미국이 동아시아 의 세력 균형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은 영토 야심이 없다. 조선은 역사적으로 주변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아왔다. 미국이 없으면 중국과 일본사이에 제패권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걱정한다.“


    "우리는 미사일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사일 수출은 외화 벌이를 위한 것이다. 이 문제는 미국이 협력해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설사 미국에 대고 한 방 쏴봤댔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히틀러 같은 자가 나오기 전에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미사일은 남조선에서 자꾸 개발을 한다니까, 우리 군대에서도 하자고 해서 한 것이다. 미국이 남쪽의 미사일 사업을 제한해 주면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


    김정일은 통일에 관해서 언급했다. "우리는 제도에 의한 통일은 반대다. 우리가 말하는 평화통일은 우리제도로 통일하는 것이다. 우리제도로 통일하면 중국이 좋아 할 것이고, 남조선 제도로 통일하면, 일본이 좋아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쪽의 제도로 통일하는 것은 반대한다."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에 관 얘기는 임동원 전통일원관이 쓰신 "피스메이커" 에 대화록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저도 김정일 위원장을 12시간이나 지켜봤고, 그의 말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피스메이커"에 나오는 대화록을 더욱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클린턴 대통령이 그때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더라면, 역사는 확 달라졌을 것이다. 클린턴은 김대통령의 권고와 자신의 참모들의 건의로 방북을 결심했었다. 부시와 고어 간의 대통령 선거결과의 확정이 대법원의 판결을 거칠 때 까지 1 달을 끌었기 때문에 가지 못하고 말았다. 한편 북한이 조명록 특사를 6개월만 일찍 워싱턴에 보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을 것이다. 클린턴은 부시당선자에게 방북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 때 부시는 반대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퇴임하기 직전에 김대통령께 전화을 걸어, 임기가 2주 밖에 남지 않아 못 가게 됐다고 하면서, 그 대신 김정일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고 김대통령에게 말씀드렸다. 이때부터 북미관계는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얘기도 역사가 되었다.


    제가 2005년 가을에 국무성에서 은퇴하고 서울에 나와 김대중 대통령님을 찾아갔을 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클린턴이 한국에 나왔을 때 김대중 도서관으로 찾아와, 자기가 임기 중에 북한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일러주셨다.


    한마디로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클린턴 때 그리고 부시아들 때도 미국이 김대중 대통령의 깊은 생각을 잘 따랐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남북간의 긴장이나, 전쟁위험도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보다는 미국과 협력하고 싶다는 김정일의 제의를 거부하고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추구해 오는 과정에서 결국 북한을 중국 편으로 몰아 부친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은 1차 남북정상회담이 가져다 준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력상 가장 큰 과오를 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정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원대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이었던 햇볕 포용정책을 제대로 발전 시켰더라면, 북한의 1.2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추가발사, 천암함 침몰 등과 같은 도발적 사건등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거두기 힘들다.



    천암함 정세와 남북, 북미관계의 전망


    오늘 이 시점에서 천안함 얘기를 안 할수 없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을 상대로 하는 대화의 외교를 침몰시켰다. 한미간의 협력은 북한에 대한 벌주기, 제재강화, 고립화를 추구하는 외교로 축소되었다. 천안함은 6자 회담재개의 외교도 잠복시켰다. 일각에서 6자 회담과 천안함 사건을 분리 취급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한국정부는 조사팀을 유엔 안보리에 보내고 조사결과에 대해서 이사국들을 설득하여, 안보리에서 추가적인 제재결의안이 어려우면,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정부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지가 없으면, 다시 말해서 북한의 입장을 중시하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규탄 성명에 대한 거부권행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유엔의 정치적 규탄 성명마저도 불가능해 진다. 중국은 미국과 한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전문가들의 현지 방문조사가 끝났는데도 다음 달에나 가서 결론을 내리겠다고 한다. 6월 10일 감사원의 조사발표로 조기대응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허위보고, 보고 지연도 문제지만, 레이다에 포착된 물체가 "새때"라고 발표하고 "새때에다 대고 함포사격을 했다는 코메디"가 조작으로 드러났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우선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문가들도 국제조사단에 포함시켰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 두 나라의 협력을 얻어 내기가 지금보다는 용이해 졌을 것이다.


    천안함 조사의 핵심체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법리적으로 말하자면, 범인의 확인, 범죄의 동기, 그리고 범행에 사용된 수단과 범행의 경과일 것이다. 합조단은 폭파원인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비접촉 수중폭파를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범행에 사용된 어뢰를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를 들어 북한의 잠수함이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뢰자체에 대한 의문들이 조사결과 발표 후에도 계속 제기됐고, 합조단은 제기된 의문들에 대한 해명을 하기에 바빴다.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을 사전에 검토하고 이들에 대한 답변도 조사 발표 시에 함께 했더라면, 문제는 덜 복잡해졌을 것이다. 미국은 조사결과가 "압도적이며, 강력한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범행 수단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확실하다고 해서 범인이 자동적으로 북한이라고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말고 이런 공격을 할 나라는 없다"는 인식은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과거의 범행기록은 새로운 범행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범행에 사용된 잠수함은 영상, 통신, 인간 정보 둥에 의해서 확고하게 파악된 것이 아니고, 북한의 어느 점수함 또는 잠수정이 기지항구를 출발하여 공해로 나갔다가 천암호가 있던 지역으로 침투하여 어뢰를 발사한 후에 같은 경로를 통해 도주했다는 추정이다. 즉 상황적인 증거다. 두 번 째 범죄구성 요소인 동기에 대해서 합동조사단은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북한 지도부의 어느 선에서 내려진 명령인지도 밝혀진 것이 없다.


    여론조사들에 의하면, 이런 조사 결과를 놓고, 국민의 60-70% 는 신뢰하지만, 야당을 포함해서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30% 가량이나 된다. 물론 신뢰 여부의 숫자가 진실을 변경시릴 수는 없다. 한편 여론의 반응은 세대에 따라, 이념에 따라,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북한은 물론 자국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가용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에 북한을 기소하는 검찰 역할을 한 셈이다. 유엔안보이사회는 판사의 역할이 아니라 배심원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미국식 재판은 배심원을 만장일치가 있을 때 피고의 유죄확정을 내릴 수 있다. 배심원 평결의 기준은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 (Beyond reasonable doubt) 다. 러시아가 100% 증거를 요구하고, 중국이 아직도 증거에 대한 의심이 간다고 하면 평결은 나올 수 없다. 한국 국민 중 상당수가 조사결과를 믿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도 그만큼 어려워 질 수 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는 국제 재판소가 아니다.


    따라서 천암함 문제는 증거의 과학성이나 법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군사적 문제다. 북한과 관련된 각국의 정치적 입장이 천안함 문제를 보는 기준이 된다. 군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표는 모두에게 뚜렷하다. 북한의 재도발을 막기 위한 응징차원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데도 이의가 없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게 되는 것은, 조사결과가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침몰원인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규탄내지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의 태도에 대해서 미국과 한국의 불만이 많다. 한편 중국은 한반도에서 사후 수습과정에서 긴장이 더 큰 무력 충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 분병하다. 미국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지난 24일 이명박대통령이 발표한 천안함 대응조치 중에 군사적 응징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환영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대응을 신중하게 절제된 대응이라고 표현했다.


    주어진 시간이 다 되서, 결론적으로 몇 가지 전망을 해보고 나중에 질문이 나오면 보충 설명 하도록 하겠다.


    1) 한국, 북한, 미국이모두 "기다리는전략"을이행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내부 사정이 경제위기, 승계 문제 등으로 더욱 악화되고, 급변사태나 붕괴에 대한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판단에 고무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개방 300 이란 선핵포기, 후 경제지원의 원칙을 지켜나면 된다는 것이다. 붕괴될 때 까지 북한 문제를 동맹협력으로 관리하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정부처럼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한이 북한의 몰락을 기다린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도 그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기다리는 전략 "Strategic Patience" 는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데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그 기다리는 전략의 내용이 변해가고 있다. 워싱턴도 서울처럼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도외시 하지 않는다. 북한이 자신의 내부사정이 어떻든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서 오판을 했고, 작년 4월 로켓트 발사, 2차 핵실험 등을 감행함으로써 북미관계를 어렵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 행정부 안팍에서 대북강경기조가 굳어지는 이유 중에는 김정일 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서울정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MB-Obama 관계 포함) 미국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6자를 통한 비핵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도 기다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나? 한편으로 국내 경제문세 해결과, 승계체제를 굳혀가면서,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북한은 한다고 했다가 안 한것도 있고, 안한다고 했다가 하는 것도 있고, 한다고 했다가 하는 것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지켜질 것 같다.


    2) 전면전은 나지 않는다. 또 다른 해상 충돌, 휴전선 교전, 시한적 국지 전의 발생은 가능하다. 미국이 전면전을 준비한 적은 휴전 이후 두 번 있었다.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때와 1994 봄 1차 핵 위기 때. 그러나 그 때마다 방어적 전쟁준비였다. 선제 공격은 고려했지만, 계획한 적은 없다. 안보관리를 위해서 미국은 한국정부가 원하는 대로 전시작전권의 이양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3) 남북한의 3차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북이 다 같이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MB 에 대한 김정일의 감정이 나빠졌다. 자존심이 상할 때로 상한 김정일이 작년 DJ 조문 때 보였던 그런 화해적 움직임은 다시 보일 것 같지 않다. 부시 아들과도 감정이 처음부터 좋지 않아 부시 임기중에는 비핵화의 핵심적 타결을 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4)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내 추측이 틀리기를 바란다. 원칙과 실용 중에서 "실용"은 떼어 버렸다. 원칙은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임기 중 남북관계를 어느 수준까지 끌고갈 지에 대한 목표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2년 반 후에 어느 수준으로 남북관계를 다음정부에 인계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5) 어떻게 하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할 수 있을까? 야당, 재야, 진보세력의 요구나 건의로는 먹힐 것 같지 않다. 6월 지방선거 효과도 대북정책 전환에는 힘이 미치지 못한다. 설사 7월에 국회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또 패한다 해도, 핵심 대북정책 세력들이 물러 설 것 같지 않다. 오바마가 MB 를 설득한다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국내적으로, 또는 동맹들로부터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는 한, 오바마가 나설 가능성도 별로 없다. 미국이야 말로 북핵문제의 해결보다 관리국면으로 돌입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6) 확실한 대북정정책의 전환점은 남한의 정권교체와 함께 온다. 북한은 권력승계 후에도 대미대남 정책이 크게 변할 것 갖지 않다. 다만 북한이 망하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붕괴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철저한 보안 속에 만일의 사태를 위한 대비책을 강구하는 한편,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 한국이 주변 국가들과 협력하기도 용이해 진다. 남북관계가 계속 얼어붙고, 긴장고조와 무력충돌 등으로 안보불안 심리가 국민들간에 생기게 되면, 다음 총선과 대선은 안보잇슈가 중요한 선거 쟁점으로 등장할 것이다.


    7)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상대방에 한 안보위협측정은 능력과 의도를 합친 것을 말한다. 최소한도 햇볕정책이 적용되는 기간 중에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느낄 수 없었다. 포용정책을 실천한 지난 정부들은 교류협력이 곧 평화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군사대결은 비용이 많이 드는 억지력의 강화를 요구한다. 경제적으로도 남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보불안이 심화되면, 국제 신인도에 역향을 주고, 경제회복, 성장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세력이 집권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국과의 협력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역사가 보여 주듯, 어느 당이건 집권하면, 그 정권과 협력하게 되어있다. 한나라당이 재집권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민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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