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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일[슈피겔] 번역내용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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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주간지 <슈피겔>지 보도(2009. 6. 2), 빌랜드 바그너 기자

※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23일 동교동 사저에서 약 1시간 동안 이루어진 내용이다.

김정일의 벼랑 끝 핵전술

한반도의 새로운 냉전

한때 한국은 북한과의 화해를 통해 독일 통일과 같은 결과를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북한 정권이 핵으로 무장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는 점점 요원해지는 모습이다.

그는 오래 서 있기 힘들어 보이는 노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절대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는다. 몇 일전 그는 북경에서 중국 지도자들을 만났고, 전 미국 대통령이자 현 미국 국무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했다. 한국의 큰 원로인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그러한 만남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다. 동아시아의 위기 고조는 그를 많이 걱정케 했다.

김 전대통령은 슈피겔을 서울의 자택으로 다시 한번 초청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봐야한다는 긴급 호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걱정거리가 많고 걱정도 깊다. 지난 주 북한 지도자 김정일은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 “강력한 군사적 공격”으로 남한 이웃들을 협박했다. 북한은 1953년 양국간 서명한 남북 정전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또한 핵프로그램을 포기시키려는 미국의 노력도 전쟁 선포로 간주하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김 전대통령은 그 정도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평양의 김정일과의 협상에 관한 한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그의 사저에서 김 전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 사진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한 사진들은 남한의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반체제인사로써 겪어야 했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납치되었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1998년 한국의 민주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무너지는 유산

눈에 띄게 큰 사진이 그의 안락의자 뒤쪽 벽에 걸려있었다. 바로 노벨평화상 시상식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그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화해 정책으로 2000년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 몇 달 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김 전대통령은 과거 서독의 동방정책에 영감을 받았다. 동방정책은 1969년부터 20년 동안 서독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었고 공산권이었던 동구권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한 정책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김 전대통령을 “한국의 빌리 브란트”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돈독히 잘 지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와는 달리, 김 전대통령은 그가 남긴 업적들이 와해되고 오랜 숙원인 분단 조국의 통일이 점점 멀어져만 가는 현실을 지켜봐야 한다.

지난 주 월요일(5/25) 김 전대통령이 오랫동안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던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지하 폭발은 3 년 전 1차 핵실험 때보다 20배나 강력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폭발력은 2차 대전 말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이웃 중국에서도 진동이 매우 강해 주민들은 지진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공포에 질린 교사들은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정치적 여진이 서방 세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최근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했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 평화 위협”이라며 북한을 비난했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 조차도 김정일과 핵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4월 중국은 김정일이 장거리 미사일을 일본 영공 너머 태평양으로 쏘았을 때 김정일을 실질적으로는 변호했었다. 러시아와 함께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제제를 촉구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반대한 바 있다.

너무 멀리 가지 말길

이번에는 유엔 안보리가 전에 없이 신속하고 단결된 태도로 핵실험을 실험 당일 비난했고, 비탈리 처킨 현 안보리 의장겸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새로 “강력한” 결의안 준비 수순을 밟고 있다. 모스크바 관리들은 놀랍게도 북한이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분명한 경고를 발표했다.

세계는 놀라고 말았다. 믿지 못하겠다는 심정과 우려가 섞인 가운데 북한이 군사적으로 수위를 올려가는 행동을 며칠간 지켜보았다. 핵실험으로부터 단거리 미사일 발사, 급기야 영변 핵재처리 시설 재가동이 의심되는 상황까지 말이다. 이런 것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알맹이 없는 수사일까? 아니면 김정일은 정말로 핵으로 날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일까?

미국과 한국은 군사 대응 태세의 수위를 올림으로써 위협에 대응했다. 그리고 북한의 장성들은 폭탄 제조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전 세계는 재연 상황을 목격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북한 지도자는 이를 수년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북한이 먼저 힘자랑을 하면 세계는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효력은 별로 없었다. 굶주린 국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특히 중국이 북한을 살려주는 한 그랬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수개월 뒤 마주앉아 수십 년 묵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나섰다. 북한 정권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어떤 경제 지원과 생존의 보장을 받은 것인가?

한국의 평화의 상징인 김 전대통령에게 지금 이 상황은 어떤 데자부의 느낌을 주고 있다. 1994년 그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에 오일과 경수로를 제공하겠다고 합의한 것을 보았다. 그 대가로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기로 했다.

오바마에 대한 "실망"

클린턴의 후임인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김정일을 “난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결국 부시는 “경애하는 위원장”으로 호칭을 바꾸고 경제 원조와 외교 관계 수립의 가능성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핵 프로그램 포기 합의를 받았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김정일은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 파괴를 지시했다. 이는 상징적인 제스처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지난 가을 부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 정부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의 세부사항을 공개토록 하는 데 실패했다.

김 대중 전대통령은 김정일이 핵 카드를 들고 벌인 행동들의 대부분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마치 김정일의 속마음을 아는 듯한 김 전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북한 독재자는 오바마에 실망했고, 필요한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김 전대통령은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동, 이란, 러시아, 심지어 쿠바에 까지 집중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전담 전문가를 지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일은 많이 서두르고 있다. 최근 뇌졸증 회복이 놀랍도록 빠르기는 하지만, 인민복장의 이 독재자는 신이라도 된 듯이 인민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데, 현재는 너무나도 일신의 끝이 보인다고 느끼고 있다.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 절실한 시기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구 강대국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김 전대통령은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그는 현재 초조하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권력 승계 과정은 수뇌부에서 정해진다. “경애하는 지도자”인 김정일은 최근 매제 장성택을 국방위원으로 임명했다. 국방위원회는 정부의 최고 행정 조직이며 김정일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유사시 장성택은 김정일의 막내 아들 정운의 섭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망한 부인 고영희와 김정일 관계의 산물인 그는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서구 팝 스타의 팬이기도 하다. 헐리우드 영화 수집광이었던 “경애하는 지도자”는 정운이 가장 그와 닮았다고 보는 듯 하다.

유리된 관점 (detached view)

북한에서 최근 나오는 협박들은 인력 쇄신을 위한 군대의 배경음악, 또는 잠재적인 정적에게 던지는 경고로 볼 수도 있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로켓 발사 이후 잠시 동안 북한은 권력을 재배치했다. 이 때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수임하였다. 그 때부터 4년 전 사망한 그의 부친은 북한의 영구 주석이 되었다.

하지만 이때 작은 북한은 중국과 미국을 다루는 데 더욱 대담해졌다. 워싱턴과 북경의 태도는 바뀌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단순히 정권의 생존과 미국으로부터의 경제 지원을 보장받기 위해 돌리는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러한 유리된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다.

대신 정치학자 윤덕민 박사는 북한은 새로운 핵보유국으로써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철을 따르면서 이란 같은 나라나 테러조직에게 무기를 넘기지 않을 정도의 가격을 놓고 협상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아시아의 자랑스러운 새 핵보유국인 북한이 최근 북경의 6자회담에서 공식 탈퇴를 선언하고 대신 미국과의 양자 협상을 갖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6자회담은 남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며 2003년 이후 북한 핵 프로그램의 종식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 왔다. 이 6자회담의 수혜자는 두 국가뿐이다. 하나는 중국으로써 지금까지는 아시아의 우세한 권력과 스스로를 분리시켜 왔다. 다른 하나는 물론 김정일이다. 그는 핵의 야망을 쫓아갈 귀한 시간을 확보하는 데 회담을 활용했다.

베이징은 우방인 김정일이 그 만의 어젠다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인심좋게 허용함으로써 초래한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북한 정권이 최근 실시한 핵실험은 숙적 일본으로 하여금 위성이 지원되는 미사일 방위 시스템을 확대하도록 부추킬 뿐이다. 미사일 방어막은 점점 강대해지는 중국을 겨냥한다.

냉전으로의 회귀

현 상황은 한반도의 호전적인 형제들이 냉전의 긴장상태로 회귀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도 이 그림에 잘 들어맞는다. 김 대중 전대통령은 그와 견해를 같이 했던 사람의 처절한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노 전대통령은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막다른 곳으로 몰렸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보수 정권이 그가 남긴 데탕트 정책을 와해하려는 움직임에 심하게 절망했을 것이다. 그가 재임했던 동안 노 전대통령은 북한 지원에 수십억 달러를 썼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이 청와대를 차지했다. 현대 그룹 사장 출신인 그는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북한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북 정책을 취하고 있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쌀과 비료를 주는 대신 이 대통령은 원조물자의 투명한 사용을 확실히 보장할 것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와 같은 ‘오는 게 있어야지 주는 것이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무효, 무위

한국의 불도저는 강경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 비단 그의 정치 지지자들만 지지한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지난 해 북한 관광지인 금강산에서 한국인이 피격당한 이후 냉랭해졌다. 이 사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대북 관광 사업을 중단하였다.

이제 북한 정부는 국가 화해의 두 번째 상징이었던 개성 공단 중단으로 협박하고 있다. 이 공단에서는 남한의 기업인들이 진출하여 “경애하는 지도자”의 인민의 손으로 신발과 옷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인건비는 남한의 1/10 정도다. 북한은 개성과 관련된 모든 합의를 무효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햇볕 정책 주창자인 김 전대통령이 이 자본주의적 실험을 주관한 주요인물이다.

하지만 독재자 김정일은 남한에서 오는 돈보다 정권의 생존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하다. 그는 전열을 가다듬어 결속하고, 남한에서 오는 사상적 영향을 차단하고 싶어한다. 그는 작년 한국과의 관계를 담당했고 화해 정책 주창자였던 최승철의 처형을 명령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짐들이 어두운 대도 불구하고 한국의 “빌리 브란트”는 그의 낙관론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김 대중 전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궁극적으로는 평양과 협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과 중국이 한국 정부를 설득하여 대북 햇볕 정책을 다시 실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 전대통령은 결국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