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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대중 대통령 주요저작(퇴임 후 활동)
 
2009년 5월김대중 전대통령 목포 지역인사 만찬 말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997  

김대중 전대통령 목포 지역인사 만찬 말씀

“나라 일 걱정 많아...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할 것”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포와 신안, 무안에서 오신 여러분!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고 두루 건강한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또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신안군 하의면, 그 당시는 무안군이었습니다, 후광리에서 태어나 13살까지 거기서 살았습니다. 다시 목포에서 10여년 살다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오늘이 있기까지 과정을 보면 우연이랄까, 기구한 일이 많습니다.

운명의 기회 만들어준 부모의 은혜

저는 어렸을 때 서당에 다녔습니다. <덕봉서당>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여기에 초등학교가 생겼으니 네 동생 입학시키려 가는데 너도 구경 가자”고 했습니다. 하의면에 있는 초등학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안에 들어가시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밖으로 나오신 아버지는 “2학년도 들어올 수 있단다. 넌 2학년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뒤 목포로 가서, 초등학교, 상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 인생을 볼 때 만일 그날 아버지가 2학년으로 입학을 안 시켰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생각해보면, 정치에는 관심 있으니까 신안 시의원쯤 돼서 군수에게 따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당시 하의초등학교는 4학년까지밖에 없어 공부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더러 “저애가 공부를 잘 하니 이대로 썩히기가 아깝다. 재산 모두 팔아 목포 가서 밥장사라도 해서 가르치자”고 말해 합의가 됐습니다. 그래서 동네선 괜찮은 살림살이를 모두 처분하고 목포에서 <영신여관>을 사서 운영했습니다. 역시 어머니가 그렇게 안 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 은혜가 여러가지 있지만 결정적인 운명의 기회로 만들어줬다 생각합니다.

목포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사업을 계속했는데, 부산 정치파동이 일어났습니다.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빨갱이로 몰아 강제로 잡아넣고 대통령 재선에 나섰습니다. 국민들이 공산당과 싸우는데 대통령은 뒤에서 독재나 하고 ‘국민들이 공산당과 싸우는 의미가 뭐냐? 이래선 이 나라가 안 되겠다’ 싶어 정치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어려움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국회의원에 4번 낙선했습니다. 한 번은 당선되자마자 5.16 쿠데타가 일어나 그 국회의원도 못 했습니다. 정치하는 동안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형언도도 받고 감옥살이도 6년반, 망명도 2~3년, 20년 동안 연금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굴치 않았습니다.

“역사와 국민 마음속에서 살겠다”

사형언도를 해놓고 신군부가 저에 게 “협력하면 살려주겠다. 당신을 이대로 놔두고선 안 되겠다. 타협해서 살든지 죽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듣지 않자 “좋은 자리 보장할테니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제안을 거절하면 죽을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 제안을 거부하면 역사 속에서, 국민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타협하면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와 국민 속에 사는 걸 택하겠다. 나를 죽이시오. 죽는 건 두렵지만 국민 버리고 역사 속에서 비판받는 정치인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협력을 요구했지만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때 전 세계기 들고 나서서 제 목숨을 살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계엄령 하에서 말 한 마디 못하고 언론은 정권이 쓰라고 하는 대로만 쓰고 했을 때입니다.

그래도 저는 굴치 않고 계속 노력해서 국회의원을 6번 했습니다. 6번 중 한 번은 된 건지 안 된 건지 모릅니다. 당선돼서 이틀만에 쿠테타가 일어나 국회가 해산됐기 때문입니다. 그것 포함해서 6선이라고 하니까 당선된 건 당선된 것 같습니다.(웃음)

대통령도 되고 노벨평화상도 받고 정치학박사도 정식으로 받고 이렇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박해 속에서 싸울 때 저를 굳건히 뒷받침해주신 여러분 은공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특히 호남지역에서 안 도와줬으면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못 됐을 것입니다.(박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정치 생활에서 3가지 문제에 대해서 저의 혼신의 노력 다해서 지키려고 했다. 첫째는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저는 생명도 내놓았습니다.

‘잃어버린 10년’ 얘기는 정말 잘못 됐다

둘째는 제가 집권해서 바로 외환위기 터졌는데, 외환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제가 대통령됐을 때 국고엔 37억달러밖에 없었습니다. 1년안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500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나는 “이 위기를 1년 반에 해결하겠다. 나를 믿고 함께 나가자”고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여기에 국민이 호응해서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에 나서고 여러 어려움에서도 저를 도와줘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야당의 어떤 분이 “1년 반 만에 해결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는데, 그 양반 아직 손에 장을 안 지졌습니다.(웃음.)

은행, 기업들이 총체적으로 부실했습니다. 정부의 관권이 작용해 기업과 정부와 결탁해서 정치자금 안 받치면 기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금융기관은 속이 텅 비게 됐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30개 재벌 중 16개 재벌이 문을 닫거나 해체됐습니다. 금융기관도 과감하게 없앨 것은 없앴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은 부실기업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부채비율이 자본금에 비해 400%, 즉 4배나 됐는데 지금은 100%밖에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하기 때문에 외국 전문기관들도 한국경제는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10%의 부실대출 갖고 있던 금융기관은 이젠 1%밖에 안 갖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이 다 튼튼해서 오늘날 이런 경제대란에서도 그래도 버티는 것입니다.

당시 37억 달러밖에 없었는데 제가 퇴임할 때 국고에 1400억달러를 내주고 나왔습니다. 한국경제의 기본이 튼튼하다 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에 경제계와 금융계, 또 열심히 수출하고 돈 벌었기 때문에 오늘날 경제가 튼튼한 것입니다. 제가 1400억불 넘겨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1200억불을 보태서 2600억불이 됐습니다. 37억불이 10년만에 2600억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이 ‘잃어버린 10년’ 얘기하는데 정말 잘못 된 것입니다.

지난 10년 안심하고 살아왔다

셋째, 저는 남북문제에 대해서 하나의 평생의 숙제로써, 민족이 화해협력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자 김정일 위원장에게 바로 대화 요청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의도를 의심하고 응하지 않다가 2000년 6월 15일에 만났습니다. 저는 첫 마디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없다. 우리 둘은 남과 북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데 우리가 마음 한번 잘 못 먹으면 7천만 민족이 공멸한다. 반대로 민족 앞에 바른 생각으로 하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조국을 후세에 넘겨줄 것이고 역사 속에서 후세들에게 감사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 당연히 우리가 서로 협력해서 다시는 전쟁 위협 없이 평화적으로 모든 걸 해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그 당시 독일의 흡수통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나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통일은 양쪽이 안심할 때 하자. 단계적으로 하자.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원칙하에, 1단계 연합, 2단계 연방, 3단계 완전통일, 윈-윈, 공동승리의 통일을 하자. 하나가 승리하면 상대방은 파멸시키는 통일은 우리가 할 게 아니다. 그건 평화통일이 아니다.” 이 말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미제 앞잡이가 돼서 쳐들어온다고 국민 전체가 뇌리에 박히도록 듣고 있었고, 독일이 흡수통일하니까 남한도 흡수통일하려는 거 아니냐 하는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둘이 말 잘 돼서 여러가지 합의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난관은 뭐였냐 하면 김 위원장이 서울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우리가 왔으니 당신 쪽에서도 와야 할 것 아니냐”고 하자, 김 위원장이 “도저히 갈 수 없다.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여기서는 국가원수니까 김영남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회담은 당신 국방위원장과 나와 했는데, 당신이 북한에선 최고 지도자인데 남한 국민이 환영하겠느냐, 큰 노여움을 느낄 것이다. 도저히 그런 합의는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마지막으로 제가 화를 냈습니다.

“여보시오. 김 위원장! 내가 듣기에는 김 위원장은 노인을 존중하고 아버지에 대해 효도했다는 말 들었소. 늙은, 당신보다 나이 많이 먹은 내가 찾아왔는데 당신이 못 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때서야 김 위원장이 자기 의견을 굽혀서 오겠다는 의사를 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전라도 사람이라 고집이 그렇게 세냐”고 했습니다.(웃음) 나는 김일성 주석이 전주 김씨라는 걸 알고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김해 김씨니 경상도 사람이고, 당신이 전주 김씨니 당신이 전라도 사람이다”고 해서 박장대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의가 되고 10년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 아이들 군대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했습니까. 그러나 그런 걱정안하고 사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우리가 위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압박받고 있다고 듣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그리고 남북문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후보 당시 저를 찾아와서 얘기했습니다. 남북문제에 대해, 햇볕정책에 대해 얘기하는데, 비서들이 세어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5번이나 당신과 똑같다, 동감한다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원만히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주위 사람들이 유신시대, 그런 시대에서부터 일하던 사람들이 많아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하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화를 안 하고 이렇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지만 기다리면 되느냐? 관광객 붙들어놔도 속수무책, 현대직원 잡아놔도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해도 속수무책, 이렇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게 돼 있습니다. 첫째는 북한이 만일 남쪽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실천하겠다고 하면 대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제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임기의 반을 클린턴 대통령과 상대하고, 반은 부시 대통령과 상대했습니다. 정반대의 분들을 상대한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제가 백악관에 가서 회담할 때 저보고 당신이 말하는 햇볕정책이 뭐냐고 물어 제가 “마치 태양이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햇볕을 보내듯, 북도 남도 다 같이 그런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적으로 같이 살다가 이만하면 됐다 할 때 통일하자, 절대 전쟁은 반대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신 생각을 지지한다. 당신이 운전석에 앉으면 나는 조수가 돼서 당신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클린턴과는 서로 호흡이 맞아서 북미 문제가 잘 풀려갔습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한 적이 있다

여러분 중에 북한이 지금 핵을 갖고 있는데, 도저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들 있는데 북한은 한 번 핵을 포기했습니다. 제네바 협정에 의해 핵을 포기했는데, 부시 대통령 시대 들어와서 핵 포기 대가로 해주기로 한 경수로도 안 해주고 경제지원도 안 해주면서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북한 정권을 교체시키는 말까지 했습니다. 북한을 극도로 긴장하고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어떻게 됐습니까? 북한이 NPT 탈퇴했습니다. IAEA 감시원을 추방시켰습니다. 대포동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건 다 클린턴 대통령이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다 해결했는데, 북한이 약속을 이행 안 한다고 불만을 표시하면서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오늘날 북한에 핵을 갖게 만들고 장거리 미사일을 더 발전시키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의 대북정책은 부시 정책식이 아니라 클린턴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볼 때 북한이 로켓을 발사해서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의장 경고 성명도 나오고 약간 경색됐지만, 결국 북미대화가 열려 모개흥정으로 갈 것이라고 봅니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 합의로 돌아가자

이것은 이미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합의를 했습니다. 첫째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 둘째 미국은 북한과 국교를 맺는다. 셋째 미국과 북한과 협력해서 한반도 평화협정 맺는다. 넷째 미국은 북한에 대해 식량과 기름을 원조한다. 다섯째, 이 모든 것을 서로 주고받기 하고 서로 동시에 책임을 지고 시행한다(행동대 행동)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정권은 클린턴 국무장관 말대로 “우리는 북한이 핵을 완전 포기한다면 국교정상화한다. 한반도 평화협정도 맺겠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9.19 선언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국은 해결될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북한과 대화로 모든 걸 풀기로 결심하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이 부당한 일 하면 쉽게 받아주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핵과 미사일 만들어 보았자, 미국의 핵과 미사일 앞에선 아주 빈약한 것입니다. 북한이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데 한두 해 아니고 긴 세월을 국민들이 계속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핵무기가 밥 먹여줍니까, 미사일이 집을 지어줍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 만들자, 합법적인 핵 보유가능국 5개, 즉 미국 영국 프랑스서 중국 러시아, 모두 다 핵을 없애자"고 선언했습니다. 참으로 획기적인 용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5대 강국이 핵을 포기했을 때 다른 나라가 핵 갖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명분과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북핵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되게 돼있는데 남북간만 지금 경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개성공단은 아주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행히 보니까 통신(뉴스) 들어온 걸 보니 이명박 정권에서 북한이 제의한 걸 포함해서 대화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고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협의해서 모든 남북문제가 풀리길 바랍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얘기하면 오해도 풀리고 서로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기고, 모처럼 만났는데 민족 앞에 깨고 싸우고 갈라질 순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대화를 직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6.15, 10.4 두 개 선언의 이행을 다짐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나라의 이름으로 약속한 걸 후임 대통령이 뒤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누가 국제적으로 신용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첨가하고 싶은 건, 햇볕정책 두고 퍼주기다 이런 말 하는 것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 독일은 통일하는데 20년 동안 동독에 600억불, 매년 평균 32억불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1억 5천만불, 국민 1인당 5천원 정도 주었습니다. 독일은 많이 줬으니까 공산당이 세졌다면 동독 공산당이 서독 흡수할 정도 됐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동독 공산당은 서독이 돈을 줄수록 동요했습니다. 동독 국민들이 서독을 알게 되고 서독 잘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들이 지옥에서 산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동독 국민들이 일어나서 베를린 장벽 무너뜨리고 서독과 통합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압박 갖고 해결 안된다

공산주의는 압박 갖고 절대로 해결 안 됩니다. 소련을 미국과 서방이 50년 압박했지만 변화 없었습니다. 그러나 헬싱키 조약을 맺고 상대방을 보장하고, 경제협력하고 특히 인적왕래와 문화교류를 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에 “우리가 사는 곳이 낙원이 아니지 않느냐. 서방세계가 지옥 같다더니 오히려 낙원 아니냐” 하면서 불만이 퍼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주장했고 결과는 민주주의로 연결됐습니다.

우리는 북한하고 협조하고 대화하고서 평화를 유지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개성은 서울을 공격하는 직선타격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거기에 있는 군대를 이동하면서 우리에게 개성을 넘겨줬습니다. 금강산은 해군 군항을 폐쇄하고 우리에게 넘겼습니다. 대신 북한은 금강산은 관광요금 받아 돈 벌고, 개성공단은 우수한 노동력 보내 공장 건설해 돈 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지금 우리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있고, 남쪽의 TV 드라마라든가 영화를 비공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남한에 대해 동경심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우리가 지금 앞으로 발전해나가자면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나가야 하는데 배로 가는 길, 하늘로 가는 길은 열었지만 육로를 못 열었습니다. 북한을 통과해 가야 하는데 철도 연결이 안 됐습니다. 이걸 해결해야 세계에 육해공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중앙아시아 같은 노다지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수한 노동력, 저렴한 노동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중소기업이 북한에 들어가면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고, 북한도, 우리도 좋은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6.15, 10.4 선언을 인정하고 이행을 다짐하시오”

전쟁하면 파멸입니다. 유엔군 사령군에서 추계한 걸 보면 전쟁 시 하루 사이 서울 주변서 150만~200만 사상자 생긴다는 것입니다. 핵무기 안 써도 장사정포와 미사일은 부산까지도 가고 일본도 갑니다. 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화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 그걸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정부가 가야 한다고 나는 누차 얘기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 지금 방침을 상당히 전진시켜서 북한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건의하고 싶은 것은 “6,15 10.4 선언을 인정하고 이행하겠다는 것을 다짐하시오. 그걸 하기 전에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선언들은 하나도 나쁜 것이 없습니다. 정부 사람이 변명하는 걸 보면 10.4 선언은 여러 사업을 나열해놔서 그걸 감당할 재원이 없다고 하는데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서 북한과 “이것들은 타당성이 없다. 혹은 돈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잘못하면 큰 민족적 불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 때 우리 정부가 하루 속히 북한과 대화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일 걱정 많아...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5년 정권 맡긴 이상 잘 해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이명박 대통령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더 잘 해서 정권을 찾아오면 됩니다.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 위해 가장 열성적으로 한 지역이 이 지역 아닙니까?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수고해주십시오. 그리고 경제가 대기업만 중시하는 경제로부터 서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가 돌도록 주장해야 합니다. 정부에 대해서 어떤 일 있어서도 전쟁해선 안 된다,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이 민족이 앞으로 공존해서 살아가면서 교류협력하다가 통일하자, 이 기류 바꿔선 안 된다고 주권자로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여러분 머슴인 대통령과 정부에 요구해서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기대 부응하는 정치하도록 여러분께서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건강은 대체로 양호합니다. 신장병을 앓아 일주일 3번, 한번에 4시간 반씩 투석치료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나라 일 생각하면 걱정이 많습니다. 무슨 일 할 역량은 없지만 걱정은 안 할 수 없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도 가고 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달 초면 중국 가서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작정입니다.

진지하게 나라 걱정하는 얘기하고 우리 마음 하나로 합치는 계기가 되는 걸 기쁘게 생각하고 앞으로 매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 저에 대해 따뜻한 성원 계속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