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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대통령, ‘신한일관계 선언’ 10주년 맞아 특별연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998  
[보도자료]
김대중 전대통령, ‘신한일관계 선언’ 10주년 맞아 특별연설
김대중 전대통령은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주최로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 10주년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일, 동북아 그리고 동아시아>를 주제로 특별연설을 했다.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은 김 전대통령이 재임중인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정상회담을 갖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한일간 미래지향의 신시대를 천명한 공동선언이다.  
심포지엄에는 한국측에서 이기수 고려대 총장, 주일대사를 지낸 최상용 고려대 교수와 나종일 우석대 총장, 최관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일본측에서는 가토 고이치 의원,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법대학장 등 양국의 정관계 인사, 연구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故 오부치 총리의 영애인 오부치 유코 의원(현재 일본 정부의 저출산 담당 장관)은 서면으로 기념연설을 했다.
김 전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1998년 10월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오부치 수상은 일본의 역대 총리가 주저하고 꺼려하던 한국에 대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으며, 그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대통령은 당시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 호응해 “한일간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의 신시대를 열 것을 선언했고, 국내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는 “한일 양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실되고 열린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 전대통령은 “그후 계속되는 일본 내에서의 역사왜곡 언동은 사태를 다시 역행시키는 조짐을 보여왔다”며, “일본은 독일의 선례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대통령은 “독일은 과거를 분명히 사과·보상하고 역사를 똑바로 기록하고 국민을 교육시킴으로써 주변 국가는 물론 세계의 신뢰를 얻어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일본도 과거사에 대해서 오부치 수상의 정신과 용단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되며, 오부치 정신을 실천했을 때야말로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세계무대에서 더 한층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2000년에 걸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고, 양국의 우호친선과 협력은 숙명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와 관련,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6자회담을 성공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 북한 핵문제는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더한층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하고, 반대로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의 성공이야말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와 관련해서 김 전대통령은 “동아시아가 균형있는 지역공동체로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ASEAN 각국이 안심할 수 있는 한일중 3국의 성의있는 조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지역적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대통령은 “10년 전 오부치·김대중 공동합의에 의한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 정신에 입각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 지향의 신시대를 여는데 일어서자”고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편 김 전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앞서 10월 7일(화) 방한중인 故 오부치 총리의 미망인인 오부치 치즈코 여사를 동교동 사저로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 했다.
<첨부> 김대중 전대통령 연설문 전문

2008. 10. 8.

김대중 전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최 경 환
(문의 : 324-7972)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 10주년 심포지엄 김대중 전대통령 특별연설문]
(2008. 10. 8(수), 서울 프라자호텔)                
한일, 동북아 그리고 동아시아
존경하는 이기수 총장, 최관 소장, 존경하는 가토 고이치 의원,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 오코노기 마사오 학장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내외 귀빈과 참석자 여러분!
먼저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 10주년’을 맞이하여 오부치 前 총리의 명복을 빌면서 저를 이 자리에 초청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은 계속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저는 19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그해 10월 일본을 국빈방문 했습니다. 그리고 오부치 수상과 더불어 한일 신시대를 여는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정상회담은 한일관계 역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가장 큰 공로자는 오부치 수상이었습니다. 오부치 수상은 일본의 역대 총리가 주저하고 꺼려하던 한국에 대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각국과 세계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여기에 호응해서 한일간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의 신시대를 열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을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한일 양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실되고 열린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부치 수상의 너무도 빠른 서거로 한일 양국관계의 개선은 타격을 면치 못했습니다. 특히 그 후의 계속되는 일본 내에서의 역사왜곡의 언동은 사태를 다시 역행시키는 조짐조차 보여 왔습니다.
저는 강조하고자 합니다. 일본은 독일의 선례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2차대전의 피해국가에 대해서 과거를 분명히 사과·보상하고 역사를 똑바로 기록하고 국민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주변 국가는 물론 세계의 신뢰를 얻어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도 과거사에 대해서 오부치 수상의 정신과 용단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부치 정신을 실천했을 때야말로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세계무대에서 더 한층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일 양국은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걸친 교류의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이나 문화도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안정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우호친선과 협력은 숙명과 같은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발전을 위한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6자회담을 성공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저는 1998년 2월부터 5년간 대통령 재임 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을 상대해서 한반도 평화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저는 북핵문제 해결의 원칙으로서 ‘햇볕정책’을 제시했습니다. ‘햇볕정책’은 따뜻한 태양의 빛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감싸듯이 남과 북을 다 같이 화해 협력의 길로 유도하여 공동의 이익을 얻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이 공산국가인 중국이나 베트남에 대해서 화해 협력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듯이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의문의 여지없게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무기와 자료를 공개하고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저의 ‘햇볕정책’을 수용하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핵, 미사일 문제 해결이 거의 성공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나 마무리 짓기 전에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버렸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서 집권한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악을 행한 자와는 대화도, 보상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시 대통령의 6년 동안 북핵 문제는 경색상태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북한 핵을 감시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요원을 추방시켰습니다.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깨고 이를 발사했으며 마침내는 2006년 10월 핵무기 실험까지 강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막다른 길목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전쟁을 할 수도 없고, 그 동안 추진해온 경제봉쇄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6자회담이 구성되어 북한과 대화하고 주고받는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클린턴 대통령과 제가 추진하던 그 길인 것입니다. 저는 늦었지만 부시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정책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자회담은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0년 6월에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의 활로를 여는 길은 미국과의 관계개선뿐이라는 저의 주장에 그는 동의했습니다. 제가 일본과도 국교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타진했을 때도 그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일본에 대한 비난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6자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북한 핵문제는 해결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더한층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합니다. 반대로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6자회담의 성공이야말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6자회담 합의문에는 6개국 중심으로 동북아 안전보장 체제를 구성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합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971년 대통령 출마 당시 ‘미일중소의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6자회담은 여기에 남북이 참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안전보장이 있어야 비로소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는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199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던 ‘ASEAN+한일중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향한 노력을 제안했습니다. 저의  제안은 채택되어 수년간의 준비와 연구 끝에 마침내 2005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비중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한일중 3국의 GDP가 7조 9천억불인데 비해서 동남아시아는 1조 1천억불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인구가 15억 4천만명인데 비해 동남아시아는 6억 2천만명입니다. 이런 격차로 봐서 동아시아가 균형있는 지역공동체로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ASEAN 각국이 안심할 수 있는 한일중 3국의 성의있는 조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과거 국민국가시대에서 이제 EU와 같은 지역공동체 시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 장래에는 세계적 규모의 연합 정부의 출연도 내다보게 됩니다. 동아시아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큰 장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비록 상이한 문화, 종교, 역사문제 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이후 60년이 넘도록 세계 도처에서 유행하고 있는 갈등과 대립이 동아시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국가간 협력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에서의 북핵 문제해결과 지역적 협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은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을 되새기고 이의 실현에 합심 협력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관계 국가가 인내심과 창조적 지혜를 가지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 가야 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망원경과 같은 시야를 가지고 멀고 넓게 우리의 미래를 내다봅시다. 그리고 현미경과 같이 좁고 깊이 보는 안목을 가지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갑시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10년 전 오부치·김대중 공동합의에 의한 ‘신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에 입각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 지향의 신시대를 여는데 일어섭시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