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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대중 대통령 주요저작(회견)
 
오픈 다이얼로그 화상대화전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089  
World Bank․ASEAN 주최
‘변화의 촉매’ 아시아 전설의 리더와의 Open Dialog
(김대중 전대통령과 아시아 청년 리더들과의 화상 대화)
□ 일시 : 2008년 9월 30일 오후 3시
□ 장소 : KDI 국제정책 대학원 3층 화상 회의실
□ 참석자 : 김대중 전대통령, 이희호 여사, 피터 스티븐슨 세계은행 대변인(사회자), 현정택 KDI 원장, 함상문 KDI 대학원장, 유종일 KDI 교수 외
             (아시아 지역 13개국 150명의 청년학생들과 화상 연결)
□ 정리 : 김대중 전대통령 비서실
피터 대변인(이하 피터) : 안녕하십니까? KDI 공공 정책대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변화의 촉매’ 시리즈로 아시아의 전설적인 리더와의 대화를 가집니다. 이들은 아시아 지역의 번영을 가져왔고, 오늘날의 아시아를 가능하게 해준 훌륭한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의 과감한 의사결정 덕분에 여러 고난과 역경을 성공적으로 거치면서 지금 현재 2008년의 아시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분이신 김대중 전대통령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한국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위기가 지금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13개 지역과 화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호주, 피지, 인도네시아, 일본의 두 곳, 한국, 라오스, 몽고, 파푸아뉴기니, 싱가폴, 스리랑카, 태국, 하노이, 호치민 등입니다. 오늘 진행은 이미 정해둔 순서대로 각 지역에서 하나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따로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러면 유종일 교수님께서 대통령님 소개를 해주시겠습니다.            
유종일 교수(이하 유종일) :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소개드리게 되어 대단히 기쁘며 영광입니다. 김대통령은 일생을 인권과 민주주의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정치적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암살 기도도 여러 번 있었고, 가택 연금, 투옥, 그리고 망명 등을 견디셨고, 마침내 15대 한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셨습니다. 당선 후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침몰 직전의 한국 경제를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피터 대변인이 언급했다시피,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현재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님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2000년 아시아의 인권, 민주주의 발전 노력, 한반도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이러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주창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자랑스러운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먼저 방금 유 교수님이 말씀하신 데서부터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은 여러 번 대선에 출마하셨고, 마침내 당선이 되셨습니다만 당시는 최악의 경제난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셨으며,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내셨습니까?
외환위기, 국민의 지지와 국제적 지원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하 김대중) : 유 교수님 소개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가장 심각한 시기이고, 오늘 이 대화가 매우 알맞은 시기에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고 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미국 금융위기가 잘 수습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소망을 말씀드리자면 1998년에 한국은 이미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위기를 겪지 않고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해 답변을 드리면, 저는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취임도 하기 전에 외환위기 문제를 관장해서 몰두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국민들에게 오늘 우리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국민에서 국민의 지지와 국제적 지지를 얻으면 이 외환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다. 정부는 국민의 지지가 있으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국민들이 일어서서 금모으기에 참여하고, 여러 경제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정부 정책에 협력해주어서 외환위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 야당은 초기에 그다지 협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40%가 약간 넘는 지지표로 당선이 되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분열된 의견을 결집하셨습니까?
김대중 : 저는 소수의 여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힘들었습니다. 또한 야당이 별로 협력을 하지 않아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국민이 지지해주고 IMF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들이 지원해주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다행히 국회에 있으면서 30년 이상 주로 경제 분야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국민이 저를 믿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 개인적 차원에서 모두에게 힘든 때였습니다. 자산 매각에 대한 우려, 생활 수준의 하락에 대한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관리하셨습니까? 자신의 삶에서 제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도록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김대중 : 저는 정치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감옥살이도 하고, 납치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도 받았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훈련이 많이 되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습니다. ‘내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세계의 협력을 받는 한, 난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일생을 정치하면서 언제나 정책에 몰두하고 연구를 했기 때문에 그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상당히 긴장이 해소도 되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20억불 어치의 금을 가지고 나와서 내놓고, 외환위기를 극복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39억불 밖에 없었는데, 그런 국민의 도움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비전을 성공시킬 포부를 설명해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피터 : 하신 말씀 중에 유명한 것이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1년 반이면 된다’ 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을 정말 하셨습니까?
대통령 : 저는 제가 겪은 여러 경제적인 경험과 지식, 정치인으로서의 인스퍼레이션을 가지고 판단할 때 ‘내가 해낼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반이면 이 국난을 일단 해결할 수 있겠다. 나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세계의 경제 기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만 잘하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과거와 같은 정경 유착이나 부패 등이 없어지면 국민의 신임을 얻게 되고, 국민의 신임과 국제기구의 지지를 받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두렵기도 했고 걱정도 했지만, 저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경제는 심리가 중요한데, 국민들한테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해서 성공시킬 포부와 그 내용을 설명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추진했습니다.
피터 : 마지막 질문입니다. 북한과의 대화와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화해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 노력과 정책이 한국을 통치하는 전체적인 활동에 얼마나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런 정책들은 한국을 세계로 이끄는 정책의 일부로 포함된 것입니까?
김대중 : 물론 세계에 알리고 또 세계의 지지를 받는 데 노력을 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을 설명했습니다.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고, 주고 받는 협상이 필요하다, 공동 이익이 필요하다. 이런 방향으로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클린턴 대통령이 ‘당신이 앞장서서 하라.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도 공식적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6.15정상회담은 50년 냉전을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바꿨다
저는 북한에 대해서 ‘북한은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했습니다. 2000년 6월 15일 정상회담을 할 때 김정일 위원장한테 말했습니다. ‘우리가 평화적으로 대화하자는데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구체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당신네는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생각을 꿈에라도 버려야한다. 그런 생각 가지고 있으면 전쟁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아니 갖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다. 우리는 서독이 아니다. 설사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50년 동안 적대하고, 전쟁 치르고, 냉전도 치르고 했는데 갑자기 통일을 하면 국민적으로 융합, 화합이 되지 않는다.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그건 독일의 사례에서 본 바 아니냐. 그러니 우리는 훕수통일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통일은 공산 통일도 안되고, 흡수통일도 안되고,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서 통일을 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는 북한 지도자들은 우리가 혹시 자기들을 흡수통일하려 않을까 상당히 두려움도 있었고, 언젠가 공격해 오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는데 우리가 그런 점에 대해 북한이 안심할 수 있도록 확신을 줬고, 동시에 우리도 안심할 수 있도록 북한의 태도를 다짐받고 해서 6.15 정상회담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됐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50년간의 냉전을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바꿔놨습니다. 그후로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로 사이가 나빠져 많은 지장을 받았지만, 어쨌든 지금 6자회담까지 진전했습니다. 크게 볼 때 결국은 남북간은 다시 화해협력하고 6자회담은 성공해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안보 문제가 발전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6자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한 가지 첨언할 것은 우리가 북한에 화해를 주창해서 내가 북한에 가고, 북한에 쌀도 주고, 비료도 주고, 의약품도 주고 한 결과 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를 말살하려 한다는 데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데 미우면 왜 식량을 주겠느냐, 그리고 식량과 비료를 주는 것을 보니 남한이 잘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한사람들이 ‘남한이 부럽다. 잘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북한 사람 만나면 원수처럼 대했는데, 이제는 이웃사촌 대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에서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남한에서 유행하는 대중가요라든가, 비디오, 영화 필름 등이 북한에서 비공식적이나마 상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1,300년 통일한 민족입니다. 불과 50년 분단 때문에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통일은 반드시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은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평화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한쪽이 독차지하고, 한 쪽은 빈손으로 남으면 절대로 평화적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15는 그런 방향으로 맥락이 닿아 있고, 의의가 큽니다. 6.15는 긴장완화에 크게 공헌을 했고, 북한을 도와줄 기회를 만들었고, 북한 사람들의 민심이 크게 바뀌었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일을 전쟁도 아니고, 흡수도 아니고, 평화적으로 상호주의적으로 해서 양쪽이 다같이 득을 보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데 합의한 것입니다. 제1단계는 평화적 공존입니다. 이는 연합체제입니다. 이는 6.15선언문에도 들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국과 같은 중앙정부가 외교, 군사권을 갖고, 내정은 지방정부한테 맡기는 연방제, 그리고 마지막에는 완전한 통일로 나아갑니다. 북한과는 그런 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합의도 되었고, 서로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점도 있어 지금 일시 경색되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반드시 풀려서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 대통령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연결된 각 지역에서 지금쯤이면 많은 생각과 질문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지금부터 10분 휴식을 갖겠습니다. 그 동안 각 지역에서는 질문을 모아서 지역별로 대통령님께 드릴 하나의 질문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10분 휴식)
피터 : 이제 순서대로 세 곳에서 먼저 질문을 받겠습니다. 먼저 호주 캔버라입니다.
햇볕정책의 대전제는 공동이익이다
캔버라 : 햇볕정책이 현재의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반도 통일의 시한을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김대중 : 햇볕정책은 양측이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해서 모든 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겁니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어느 한쪽은 징벌 받는,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햇볕정책의 대전제는 공동이익, 앞에서 말했듯이, 제1단계는 남북연합, 제2단계는 남북연방, 마지막은 통일인데, 시간이 걸려도 착실하게 양쪽이 완전 합의될 때 진행해 나가는 것이 햇볕정책입니다. 지금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흡수합병하지 않겠다. 해치지 않겠다. 그 대신 북한도 우리와 평화적으로 지내자. 공산화 같은 생각은 하지마라’ 등 이런 것들이 합의가 되어서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과거의 냉전체제로부터 화해 협력의 체제로 시작되었습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라오스 질문입니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게 했다
 
라오스 : 동아시아 지역은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김대중 : 한국은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고는 39억불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비어 있다시피 했지요. 하지만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당시 보유고는 1,300억불까지 남겼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세계 4대 외환 보유국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금융위기는 우리의 위기 극복 경험이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외환위기에 있어서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했습니다. 30대 재벌 중 16개가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은행을 대폭 합병 시키는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기업, 재벌, 금융기관들이 적자 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은 부실 대출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자산관리공사를 설립해서 국채를 팔아 돈을 만들어서 은행의 받지 못한 채권을 인수했습니다. 그래서 은행이 부실로부터 해방되어 건전 운영을 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국민의 지지와 국제적 지원의 영향이 아주 컸습니다. 마침내 한국 기업들은 적자를 떨고 흑자 전환하였고, 구조조정을 통해 주인이 바뀌어 정부 소유로 되었던 것이 이제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도 회수 불능 부채가 1% 내외가 될 정도로 줄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금융위기를 극복했는데 이것은 취임 후 불과 1년 반 만에 달성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성과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이 정부를 믿고 지지한 것, 둘째는 IMF, 세계은행, 미국, 유럽 등 경제 기구 및 세계 다른 나라들이 지지 해 준 것, 그리고 셋째는 정부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해서 국민과 손잡고 국민의 믿음 속에, 세계의 신뢰 속에 정부가 사태를 이끌어 가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루빈씨가 그의 저서에서 ‘한국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공도 아니고, IMF의 공도 아니고, 한국 정부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하노이 질문입니다.
인재는 밖으로도 보내고 안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노이 : 인재 정책을 어떻게 쓰셨습니까?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그리고 인재 양성을 위해 어떤 정책을 쓰셨습니까?
김대중 : 저는 인재유출은 과하면 막아야 하겠지만 우리는 인재를 밖으로도 내보내고, 안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환경, 다른 종교, 다른 정책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임으로써 경제정책이나 문화 모든 면이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로마가 식민지와 빈번히 교류하고, 식민지 사람 중에서 우수한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을 주어서 활용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저렇게 강대해진 것은 결국 외국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자식들 교육시켜서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노동력으로 미국 경제 발전을 시켰지만 이제는 지식과 기술로서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과도한 인재유출은 안 좋지만 억지로 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인재가 안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기나라에 남을 수 있도록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고, 인재가 다른 사정이 있어 해외로 나가면 그건 그것대로 자유를 주는 동시에 또 외국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즉, 대학에서 교육도 시키고 여러 가지 편의도 봐주고 하는 등 그런 활동도 필요할 것입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제가 한마디 하자면, 한국만큼 세계은행의 지식을 잘 활용한 나라는 없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다음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싱가폴로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문화적 쇄국주의는 안된다
인도네시아 : 신뢰 쌓기와 그를 위한 행동이 중요하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이 집권하셨을 당시를 전후로 한국인의 해외여행이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그를 위한 특별한 정책을 쓰셨습니까? 당시는 금융위기로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인데요.
김대중 : 옛날에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외화수입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어서 한국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큰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관광을 가든, 쇼핑을 가든, 사람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가서 우리와 다른 생활, 문화, 사고방식에 접촉하고, 또 학문도 접하고 이런 것들이 앞으로 우리가 세계화 시대를 살아나가는 데 큰 자원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새로운 문화적 감각을 가지고 이끌어 나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보다시피 해외에서 한류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도 재임시절 일본 문화를 개방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류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문화적 쇄국주의는 안 되는 것이고 관광은 손해를 보든 득을 보든 그것은 둘째 문제이고, 외국을 많이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갔다 오면 벌써 몸의 감각부터 달라집니다. 그래서 뭔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은 물론, 유학, 시찰 등 자주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파푸아뉴기니: 반부패 전략을 무엇이었으며 국가와 이 지역의 결집과 안정화에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김대중 : 반부패 전략은 국민과 지도자가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입니다. 부패를 국민이 용납하지 않고 어떤 부패를 경험했을 때는 과감하게 고발하는 등 국민의 감시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집권자인 대통령이 철저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국민과 정부가 서로 협력하면 반부패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경제가 일어서려면 국민들 지적 소질이 향상되어야 한다
싱가폴 :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과거 아시아 경제는 한국을 포함한 네 마리용이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시아는 중국과 인도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아시아의 미래에 과거 아시아의 용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 아시아 경제는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권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 바이든씨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1820년경 그 당시 기록을 기반으로 전문가들이 계산한 것을 보면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7%, 인도 14%, 영국 5%, 미국은 1%였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는 근대화에 뒤쳐졌고, 식민지 내지는 반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낙오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국과 미국은 근대화를 추진하였고, 제국주의적 영향도 없잖아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를 통해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가 다시 강자로 나설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아시아 경제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적 소질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봉건주의를 겪고, 농업사회를 거치고, 산업 혁명을 거쳐 이제 지식기반 경제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람 수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지식이 있는 우수 인재가 얼마나 많은 지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98년 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위기 극복 과정을 하면서 지식기반 경제를 이루기 위해 정보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조선업이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정보화를 활용한 한국 조선회사는 수주를 받으면 다른 나라보다 배를 더 빨리 만듭니다. 더 좋게 만듭니다. 더 싼 가격에 만들어 줍니다. 경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아는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도 계속 유지해야겠지만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아시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지식기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시아는 유구한 역사가 있고, 종교나 학문을 통해 심오한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국이 모두 지식과 교육 강국이 되도록, 그래서 경제적인 선두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아시아가 비단 중국, 인도뿐 아니라 아시아 나라들이 세계속에서 선두의 자리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 실력을 과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다음은 몽고입니다. 질문해 주실까요?
몽고 : 대통령님은 신지식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정보 강국으로 이끄신 업적이 큽니다. 이 신지식 프로그램의 개념은 어떻게 생각하셨으며, 아시아의 발전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습니까?
지식경제시대에는 우수한 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김대중 : 대통령으로 있을 때 외환위기로 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정보화를 추진했고 우리 국민들이 급속히 받아 들여서 정보화에 있어서 세계 선두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정보화를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시대에는 우수한 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신지식인 운동’을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운동으로 추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사람도 있고 대기업에 가서 일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신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되면 그 나라 경제는 발전되고 문화와 학문적 수준도 향상되지 않겠나 생각했고, 21세기 새 시대에서는 신지식인 양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터 : 한국 질문입니다. 유종길 교수님, 영어로 질문해주시면 시간을 절약하겠습니다. 
한국 : 민감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잇고 대통령님의 햇볕정책을 계승하였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대북 정책 노선이 다릅니다. 남북관계는 어려워졌습니다. 현황을 어떻게 보시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대중 : 햇볕정책은 제가 주장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가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햇볕정책을 해서 남북 화해 협력을 통해 공동의 승리하는 길로 가자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모든 사람들에게 고르게 햇볕의 혜택을 주듯이 하자는 것인데 햇볕정책이 아니고는 무슨 길이 있겠습니까? 북한에 대해 말해보면 그동안 미국이나 기타 나라들이 북한에 대해 많은 압박을 가했습니다.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못 시켰습니다. 나는 미국 대통령 중에 클린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과 각각 2년 반씩 양분해서 일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는데 부시 대통령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햇볕정책을 반대하고 북한에 대해 강압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시가 6년 해본 결과 남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IAEA 요원들이 추방되었고, 그리고 모라토리움 중이었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마침내는 재작년 10월에 핵실험을 해서 북한이 지금 어떤 의미로는 핵 보유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재임시절에도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 대화하시오. 당신이 나쁜 놈하고는 대화 못하겠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보상을 못하겠다고 하지만 당신네 나라 대통령 중에서 당신들이 존경하는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해 놓고서는 대화하지 않았느냐. 결국 냉전 가지고는 성공 못했는데 대화를 통해서 헬싱키 조약을 맺고 소련과 동구라파는 바뀌어 놓지 않았느냐. 6.25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쟁 중에 적과 협상해서 주고 받는 협상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부시 대통령 본인이 일단 승인하고 공개적으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이행되지 않았는데 여하튼 부시대통령이 늦게나마 이제 태도를 바꾸어서 북한과 직접 대화하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고, 소위 행동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시 대통령이 늦었지만 잘 판단한 것입니다.
‘공동이익의 대화’는 종교, 빈곤, 종족 문제를 해결하는 햇볕정책의 원칙
햇볕정책은 단순히 우리나라뿐만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소련과 동구라파를 50년 냉전을 가지고 압박을 가지고 변화를 못 시켰는데, 대화를 통해서 서로 안전을 보장해주고, 경제교류하고, 문화 교류함으로써 변화가 되었습니다. 소련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련사람들은 서구라파의 제도가 나쁜 것이 나니라 매력적인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도 결국 소련과 동구라파의 전례를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평화적으로 이런 나라들도 결국 크게 보면 민주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지금 이미 상당한 변화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강택민 주석 말기에 공산당 당헌을 고쳐서 - 공산당 당헌은 아다시피 헌법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 공산당원이 될 자격을 노동자 하나에서 중산층인 기업인과 지식인에게 이제는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니까 시장경제를 하니까 기업인과 지식인 즉, 브루주아, 중산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압력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당헌까지 고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서도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되 그 전제는 공동 이익이다’ 라고 하는 것이 종교, 빈곤, 종족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햇볕정책이 하나의 원칙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피터 : 감사합니다. 일본, 스리랑카, 베트남 순으로 받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각 지역에서 한 건씩 질문을 하면 대통령께서 한꺼번에 답변을 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 재벌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셨습니까?
스리랑카 :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나 중앙은행 총재한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호치민 : 재벌 개혁을 추진하셨는데 그 정책이 제대로 실현하기가 어려운 경우 대안으로 생각하신 계획은 무엇입니까? 
재벌개혁 성공은 국민과 세계의 강력한 개혁 요구 덕분
김대중 : 나는 질문이 진행될수록 부드럽고 쉬운 것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주 어려운 질문이 나왔습니다.(웃음) 아까도 말이 나왔습니다만, 30개 재벌 중에 16개 회사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대부분이 정부소유가 되었습니다. 은행에 빌려준 돈을 대신 주고 주식을 샀으니까, 또는 회사를 분할하여 오너가 바뀌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재벌 하나만 부도가 나도 나라 경제가 휘청거린다고 할 땐데, 16개 재벌 또 많은 준재벌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도 다소는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국민들이 재벌들의 정경유착으로 국가 경제를 거덜내고 경제적 활동으로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정부하고 결탁해서 돈을 버는 등 잇권 경영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벌들도 개혁에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IMF, 세계 은행 등 세계가 재벌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하지 않으면 투자도 않고 돈도 빌려주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로 나와서 그런 면도 제가 재벌 개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재벌들하고 싸움한 것은 아닙니다.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오늘날 이 꼴이 된 데는 당신들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 이대로는 나라가 안되지 않느냐. 그러니 과거와 같이 권력과 결탁해서 돈 버는 시대를 버리고 이제는 투명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제는 세계화 시댄데 세계에 나가서 제일 좋고 제일 싼 물건을 가지고 나가서 돈 벌어라. 돈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라. 그럼 애국자다. 난 그렇게 취급하겠다. 과거에 날 도와줬건 도와주지 않았건 - 과거에 정부 여당만 돈(정치자금) 주고 나는 안주고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 난 그런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5년 동안 이대로 하겠다. 확실한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를 것이고 정부가 특정 재벌과 결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오직 자기 힘으로 성장해나가는 재벌만 지원하겠다. 이런 것을 5년 동안 할 테니까 두고 봐라’라고 말했습니다. 5년 후 재벌 구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살아남은 재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 일이 지나고 보니 도움이 되었다. 과거와 같이 권력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세계시장에서 돈 벌고 경쟁해서 이기고 그런 노력을 한 결과 경영 체질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재벌들이 우리 정부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당연히 할 일을 했다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장방임주의는 경제를 왜곡시켜... 정부의 시장경제 보호, 관리, 감시 기능 중요
다음에는 미국에 대한 조언인데, 이것은 나에게는 좀 가당치 않는 말입니다. 미국에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들, 노벨 경제학상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다 대고 제가 경제를 강의하는 것은 한국 속담에, 공자님 앞에서 논어 강의 한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다만 나도 거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써 - 물론 우리는 규모가 적었지만 그 본질적인 면과 상황에 있어서 상통되는 면이 있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외환위기를 극복한 그런 점을 많이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경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시장방임주의로 나간 것은 기업을 부패시키고 경제를 왜곡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시장경제를 보호하면서도 정부가 언제나 관리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중요합니다. 기업인은 다 성인 군자가 아니고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들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은 도와주되 그 도를 넘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든가 국가의 건전성에 해를 준다는가 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설사 이번 위기가 넘어간다 하더라고 그 기능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케인즈가 한 얘기가 상당히 도움이 되기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정책은 반대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유종일 : 여러 질문들이 인터넷으로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없으므로 한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일본 참여자의 질문입니다. 질문자는 정치적 박해를 가한 박정희 대통령을 용서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용서는 정치적 철학인지 아니면 종교적 신념인지 궁금합니다.
김대중 : 저는 일생에 참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권력에 의해 4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한 번은 납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았고, 한 번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6년반을 감옥에서 살았고 근 20년을 감시와 미행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박해라는 것이 얼마나 못할 짓인가, 그것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아내와 대화할 때도 도청을 하니까 말로 못하고 필담을 통해 대화했습니다. 그래서 야당 때 항상 결심하기를 내가 만약 여당이 되면 절대로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저를 몇 번 죽이려고 하고, 감옥에 처넣었지만 나는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그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했습니다. 독재에 반대하고 재벌 경제에 반대했습니다. 정책은 반대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신념이고 카톨릭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또 나한테 직접 사형언도를 내렸던 전두환, 노태우 이 분들도 재판받고 전과자가 되어 있던 것을 사면 복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을 아주 감사히 생각합니다. 제가 꼭 한 사람 나에게 억울한 말도 많이 하고 선거 때 지나친 비방을 하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참 용서하기가 어려웠지만 결국은 용서했습니다.
제가 그런 생활을 한데 대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민주주의와 남북 관계 발전 공헌한 것도 있지만 정적에 대한 관용도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에 대해서 관용한 것이지 나쁜 정책에 대해서는 절대 관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것이 좋다고 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은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잘못을 했다가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같이 있습니다. 나도 그런 약점을 가진 인간으로서 사람에 대해서는 용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럴 것입니다.
피터 : 좋습니다. 이번 세션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ASEAN측 준비하신 분 들, KDI 분들 등 준비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수정할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공자 앞에서 논어 강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영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Those who can't do, teach! (실천할 수 없는 사람이 가르친다). 제가 볼 때는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는 사람과, 실제로 실천한 사람은 구별될 수 있습니다. 이 대화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서는 돌아가셔서 97년과 98년 신문 분석 기사를 찾아보십시오. 98년이라는 특이했던 시절을 되돌아 보십시오.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정하는 중요한 결정들을 보십시오. 그 당시 취해진 조치들과 취한 방법들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오늘 우리는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역할을 한 분으로부터 열정적으로 또 감정을 이입하여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계 은행을 대신하여 귀한 시간을 내주신데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희호 여사님, 참여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유 교수님도 마무리 해 주시죠.
유종일 : 굉장히 좋은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지혜와 혜안을 나누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