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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 격월간지 《민족화해》34호(9~10월호) / 9월 1일 발행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112  

민화협 격월간지 《민족화해》34호(9~10월호) / 9월 1일 발행

민화협 10년 특별 대담   김대중 전 대통령
“통일은 망원경처럼 멀고 넓게 보고
현미경처럼 가깝고 깊게 봐야 합니다”
 
대담  정세현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칠전팔기’의 국민적 저력을 보여준 60년
 
_올해는 정부수립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하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과 분단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분단체제 하에서 정부수립 60주년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세계에서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들은 많지만, 망명초기부터 임시정부를 수립해서 해방된 그날까지 간판을 지킨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임시정부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 항저우, 광동, 충칭 등으로 이동하면서 지켜낸 귀중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1300년 동안 통일된 나라가 둘로 분단되는 비극을 겪으면서 정부수립이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켰고, 우리 헌법에서도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부수립 6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국민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민족간의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기도 하고, 군사독재가 장기간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희생하면서 민주주의를 세웠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금 모으기를 하면서 파탄된 경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엎어지면 일어나고, 또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면서 마침내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11번째 나라요, 베이징 올림픽에서 7위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은 칠전팔기의 국민적 저력을 보여준 60년이라고 생각합니다.”
 
 
_남북문제와 관련해서 보수정권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남북화해와 민족의 통일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현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북간의 관계는 ‘서로 전쟁하지 말자. 서로 화해협력해서 공동번영으로 나가자. 그리고 때가 되어 우리가 이만하면 되겠다고 했을 때 통일하자’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보수든 진보든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빌리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을 실시할 때 처음에는 보수당인 자민당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지지하고 개선해서 마침내 자민당 하에서 독일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듯 민족과 국가의 이익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문제도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남북이 공동으로 협력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 안보체제가 마련되어 나갈 텐데, 거기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안을 내고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민주적 보수’와 ‘민주적 좌파’는 양립할 수 있습니다
 
_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이다. 좌파정권 시대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면, 지난 10년이 잘못됐으니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권위주의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하는 걱정스런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10년전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를 맞은 나라를 인수해서, 그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세계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한 모범국가가 됐습니다. 2년 내에 IMF를 극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은 이루어 냈습니다. 캉드쉬 IMF 총재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성공한 모범이 한국이라고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금융위기를 관장하던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한국에 와서 연설할 때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한국 정부 사람들의 영웅적 노력과 국민들의 영웅적 노력의 덕택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을 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었습니다. 처음으로 평화적인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인권위원회와 여성부 설립, 민주노총 합법화 등 많은 민주적인 일들을 이루어 냈습니다.
  또한 경제도 활성화 되었습니다. 98년 외환위기 초기에는 어려웠지만 이후 국민의 정부 4년 동안 평균 7%, 심지어 10%가 넘는 성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안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북한과 대화해서 50년 적대적인 냉전체제를 화해협력과 평화의 방향으로 새롭게 출발 시켰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과거와 같은 두려움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국내적으로 권력투쟁 없이 살고,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남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판문점에서 총소리가 나면 보따리 싸고 도망갈 궁리를 했었는데, 북한이 핵 실험을 했어도 사회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긴장이 완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잃어버린 10년이겠습니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촛불시위에 많은 대중이 참여한 것도 소고기가 계기는 됐지만, 과거의 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한 잠재의식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부는 잘한 것과 못한 것이 있습니다. 후임 정부는 선임 정부의 잘한 것을 인수하고 못한 것은 고쳐 나가야 합니다. 선임정부의 잘한 것도 부정하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_우리사회의 좌파, 우파 논쟁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독일은 좌파인 사민당과 우파인 기민당이 연립정부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좌우파가 연립하고 있습니다. 좌파에는 ‘독재적 좌파’가 있고 ‘민주적 좌파’가 있습니다. 독재적 좌파는 공산주의로 결국은 몰락하고 있고 민주적 좌파는 건재합니다.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 미국의 민주당을 민주적 좌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에도 ‘독재적 보수’가 있고, ‘민주적 보수’가 있습니다. 독재적 보수는 몰락했지만, 민주적 보수는 건재합니다. 민주적 보수는 독일의 자민당과 일본의 자민당, 미국의 공화당이 아닙니까.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좌파를 공산주의로 몰아세우고, 국법에 의해 처벌하려 한다면 그것은 일당 독재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정치의식이 성장한 국민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국민 앞에서 이런 식으로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해선 안됩니다. 경쟁이 아닌, 적대로 끌고 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민화협은 결성 이후 남남대화를 통해 보수, 진보의 갈등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족 문제를 둘러싼 양 진영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요,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남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첫째로 나도 애국자지만, 너도 애국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야당의 권리도 6:4 정도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상대를 지지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넘겨주었다가 다시 돌려 받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볼테르라는 사람이 ‘내가 너의 의견에는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현 정부 사람들이 야당을 좌익시하고,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려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권리를 봉쇄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독재적 좌파는 발붙이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4.19혁명과 6.10항쟁 같은 수많은 위기가 닥치고, 나라가 혼란스러웠을때도 공산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다른 민주국가 같이 순조롭고 서로 화목하게 발전하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야당도 애국자이고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자들이고 국민을 똑같이 존중하고 공산주의를 절대로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6.15와 10,4합의를 인정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합니다
 _새정부 들어와서 남북관계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정부가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강산 사건까지 터지면서, 남북관계가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이 오래 갈 것 같은데요, 현재의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해법은 없겠습니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현 정부가 인정하고, 그 실천과정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은 보완한다는 태도를 취하면 됩니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 정권에서 한 것을 다음 정권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나라를 신임하겠습니까. 앞으로 정체된 남북관계를 풀고 나아가 더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합니다. 기존에 합의한 두 선언을 인정하고 이 실천을 협의하기 위해서 만나면, 이를 통해 제3의 합의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신과 같은 존재인데, 그 사람이 직접 서명한 것을 휴지화 하려는 인상을 주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남북관계는 부시 정부의 정책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부시의 정책은 ‘나쁜 자 하고는 대화할 수 없다. 핵을 포기하면 보상하지만, 미리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6년 동안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IAEA 감시요원을 추방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결국은 핵 보유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기도 힘들고 경제봉쇄도 한계가 있으니, ‘행동대 행동’의 직접대화 정책으로 바꾸었습니다. 실패한 정책을 따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남, 북, 미 3국이 좋게 지내고, ‘1동맹, 3친선’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_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배타적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해협력 정책을 펼친 지난 10년 동안 한미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다고 보십니까?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적대적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고 한국, 북한, 미국 3자가 순기능을 하면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98년 6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데, 클린턴이 햇볕정책이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해관계가 대립된 사람들끼리 전쟁이나 냉전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햇볕정책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원칙 아래,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남북연방, 3단계 완전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표이고, 전쟁에 의한 통일이나 흡수통일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클린턴은 ‘우리는 당신의 햇볕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겠다. 당신이 앞장서면 우리가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북미관계가 순기능으로 발전했습니다. 클린턴이 반년만 더 했어도 북미관계는 크게 진전되었을 것입니다. 
  3자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좋은 것이 북미간에도 좋아야 하고, 북미간에 좋은 것이 남북간에도 좋아야 합니다. 3자가 모두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 안보체제를 마련하는데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나라입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했으나 미국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멀리 있기 때문에 영토적 야욕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안전하게 우리를 도와줄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은 아주 중요하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과 북한, 미국 3자가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체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저는 항상 우리가 통일을 내다 볼 때 ‘망원경처럼 멀고 넓게 보고, 현미경처럼 가깝고 깊게 봐야 하며, 이 둘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 동북아 안보체제와 통일문제를 다룰 때 남,북,미 3자 협력체제가 잘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과도 친선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동북아 안보기구가 구성되어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될 때까지는 ‘1동맹 3친선관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북핵문제가 해결의 수순을 밟으면서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있고, 북중관계도 더욱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소원한 가운데, 북한이 국제사회와 밀접해지면서 한국정부만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요,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71년 대통령 선거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이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입니다. 4대국에 남북을 합친 것이 지금의 6자회담입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이 성공하도록 성실히 돕는 게 최선의 길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외되지 않으려면 우선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야 하고, 한미동맹관계도 확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되면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이것이 동북아 안보 체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북을 잇는 철도가 북한을 거쳐 중국,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분단으로 인해 바다로만 가고 육지로는 못갑니다. 그러나 육지로 뻗어나가면 파리, 런던까지 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물류비가 바다보다 20~30%싸지고 시간도 절약됩니다. 미래 경제발전의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동쪽의 거점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물류의 흐름이 한국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물류가 일어나면 산업이 일어나고 금융이 일어납니다. 관광이나 문화산업도 일어납니다. 그때가 되면 한국은 세계의 5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것입니다. 
  1820년에 영국은 세계 총 GDP의 5%, 미국은 1%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국이 세계 총 GDP의 27%, 인도 14%를 차지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던 영국과 미국이 오늘날의 세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조건을 잘 활용하면 우리라고 그렇게 부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도 잘 대응하면 크게 부상할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중추국가로 경제강국이 될 것입니다
 
_젊은세대들의 통일이나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제대로 된 통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이고, 입시위주 교육 때문인지, 개인주의 성향 때문인지도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통일문제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통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통일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군대를 안 갑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또 부산이나 목포에서 평양, 신의주, 백두산까지 마음대로 갈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중앙아시아까지 무전여행을 갈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평화스러운 것입니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입니까.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젊은이들이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이들에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둘째, 통일을 하면 손해냐, 이익이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엄청나게 커졌고 일본은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끼어있습니다. 7천만밖에 안되는 인구가 둘로 갈라져 200만 군대를 가지고 엄청난 군사비를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현재 한국의 경제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그렇습니다. 싼 노동력 때문에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진출했던 기업들이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갈 길은 북한뿐입니다. 개성공단에 들어간 기업들도 잘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거리가 가깝고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습니다. 노동력은 7년 동안 군대에서 훈련받아 아주 우수하고 임금도 중국의 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노다지판을 옆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마그네사이트, 텅스텐, 금, 동, 석탄, 우라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웨덴 같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이러한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보고 진출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안전하고 당당한 독립국가가 될 수 있고 유라시아 국가를 관통하는 중추국가로 큰 경제적 이익을 가질 것입니다. 관광자원, 지하자원, 노동력이 풍부한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과 북일관계 정상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100억불에 달하는 전쟁 배상금을 받고 이를 통해 철도, 항만 등 SOC를 개발하면, 북한은 아주 매력적인 시장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이렇듯 평화는 귀찮고 우리 것만 뺏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더 큰 이익과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젊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_북한을 돕는 것이 오히려 북한체제를 강화시킨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독일의 사례를 보면, 서독은 매년 민간, 정부 합쳐 30억불 이상을 동독에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년 교류협력기금으로 5억불 정도를 지원했으니,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금액입니다. 서독이 그렇게 동독을 지원해서 공산당이 강해졌다면 동독은 망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이 주면 줄수록 망했습니다. 교류가 많아지고 접촉이 많아지니까 잘사는 서독과 합치고 싶은 마음이 동독 주민들에게 생겼고 결국은 동독이 원해서 통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쌀과 비료를 북한에 지원할 때, 포대에 ‘대한민국’, ‘대한적십자사’라는 이름이 그대로 붙어서 지원 됩니다. 이를 통해 북한 사람들은 남에서 지원해 줬다는 것을 압니다.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남쪽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고, 돕고 있고 전쟁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도 남쪽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가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북한에도 한류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마음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_오는 9월 3일, 민화협 결성 1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10년간 민화협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나는 민화협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가 잘 되려면 정부관계도 잘 되어야 하지만, 민간도 잘 되어야 합니다. 민간차원에서도 협력하고 신뢰를 쌓아야 하고, 그런 역할을 민화협이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 통일부가 있다면, 민간에는 민화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가장 근본 철학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사랑입니다
 
_대통령님은 6.15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화해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민족문제에 대한 강한 소신과 결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텐데요,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다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철학과 원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6.25때 부산으로 피난 가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참으로 절실한 생각을 가졌고 그것이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는 이승만 박사가 자유를 위해 공산당과 싸운다고 하면서 독재를 하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가 아니면 국민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정치가 발전할 수도 없고 공산당을 이길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공산당보다 우월하다고 하면서 그런 자유를 뺏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같은 동족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죄 없는 백성들이 죽는 것을 보고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서 통일로 나가야 하고,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정치에 투신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고 그 이후로도 이 두가지 축으로 일관되게 정치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71년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을때, 독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남북간에 평화적 교류를 해야 하고 4대국 한반도 평화 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망원경과 현미경 두 가지로 민족문제를 보니까 그렇게 보이더군요.
  나는 이상만을  무모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현실만을  적당히 타협하고 굴복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두 축을 조화시키면서 일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민족에 대한 사랑, 국민에 대한 사랑, 우리의 운명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철학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