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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대중 대통령 주요저작(회견)
 
스테판 헤거드 교수 면담록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987  
스테판 헤거드 교수 면담록
 
일시: 2008년 7월 15일 오전 10:30
장소: 사저
참석자: 대통령님, 헤거드 교수, 국제 위기 감시 기구의 대니엘 핑크스톤 박사, 연 세대 문정인 교수, 하태윤 비서관, 최경환 비서관
 
 
헤거드 :사저를 방문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께서 햇볕 정책에 대한 태도를 바꾸신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대통령 : 확실치 않아도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고, 그 외에는 택할 길 없습니다.
 
헤거드 :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끝에 이 대통령께서 아시게 되어 유감입니다.
 
대통령: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다행이지요
 
헤거드 : 지금까지 해온 일을 말씀 드리자면, 놀랜드 교수와 북한의 기근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는 데 포용 정책과 햇볕 정책을 둘러싼 여러 이슈를 다룰 예정입니다. 사실 단지 정치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 문제도 살펴볼 생각입니다.
 
대통령: 말씀 도중이라 미안한데 날씨가 더우니 재킷을 벗고 합시다.
 
헤거드: 감사합니다.  일찍이 1971년 경부터 대통령님께서는 새로운 북한 전략에 대해 말씀해오셨습니다. 저는 햇볕정책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궁금합니다. 어디서 착안 하셨습니까? 대통령님 재임 당시 도대체 이러한 유형의 포용 정책은 애초에 어떻게 생각하시게 되었습니까?
대통령: 예전 미소 관계, 냉전관계 시 미국의 봉쇄 압력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억압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개방시켜서 공산주의 사람들이 바깥세상을 알게 되면 자신들이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바깥이 악마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등, 여러 좋은 점을 알게 되면 자연히 변화가 오게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냉전 상황, 공산 정권과의 대결상황에서 포용 정책의 아이디어가 태동했습니다.
 
헤거드: 햇볕 정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원칙에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 억제가 먼저이고, 흡수통일 반대, 경제적 역할 이런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왜 정책의 구성 요소에 이러한 전후관계를 정하셨습니까? 
 
대통령: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은 햇볕 정책은 대립적 상황에서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공동 승리를 가져올 수 있도록 양측에 이익이 되는 것을 찾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생각이 기조를 이룹니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햇볕 정책만이 유일한 대처법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공산주의에서는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봉쇄하면 봉쇄할수록 독재는 강해집니다. 결국 손댈 수가 없게 됩니다. 공산주의는 봉쇄해서 어둠의 그늘로 몰아붙이면 박테리아처럼 강해지고, 개방시켜서 찬란한 태양으로 노출시키면 공산주의는 약해진다는 것을 그 당시부터 강조해왔습니다. 그 후로 구주 안보협력 조약이 나왔습니다. 즉 헬싱키 조약, 일종의 햇볕 정책이죠. 공산권과 서방세계가 같이 서로 안전을 보장하고, 교류협력하고, 동구라파 영토 보장, 문화교류등을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공공의 승리를 이루자라는 것이 헬싱키 조약의 근본 취지입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결국 서방 세계를 알게 된 소련사람들이 우리가 낙원에 살지 않았다, 우리가 속았다, 서방은 악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사회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민심의 변화가 고르바쵸프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결국 동구라파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햇볕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데 이러한 유연한 공동 이익의 추구하는 협력 대화 체제가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 또한 북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해왔습니다.
 
헤거드: 포용 정책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협력 교류를 망라합니다. 하지만 포용 정책을 통한 개방 과정에서 경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시기에 어떤 유형의 교류가 가장 효과적일까요? 예를 들어 말씀 드리면 일전에 임동우너 전장관님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경제, 후정치, 선 민간부문, 후 공공부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포용 정책에서 경제적 측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포용 정책은 경제도 정치도 안보도 공동 승리하자는 것입니다. 다같이 안심하고 살고 상대방과 협력하는 것이 내게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포용정책, 햇볕 정책의 근본이고 성공의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련이나 동구라파를 보면 큰 계기가 헬싱키 조약인데, 서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교류를 증진시키고, 문화교류에도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닉슨이 모택동을 찾아갔습니다. 당시는 미-중, 미-소 대결 구도에서 중국 위태로운 상황이었죠. 그런데 미국이 중국에 악수의 손을 내밀자,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의 안보 위협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안보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경제는 등소평 등장으로 시작되었구요. 결국 경우에 따라 우선수위가 정해지겠습니다. 하여튼 안전, 경제, 정치, 문화, 사회 모두 고려되어야 합니다. 월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경제가 나빴습니다. 보트피플들이 쏟아져 나왔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에 손을 내밀었고 미국도 그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 결과 교역과 국교 정상화 되면서 경제가 상당히 발전되었죠. 최근 좀 문제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굉장히 나아졌습니다. 공산국가는 국가가 백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아주 중요하죠. 경제가 나쁘면 정부 책임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치, 사회, 문화적 요소가 등한시 된다든가 차순위로 내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헤거드: 재임 당시의 경험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취임하자마자 한국이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그 자체가 김대중 행정부의 주요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상회담도 아주 중요한 주요 업적입니다. 그 정상회담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명백히 이는 20세기 외교사에 남을 만한 성과입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차치하더라도 현대의 역할이 참 흥미롭습니다. 북한 진입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햇볕 전략 개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민간부분과 공공 부문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대통령: 결국 북한이 급한 것은 경제의 활로를 찾는 것이었고 거기에 현대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해왔고 도울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저는 돕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 놓고 도울 수 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이 제일 급한 것은 경제였고 그것이 시작점이 되어야 했습니다. 정부는 사실 여러 규제, 법적 제약이 있어 전면에 나설 수 없었고,  현대가 나서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지원을 해줬습니다. 소를 끌고 북한을 가기도 했습니다. 한 1,000마리 되지요? 또 관광산업 등 여러 지원을 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도 남한의 선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은 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약간 방해도 했고, 대통령 되고 난 후에도 햇볕 정책이라고 하니까 이솝 우화에 나오듯이 행인의 망토를 벗긴다는 것이 그들의 체제 붕괴를 시도하기 위한 음모라고 하면서 나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속초, 동해안에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 들어오기도 했고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꾸준히 북한을 설득하고, 심지어 2000년 3월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에서 ‘우리는 통일에 있어서, 북한과의 전쟁도 반대고, 북한이 두려워하던 흡수 통일도 반대한다. 오로지 대화를 통한 윈윈의 통일만을 바란다. 그러니 대화하자’ 라고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북한이 접근을 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현대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것이 상당히 북한을 안심시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다고도 생각합니다. 
 
헤거드: 이런 유형의 포용 정책이 보여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역시 임 장관님이 알려주신 것인데, “산공후득”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상호주의를 좀 다르게 해보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예를 들면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가지기 위해, 또는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경제적인 유인책을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목적을 위해 식량 원조를 중단한다거나 교역을 중단한다거나 말이지요? 항상 선공후득을 견지하셨습니까? 선공후득이라는 생각 참 흥미롭습니다.
 
대통령: 그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한에 대해 꽁꽁 언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여서 기회만 있으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하고, 북한을 원수로 생각하며, 화해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절실히 필요한 식량과 식량 중산에 필요한 비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 감동을 주어 마음을 열도록 하기 위해 그런 활동을 했고,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우리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고 호의로 돌아서면 그만큼 안보 긴장과 문제점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인이 남한을 나쁘게만 생각하던 것이 우리의 쌀과 비료 제공을 통해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남한은 우리를 동족으로 생각하니까, 잘사니까 주지 않겠는가? 우리도 잘살고 싶다.’와 같은 마음의 변화가 조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문제를 길고 크게 생각했습니다.    
 
헤거드: 전략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상당한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인내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이런 활동에서는 성공을 일궈낼 수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이 경제적 관계, 협력 관계의 진행 속도를 늦춰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셨습니까? 에를 들면 1999년, 2002년 서해교전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말이죠.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다’라고 생각하셨던 적은 없으신지요?  
 
대통령: 사물을 불 때 원칙이 있습니다. 망원경 같이 넓고 길게 보고, 현미경 같이 짧고 깊게 본다. 이 두 개가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당면한 문제 즉,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에 단기적인 목표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큰 목표는 북한 자체의 변화였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북한이 미국과 화해를 하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은 IMF, ADB 로부터 국제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과 국교 정상화 하면 100억불 이상의 보상금도 받을 수 있고, 미국의 견제가 없으니 세계 각국으로부터 투자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경제는 발전합니다. 그러면 중산층이 생겨날테고, 그러면 민주화 요구가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과거 영국, 프랑스 혁명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지금 중국도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관광,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이 초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거기까지 내다보고 있으니까 단기적인 부분에서 좀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손해도 감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의 미심의 변화였습니다. 이제 변화가 보입니다. 남쪽에 대한 적개심을 벗고, 친구로 생각하며, 도움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남쪽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등을 봅니다. 물론 비공식 루트를 통해서지요. 그런 심리적 문화적 변화가 진행중입니다. 나는 이것이 망원경적 관점의 성과라고 봅니다.
 
헤거드: 대통령님께서 저희를 만나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시간을 이미 많이 뱄었는데 가능하면 한 가지만 더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질문은 제 생각에 한국의 대미 관계가 좀 나빠졌다고 보이는 데 거기에 대한 것입니다. 정상회담 후 6개월은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은지요?
 
대통령: 그렇습니다. 5년 임기 동안 전반기는 클린턴과 일하고 후반기는 부시와 일을 했는데 클린턴 대통령과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퇴임 후 여기 와서 말하기를 자기가 ‘1년만 더 일했으면 북한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잘 되었습니다. 저하고도 완전히 맞았죠. 그리고 햇볕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구요. 그러더니 부시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일변했습니다. 그런데 부시가 되니까 아다시피 Anything But Clinton을 내세우면서 일이 다 틀어졌지요. 2002년 1월에 부시가 북한, 시리아, 이란을 악의 축으로 발표하고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2월 여기 왔는데 소위 젖먹던 힘을 다해서 설득했습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북한과 직접 대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라..북한이 먼저 포기하면 그 때 고려하겠다고 하면 전혀 통하지 않으니 시간 낭비다.’ 라고 말했죠. 그런데 부시가 그렇게 하겠다고 발표해 놓고서 나중에 고농축 우라늄을 문제 삼아 2002년 10월 이를 뒤집어서 제 2차 핵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결국 북한과 승강이를 해서 6년을 소진했습니다. 그 동안 북한은 NPT 탈퇴, IAEA 요원 추방, 장거리 미사일 발사, 마침내 핵실험까지 했습니다. 부시의 실수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플루토늄 보유량도 늘어났습니다. 클린턴 말기에는 핵무기 두 개 정도 겨우 만들 정도 양이었는데 지금은 6-7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시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꿨습니다. 결국 북한과 직접 대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정책, 바로 클린턴과 내가 추구했던 그 길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그 점은 이제라도 부시가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가 성공하길 바랍니다.
 
헤거드 : 문제는 그 실패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유감스럽습니다. 단순히 미국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2001-2002년 동안 남북 관계의 모멘텀이 상실되었고 정상화 하기에도 힘들었습니다. 
 
대통령 : 여하튼 부시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으로 나의 임기 반 동안 2년 이상을 아주 고생을 했고,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 데 하지 못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부시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돌아서거나 실패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 가운데 돌아설거다라고 예측을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됐습니다. 제 예측이 맞아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헤거드 : 우리 민주당원들은 지금이 워싱턴의 정권 교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대통령님, 이렇게 만나주셔서 영광입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버드에 계셨을 때 저는 젊은 교수였고 아주 잠깐 만나뵌 적이 있습니다. 당시를 기억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오게 되어, 특히 사저에 올 수 있어 대단히 기쁩니다. 연구가 끝나는 대로 결과물과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