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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방게르 연설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185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기조연설]

(2008.9.11,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 9월 6일(토) 최종수정
대화의 힘(Power of Dialogue)
- 공동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상호주의 대화 -
 
존경하는 군나르 베르게 <노벨평화상수상자 Follow-up 정상회의> 위원회 위원장, 쉘 마그네 분데빅 전총리, 매리 앨린 멕니쉬 미국친구봉사단 대표, 올레 단볼트 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 가이어 룬데스타트 교수, 요한 갈퉁 교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저에게 이렇게 영광된 자리에서 말씀할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해 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대화의 힘 - 공동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상호주의 대화”의 정치에 대해서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37년전인 1971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부터 일관되게 공산주의는 반대하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할 것을 주장해 왔습니다. 당시는 냉전이 소용돌이치던 시기였습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증오하고 북한을 말살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저의 주장은 군사정권과 냉전주의적 세력에 의해서 비난도 받고 용공세력으로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투옥, 망명, 납치, 사형언도 등 갖은 박해를 20년 이상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굴치 않고 북한과의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3원칙 아래,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남북연방, 3단계 완전통일을 골격으로 하는 ‘햇볕정책’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1998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취임사부터 이러한 저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남북간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문제를 논의하자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처음에는 이솝 이야기에서 햇볕이 행인의 망토를 벗기듯이 북한 체제를 벗겨버리려는 계획이라고 오해하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햇볕정책’은 남북간에 대화를 통해서 평화와 교류 협력을 실현하고 공동이익을 실현하자는 것이다”라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북한은 저의 주장을 이해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저를 북한에 초청했습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시간의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고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 때 민족을 위해서 평화와 협력과 통일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 속에 영원히 사는 길이요, 우리의 의무다. 그러나 이렇게 원칙론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건도 얘기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야심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어떠한 합의도 볼 수 없고, 다시 한 번 민족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한편 우리는 북한을 흡수통일한다는 생각을 절대로 갖지 않겠다. 우리는 서독이 아니다. 북한을 흡수통일할 만한 그런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리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독일의 통일 결과를 보면 이질적인 사회에서 장기간 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통일하다 보니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1993년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는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어도 마음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산통일도 반대하고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도 반대해야 한다. 오직 대화를 통해서 평화 속에 단계적인 방법으로 공동승리의 통일을 해야 한다.”
저의 이러한 발언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것 같이 보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할 의사가 없고, 통일을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해 나가겠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에 응해왔습니다. 정상회담을 통해서 우리는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 단계적 통일, 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에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합의는 50년간의 냉전체제를 화해 협력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남북 모든 국민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유엔을 비롯하여 많은 국제평화기구와 세계 모든 나라들이 환영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경색 때문에 많은 장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정상회담 이전 50년 동안 불과 200명밖에 만나지 못하고 서로 생사조차 몰랐던 이산가족이 이제 1만 8천명이 상봉했습니다. 남쪽에서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이 180만명에 이릅니다. 한국이 북한 땅에 조성한 개성공단에서는 지금 3만 3천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2002년 6월 북한이 서해에서 남한의 해군을 선제공격하여 피해를 입혀 전투가 확대될 위기에 있을 때, 북한은 즉시 6.15 정상회담 이후 개설된 핫라인을 통해서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투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핫라인은 계속운영 되었습니다.
남한에서 북한을 찾아간 민간인이 매년 10만명이 넘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가서 교육사업, 의료사업, 구호사업, 문화 체육사업, 그리고 자동차 제조 공장, 대마 방직공장 등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재임 중 이러한 민간 차원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을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서 매년 식량 40~50만톤과 비료 30만톤을 지원해서 북한을 기아 위기에서 구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비료 30만톤을 주면 식량이 30만톤 이상 증산됩니다. 또한 남쪽에서 의료장비와 의약품도 보내서 북한 주민들이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의 민심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거에 남한을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북한을 타도하려는 원수’로만 보았던 북한 사람들이 이제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을 찾아가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잇따라 식량과 비료를 지원한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에서 보낸 식량과 비료의 포대에는 남한제라는 표시가 있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이것이 남쪽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한이 잘 사는구나. 우리를 미워한다더니 귀중한 식량과 비료를 보낸 것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도 남한처럼 잘 살고 싶다. 통일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내에서 문화에도 반영되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지금 남한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남한의 TV 드라마나 영화를 비공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5년 동안 임기의 반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을 상대했고, 반은 부시 대통령을 상대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저의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요청에 의해 북미간 직접 대화하고, 미사일과 핵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국교정상화 실현에도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채 마무리되기 전에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악을 행한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줄 수 없다’는 정책을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북미관계가 크게 경색되고 남북간의 교류 협력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고 한반도에서 냉전이나 무력대결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대화의 길로 나가도록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저는 부시 대통령에게 “대화는 친구하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 하면서도 대화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 중에도 북한과 1953년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주고받는 협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부시 대통령도 일시적으로는 북미대화에 동의했으나, 2002년 10월 미국에 의해 북한의 농축 우라늄 의혹이 제기되어 북미간 협상의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끈질기고 간곡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설득의 노력은 사태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는데 기여했다고 믿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8년 임기 중 6년 동안 북한에 강경정책을 밀어붙였으나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요원을 추방하고, 모라토리엄 하에 있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마침내 2006년 10월 9일 핵탄두 실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제 부시 대통령은 자기의 정책적 과오를 깨닫고 북한과 대화하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결국 클린턴 대통령과 제가 추진하던 공동이익의 화해협력 정책, 즉 ‘햇볕정책’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반도에서 6자회담에 의해서 핵문제가 해결되고, 이미 합의된 대로 6자회담에서 동북아 안보체제를 구성하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 그리고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지금 6자회담은 또다시 경색상태에 있지만 북핵문제는 결국 6자회담과 북미 직접대화, 주고받는 협상의 테두리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대화를 통한 해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새로 등장한 이명박 정권이 북한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남북간의 대화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 6자회담과 북미관계가 진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북의 어느 쪽도 서로 대화를 단절하고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 이룩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수용하면 남북간의 대화는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대화를 통해서만 안전과 상호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이 풍부합니다.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여 파리, 런던까지 가는 육로를 열려면 북한철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철의 실크로드’가 형성되면 물류와 경제협력이 크게 일어나 남북이 다같이 큰 이익을 볼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각국도 큰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서 잃은 것만 있었고, 얻은 것은 없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의 냉전에도 증오와 적대, 막대한 군비확장 등의 소모적인 역사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대화를 통해서 남북관계를 항구적인 평화 협력 체제로 전환할 시기가 왔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북미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의 성공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빨리 열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반도에서 대화정치의 미래는 현재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남북의 7천만 민족이 이를 바라고 있고 그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여 여러분!
미국과 서방세계는 2차 대전 이후 소련과 대결해서 50년간 냉전 시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냉전을 통해서는 평화도 얻지 못했고, 소련의 인권이나 민주주의에의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화의 장’으로 문제를 이끌어갔습니다.
미소간의 데탕트는 이러한 대화정치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데탕트는 구주안보협력조약, 즉 헬싱키 조약을 가져왔습니다. 헬싱키 조약을 통해 동서 양측의 상호안전보장, 경제․문화 교류와 인적왕래 등이 실천되었습니다. 그 결과 소련과 동구라파 사람들은 서방을 방문하게 되고, 서방에서 소련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게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낙원을 가져오지 못했고 서방세계가 ‘악마의 세계’가 아니라, ‘선망의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소련과 동구라파 내의 민심에 큰 동요와 비판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을 가져왔고, 결국은 소련과 동구라파의 민주화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의 통일도 주변국들과 소련의 협력의 힘이 컸다고 하지만, 결국은 수십 년에 걸친 ‘동방정책’에 의한 교류협력 등 대화와 협력의 결과가 동독을 변화시켜 자발적으로 서독의 품에 들어오게 만든 것입니다. 대화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나라에서도 냉전이나 열전으로는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역시 대화와 상호주의적 협력으로 오늘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갈등은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 공동 이익의 기반 위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공동 이익은 대화 성공의 불가결한 조건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준 지상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중동이나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지역 등지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무력 대결도 무력만 가지고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공동 이익을 전제로 한 평화적 대화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세계화 시대인 21세기의 인류에게 더한층의 많은 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동승리의 대화입니다. ‘햇볕정책’입니다.
저의 말씀을 마치면서 한반도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6자회담과 남북간의 갈등이 대화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