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Home 김대중 대통령 주요저작(연설)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치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584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치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2007.10.10(수)
김대중 전대통령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 지관 총무원장, KNCC 권오성 총무, 워릭 모리스 영국대사,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시는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인권지도자 여러분!
오늘 이 뜻 깊은 자리에서 치사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은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7년 12월 대량 사형집행을 실시한 이후 저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10년 동안은 단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왔습니다. 두 정부는 신념으로 사형집행을 찬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겸허히 수용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되어 오늘 선포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뜻 깊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무렵 사형 확정자 52명을 전원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자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임중 13명만 감형하는데 그쳤습니다.
아무튼 저는 재임중 단 한 건의 사형집행도 하지 않고 일부를 감형함으로서 오늘의 영예로운 선포식을 갖게 된 데 기여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사형제 폐지를 위해 헌신하신 인권단체, 종교계, 기타 뜻있는 국민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 승리를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는 왜 흉악범에 대해서조차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것입니까? 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입니까?
첫째, 인간의 생명은 하늘이 준 천부인권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하느님의 자식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식의 생명을 인간사회가 말살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만유불성(萬有佛性), 즉 모든 생명 안에 부처님이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이 깃들어 있는 생명을 또한 사람이 말살시킬 수는 없습니다.
동양사상에서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 하고, 우리나라의 동학사상에는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이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인 사람을 세속사회가 말살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윤리적 입장에서 지상의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우리는 함부로 말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사형제도는 흉악범을 이 세상에서 말살함으로써 범죄를 근절하거나 대폭 감소시키겠다는 취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집행을 아무리 강행해도 범죄는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사형집행은 사람의 생명만 헛되게 말살시킬 뿐 사회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형제를 폐지함으로써 사회 분위기와 흉악범의 정서를 순화시켜 극악범죄를 감소시키는 것을 기대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오판이나 독재적 권력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을 말살시킨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예를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혁당 사건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얼마나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 생생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지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제 와서 누가 그들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인혁당 사건 하나만 보아도 사형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리는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 치사를 하고 있는 저 역시 1980년 신군부에 의해서 사형언도가 내려지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국민의 힘과 세계여론의 저항에 의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4년 과거 저의 사형을 확정했던 바로 그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저는 불행 중에도 이러한 행운을 얻은 사람이지만 저와 저의 가족이 겪은 고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인간 마음의 특수성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다 같이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환경 여하에 따라 천사가 이겨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가 이겨 흉악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떠한 흉악범도 개과천선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이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수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예를 항상 보고 있습니다. 비록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천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그 기회를 박탈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찬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이미 세계 131개 국가가 법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서 사형폐지 국가가 되었습니다. EU는 그 가입조건으로 사형폐지국가라는 자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반수가 넘는 175명의 국회의원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고 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다 같이 사형제를 폐지할 그런 역사적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오늘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은 우리의 인권운동사상 가장 뜻 깊은 날이요, 최대의 인권승리의 축하일입니다. 이제 한국도 인권의 선진국가 대열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선포식을 계기로 생명에 대한 외경, 세상의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의 메시지가 온 국민의 마음속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빌며 인권을 위한 더 한층의 공헌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