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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설 - 1998. 6. 12 경제개혁의 핵심은 민주적 시장경제의 확립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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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설 - 1998. 6. 12

경제개혁의 핵심은 민주적 시장경제의 확립

존경하는 스탠퍼드 대학 게어하트 캐스퍼 총창,

그리고 이 자리의 학계, 경제계 인사 여러분!

자유의 상징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이 대학방문이 1983년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과거에는 망명자의 신분이었고, 오늘은 한국의 대통령 신분으로 여기 왔습니다. 어찌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 밸리는 서로 상대방으로 인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스탠퍼드 대학의 영향이 더 크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것은 이 대학의 프레드 터만 교수에 의해 실리콘 밸 리가 태어났고, 스탠퍼드 대학이 곁에 있음으로 해서 실리콘 밸 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의 영향이 더 컸건 긴밀한 산・학간의 협동이 실리콘 밸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특허출원 지원부서를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여건 때문에 학생들의 상당수가 벤처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들이고, 많은 교수들이 벤처기업 한두 개를 운영하거나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벤처창업 문화와 더불어, 실리콘 밸리 내의 벤처기업들과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학생들을 주축으로 형성된 네트워크가 실리콘 밸리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라는 점애서, 우리 한국은 이를 귀감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는 수많은 벤처기업과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거대한 창조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은 정치적・사회적 권위주의체제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권력자가 특혜와 이권을 마음대로 특정기업에 배분시켜 줍니다. 또한 이런 체제에서는 정보의 활용과 자유로운 창의성도 억제됩니다. 따라서 벤처기업의 성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자, 수레의 양바퀴 같은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다같이 영국에 의해서 창시되었습니다. 이를 둘 다 받아들인 미국・프랑스 등 서구 제국들은 모두 순탄한 성공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거부하고 시장경제만 받아들인 프러시아 독일과 메이지 일본은 민주주의는 물론 시장경제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가운데, 독점과 독재의 길로 치닫다가 참담한 실패로 끝났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이 전후에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받아들인 뒤에는 오늘 우리가 본 바와 같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그와 흡사한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나는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국회에서 주로 경제관계 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일해 와서 알고 있습니다만, 30년 동안 역대의 군사정권들은 “시장경제란 무질서하고 자유경쟁은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를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이를 기초로 정부는 특정기업들에게 특정산업에 투자하도록 명령했고, 은행에게는 낮은 대출금리로 방대한 자금을, 기업의 건전성과는 상관없이 권력과 유착한 기업에 배정토록 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대기업들은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독점적 이윤을 보장받아 왔습니다.

이런 성장 모델은 일시적으로 외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한계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관(官)주도의 경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의 불공평성을 심화시키고 정경유착을 통한 부정부패를 더 극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은 기업과 은행에 ‘도덕적 해이’를 만연케 만들었습니다. 기업의 경쟁력도 극도로 저하 되었습니다. 수출은 안되고 외채는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외환위기가 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 경제를 다시 성공의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서구사회와 같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병행발전해야 합니다. 또한 21세기를 바라보는 무한경쟁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민주주의라는 토양 속에서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아시아에 있어서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성행했습니다. “아시아는 서구와 다르다 아시아의 문화에서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경제를 빨리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적인 통치가 필요하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 한국에서 보다시피 엄청난 부작용과 실패로 귀착되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아래에서 일시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경유학과 관치금융이 판을 치게 되어 오늘의 외환위기와 경제의 총체적 좌절을 가져오게 된 점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작년 OECD 본부는 ‘지식기반경제’ 와 ‘국가혁신체제’ 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전자는 무한경쟁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지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으며, 후자는 한 국가가 지식과 정보의 창출과 확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국가 전체를 경쟁력있는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이며, 지식산업사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가 경제의 핵심이 되는 시대입니다. 지식과 정보가 핵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지식을 취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사회의 근간을 이룰 때 지식과 정보가 물흐르듯 흐르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가 권력자나 대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사회 곳곳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경제와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엄청난 역동성을 가지고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은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50년 권위주의 체제를 종식시키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새지평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끊임없는 열망의 결과였습니다.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국민적 열망을 바탕으로 이제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현재의 경제위기를 국가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나는 정경유착으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고, 관치금융으로부터 은행을 자유롭게 할 것이며, 부정부패로부터 우리 사회를 단절시킬 것입니다. 이렇듯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개혁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개혁입니다.

한국의 새정부는 이를 위해 첫째, 정경유착으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철저한 기업개혁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 기업, 정부 3자간에 이루어진 협정에 의해서 이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기업은 다섯 가지의 개혁을 약속했고, 지금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기업의 투명성 실현, 재벌 내부 기업간의 은행대출에 대한 상호보증 금지, 기업 재무구조의 개혁, 주력업종 중심의 경영체제, 그리고 기업의 지배적 책임자의 법적 책임 명시 등입니다. 이러한 다섯가지 조항은 이미 입법을 완료했으며, 지금 실천중에 있습니다.

둘째,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실업자 구제대책을 실행하면서도 노동개혁을 위하여 정리해고의 수용을 입법화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노동의 유연성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 회복은 물론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절대 필요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 금융개혁을 철저히 단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약 80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 대출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자력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 또는 합병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조치는 내달부터 본격화될 것입니다.

넷째, 정부도 정부기구와 공기업들을 개혁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단행하는 등 고통분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과 정부의 부처들을 대폭 줄이고 인원과 예산도 크게 절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한국에서는 이제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나 정부가 금융기관의 인사문제나 대출에 멋대로 개입하던 그러한 시대가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개정된 엄격한 법에 의해서 정치자금은 양성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인 나부터 부패사슬과의 단절에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어떠한 공무원도 상부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서 불공정하게 이권을 특정기업에게 배분해 주는 일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공무원도, 고위층이 부패했으니까 나도 부정할 수 있다고 변명할 조건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차게 시작한 한국 경제의 개혁을 나는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개혁조치는 외국자본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국자본의 유치 여부가 한국 경제 재건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 많이 투자 되어야 우리는 그 돈으로 외채를 갚을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국자본과 함께 들어오는 선진경영기법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기업의 투명성도 자연히 실현됩니다. 더구나 외국자본은 수출시장까지 가지고 들어오며, 무엇보다도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게 됩니다.

한국의 새 정부는 외국자본의 도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획기적인 조치를 계속적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이제 외국자본은, 첫째 한국 기업의 주식을 무제한으로 취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유로운 M&A를 통해서 한국 기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습니다. 셋째, 토지를 제한없이 취득하고 활용할 수 었습니다. 넷째, 여러 가지 세제상의 특혜를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 외국자본은 국내자본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집권 3개월 내에 이러한 개혁들을 단행한 예는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실천하는 데 있어서 성공한 모범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경제적 도약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IMF나 OECD도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나 언론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6.25의 폐허 속에서도 일어나서 세계 11번째의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제 새 정부에 의해 바로 잡혀진 정책방향 아래에서 높은 지식과 문화수준, 그리고 강한 애국심을 지닌 우리 국민은 우리 경제의 회복과 선진국 대열을 향한 발전을 반드시 이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IMF나 IBRD 등 국제금융 기구와, 특히 미국의 지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8번째 무역파트너이며, 아시아의 안보협력에 있어서 동맹자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안정은 미국의 국악과도 일치한다는 것은 미국의 정부 당국자들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회복은 물론 미국의 무역과 투자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김대중대통령연설문집. 제1권/ 대통령비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