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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의회 연설 ― 2000. 12. 12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85  

스웨덴 의회 연설 ― 2000. 12. 12

한반도 평화와 스웨덴

존경하는 다알 의장,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귀빈 여러분!

유서 깊은 이곳 스웨덴 의회에서 연설하게 된 것을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렇게 귀한 기회를 허락해 주시고 따뜻한 환영과 축하의 말씀을 해 주신 다알 의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스웨덴 국민 여러분께 한국 국민들이 보내는 존경과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스웨덴은 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앞장서 지켜 온 나라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평화의 수호자로서, 특히 제3세계 문제와 국제분쟁의 해결에 크게 공헌해 온 국가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난 1961년 불의의 사고로 타계할 때까지 유엔을 이끌었던 고 함마르셀드 전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 모든 이들의 인권과 억압받는 제3세계의 권익을 위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고 팔메 전 총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스웨덴이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의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이 분들의 업적과 더불어, 이러한 평화정신을 계승해 온 모든 스웨덴 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 여러분!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면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향해 오랜 고난과 순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저의 40여년에 걸친 그 고난과 순례의 여정이 참으로 힘들었지만, 그러나 결코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팔메 전 총리를 비롯해 바로 여러분과 같은 스웨덴의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메 전 총리와 다알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은 민주화 투쟁으로 고난받던 시절에 저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야당 총재로서 지난 1989년과 1994년 이곳 스톡홀름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한국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첫번째 민주정부의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영광스런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로서 이 나라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감격과 감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의장과 의원 여러분,

그리고 귀빈 여러분!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오신 한반도에서의 평화 구축 문제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적대관계로 일관해 왔고, 불신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냉전의 종식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나 1998년 2월, 한국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반도에는 새로운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저는 햇볕정책의 3원칙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 둘째, 우리도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통일을 기도하지 않겠다. 셋째, 남북은 서로 화해·협력해서 평화공존하고 평화교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반도 주변에 있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의 4대국과 스웨덴을 비롯한 전세계의 나라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지지는 북한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북한은 당초에는 매우 거부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북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다’, ‘우리의 무장을 약화시키려는 계략이다’는 등 공개적인 비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국민의 정부는 우리 민족 상호간의 평화와 협력, 그리고 장차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또한 실천해 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과거 한국에서의 역대 정부와는 달리 미국·일본 등 우방국가에 대해서 북한과 대화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전세계에 대해서 북한과 국교를 하고, 교류를 하도록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외면한 채 미국과의 관계만을 먼저 개선하면서 남한을 고립시키려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미·일 3국간의 굳건한 공조는 그러한 북한의 정책에 성공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한을 도외시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있어야만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수차례에 걸쳐서 저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일본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전세계의 여론은 계속해서 북한이 남한과 대화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의원 여러분!

지난 3월 9일 저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에서 저는 다시 한번 햇볕정책의 3원칙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독일식의 흡수통일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 이 두 가지가 우리의 당면한 지상목표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서 이를 적극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이 직접 만나서 대화할 것을 제의했던 것입니다. 이 베를린 선언은 북한이 우리의 진의를 확실히 인정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은 마침내 우리와의 대화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3일 역사적인 평양방문을 이룩했습니다. 평양을 방문할 때 저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땅을 처음으로 가게 된 감회도 컸고, 또 과연 이 회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많은 염려도 갖고 북한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박 3일에 걸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길고 진지한 회담 끝에 마침내 우리 두 사람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저는 북한과의 사이에서 첫째로, 민족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완전한 통일은 어렵다는 것도 우리는 인정했습니다. 우선은 서로 평화공존하고 평화교류하는 데 치중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종래의 일관된 주장인 ‘당장의 통일’로 나아가는 기존의 ‘중앙연방제’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바꾸어서 우리 정부의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매우 가까이 접근해 왔습니다. 남북한은 마침내 통일에의 접점을 찾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이번 방북에서 거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제가 제기한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북한이 동의를 한 것입니다. 한반도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도 이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서 청·일 전쟁이 있었고, 러·일 전쟁이 있었습니다. 두 전쟁 모두 일본이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일본에 병탄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대국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과 안정을 가져 오는 길이라고 저는 확신해 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뜻밖에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종래 50년에 걸친 미군철수 주장을 접고,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 한반도에 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주둔한다는 데 저와 뜻을 같이했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합의였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의 남북간의 전쟁방지는 물론 장차 통일 이후에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합의를 본 사실입니다. 우리는 남북한에 있는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이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할 수 있도록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제협력에 대해서, 또 사회·문화 등의 교류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김정일 위원장이 저의 평양방문의 답례로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데에도 합의를 했습니다. 이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봄까지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의 평양회담 이후 우리 한국은 두 가지를 당면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입니다. 남북의 국방장관이 서로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 절대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 6·15 남북공동선언을 적극 지지하자, 그리고 남북간에 끊겼던 철도를 다시 연결하는 공사를 휴전선에서 공동으로 협력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우리의 두번째 당면목표는 50년간의 단절과 불신과 적대로부터 다시 교류와 신뢰와 동족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교류를 실천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상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을 위해서 남북간 철도의 연결공사가 시작되고 있으며, 북한의 개성에 공단을 설립하기 위해서 남북간을 잇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습니다. 남북간에는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계정, 상사분쟁 해결 등의 협정초안에도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시드니올림픽에서의 남북한 선수 동시입장, 각종 문화행사와 관광교류 등 사회적·문화적으로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에서의 평화 노력에 대해서 오키나와 G-8 회의, 유엔 천년정상회의, 유엔 총회, 서울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브루나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싱가포르 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각각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지지가 세계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 오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다알 의장과 의원 여러분!

스웨덴은 지난 1814년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전쟁도 단호히 배격하면서 스스로 평화를 지켰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습니다.

한국전쟁 때에는 병원선을 파견하고, 휴전 이후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기여해 왔습니다. 한국은 물론 북한에도 EU(유럽연합)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상주공관을 유지하면서 남과 북으로부터 동시에 신뢰를 받아 왔습니다.

스웨덴의 이러한 기여는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예지와 위대한 결단력을 반영한 것으로서, 스웨덴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과거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한반도에서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평화 애호인의 큰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스웨덴은 서방국가로서 가장 풍부하게 북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느 나라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는 남북한의 평화정착 노력을 환영하고 ASEM 회원국과 북한간 관계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최근에 EU 국가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인 대북한 행동계획을 채택했습니다.

저는 스웨덴이 내년 상반기에 EU 의장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EU 회원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보다 개선되고, 북한의 개방과 국제사회 참여에 더욱 긍정적인 발전이 있도록 이니셔티브를 취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스웨덴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복지사회에 대한 공동의 이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일치된 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저의 귀국 방문과 영광스러운 국회 연설을 계기로 우리의 공동의 이상을 향해 우리 양국이 더 한층 굳게 손잡고 매진할 것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