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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 연설 ― 1999. 5. 28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580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 연설 ― 1999. 5. 28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자

존경하는 사도브니치 모스크바 대학 총장과 교수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과 학생 여러분!

나는 오늘 러시아 지성의 산실이자 개혁의 선구자인 모스크바 대학에서 다시 강연하게 된 것을 다시 없는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는 과거에 전임총장이었던 로구노프 총장과 현 사도브니치 총장의 초청으로 바로 이 자리에서 강연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명예교수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수여받은 바도 있습니다. 이 모두는 내가 항상 일생의 자랑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나는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성공해서 돌아온 것을 금의환향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내가 바로 그 심정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브니치 총장과 모스크바 대학의 친구들이 과거 나의 외로운 민주화투쟁을 지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앞으로도 나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 주실 것을 부탁드려 마지않습니다. 나 또한 언제나 모스크바 국립대학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면서 여러분과의 협력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나는 러시아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존경심과 사랑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나는 17~18세기에 걸쳐 표토르 대제가 이룩한 놀라운 개혁에 대해서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처럼 과감한 개혁으로 모든 장애를 극복해낸 지도자는 세계 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근대적 감각은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오늘 이 자리에서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개혁적인 것으로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오랜 옥중생활을 통해 러시아 문학을 섭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푸슈킨, 레르몬토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의 거의 모든 러시아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이나 사하로프의 작품들도 애독한 바 있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이처럼 위대한 문학을 만들어 낸 러시아 국민의 저력과 예술성에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 러시아 문학이 나에게 준 영향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읽는 것만 가지고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또한 근·현대사에 나타난 러시아 민족의 용기와 희생에 대해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유럽 전체가 나폴레옹에 의해서 정복되었을 때 러시아만이 나폴레옹을 패퇴시켰습니다. 히틀러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지킨 러시아 국민의 그 용기와 희생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히틀러에 항전하여 불굴의 투쟁을 다한 러시아 국민의 희생이 없었던들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 사람들은 러시아 국민에게 큰 빚을 졌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위대한 것은 과거만이 아닙니다. 현재도 러시아는 세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는 나라입니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막강합니다. 러시아의 첨단과학 기술은 세계 경제와 기술발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뛰어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러시아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무한한 잠재력을 이루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사도브니치 총장과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갖는 러시아에 대한 기대는 참으로 큰 것입니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유일한 대륙국가입니다. 두 대륙을 연결하여 평화와 번영을 실현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는 미국·일본·중국과 더불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공동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4대국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한국과 북한 모두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한 모두와의 신뢰 속에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음 세 가지를 선언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도 역시 북한을 침공하거나 흡수통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한이 서로 화해·협력해서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추구해 나가자라고 제안했습니다.

나의 최대 관심사는 남북의 평화와 교류·협력입니다. 우리의 햇볕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북한을 같이 공존공영하는 상대로 포용하는 동시에 남북한이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은 일괄해서 타결하는 포괄적 방안을 제안해 놓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개혁과 국제사회 진출을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대신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고, 미사일 위협을 중지하며, 어떠한 대남공격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교류·협력해서 54년 동안 계속된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정책을 지금 미국·일본·중국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오늘 옐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그 지지를 얻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러시아의 지지로 주변 4대국 모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치된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데 크게 고무되어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경제협력을 포함한 한·러 두 나라의 실질협력 분야에서의 전망도 참으로 밝고 큰 것입니다. 경제구조의 성격상 우리 두 나라는 상호보완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며, 실제 지금까지 연간 최고 38억 달러의 교역과 1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가 있었습니다.

나아가 러시아의 첨단기술과 방대한 자원, 그리고 한국의 우수한 인력과 상품화 능력, 산업시설 등이 같이 결합하면 우리 두 나라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동시베리아와 연해주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도 이를 적극 환영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번에 우리 두 나라는 나호드카 공단건설과 자원개발에 있어서의 협력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또 활발하게 문화교류를 해 왔습니다. 러시아의 많은 음악가와 발레단이 한국을 찾았으며, 앞으로도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문화교류는 더욱 왕성해 질 것입니다. 문화교류야말로 두 나라 국민이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이해하고 동반자로 느끼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나 역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수와 학생 여러분!

지금 한·러 두 나라는 절박한 경제개혁의 필요성 앞에 서 있습니다. 개혁에 성공했을 때만이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재작년 12월 외환위기를 맞았으며, 나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취임도 하기 전에 이 문제 해결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나는 위기의 근본원인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따라서 건전한 시장경제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데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정경유착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 왔습니다. 은행은 권력자 마음대로 좌우되었고, 부실대출이 성행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은행은 거의 빈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기업들 역시 경쟁력은 간데 없고 빚더미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가용외환보유고는 불과 38억 달러였던데 반해 우리가 갚아야 할 총부채는 1,500억 달러였고, 당장 갚아야 할 단기외채만도 230억 달러였습니다. 세계는 한국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맡았던 한국의 경제현실이었습니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추진만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국민 앞에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나를 지지해 주면 1999년 중반까지 외환위기를 이겨 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습니다.

한국 국민은 정부를 믿고 적극적인 지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가정부인들이 손에 끼었던 금반지까지 내주어서 이를 모아다 팔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22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한국 국민은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을 참고 인내해 주었고, 나와 한국 정부는 경쟁력 있는 한국 경제를 목표로 금융·기업·공공부문·노동 등 4대 분야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4대 개혁의 강력한 추진은 마침내 그 성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용외환보유고는 현재 570억 달러를 넘어섰고, 수출 또한 작년 말까지 399억 달러가 되어 일본,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대 무역흑자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가·환율·금리가 모두 안정되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살아나기 시작해서 경기도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실업자 수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금년은 최고 2% 성장을 예상했는데 연말까지 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성공에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경제체제는 취약하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금융·기업·공공부문·노동의 4대 개혁을 완성시켜서 올해 내에 한국 경제를 세계와 겨루어 결코 손색없는 높은 경쟁력을 가진 경제로 탈바꿈시키려 합니다. 한국의 교훈이 러시아의 경제재건에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사도브니치 총장과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향한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다가오는 21세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

인류는 역사상 5번의 혁명을 거쳤습니다. 인류의 탄생,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은 제6의 혁명, 즉 지식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는 국민국가 시대로부터 세계화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보화로 전세계가 하나의 생활과 경제권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20세기에서와 같이 자본이나 노동력, 원자재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이 경제의 중요요소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창의적인 지식과 정보가 경제의 주요소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러시아도 한국도 다같이 이러한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이며,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다같이 21세기에 성공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모스크바 대학은 지식과 정보·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선두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고 두 나라 국민이 다같이 행복해지는 데 여러분과의 긴밀한 협력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여러분의 건승과 모스크바 대학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