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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평화센터 주요사업 노벨평화상 14주년 기념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비핵화와 평화를 향하여:
역사의 올바른 쪽에 서서

먼저 저를 초대해 주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님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이신 문정인 교수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연설을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다수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만큼 존경을 받는 아시아의 정치인은 없을 것입니다. 김 전 대통령의 유산을 계승하는데 이 같은 학술회의를 지속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한반도와,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비핵화와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적절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국가 지도자들은 빠르게 잊혀지며, 마땅히 그래야 하기도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국과 주변 지역, 그리고 더 넓은 세계에서 지속되는 중대한 흔적을 남긴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 십년, 수 세대에 걸쳐 기억되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두 부류에 속합니다. 역사의 바른 편에 섰던 이들과 그러지 않았던 이들 입니다.

두 부류 간의 차이란 국사와 세계사의 위중한 순간에서 링컨, 고르바초프, 만델라와 같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거나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밀로셰비치와 같이 그러지 않았던 이들 사이에 있습니다. 이는 국가 건설자와 국가 파괴자 간의 차이이자, 인권 투사와 인권 탄압자들 간의 차이입니다. 한 쪽은 사회 구성원 하나 하나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 잠재력을 짓이겨 버립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공직 생활 동안 분명히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계셨던 분들 중 한 분입니다. 그 반대편에는 박정희가 있어 그의 정보부에 의한 암살 위기가 닥쳐오기도 했었고, 전두환과 그 정권 아래에 있던 법정에 의해서는 사형선고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께선 세 번의 대선 실패와 극적인 네 번째 성공을 거치면서도 줄곧 용감한 민주주의의 지지자로 남아 계셨으며, 5년 간의 대통령 임기 동안 사회・경제 개혁과 개발, 민주주의의 진정한 실현을 해내셨고, 그를 탄압했던 정권들과는 정치적인 화해마저 이루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동북아의 이웃 국가들과 생산적이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통합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일궈내기 위해 노력했던 평화의 선구자로서 역사의 바른 편에 서 계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았기에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께 오늘 드리고 싶은 질문은 오늘날 동북아 지역, 특히 한반도에서 역사의 바른편에 서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니다. 현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후세에게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진정한 평화의 선구자이자 한 국가의 파괴자가 아닌 건설자로서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존엄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사람의 목숨을 파괴하기보다 구해낸 이로 기억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까요? 역사는 핵무기 획득과 유지를 추구하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억제 유용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쪽으로 기울게 될까요? 아니면 핵무기를 세계의 무기고에서 영원히 제거해 버릴 방법을 찾는 쪽으로 기울게 될까요?

이런 의문들을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정리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동북아시아의 일반적인 지정학에 대한 협력 안보적 접근의 필요성이고, 둘째는 핵군축을 다시금 심각하게 되돌아보며 핵무기가 진정한 안보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영을 떨쳐버릴 필요성이며, 셋째는 한반도가 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할 필요성입니다.

협력안보의 필요성. 협력안보 개념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제관계를 다루는데 합리적이고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이 담고 있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유엔 헌장 자체 내에 고유한 집단안보 개념으로, 회원국들 간에는 무력 사용을 금하나 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 당했을 시에는 이를 원조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음은 팔머 위원회에 의해 최초로 설명된 공동안보 개념으로, 안보는 대립이 아니라 협력할 때 가장 잘 성취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인 포괄안보 개념은 현대의 안보는 다차원적이며, 테러나 기후변화, 규제되지 않은 인구 이동, 전염병과 같은 국가안보와 인간안보 모두에 대한 비전통적이고 초국가적인 위협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는 아무리 크고 강한 국가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에 협력적인 해결책에 의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협력안보는 대립보다는 협상을, 억제(deterrence)보다는 상호확신(reassurance)을, 기밀유지(secrecy) 보다는 투명성(transparency)을, 대응(reaction) 보다는 방지(prevention)를, 일방주의(unilateralism) 보다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을 강조하는 사고방식(mind-sets)을 요합니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에 적용됐을 때 여러 주요국들에 의미하는 바는 그 동안 각각이 상투적으로 내뱉어 온 메시지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 위해 서로가 조금씩 더, 그리고 상대방보다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이는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호주에서 설명하셨던 내용과 같이 일관적인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일관적인 입장은 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에 맞는 일관된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시 주석은 호주 의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중국이 “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는데, 많은 이들이 “대국이 자신과 부딪히지나 않을까, 자신의 길을 막거나 자신의 영역을 점령하지나 않을까 주시”하고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주장한 바는, 중국은 안정된 국내 환경과 평화로운 국제 환경을 가장 필요로 하며 동란이나 전쟁은 중국 인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영토 주권 및 분쟁들을 처리하기를 견지하며 역내 국가들과 선린우호관계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좋은 말이긴 했지만, 시 주석은 과연 남중국해의 약 8할이 중국의 “역사적 수역”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국제 해양법 조약에 맞는 설명을 거부하면서, 국제법을 통해 판결을 받으려는 근본적인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중국이 과연 어떻게 이러한 목표들을 수행해 갈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 국가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고자 한다면, 그 방식에 따른 일관된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현실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고, 중국이 상호 협력에 부응해 올 수 있는 전략적인 공간을 마련해 줄 필요성을 깨닫는 것 입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200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한 개인적인 행사에서 남겼던 말을 통해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이 가진 방대하고 압도적인 군사・경제력을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해 두 가지 선택권을 쥐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영원한 승자로 남기 위해 쓸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가 더 이상 승자가 아니어서 편안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쓸 수도 있겠지요.
이미 미국의 손아귀에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절대적인 군사 우위를 고집하거나 미국의 세계 또는 지역 패권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방금 말씀 드린 클린턴 전 대통령의 그것과 같은 언사들을 대중에게 전달한다면, 대다수가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미・중 관계의 불미스런 결말을 피하고 대타협을 이뤄내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경우에서는, 냉전 직후 러시아의 국가적 수모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능숙하게 달래서 수습하는 사이에 서구는 승리에 도취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배제되고 새로운 공동 안보 체제(common security regime)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힘을 휘두른 것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단지 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최종적인 강력한 제재를 통해 러시아로 하여금 다시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이내 러시아가 서구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동쪽, 남쪽과 연계함으로써 얻는 이익도 대립보다는 협력에 의할 때 훨씬 클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역사의 바른편에 선다는 것은, 우선 역사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일본도 독일처럼 아시아에서의 침략 전쟁과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 온전하게 사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주기적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버리는 일본의 태도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과의 관계에서 역사 문제가 지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는 오래 전인 1993년 요헤이 고노의 대담화를 통해 해결돼야 했으나 한일 양국 모두 그 상처가 아문 딱지를 다시 계속 긁어내고 있습니다. 독도 혹은 다케시마 섬과 주변 해역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분쟁 역시 법적 판결이나 공동 개발 협의 등을 통해 한참 전에 해결됐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미 이뤄졌어야 하는 한일 동맹의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두 당사국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보 문제 전반의 맥락에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길은, 제가 믿기에는 건전한 독립성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시킴으로써, 곧 전략 지정학적으로 주요한 역학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중 간의 힘겨루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내 안정화를 강력하게 유지해 온 주 요인인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새로 부상하는 문제들에 대해 심사숙고한 뒤 판단을 내리고, 양쪽 모두와 경제・정치 양면에서 깊고 다층적인 연계를 만들어 내라는 의미입니다.

각국이 어떠한 안보 위협에도 대비 할 수 있도록 자국의 방위 능력의 가능한 한 최대로 키우는 것은 충분히 정당한 사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이 헌법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움직임 역시 이를 고려하여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 중 한 쪽이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 뻔한 전력 증강을 꾀하거나 대가보다 위험이 훨씬 큰 상황을 초래하려 한다면, 역사에서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편에 서 있게 될 터입니다. 두 나라 중 한 쪽이 핵무장을 하는 경우 역시 같은 잘못이 되겠지만, 이 문제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이 스스로를 역사의 바른 편에 세우는 것과 관련해서는 많은 이들은 북한이 방금 설명한 협력안보 접근을 수용하길 바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고방식의 변화 그 이상이 요구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거의 뇌 이식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북한을 문명화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밖으로 이끌어 오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 이상의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에게서 그래도 협력안보 접근이 어느 정도 견인력을 얻고 있다는 긍정적인 징표들이 상당수 보였습니다. 올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덕분에 일주일 후 G20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됐고, 이는 기후변화 논쟁의 역학관계를 바꿀 정도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이것이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냉랭했던 미・중 관계의 해빙을 알리는 서곡이 되기를 희망할 따름입니다. 실제로도 최근 몇 년 사이 비공식적으로는 사실상 많은 대화가 오간 만큼 향후 양국 간의 고위급 전략 대화를 상당량 늘여가면서 말입니다.
APEC 정상회의에서는 또한 일본과 중국이 화해를 향한 아주 중요한 발걸음을 떼는 것이 목격됐는데, 이는 적어도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나 다른 오래된 문제들을 둘러싸고 쌓여왔던 격한 긴장관계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경제적으로 양국이 급격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으로도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 주석이 올 7월 북한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한 사례만 봐도 그러합니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주요한 양자관계로 남아있는 한・일관계는 생각만큼 가깝거나 협력적이지 않아 주변국들에 계속해서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제가 앞서 말씀 드린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국가 정서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간의 완전하고 포괄적인 관계 회복이 불러올 이익은 어떠한 위험도 상쇄할 수 있으며, 역내 안정에도 상당 부분 기여하고 북한 관련 문제들을 처리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 원자력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안했던 아시아의 원자력 공동체(Asian EURATOM)와 같은 구체적인 동북아 지역 내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내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일 양국이 최근 몇 달간 이러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은 징후들이 그간 있어 왔습니다. 이보다 더욱 지속력 있고 커다란 노력이 더해진다면 훨씬 환영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성

제가 설명했던 협력안보 접근을 적용하는데 있어 핵 군비 통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여러 주요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풀리지 않는 긴장의 본성과 강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핵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핵무기, 특히 이를 통한 핵 억지력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오래된 사고 방식이 동북아에서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것은 아직도 이 지역의 많은 정책결정자들을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는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핵무기가 안정화 역할을 해주던 과거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핵무기에 대한 반론은 핵무기가 사람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핵무기는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무분별하고 비인간적인 무기이며, 어떤 상황에서 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는 공통된 인간성에 대해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도전이 됩니다. 핵무기는 또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위협입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인도・파키스탄 지역의 핵 전쟁 (nuclear exchange) 조차도 이후에 벌어질 핵 겨울 (nuclear winter) 현상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사망자만 백 만 명 혹은 그 이상이 나오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불러올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변덕스러운 양국 관계를 감안할 때 그들 사이의 핵 전쟁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핵무장을 고집하는 정책결정자들도 이 모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심지어 몇몇은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억제책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게 한다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략에 대한 반론을 들며 핵무기에 대한 진실을 납득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사실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핵무기는 기껏해야 아주 약간 유용할 뿐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격을 당해 보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혀 이를 사용할 의도가 없다 해도, 핵무기 비축량을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을 수반한 사업임에 다름없습니다. 핵무기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핵무기가 가져다 줄 이익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하며, 오히려 위험이 이를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지구의 생존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나마 다행인 소식은 여전히 풍부한 양의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그저 우리의 정책결정자들의 머리에 주입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핵무기가 가진 위험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겠습니다. 핵무기가 냉혹한 공격을 목적으로 의도되어 쓰일 가능성이 극히 미미하다 하더라도, 한 순간도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얼마의 양이든지 핵무기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사고나 잘못된 계산, 시스템 오류나 방해 공작 등의 사고로 인해 핵 전쟁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실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핵전쟁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 것입니다. 핵 억지력의 유용성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간주되든 간에, 안정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다는 핑계로 만들어진 극도로 빈약한 논리적 기반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존재하는 위험은 주로 압박감에 시달린 사람이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나 오판뿐만 아니라 잘못된 의사전달(여기서는 사이버 무기의 복잡함이 결합된 위험), 전혀 해가 없는 사건을 위협으로 잘못 읽는 기본적인 시스템 오류에 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95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데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을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노르웨이의 과학 로켓 발사였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미・소 양쪽의 지휘통제시스템이 고도로 복잡한 것으로 여겨졌고, 실제로도 오늘날의 잠재적인 핵 경쟁국들 사이에서보다 더 복잡했던 냉전 시기에 대한 많은 기록들은 당시에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세계가 주기적으로 재앙에 가까이 갔었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거의 70년간 세계가 핵무기로 인한 재앙을 피해온 것은 선한 정책이나 관리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위험들은 핵무장 국가들이 자국 핵무기를 “경보 즉시 발사(launch-on-warning)”의 위태로운 상태로 유지할 때 급격하게 악화되는데, 냉전이 종식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의 무기고의 약 1,800개의 무기들이 여전히 그러한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기술 개발들은 과거에 내려졌던 결정들을 쓸모 없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특히, 장거리 공격용 차세대 재래식 무기들이나 미국이 개발을 고집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결정자들을 애먹이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 등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위력도 강하여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자국의 보복이나 반격 능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어 불안해지게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이런 나라들이 먼저 공격을 감행해 버리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려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핵군비 경쟁이 시작되어 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들의 규모를 감안할 때, 과연 핵무기를 옹호하는 주장에 실린 어떤 힘이 그렇게 많은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힘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입니다. 핵 억지력의 유용성에 대한 주요한 주장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보통 억지력이 가진 것으로 보이는 힘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장 흔한 주장은 핵무기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전쟁을 억지해왔고, 계속해서 억지할 것이라는 점 입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 공포의 균형이 냉전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했고, 그 이후로도 인도와 파키스탄, 인도와 중국, 중국과 미국 등과 같이 잠재적인 적대국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그런 역할을 해왔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 통하고,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도 미・소 양쪽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놨던 것처럼 핵무기의 실제 사용에 대한 공포는 누가 봐도 결정적인 요인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핵무기의 영향력은 꽤 과장된 것입니다. 냉전 기간 중 어떤 상황에서도 소련이나 미국 한 쪽이 무자비한 전쟁을 시작하려 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상대방에게 핵무기가 존재했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강대국들이 상대방이 살상 능력이 어마어마한 무기(1939년 이전의 경우에는 화학, 생물 무기도 포함)들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쟁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도시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민간인의 희생이 따른다는 경험, 또는 그럴 것이라는 예상조차 과거의 지도자들이 한 발 물러서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평화를 지향하도록 이끈 주요 원인이 되지 못했다는 점은 이제 자명합니다. 소련이 같은 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강력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이 원폭 사례는 전쟁을 억지하려던 것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사용됐던 것으로 맥락은 좀 다르지만, 요점은 극한의 살상 능력을 가진 핵무기 공격의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이 정책결정자들에게 있어서는 보통 예상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고려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요인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1945년 이후로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던 그 동안의 “긴 평화(Long Peace)”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무엇보다 한 가지 깨달음으로 인해 강대국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깨달음이 앞으로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 이때 깨달음이란 인류가 2차세계대전을 통한 경험과 그 이후로 급격한 기술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어떤 전쟁이든 발발하게 되면 초래될 믿을 수 없이 끔찍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며, 오늘날의 세계처럼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사회에서는 전쟁이 불러올 피해 손실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핵무기의 전략적 유용성에 대한 이와 유사한 것으로, 핵무기가 대규모의 재래식 무기 공격을 막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이 핵보유국들을 직접 공격했거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개입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전쟁이 억지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는 한국전쟁에서 베트남전쟁, 욤 키푸르 전쟁, 포클랜드 전쟁, 두 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제1차 걸프 전쟁 까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각각의 사례에서 전쟁이 결정될 수 있었던 원인은, 핵무기 보유국의 존폐 여부가 위태롭지 않은 상황에서 핵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금기 때문에 핵 보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을 포함한 몇몇 작은 나라들은 소량의 핵무기를 통해 자국 정권을 교체하려는 외부의 개입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은 제대로 된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사용되는 순간에 자국을 자멸로 이끌 것이 명백한 무기는 믿을 만한 억지력이 아니며, 보복을 위해서 이용하려 할 때 이를 뒷받침 해줄 기반 시설 (예를 들어 미사일 잠수함과 같은) 이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이란 그 동안 계속해서 그래왔듯 서울과 그 주변을 겨냥한 재래식 포탄 공격을 감행할 능력 정도일 것입니다.

핵무기를 지지하는 이들로 내세우는 오래된 주장을 우리는 요즘 다시 듣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만약 소련이 해체된 이후인 1994년에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만약 그가 도네츠크나 그보다 더 서쪽으로 탱크를 밀어붙여 나갔어도, 여전히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핵으로 러시아에게 반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증거들은 핵무기가 단순히 현실 세계에서 안정화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핵무기의 의도적 사용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크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모험적 행보들을 억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가 오늘날의 사태에 더했을 것은 오산, 오판, 실수와 같이 시스템 오류나 인적 과오에서 초래될 또 다른 잠정적 위해(hazard) 뿐입니다. 이것들은 핵무기를 보유한 주체라면 누구와도 연관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999년 파키스탄의 카르길 전쟁이나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천안함 침몰사건 등에서의 사례처럼, 양쪽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상호간에 억제 요소로서 작동하기 보다 오히려 상대가 감히 핵으로 보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 없이 작은 규모의 군사 행동을 감행하도록 해준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작은 규모의 군사 움직임에 핵무기로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보수 진영이 가졌던 “핵무기의 부재는 세계가 마음 놓고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는 기조 보다, 사실 핵무기의 존재 가 세계로 하여금 마음 놓고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전쟁을 하게 해준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안정적인 핵 균형(nuclear balance) 상태는 오히려 핵무기가 제공하는 보호막 아래서 오히려 마음 놓고 폭력적이 되도록 해준다는 개념인 “안정/불안정 패러독스 (stability/instability paradox)” 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와 이론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앞서 한 모든 이야기들의 요점은 핵무기가 본질적으로 사용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요 국가들이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아도 핵 억지력은 흔히들 예상하는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군 지휘관들은 이미 오랫동안 작전계획이나 실행 전략에서 모두, 특히 피해를 입을 국가 또는 해당 지역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 실제로는 상당한 장애물을 먼저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 왔습니다.

이 실질적인 장애물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이성적인 정책결정자들 조차 한 국가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지 않은 한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당연시되는 규범적 금기 (normative taboo) 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항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핵무기의 파괴력이 과거에 목격되었던 그 무엇보다도 훨씬 광대하다는 것이 충분히 인식되기 시작한 1950년대 초반 이후, 스스로를 문명화된 국가로 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인식 되기를 원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있어 핵무기의 의도적인 사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돼 왔습니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대통령 모두 한국전쟁, 타이완 해협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무기를 투입하자는 군의 충고를 거절하였고, 이 같은 금기가 가졌던 힘은 이후로도 더욱 커졌습니다.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조차 미국이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혹은 타이완 문제를 이유로 중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오늘날 세계 여론으로 봐서는 우리가 끝장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핵무기에 관해 이야기 할 때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역사의 바른 편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또 다른 주요 동맹국인 일본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유혹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정몽준 같은 몇몇 공인들의 지속적인 열망이나 반핵 정서가 역사적으로 훨씬 강한 일본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도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보이는 여론조사의 결과에도 상관없이 말입니다.

핵무기 보유의 길을 가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하에서의 엄숙한 조약 의무를 파기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을 불러올 것이며, 또한 제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실제로는 사용할 수도 없는 무기 체계를 만들기 위해 위해 엄청난 양의 돈을 쓰는 것입니다. 동시에는 제가 앞서 말씀 드린 모든 위험을 안고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모든 국가 안전 보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만한 상상 가능한 이유가 (전혀) 없는 일입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같은 저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언젠가는 미국 또한 핵무기를 폐기하게 되기를 바라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군사적 위협을 미래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느끼는 한국과 일본, 저의 조국인 호주를 포함해 이 지역과 유럽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지력 (extended deterrence) 으로 부터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실제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미국이 가진 이례적으로 어마어마한 재래식 군사력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소위 말하는 핵우산보다는 미국의 재래식 우산(conventional umbrella)이 적대국의 재래식무기나 화학-생물 무기, 심지어 핵무기에 의한 어떤 상상 가능한 만일의 위협에도 대비할 수 있는 압도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재래식 보호(cnventional protection)의 현실은 우리들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 위해, 핵무기 없는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조국을 포함해 미국의 동맹국들 중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현재 보호받고 있거나 보호받는다고 믿는 나라들이 우리의 보호막에서 핵무기의 역할은 크지 않다는 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북한, 또는 그 어느 누구의 손아귀에서도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우리로 하여금 만일의 핵 위협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말했듯이 개인적으로는 핵 억지력의 유용성이 지독하게도 과장됐다고 믿지만, 그런 제 자신 조차 핵 공격에 대응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감행할 능력이 있다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안정감, 그리고 만일의 핵 위협 사태를 방어하기 위한 미국 핵우산의 유용성을 지속성 덕분에 각국이 스스로 핵 무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를 줄일 수 있는 정치적인 중요성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핵전력을 통한 만일의 위협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이 화학・생물・재래식・사이버 무기 중 어떤 것을 이용한 것이든지 간에 확실히 이 때는 우리 모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합리적으로 기대고자 하는 미국의 도움 외에도, 그 만일의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재래식 전력을 통해 언제든지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핵 전력을 통한 만일의 위협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핵을 사용하지 않고서 대처할 수 있는 집단 대응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을 선택지에 올려놓고 있는다면,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기여하는 것이 없는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복하지만, 확장 억지력 (extended deterrence) 이 꼭 핵을 이용한 억지력 (extended nuclear deterrence) 을 의미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이 미국 핵무기 보유의 ‘유일한 목적’은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 뿐, 그 외에는 없다는 내용의 선언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같이 분명한 표현은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 (No First Use)’는 선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로 향해 나가는 길이 되었을 것이며, 핵무기 폐기에 이르는 막중한 정책 전환이자 결정적인 중간 기착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2010년 미국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 (Nuclear Posture Review, NPR) 를 위한 사전 준비 과정에서도, 당시 호주의 노동당 정부는 ‘유일한 목적’이라는 표현을 승인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일본에서는 당시 민주당의 가쓰야 오카다 외무상은 2009년 힐러리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조심스레 그 같은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말씀 드리기 유감스럽지만 이 모든 노력은 군이 주도했던 한국과 중동부 유럽의 상당수 미국의 나토 동맹국들의 거부로 인해 중단됐습니다. 2010년 미국 NPR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 없이 미국이 ‘핵공격 억지가 핵 무기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정책을 현재 채택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국은] 이런 정책이 무사히 채택될 수 있는 여건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며 끝을 맺었을 뿐입니다. 이후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감행한 러시아의 모험적 행보 때문에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더 작은 핵우산 아래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설득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 동북아 지역에서 고조된 중국이나 북한과의 긴장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낳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핵군축에 이르는 길에서 뻔한 언사가 아닌 구체적인 정책 도입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그 길을 트면서 보다 강력하게 헌신하며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이것이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문제가 많은 지역에 있는 나라들보다 차라리 호주 같은 나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믿는 것은 만약 우리가 미국 핵무기 보유의 “유일한 목적”이 핵 공격 억지라는 선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고 외치며 모두 함께 행동한다면 핵군축에도 훨씬 방대한 추진력이 가해질 것이란 사실입니다. 미국에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 (No First Use)” 는 입장을 수용하라고 더욱 명쾌하게 요구한다면 이는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 동안 안전 보장을 위해 핵무기에 의존하는 데 대해서 다른 이들이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우기며 위선적이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런 태도를 계속하는 것은 확실히 핵무기 확산 방지라는 아젠다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핵무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직면하게 될 그 끔찍한 위험들을 줄이는 비법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이제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할 때입니다.

핵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에 도달할 필요성

이제 얘기를 핵으로부터 자유롭고 지속적인 평화가 가능한 한반도에 어떻게 도달하는가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으로 옮겨보면, 우선 남북 관계에서 세 가지의 정책 목표와 각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들을 구분하여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한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수립된 전략이 다른 목표들과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해야 합니다.

세 가지 목표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첫째는 한국과 북한 사이의 충돌을 피하고 평화 통일을 향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고, 둘째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되돌려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이며, 셋째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옹호될 수 없는 인권 침해와 잔혹한 범죄 행위들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서로 다른 세력들은 각기 이들 목표 가운데 자기가 기대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목표를 실행에 옮기는 것과 관련해서도 제재와 같은 채찍을 사용할 지, 아니면 여러 가지 포용 전략으로 이뤄진 당근을 내밀지에 대해 강조하는 바가 서로 다릅니다.

중국은 ‘부전(不戰・전쟁 방지), 불란(不亂・혼란 방지), 무핵(無核・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남북통일의 전략적 실행에 대해서 (비록 지금은 예전보다 덜 하지만) 염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인권 유린에 관해서는 크게 동요되지 않는 편입니다. 서방은 앞선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지지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인권 침해의 경우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이 주도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며 더 이상 이를 무시할 수 없어 비교적 최근 들어 목록에 추가된 것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당연히 세 가지 목표 모두에 대한 지지가 존재하지만, 우선 순위나 실행 방법 등을 논의할 때 어떤 목표에 더 중점을 두느냐를 두고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시간이 갈 수록 보수와 진보 정권 간의 차이가 더욱 극명해져 왔습니다.

사실 이 세 가지 가닥을 제대로 구분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인데, 북한이 이것들을 한데 섞어 버리려고 의도할 때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집니다. (지난 달 북한은 유엔 총회 인권위원회에서 유엔 안보리에 북한을 국제형사법정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데 대한 보복으로 또 다른 핵실험뿐만 아니라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며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핵 문제와 핵과 무관한 문제들을 가능한 한 따로 구분하여 봐야 한다는 최근 스탠포드 대학교 아태연구소의 한 훌륭한 연구 결과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잠깐 말씀 드리자면 저는 이 연구를 한국 국회에도 소개해서, 다소간의 초당적인 지지를 얻어낸 바 있습니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뤄내는 문제와 관련하여, 호주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정 정도 참여하게 됐었던 1994년 북미 기본합의(제네바 합의) 관련 협상들에서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첫 번째 합의의 파기가 전적으로 북한의 탓이라는 데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해왔다는 믿음에 약속했던 중유 제공과 경수로 건설을 꾸물거린 것은 우리 쪽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외교적인 궤도는 다시 형성됐지만,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의 2002년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 때문에 즉각 다시 무너져버렸습니다.
  이후의 사건 진행 과정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NPT 탈퇴가 확정된 2003년 이래 적극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개발과 실험을 감행해 왔으며, 현재는 적어도 10개 정도의 폭탄을 보유하면서 이를 장거리로 발사할 수 있는 수준에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6자회담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 자리에 모이는) 은 2009년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북한은 모두가 이미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진 극도의 호전적인 태도를 주기적으로 보여와 현재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북한 정권이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미래에 만들지도 모르는 핵폭탄들이 결코 공격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 때문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 순진한 생각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북한은 변덕스럽고, 무책임 한데다가 아주 불편한 상대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몰이성적인 존재는 아니어서 그들도 한국이나 일본, 미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국가적 자살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외부 공격을 억지하고 대내적으로 정권의 신뢰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자신의 전력을 협상 카드로 이용한 적이 있으며, 북한이 외교 관계 정상화와 제재 완화, 적절한 경제적 지원 등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안전 보장을 대가로 받았다고 느끼게 된다면,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접어드는 상황도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어떻게 이 협상을 시작하고 우리는 그때까지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택한 기본적인 입장은 본질적으로는 구식의 봉쇄와 억제(containment and deterrence)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대변됩니다. 미국은 6자회담을 비롯한 어떠한 틀 안에서도 북한과 협상하기를 꺼려해 왔는데, 이는 이를 통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북한에게 핵보유국이라 주장할 여지를 조금이라도 주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봉쇄와 억제(containment and deterrence)는 이를 뒷받침하는 조치인 제재나 대량 살상 무기 확산 방지 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과 더불어 절대적으로 정당한 전략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협상을 향한 문을 열어 놓겠다는 진지한 의지가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는 동안 북한이 핵 전력을 늘려갈 뿐만 아니라 의도적 사용이 아니더라도 이미 앞서 논의했던 핵무기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인적・시스템적 오류나 오산, 오판과 같은 모든 위험들이 따르게 됩니다. 특히 한반도와 같이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6자회담은 이 같은 협상에 있어 최상의 매개체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하나로 단합하여 조건 없는 회담 재개를 위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이 자국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일일 것입니다.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면 다른 꼭 필요한 조각들을 어떻게 맞춰갈 지에 대해 다양한 예상도 가능해집니다.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인 모턴 핼퍼린은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제게는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접근법인 동북아시아 포괄적 평화 안보 협정 (Treaty on Peace and Security in North East Asia) 을 제안했는데, 여기에는 한국전쟁의 전쟁 상태 종결, 안보에 관한 항구적 협의체 설치, 상호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선언, 원자력 및 기타 에너지 기술에 관한 규정 등과 가장 야심차게는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를 창설하는 내용의 항목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비핵무기지대와 관련, 만약 한국과 일본의 비핵화 조처가 효과적으로 시행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비한 적절한 보호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 같은 계획들은 정치적인 의지가 더해진다면 완전히 불가능할 일만도 아닙니다. 이때, 정치적 의지란 오직 우리가 그 본심을 진지하게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더욱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한반도: 핵 문제에서 앞장서는 주요 국가들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이라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킬 전략에서 앞장서고 최종적인 통일을 향해 움직일 당사자는 당연히 대한민국 스스로입니다. 이에 관해 제시된 최선의 방법들 가운데 제가 본 가장 깊고 종합적인 제안은 스탠포드 연구소의 신기욱, 데이비드 스트로브, 조이스 리가 발표한 “맞춤형 포용정책 (tailored engagement)” 이었습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여야 정치권의 존경을 받고 전문성과 책임감이 있는 인물로 하여금 (대북)정책 결정을 전담하여, 통일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 가면서 실질적인 남북의 포용 범위를 넓히는데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포용정책을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분야에서 시작해 스포츠에서부터 식량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교육 및 문화교류, 무역과 투자를 통한 경제협력 (국제 제재 움직임을 다소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북한의 인프라 개발협력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새롭고 더 밝은 국면으로 들어서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조치는 2010년의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해 타당하고 상응하는 조처로서 남북간의 경제 교류를 전면 중지시킨 바 있습니다. 그러나 5.24조치의 영향 때문에 앞서 제시된 맞춤형 포용정책 접근법의 대부분의 요소가 실행 불가능한 상황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구축(trust-building)이나 단계적 신뢰 구축(step-by-step confidence building) 등을 시행하는 길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희망컨대 박근혜 정부가 이런 관점에서 약간의 양보를 통해 스스로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게 되길 바랍니다.

북한의 끔찍한 인권상황에 대해 국제사회가 새로이 주목한 것에 대해서, 앞선 몇 달간 유엔 결의안을 유예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했던 북한은 확실히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을 포용하려는 시도는 분명 북한을 압박해야 하는 현재 상황과 충돌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의 대답은 또 다시 말씀 드리지만 스탠포드 대학교 아태연구소의 세 분이 제안했던 포용정책으로, 한국은 인권 침해와 관련된 사항은 국제적으로 논의되도록 하면서 적절한 결의안들을 지지하기를 주저하지 말되, 내부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지원 등 인권적으로 필요한 다른 원조를 제공해 나가면 됩니다.

한 쪽에서 북한이 심각하게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멈추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서는 건설적인 여건을 만들어내고 북한을 포용하여 평화로운 통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뢰와 자신감을 쌓을 정도의 경제와 여타 관계망을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순적인 상황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또한 원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필요사항들을 조정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압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진전이 보이는 듯 싶으면, 북한의 또 다른 도발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릴지 모르는 위험 역시 언제든 존재합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모든 목표들이 하나로 수렴될 것입니다. 한국과 자신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프로젝트들을 진행중인 북한이 자기 보호를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점차 거두거나, 혹은 바라건대 자국민들을 억압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여긴다면 말이죠.

이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움직인 비전이었으며 그는 그 어떤 지도자보다도 남북 분단 상황에서 가교로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꿈이었던 남북 통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의미에서 평화를 향한 진정한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만도 않았습니다. 그의 이상과 낙관은 순진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햇볕” 정책은 남북한의 정부와 국민들이 직접 접촉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함을 깨달았던 그가 포용과 격려를 실용적으로 녹여 만든 것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협력 안보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했습니다. 그는 평화를 만드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그저 무언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일이 흘러가는 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들었고,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위험들을 감수할 준비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행동했던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그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접근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오늘, 다시 한번 이 위대한 한국과 국제 사회의 정치인을 기념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주신 데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